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65화
1300화
“저들이 추가 전력을 내놓은 것 같습니다.”
눈을 가늘게 좁힌 쉴라가 새로이 나타난 이들을 살폈다.
그들은 바로 전장으로 뛰어들지 않고 펠튼 옆에 가만히 멈췄다.
그 모습에 검후의 고개가 갸웃했다.
“그런데 증원치곤 너무 적은 것 같구나?”
새롭게 나타난 이들은 총 여섯.
적과 아군을 합쳐 사백여 명이 뒤섞이고 있는 전장에 변화를 가져오기엔 너무 미미한 숫자였다.
“수가 적다는 건, 그만큼 개개인이 가진 전투력이 강력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쉽게 말해 양보다 질이란 말이다.
“역시 그럴까요? 어떤가요, 명예 후작? 저들도 초인인가요?”
“네. 강력한 초인력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특이합니다.”
“어떤 점이 특이한가요?”
검후의 물음에 이드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저걸 제공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들의 초인력이 바람에 날리는 홀씨처럼 넓게 퍼져 일렁거리고 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기감만으로 적을 속속들이 파헤치기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아무런 의도도 없이 저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초인력을 저와 같은 형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적을지언정 초인력의 소비를 피할 수가 없다.
쉽게 말해 힘의 낭비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유지한다는 건 그 이상의 이점이 있다는 말인데.
과연 무슨 목적일까.
이드가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까 마음먹으려 할 때였다.
쿵!
가짜 펠튼이 돌연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진짜가 아닌 가짜였지만, 펠튼의 형상을 만들고 있는 마나의 밀도가 높기 때문일까.
지팡이는 진짜와 같은 묵직한 파동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파동의 꼬리를 물며 뒤틀리기 시작하는 마나의 흐름.
소리 없이 빠르게 들썩이는 입술.
펠튼이 마법을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혹시 강력한 마법으로 증원된 전력이 난입할 자리를 만들려는 것일까.
이에 플레타가 마법사들을 찾았다.
“모든 마법사는 적의 마법 공격을 대비하라! 단 하나의 불티라도 은색 기사단 머리 위로 떨어져선 안 돼!”
“그러기엔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현재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마법사는 셋.
다른 마법사들은 단절의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이런 모습을 냉담한 눈으로 바라본 플레타가 단호한 목소리를 명령을 내렸다.
“결계를 거둬. 그러면 대응 가능한 인력이 생길 거 아냐.”
“하지만 그랬다가는・・・・・・・”
“그랬다가는, 뭐? 어차피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거. 부대가 지금 어떤 꼴인지 보고도 유지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와?” 병든 닭처럼 골골거리는 부대원들.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분명 결계의 유지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마법사는 말문이 막혔다.
단절의 결계는 분명 처음 목적했던 효과가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마법사가 쉬이 플레타의 말을 따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결계에 모종의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런 외력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응당 아무것도 걸릴 게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부하가 있다는 것은 간단하다.
결계는 분명 무언가를 막고 있다. 무언가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는 것이다. 어쩌면 결계가 있기에 초인들이 그나마 정신이라도 차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곤란한 마음에 마법사가 라울을 향해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라면 플레타보다 이성적인 결정을 내려 주리라.
그런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결계는 필요하니 유지하세요. 은색 기단에 대한 공격이 있다면 그건 제가 감당하도록 할 테니까요.”
“그 말씀은.. 결계가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까?”
마법사 전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 중이던 라울의 물음에 라미아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베이몬의 침묵이라는 초인 마법은 미소 단위의 마나장을 만들어 내는데, 결계가 이것의 상당 부분을 막고 있죠.”
“…………대단하십니다. 결계를 사용하고 있는 저희도 파악하지 못한 부분을 어떻게….”
마법사가 조금은 허탈한 듯,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새삼 존경에 찬 눈으로 라미아를 바라본다.
결계 안에 있으면서 어떻게 적의 마법에 대한 마법을 파악해 낼 수 있는가.
그러나 감탄하는 것은 마법사들뿐이다.
당장 라울의 입장에선 적의 마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계는 계속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예 후작 부인께 수고를 끼치게 되겠지만, 은색 기사단에 대한 방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굳이 부탁하지 않으셔도 제가 신경 써야 할 일이랍니다. 다만, 과연 제가 나설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혹시 적 마법사가 준비하는 것이, 공격 마법이 아닙니까?”
“아니에요.”
단호한 답변.
세상 모든 마법을 아는 것도 아닐 텐데, 저렇게까지 확신한다고? 그렇다고 부정하기에는 지금까지 보여 준 라미아의 마법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것인가.
그런 의문이 펠튼에게 모여들 때다.
마침내 주문을 완성한 펠튼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마법을 발동했다.
그러자 지팡이 끝에 촛불처럼 일어나는 마법진의 빛.
“방어 준비를 합니까?”
“……아니.”
조급한 오탄의 속삭임에 라울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라미아에 대한 믿음일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라미아의 말을 듣기로 한 라울의 결정은 옳았다.
촛불처럼 일어난 마법진은 순식간에 천장에 닿을 만큼 커졌지만 요란한 폭음을 터트리지도, 번쩍이는 불꽃을 쏘아 내지도 않았다.
대신 가만히 선 여섯의 추가 전력을 그 안에 감쌌다.
아직 전투에 나서지 않은 적들을 보호부터 하는 것인가?
“뭘 하는 거지?”
그런 의문에 이드가 안력을 더할 때였다.
파팟!
기사와 맞서 싸우고 있던 인공 초인들의 가슴에서 짧게 빛이 번뜩이고 사라졌다.
마법진의 영향에 든 건 여섯 초인인데 어째서 저들에게 영향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상한 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포옹.
기사의 검에 베여 먼저 죽어 쓰러진 시체들, 움직이지 않는 그들의 가슴에서 작은 빛이 튀어나오더니, 곧 허공 속으로 녹아 사라졌다.
“저건 또 뭐야. 라미아?”
도대체 뭘 하자는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미아라면 답을 찾아내 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라미아를 찾는 이드였지만,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라미아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
“가자!”
“힘이 솟는다! 이젠 세상 누구도 날 무시하지 못해!”
“으하하하하! 모조리 죽여 버리자!”
여섯 초인을 감싸던 마법진이 사라지며, 그 안에 있던 여섯이 목줄 풀린 미친개처럼 뛰어나왔기 때문이다.
눈에 보일 것 같은 살기를 풀풀 날리는 이들.
그렇게 여섯 맹수가 초인기라는 송곳니를 길게 드러내며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새로운 적은 상급 기사들이 상대한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적의 등장을 경계한 쉴라가 상급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직 정확한 전력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상급 기사라면 아무리 강력할지언정 잠시는 감당할 수 있으리라.
그런 그의 명령에 따라 상급 기사 다섯과 수석 기사 스폴이 상대하던 적을 다른 기사들에게 넘기고 여섯 명의 적에 맞서 검을 휘둘렀다.
검과 검이.
창과 검이.
녹색과 황색 빛으로 뻗어 나온 초인력과 검이.
콰르르르릉!
부딪쳤다.
“크윽!”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신음 소리.
하지만 그 주인을 찾을 시간은 없었다. 첫 충돌이 가져온 강력한 충격파가 가시기도 전, 곧장 다음 공격을 주고받는다.
콰쾅!
그때마다 폭음과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 물러서!”
지근거리에서 터진 충격파에 속이 울렁인다. 그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사들이 서로를 향해 경고했다.
기사들이 물러서자 그들을 따라 인공 초인들이 움직인다. 자연스럽게 전장에 여섯 개의 작은 공터가 생겨났다.
열두 명의 전사들이 그 안에서 온 힘을 다해 적을 공격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쉴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른 초인들보다 강력한 전력입니다. 방심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하지만 은색 기사단의 뛰어난 기사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라울이 여섯 기사의 활약을 칭찬하고 나섰다.
분명 새로 나타난 여섯의 적은 강력하다. 바벨 안에서도 상위 전력으로 분류될 실력이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기사들은 누구 하나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당당히, 또 능숙하게 싸움에 나서고 있다.
과연 뛰어난 명성에 모자라지 않은 실력을 보인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라울의 속은 편하지 않았다. 솔직히 끓어오르는 불안에 가슴이 답답했다.
인공 초인을 볼 때도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상급 기사와 싸워 낼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초인들을 보자 전에 없던 위기감이 엄습해 왔다.
인공 초인과 마찬가지로 분명 저들 여섯도 영혼의 관에서 만들어 낸 인공 초인일 것이다. 문제라면 저들이 가진 힘이다.
영혼의 관이 어느새 저 정도의 초인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방법을 찾아냈단 말인가. 저들이 저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 더 많은 초인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게 된다면?
‘끔찍하군. 영혼의 관에 대한 습격이 더 늦지 않은 것이 천운이다.’
정말이지.
저 방법이 마스로 흘러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으로도 라울은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에 빠진 라울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검후가 고개를 돌리다 의아해했다.
전장을 바라보는 이드의 미간에 주름이 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예 후작은 지금 전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니라, 조금 이상한 점이 자꾸 보여서 말입니다.”
“저들 여섯을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드는 검후의 말에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제가 저들이 품은 초인력의 형태가 이상하다 말씀드렸던 건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죠.”
“그게 저들이 전장에 뛰어드는 순간 변했습니다.”
이드의 말에 검후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요? 내력도 검의 움직임에 따라 쳔변만화하지 않습니까.”
“아뇨. 제가 말하는 변화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저들의 초인기는…..뭐랄까. 약하지만 일정한 흡입력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계속 빨아들이고 있어요.”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