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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27화


1362화

어두운 밤길. 타탁!

타타타탁!

심지어 별과 달을 가리는 나뭇잎으로 인해 더더욱 캄캄한 숲길을 바쁘게 달리는 발소리들이 있었다.

그 발걸음의 주인은 완전 무장을 한 기사들이었다. 하나같이 곰처럼 넓은 어깨에, 늑대처럼 날렵한 몸을 한 정예 기사들.

그런 기사들이 현재 한 손에는 검을 든 채 숲속을 달리는 중이다.

특히 이들의 특이점이라 할 만한 점은 바로 시선이었다.

그들은 부리부리한 눈을 한 채, 무언가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어둠 속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쫓는 사냥꾼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숨소리도 죽여 가며 얼마를 더 달렸을까.

선두의 남자가 돌연 주먹을 들어 올렸다.

꽈악!

그에 달리던 기사들은 그 자리에 멈춰 사방을 경계했다.

여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 듯, 그들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오차도 없었다.

이미 아는 것이다.

작은 빈틈이 생기는 순간 누군가 죽는다는 것을.

숨 막힐 듯한 짧은 침묵이 흐르고, 주먹을 들었던 남자가 전방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기사가 조심스럽게 나서 그 방향을 살핀 후, 고개를 저었다.

“……”

그 모습에 누군가 뱉어 낸 짧은 한숨.

하지만 아직은 긴장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선두의 남자가 다시 전진을 명령했다. 그를 따라 기사들이 숲속을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야말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버언쩍!

어둠이 물러나고, 세상이 밝아졌다.

눈이 시큰거릴 정도의 밝기. 횃불이나 라이트 마법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이 당혹스러운 현상에 기사들은 황급히 빛이 비치는 방향을 살폈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밝은 태양이, 밤하늘의 주인인 달과 함께 떠 있는 모습을 말이다.

“!!”

설명할 수 없는 기현상에 기사들은 잠시 말을 잊었다.

그들이 가진 지식으로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그들의 지식이 모자라 생긴 문제일까.

비단 이 자리에 그들이 아니라 그 어떤 지식인이 있어도 상황을 쉬이 설명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이리라.

당연하다.

한밤중에 갑자기 뜬 태양을 누군들 어떻게 설명할까.

애초에 이런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주, 주군! 이건 도대체……………”

“당황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라. 저게 우리를 공격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놀라운 현상을 앞에 두고도 침착을 잃지 않은 타란 백작.

그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사들도 빠르게 침착을 찾기 시작했다.

타란 백작의 말이 옳았다.

태양이 뜬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장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닌데 무작정 다급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분명히 말해 날이 밝은 것도 아니다.

저 멀리 하늘은 아직 어두웠으며, 생체 시계도 지금은 여전히 밤이라고 분명히 알려 주고 있었다.

‘역시 주군이시다. 주군이 아니면 누가 있어 이런 상황에 침착할 수 있을까’

주군에 대한 존경심이 가슴에 가득 차오른다.

보는 사람이 없음에도 어깨가 으쓱해진 피오 단장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을 꺼냈다.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혹시 검왕이 띄운 것은 아닐지요?”

“그럴 리는 없네. 검왕 측에는 그만한 마법사가 없었어. 자네도 보면 알 테지만, 저런 마법은 어지간한 마법사로는 꿈도 꿀 수 없어. 무엇보다 그들이 굳이 무엇하러 저런 걸 만든단 말인가?”

“저희의 위치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또, 길이 밝아지니 도주도 한층 쉬워지겠지요.”

“드러나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 오히려 손해는 그쪽이 크겠지. 저런 게 떴어. 어디 움직이는 것이 우리뿐일까.”

어두운 밤하늘 높이 뜬 태양이다. 작은 횃불도 아니고.

아마 주변 영지에서도 똑똑히 보고 있을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비상이 걸리는 것은 당연.

도망자들 입장에서는 절대 피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그럼 저것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요?”

“단장은 저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처음엔 당황해서 몰랐습니다만, 가만히 보면 진짜 태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열기는 더욱 모자라고, 무엇보다 그 크기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네 관찰력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군.”

“그런 말씀 하시면 민망합니다. 그래 봤자 주군이 살피신 것의 반의반도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타란 백작의 칭찬이 싫지는 않은지 입꼬리가 슬며시 늘어지는 피오 단장이다.

타란 백작이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도 피오 단장과 같았다.

저건 진짜 태양이 아니다.

진짜 태양이라면 내공을 주입하지 않은 눈으로는 이렇게 편하게 직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단장의 말이 옳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저런 걸 만들었을까?”

“글쎄요…….”

“저 방향에 있는 것은?”

“프젠, 롤라프, 안니아가 있습니다.”

피오 단장이 해당 방향에 자리한 영지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말하는 본인부터 납득한 눈치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영지들은 조용한 시골 영지들로, 저런 일이 일어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타란 백작이 정답을 직접 내놓았다.

“아니, 저건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가깝지. 그렇게 따지면 아마도………. 영혼의 관 위겠군.”

“설마 검왕을 미끼로?”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뜬 피오 단장.

그에 타란 백작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태양이 진짜 영혼의 관에서 뜬 것이라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의미일 텐데. 추적을 포기하고 돌아갈까요?”

“흐음.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고 싶으냐다.

작지만 큰 차이.

피오 단장은 주군의 이러한 뜻을 잘 알아차리고서 답했다.

“……저라면, 검왕을 쫓겠습니다.”

“이유는?”

이유를 묻는 타란 백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한다.

그에 자신의 대답이 옳았다는 확신이 든 피오 단장의 주장에는 자연스레 힘이 실렸다.

“저런 것이 떴을 정도라면, 저기 일은 이미 끝이 났을 겁니다.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에 비해 검왕은 여전히 우리의 추적 범위 안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하들의 목숨값을 아직 제대로 치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이유가 가장 마음에 드는군.”

“그러시다면?”

“당연하지 않나? 검왕에 대한 추적을 이어 가야지.”

“그런데 정말 그래도 괜・・・・・・ 찮을까요?”

반가운 표정을 짓던 피오 단장이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임무는 영혼의 관을 지키는 것이지, 검왕을 추적하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임무는 타란 백작의 실패에 대한 만회를 위한 것.

그런 일을 이렇게 마음대로 정해도 될까?

그러나 정작 타란 백작은 아쉬움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피오 단장의 어깨를 툭 쳤다.

“괜찮지는 않겠지.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이쪽이 최선이야. 자네 말처럼 영혼의 관은 이미 틀렸을 가능성이 크지. 그에 비해 검왕은 아직 희망이 있네. 특히 그의 명성은 우리를 든든히 지켜 줄 것이야.”

“분명 검왕이 거물이기는 하지요.”

검왕이라면 세상이 인정하는 최고의 기사다.

그에게 패했다고 해서 무능하다고 말하고, 징계를 내릴 사람은 없다.

하늘의 태양은 어느새 그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타란 백작은 그런 태양을 등지고 돌아서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지. 더욱이 나는 긴급 상황에 대한 조치를 취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지. 왜? 마법사가 죽었으니까. 검왕의 공격에 의해서.”

“……”

마치 농담처럼 꺼내 놓는 말에 피오 단장은 순간 주군이 이런 분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모든 책임을 검왕에게 미룰 줄이야.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대는 바로 그 검왕이었으니까.

“그럼 다시 추적을 시작하지. 이번에도 내가 선두에 선다. 모든 기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

“충!”

낮고 무거운 기사들의 복창에, 타란 백작은 빠르게 숲속으로 달려들었다.

모든 책임을 검왕에게 떠넘기긴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를 잡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것이 여의치 않거든 최소한 피는 봐야 했다.

그러지도 못한다면, 추적 중에 죽어 나간 부하들의 목숨값이 너무나 아깝다.

그러니 저 태양이 아직 밝게 빛나는 동안 최대한 거리를 좁혀 놓아야 했다.


영혼의 관 위에 태양이 뜨기 전이었다.

츠즈즈줏,

희미한 마법광이 일어나더니, 지름 이십 미터의 커다란 마법진이 땅속에서부터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공간이 크게 출렁였다.

곧이어 출렁이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그 자리에 없던 사람들을 하나둘 뱉어 내기 시작했다.

바로 영혼의 관 안에 있던 일리나와 검후 일행이었다.

갑자기 변한 주변 풍경에 오탄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주변을 경계하고, 상황을 파악한다!”

“파악이고 자시고, 딱 보면 알잖아. 공간 이동이다. 더구나 여긴 우리가 왔던 곳이잖아. 긴장 풀어.”

그에 반해 플레타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쩐지 조금 기운이 빠진 것 같은 모습.

그럴 만도 했다.

나름 엄청난 전투에 긴장했고, 그 여파 속에서 어떻게 부하들을 살려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한데 이렇게 아무런 고생도 없이, 너무나도 간편하고 안전하게 탈출을 완료해 버릴 줄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주변 경계를 시작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해.”

오탄의 건의를 가볍게 허락한 플레타는 조금은 어이가 없다는 기분을 감추지 않고서 검후와 일리나를 향해 다가갔다.

“대체 언제 여기다 마법진까지 설치한 겁니까? 그럴 여유는 없었던 거 같은데. 혹시 두 분께서는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겁니까?”

“나도 조금 전에 들었소. 하지만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닐 텐데? 마법사들이야 본래 그런 자들이지 않은가.”

준비에 준비를 더하는 족속.

그렇게 철저한 준비가 신비로 포장되는 족속이 바로 마법사들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미리 귀띔이라도 좀 해 주셨으면 좋지 않습니까. 괜히 쓸데없는 고민을 했더니 배만 고파졌습니다.”

“이 상황에 배고프다는 말이 나오다니. 자넨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

칭찬인지, 핀잔인지 알 수 없는 검후의 평가에도 플레타는 그저 무덤덤한 반응이다.

하긴, 라울에게 쉼 없는 잔소리를 듣던 모습들을 생각해 보면 저리 무덤덤한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어지는 일리나의 말에는 차마 계속 그 태도를 고수할 수 없었다.

“두 분, 아직 긴장을 놓으시면 곤란합니다. 이드와 혼돈의 파편 간의 전투는 아직 끝난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녀의 말에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 태양이 떠올랐다.

뒤이어 밝은 태양을 쫓아 솟아오르는 작은 그림자 두 개.

그 정체를 짐작하지 못할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거참.”

플레타가 쩌업 하고 입맛을 다셨는데, 그 심정이 참으로 복잡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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