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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62화


1297화

강렬한 화염이 파도처럼 일행을 뒤덮었다.

붉고 푸른 불길은 천장까지 치솟았고, 그러고도 여력이 남아 사방으로 번졌다. 좌우에 있는 돌기둥을 휘감고, 뒤에 있던 계단 너머로 뻗어 나갔다. 그렇게 2층 공간의 절반이 순식간에 불길로 채워졌다.

그렇다고 남은 절반의 공간이 멀쩡한 건 아니었다.

그곳은 마치 오븐처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그 가운데에 아무 고기나 한 점 던져 놓으면 노릇하게 잘 익을 것 같은 온도.

하지만 정작 그 가운데 선 펠튼과 인공 초인들은 태연한 모습으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아무렴 자신들이 만들어 낸 공격의 여파에 당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펠튼은 마법으로 자신을 보호했고, 초인들은 방어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 나서 동료들을 보호했던 것.

“보기 좋군. 마음을 정화하는 불길이야.”

멈추지 않고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던 펠튼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더비히 부관주는 활약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경고이며 압박이었다. 그런 말을 했다면, 아마 이 현장도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과연 부관주는 지금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제법 만족하지 않았을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침입자들을 상당수 제거하는 모습을 본다면, 코어까지 날려 먹은 조셉과는 많이 비교되겠지.’

물론 그런 비교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펠튼은 지금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공의 일부를 먼저 간 조셉에게 돌렸다.

그가 가장 먼저 앞에 나서서 멍청한 짓을 해 주지 않았다면, 자신도 베이몬의 침묵이라는 과감한 수단을 먼저 내놓을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베이몬의 침묵’은 초인의 초인기를 강제 제어하기 위한 마법 중 하나로, 주된 목적은 대상의 초인기를 일시적으로 봉인, 또는 붕괴시키는 것이다. 영혼의 관이 개발한 회심의 역작 중 하나랄까.

그렇기에 그 사용은 조심해야 했다. 빛나는 영광에 흙탕물을 튀길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분명히 성공할 수 있는 상황을 구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번 사용 결정은 꽤 과감한 것이었다.

대상이 된 초인들이 강력하고, 또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영혼의 관에서도 지금까지 이와 같은 수준의 실험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과감한 도전은 완벽히 성공했다.

힘없이 주저앉아 버린 침입자들이 그 증거다.

또한 펠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오만한 낯짝을 한 초인 두 명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를.

“아무래도 그놈들은 따로 처분할 필요가 있겠군.”

당당히 서 있던 것으로 보아 베이몬의 침묵에 어느 정도 저항한 듯했다. 애초에 이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적을 제거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아마도 절반 정도는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 정상인 자가 얼마나 될까. 싸울 수 있는 자는 또 얼마나 될까.

‘이 싸움, 이겼다.’

얼굴을 스치는 뜨거운 바람을 느끼며 펠튼은 확신했다. 그와 함께 화염을 방출하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만, 물러나라.”

그의 명령에 공격을 멈춘 초인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도 그들이 쏟아붓던 화염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비록 태울 것이 없는 돌로 된 바닥과 천장이지만, 공기까지 태우겠다는 듯한 기세였다. 아니, 어쩌면 공기가 아니라 침입자들의 시체가 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펠튼의 이런 생각과 함께 불길은 차츰 잦아들었다. 그리고 여태 가려 보이지 않던 침입자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흡족한 상상에 부드러워졌던 펠튼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어떻게…….”

다시 나타난 라울과 플레타의 몸에는 작은 그을음조차 보이지 않았다.

척 봐도 강력한 초인기를 가진 초인으로 보였으니, 백번 양보해 그들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뒤에 보이는 이들은 뭔가. 이백의 인원 중에 화마에 싸여 비명을 지르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옷에 불이 붙은 자국도 없었다.

과연 저들이 그 강력한 불길을 뒤집어쓴 대상이 맞기는 한 것일까 싶은 모습.

더욱 기가 막힌 건, 도리어 그 화염 속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것 같다는 것이다.

힘없이 주저앉았던 초인들은 뒤로 물러나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 뒤에 일견 기사처럼 보이던 초인들이 자리를 바꿔 앞으로 나와 있었다.

“네놈들은..베이몬의 침묵에 당했을 텐데. 어째서 멀쩡한 것이냐.”

“베이몬의 침묵이라. 베이몬의 약속도 그렇고, 초인 마법에 대한 탑주의 자랑이 대단한 건가. 아니면 탑주의 명예욕이 지나친 건가. 뭐만 하면 베이몬이군.”

“・・・・・・ 어떻게 그 불길을 견딘 것이냐!”

“보면 모르나. 네 눈에는 여기 선, 우리 굉장한 실력의 마법사들이 보이지 않나 보지?”

플레타가 옆에 선 마법사의 목에 팔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마법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펠튼은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 바벨에 속한 마법사의 수준으로는 절대 지금 공격을 완전히 막아 낼 수 없다!”

순간 플레타 뒤에 서 있던 마법사들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펠튼은 그 짧은 한마디로 그들 모두를 수준 떨어지는 마법사라고 매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짜 상처가 된 사실은, 그의 말이 꼭 틀리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분하지만 조금 전 공격은 분명 자신들의 마법으로 막아내기 버거웠다. 기실 좀 전 공격을 막아 낸 사람도 자신들이 아니었다.

“누구냐! 누가 이런 재주를 부린 것이냐!”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는 펠튼에 마법사들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했다.

라미아.

후방에 있던 그녀는 은색 기사단과 함께 앞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이런 라미아를 바라보는 마법사들의 시선에는 놀람과 존경이 2대8의 비율로 적절히 잘 섞여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마법사들은 지금도 눈에 선했다.

높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화염을 간단한 손짓 하나로 막아 내고, 이백이나 되는 일행에게 반투명한 보호막을 둘러 불과 열기에서 보호하던 모습이란.

그야말로 자신들 같은 평범한 마법사는 꿈에서도 불가능한 경지였다.

그걸 손짓 하나로 끝냈으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사실을 낱낱이 밝혀 저 건방진 마법사 놈이 경악하는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고작 그 욕심 하나에 라미아의 존재와 그녀의 실력을 밝히는 못난 마법사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마법사들을 뒤로 물린 라울이 마법사들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알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뭐?”

“어떻게 막아 냈는지를 알면 이번엔 뚫어 낼 수 있겠냐는 말이다. 마법사.”

어차피 알아도 너희들은 그 벽을 넘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라울에 펠튼은 더운 숨을 토했다.

“이제 초인기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반편이가 되었을 텐데, 마법사 하나를 믿고 너무 까부는구나.”

“글쎄. 진짜 호가호위하는 것이 누구일까. 탑주의 마법에 기댄 당신? 아니면 마법사에 기댄 우리? 아니면 그놈이 그놈인가? 하하하.”

“웃어라. 웃는 것도 지금뿐이다. 상성이 좋아 이번 공격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과연 그 마법사가 삼백의 초인을 막아 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단순히 운이 나빴다고 여기고 넘기기로 한 것일까.

화염을 막아 낸 마법사에 대한 호기심을 버린 대신, 흉흉한 안광을 번뜩인 펠튼이 인공 초인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에 따라 약간 흐리멍덩해 보이는 인공 초인들의 눈이 일제히 이드와 그 일행들을 향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악!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인공 초인들이 뛰쳐나왔다. 기묘한 건, 이들 사이에는 기합 소리는 물론 공격을 조율하기 위한 그 어떤 대화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이 굉장히 기괴했다.

마치 인간이 공격에 나서는 것이 아닌, 인형이 달려오는 듯한 모습.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그런 인공 초인들의 등을 떠밀 듯 펠튼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다 끝나기 전.

빠르게 거리를 좁혀 이드 일행의 전면에 도달한 인공 초인들이 각자 들고 있는 무기, 또는 초인기를 꺼내 들며 공격을 시작했다. 쐐애액!

첫 공격의 포문을 연 것은 검을 든 인공 초인이었다. 그의 검이 눈앞의 적을 베었다.

아니, 베어낸 것처럼 보인 다음 순간.

쩌억.

정작 베어져 둘로 갈라진 것은 검을 휘두른 인공 초인이었다.

무슨 일인가. 어떻게 된 것인가.

하지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따질 여유는 없었다. 베어진 인공 초인이 그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챙!

퍼퍼퍽!

선두에 서서 덤벼들던 인공 초인들이 하나같이 달려들던 속도 이상의 빠르기로 튕겨 나갔다.

그것도 얌전히 튕겨 나가기만 한 것이 아니다. 모두 몸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상태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충돌.

그로 인해 십여 명의 인공 초인이 전투 불능이 되었다.

“이상해. 팔이 잘렸는데도 비명을 지르지 않아.”

“기분 나빠.”

그리고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당사자들. 은색 기사단의 용감한 기사들은 덤덤하게 각자 전투의 감상을 뱉어 낼 뿐이었다.

“잡담은 나중에 해! 우리 임무는 단순히 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보호하는 거다. 임무에 집중해!”

“네!”

고삐를 잡아채는 스폴의 낭랑한 목소리에 은색 기사단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기사들의 목소리엔 적에 대한 티끌만 한 두려움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신이 난 모습이었다. 1층에서 플레타 부대가 보여 준 것처럼. 이번엔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 주겠다는 생각들이었다.

“그럼 공격해! 한 놈도 우리 뒤로 넘기지 않는다!”

“충!”

촤촤촤촥!

내력이 충만한 고함이 공간을 쩌렁 하고 울려 댄다. 그 뒤를 따라 번쩍이는 칼날들이 사정없이 인공 초인들을 베었다.

“……설마…… 바벨의 전력 중 절반이, 초인이 아니었다고?”

이런 모습에 가장 놀란 것은 기사들과 싸우는 인공 초인들이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펠튼이었다.

그는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전투를 바라보았다. 계속 후방에 머물러 있어 예비 전력인 줄 알았던 자들이, 설마 초인이 아니었을 줄이야.

심지어 그냥 초인이 아닌 데서 그치지 않고, 강화된 인공 초인들을 거침없이 베어 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기사들이었다.

바벨이 저만한 기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단 말인가?

어디서 저만한 실력의 여기사들을…….

“잠깐, 여기사라면……?”

펠튼은 새삼 공격에 나선 기사들을 살폈다. 그러자 지금까지 예비 전력일 뿐이라고 무시했던 그들의 성별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사.

저만한 숫자의 여기사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이라면 대륙에 하나뿐이지 않던가.

“은색….기사단?”

곧 기사들의 정체를 파악한 펠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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