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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64화


1299화

대답 없는 천장을 올려다보던 펠튼이 가란의 거울로 눈을 옮긴다.

거기에 비치는 검후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

어쩌면 지금 부관주도 지금의 자신과 같을지 모른다. 놀람과 당혹스러움.

난데없이 검후라니.

은색 기사단이라니.

실로 거대한 암초가 아닐 수 없다.

다만 검후라는 거대한 존재감에 압도된 그는 부관주와 달리 이드의 존재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펠튼에겐 다행한 일이었다. 검후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거기에 이드까지 더해진다?

어쩌면 그는 혼자 해결할 생각을 버리고 부관주의 도움을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망신을 당할지언정 패배는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설령 패배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펠튼은 이드의 존재에 대해서는 계산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로지 검후와 은색 기사단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 둘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다.

바벨의 침입자들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은 베이몬의 침묵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기사와 검후에겐 베이몬의 침묵은 나뭇잎 한 장의 의미도 되지 못한다. 그야말로 오로지 실력으로 돌파해야 하는 상대인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에 복잡한 중에 펠튼은 문득 조셉에 대한 동정심이 일었다.

‘그 멍청한 놈은 과연 검후가 자신의 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알았다면 그렇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코어 켄타우로스라는 수단을 꺼내기 전에 도망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망신을 당하고 신임을 잃게 되더라도 베이몬의 약속이 발동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뭐, 그래 봤자 모두 지난 일이다.

‘나는 그 멍청이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아. 변수는 모두 나왔다.’

그렇게 눈앞에 상황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생각에 빠진 그를, 제자가 불러냈다.

“마스터! 적의 전력이 예상보다 너무 강력합니다!”

가란의 거울에 비치는 전황은 아직 여유로웠다.

쓰러져 바닥을 기는 인공 초인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쓰러진 적의 숫자는 더욱더 적었다. 거기에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아군 사상자의 숫자가 너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자는 그런 사실을 전달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플로어의 설정이나, 코어의 관리 등을 보조 마법사들에게 맡겼던 조셉과 달리 펠튼은 모든 제어권을 온전히 그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해라. 상대는 은색 기사단이다. 강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정말…은색 기사단인 겁니까? 저분이, 아니…… 저 여인이 진짜 검후란 말씀입니까?”

힐끔.

가란의 거울을 향해 돌아가는 제자의 눈엔 두려움과 동시에 희미한 동경이 비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영혼의 관에 박혀 있지만, 그도 대륙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이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서 추앙하는 은색 기사단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는 없었다.

끄덕.

“그래. 검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 그렇기는 하죠. 다만……”

“전투는 어떻게 되고 있느냐.”

무언가 말을 이어 가려던 제자의 말을 끊은 펠튼이 가란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은 어느새 검후가 아니라 전장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먼저 말씀드린 대로 은색 기사단이 너무 강력합니다. 벌써 전투 불능 상태가 된 실험체가 28기나 됩니다.”

“수백이 날뛰는 난전이다. 많은 것이냐?”

가란의 거울 속 전장은 복잡했다.

인공 초인들은 가진 초인기에 따라 각자의 거리를 유지하며 싸우고 있었고, 은색 기사단 역시 자신들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전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근접전에 가깝다. 대부분의 인공 초인의 초인기가 근접전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붙어서 싸우고 있는 만큼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이건 훈련이 아닌 실전이다.

무엇보다 은색 기사단의 검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고, 매서웠다. 백 개나 되는 은빛 검을 마주하고 사상자가 스물여덟이면 도리어 적은 것이 아닐까?

“적 사상자와 비교하면 많습니다. 은색 기사단의 사상자는 아홉. 그마저도 중상인 자가 없어서 그중 절반이 다시 전투에 복귀했습니다.” 

개개인의 전투력을 제외하고, 전력만 놓고 보면 이쪽이 세 배나 된다.

그런데 사상자의 숫자도 이쪽이 세배나 많다. 그에 비해 은색 기사단은 사상자도 적은데, 그 중 절반이 전장에 복귀했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전투 능력의 차이가…… 심각할 정도로군.”

삼백 명이나 되는 전력이 백 명을 밀어붙이지 못하고, 오히려 당하고 있다.

펠튼 이마의 주름이 시름만큼 깊어졌다. 이대로 전투가 지속된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전투가 이어질수록 승기는 은색 기사단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질 것이다.

“전황이 완전히 기울기 전에 어떤 대책이 필요합니다.”

“알아. 하지만 어중간한 수단은 안 돼. 저들에겐 아직 움직이지 않은 은색 기사단장과 검후가 있다.”

그들이 전투에 나서는 순간, 단순히 기사 둘이 더해진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당백. 아무리 못해도 기사 수십, 어쩌면 수백이 더해진 것 같은 효과를 낼 터였다.

무엇보다 검후가 전투에 나서는 순간 은색 기사단의 사기도 함께 오른다. 마스에서는 ‘사기가 오른 기사의 전투력은 두 배’라는 말도 있다. 어쩌면 그 순간, 삼백 대 백이라는 전력 차가 역전될 수도 있다.

그걸 알기에 저 두 사람이 당장 전투에 나서지 않는지도 모른다.

“단번에 전황을 뒤집을 방법이라. …………저쪽에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천장을 힐끔 올려다본 펠튼은 부관주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아직 아무런 말이 없는 걸 보면 그녀는 개입할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날 이용해 검후와 은색 기사단의 전력을 파악하겠다는 건가. 순순히 당하지는 않을 거요, 부관주.’

어떤 결심을 한 것일까.

심상치 않은 기세로 눈알을 번들거리던 펠튼이 제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제자가 주춤 몸을 떨었다.

“마스터?”

“적이 적인 만큼, 우리도 최후의 수단을 꺼내야겠다.”

“혹시………… 코어를……”

“그런 멍청한 짓은 조셉으로 충분하다. 너는 당장 가서 네트나를 깨워라. 지금이 그것들을 써야 할 때다.”

마치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와 같은 냉정한 목소리.

반대로 생각지도 못한 결정에 제자는 펄쩍 뛰었다. 어지간해서는 스승의 말에 토를 달거나 반대하지 않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마스터. 네트나는 아직 제작 과정 중에 있는 상태입니다. 갑자기 그걸 중단하게 된다면 파괴될지도 모릅니다.”

“그게 어때서?”

“……네?”

“부서지면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냐. 연구 자료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당장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아니라 내가 파괴될지 모른다. 너는 이 스승보다 그것들이 더 중한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느냐? 네트나야말로 내 연구의 최고 결과물이다. 틀렸느냐?”

영혼의 관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공통으로 힘을 쏟는 주제는 초인 마법이다. 그러나 오직 그것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각자의 생각이 다른 만큼, 성향에 따라 제각각의 연구 주제를 가지고 있다.

네트나는 그 중 펠튼이 초인 마법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있던 주제였다. 그리고 현재 차근차근 완성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애지중지하는 연구물이지만, 검후와 은색 기사단이라는 암초를 헤치고 나가기 위해서 꺼내 놓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연구를 함께하고 있는 제자는 이런 스승의 결정을 끝까지 반대할 용기도, 권리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몇 기를 깨울까요?”

“전부. 어중간한 숫자는 통하지 않는 상대다.”

“그럼 즉시 소생 과정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런데………….”

석실 밖을 향해 몸을 돌리던 제자가 돌연 멈칫한다.

“뭐?”

“그・・・・・・ 깨어난 이들에게 적이 누구인지 알려야 할지……………..”

‘네트나’로 불리는, 특별 제작 중인 인공 초인들.

그들은 현재 전장에서 싸우는 인공 초인들과 달리 선명한 이지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자신이 누구와 싸워야 할지 궁금해할 게 분명했다.

“……말해 줘. 안다고 그것들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아. 오히려 반가워할지도 모르지. 그렇게도 특별해지기를 바란 것들이 아니냐.” 

물론 그들이 바란 ‘특별함’은 어디까지나 스스로가 기준이었지, 특별한 적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펠튼에겐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대답을 듣고 석실을 나선 제자의 모습에 펠튼은 가란의 거울에 양손을 올려 마법진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네트나가 진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수였다.

“나약한 녀석.”


콰르르릉!

번개를 잘 닮은 공격이 떨어지며 폭발했다.

“부상자!”

“없습니다!”

“진형을 정비하고, 유지해!”

충격에 진형이 흐트러진 기사들을 보며 스폴이 소리쳤다. 그러자 일그러졌던 진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돈된다. 정신없는 난전 속에서도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리 잡기. 그야말로 수없는 훈련과 피나는 실전을 통해 얻어 낸 움직임.

그것은 실력이었다.

이런 실력을 기반으로, 은색 기사단은 높고 단단한 벽이 되어 삼백의 적들을 문제없이 막아 내고 공격해 차근차근 쓰러트리고 있었다. 

“과연 굉장하군요. 직접 본 은색 기사단의 활약은 듣던 바 이상인 것 같습니다.”

“플레타 부대의 활약에 뒤질 순 없어 힘을 내고 있지.”

“하하하. 뒤에 숨어 있는 저희를 그리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플레타가 마치 검후의 수하가 된 듯 굴었다.

이런 모습에 라울과 오탄이 부끄러운지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확실히 은색 기사단의 실력이 대단하긴 합니다. 이대로라면 금방 전투가 끝이 나겠습니다.”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렇겠죠.”

“……변수가 있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저 마법사가 못 보지는 않지 않을까요?”

이드는 의아해하는 오탄에 저 멀리 선 펠튼을 가리켜 보였다.

아까 전부터 마치 멈춰 버린 듯 꼼짝하지 않고 선 그. 아니, 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영상.

그리고 그런 이드의 짐작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저벅저벅.

다시 고개를 든 펠튼의 모습과 함께, 그의 뒤로 몇몇 인형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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