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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31화


1366화

“그래도 부관주보단 등급이 떨어지니, 조금 싸게…….”

“저도 그렇게 양심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헐값에 넘기지도 않겠어요.”

“하아, 너무하십니다. 저희 사정도 좀 봐주십시오. 안 그래도 어려운데…………”

풀 죽은 모습의 라울에 라미아는 콧방귀를 날렸다.

“흥, 어림도 없는 수작이네요. 바벨이 돈이 없다니. 세상에 그걸 믿는 사람이 있기나 해요?”

조직이 클수록 굴리는 자금의 규모도 비례하는 법.

현재 마탑과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바벨의 자금 규모는 어지간한 중견 왕국에 비견될 정도다.

이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을 두고 돈이 없다니.

말을 꺼낸 장본인인 라울도 민망한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깐다.

“크흠. 거, 돈이 없다기보다는 책정된 예산이 좀.

“그 고민은 자작님의 것. 제 알 바는 아니죠.”

“그렇기는 합니다만…… 하아~ 분명 불량품도 있을 텐데.”

씨알도 먹히지 않는 라미아이 반응에 라울은 우울한 눈으로 마법사들을 살폈다.

그 모습은 마치 상한 생선을 고르는 주부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마법사들로서는 실로 치욕스러운 경험이었다.

고된 마도의 길에 오른 후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은 결단코 없었다.

더욱이 그들은 초인 마법이라는 신대륙을 개척하던, 자부심 높은 영혼의 관 소속의 초인 마법사들이 아니던가.

“읍! 읍읍읍!”

“……”

그들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인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막힌 입으로 인해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라미아와 라울은 그들의 이런 모습에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마법사들 입장에서는 이런 무관심이야말로 더욱 충격이었기에 그저 질끈 눈을 감을 뿐이다.

덕분에 그들은 보지 못했다.

눈을 마주친 라미아와 라울의 입가에 짧게 스치는 음험한 미소를 말이다.

그렇게 마법사들의 정신에 대한 조치까지 마친 후, 라울의 추가 설명 요청에 라미아는 말을 이었다.

“보자, 얼마나 심각한지를 물으셨죠?”

“될 수 있으면 이론을 빼고, 간단하게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봐도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닌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 말대로 현재 영혼의 관 상황은 좋지 못했다.

연이어진 충격에 바닥은 쩍쩍 갈라졌고, 벽에는 크고 작은 금이 거미줄처럼 생겨 있었다.

이런 사정은 그들이 서 있는 연구실 역시 마찬가지.

마법으로 철저하게 보호되는 연구실이 이럴 정도라면 영혼의 관에 더 남아 있는 게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라미아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문제의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접근 방법을 궁리하는 한편,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히 말할게요. 지금 초인 마법이 탄생하는 중이에요.”

“그렇군요. 출산이라니, 축하할 일입니다만, 너무 줄이셨습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부탁과 함께 마법사들을 살피는 라울.

그와 달리 라미아의 말을 이해한 듯 보이는 마법사들이었으나, 무언가 혼란스러운 모습은 여전했다. 

당연했다.

초인 마법을 탄생시키고 죽어 가는 탑주라니. 납득이 될 리가 없다.

사마귀도 아니고 말이지.

“흐음. 마법적인 관점에서 이보다 쉽게는 힘든데. 음, 그럼 예를 들어 볼게요. 보통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하나요?”

“책임자를 선정하여 지시를 내린 후 기획서를 받습니다.”

잠깐의 고민 후에 던진 질문에 대한 라울의 대답. 라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돌아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이 사람이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나?

너무나 바벨의 간부다운 대답이 아닌가.

라미아는 질문을 수정했다.

“위쪽 말고. 아래쪽에서 올라가는 일입니다.”

“그 경우라면 일단 기획서를 작성하고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다음은요?”

“기획서가 마음에 들면 상관의 사인이 떨어지고, 정식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혹시?”

“네, 맞아요. 지금 바이트 타블렛이라는 기획서가 제출된 상태로, 상관이 검토 중이죠. 마음에 들면 사인이 떨어질 것이고. 그때부터 초인 마법은 세상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을 받게 될 거예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허락을 받다니. 누구에게 말입니까?”

혹시 마법의 신이 기획서를 검토하기라도 하나?

“이 세계를 움직이는 모든 법칙. 섭리로부터요. 모든 신의 총의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고요.”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해 생략하긴 했지만, 드래곤에 의해 처음 마법이 탄생할 때도 이와 같은 과정은 있었다.

또한 원시적인 마법을 부리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제는 극소수만이 전승으로 전해 들어 알고 있는, 곰팡내 나는 이야기랄까.

“하지만 초인 마법은 이미 잘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허락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말과 달리 미완의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은 초인 마법을 지금까지 잘만 사용해 오지 않았던가.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였던 거죠. 집을 짓기 전에 모형을 먼저 만들어 보고, 기획서를 내기 전에 일의 타당성을 따져 보는 것처럼. 초인 마법도 사인을 받기 전에 이상 없이 이론대로 잘 사용되는지 기회가 주어졌던 거예요. 연구실 수준의 테스트랄까요?”

“연구실 수준이 참・・・・・・ 엄청나군요.”

겨우 ‘연구실 수준의 테스트’로 인해 전 대륙이 얼마나 떠들썩해졌는지를 아는 라울로서는 기가 막힌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라미아의 대답은 간단했다.

“맞아요. 규모의 차이죠.”

인간이 자신의 집에 있는 어떤 방을 연구실로 사용하는 것처럼, 세계라는 집을 가진 섭리는 그레센이라는 거대한 땅덩이를 연구실로 사용한 것이다.

인간 기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규모였다.

바벨의 간부로서 세상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살핀 경험이 있는 라울조차 숨 막힐 정도의 스케일.

그러거나 말거나 라미아는 산뜻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보기에 따라 영광스러운 자리예요. 길고 긴 마법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순간을 함께하는 거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 마법이 저희와 관련만 없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문제죠.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는데, 지금 상황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동감입니다. 울림 있는 훌륭한 문장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라울.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신경은 온통 바이트 타블렛을 향해 있었다.

아무렴 라미아가 단순히 초인 마법의 탄생 때문에 심각해진 것은 아닐 테니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음이 분명했고, 라울도 그에 짐작이 가는 부분이 몇 있었다.

우선 당장 눈에 들어오는 건 미라가 된 탑주다.

부모를 잡아먹고 태어난 놈이 정상일 리가 없지 않은가.

흑마법에 의한 저주나 악마 소환도 아니고, 시전자가 저런 꼴이 되는 마법이 어딨단 말인가.

지금도 웅얼대는 마법사들이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이런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태어나는 초인 마법이, 자신이 아는 그것이 아닌 경우.

즉, 초인 마법의 오염 가능성이다.

초인 마법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초인의 한 사람으로서는 심히 우려스러운 사태였다.

“눈앞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잘 알았습니다. 혹시 명예 후작 부인의 우려는 초인 마법의 오염 가능성입니까?”

“가능성을 따질 단계는 한참 지났죠. 초인 마법의 오염은 확실하니까. 진짜 우려스러운 점은, 오염 범위가 초인 마법의 기준을 넘었을 경우예요.”

“그렇다면, 혹시 다른 계통의 마법?”

“뭐, 그런 경우도 문제긴 할 테지만. 어쩐지 그쪽은 아닐 것 같아요. 혼돈의 파편인 존 워스가 이 일을 벌였다면 아마도…….”

말을 흐리는 라미아의 눈이 라울을 향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에 따라 라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도 이해한 것이다.

버서커 현상의 원인이 되는 혼돈의 파편이 개입된 일인 만큼, 그 일이 초인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엇보다 이는 단순한 우려나 가능성 수준이 아니다.

그랬다면 라미아가 굳이 언급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라울의 입안이 사막처럼 바짝 말랐다.

어째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이번 작전의 중요성이 자꾸자꾸 커지는 것일까.

또 자신은 왜 고작 이 정도의 전력만을 대동한 것일까.

그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복잡한 마음을 다잡고는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혹시 확인이 가능하겠습니까?”

지금의 불안이나 걱정은 어디까지나 짐작에 의한 것이었다. 막상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라의 꼴을 한 탑주뿐이다.

뭐,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겠냐 싶기도 하지만.

라미아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괜히 섣부른 짐작이 오히려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한 방법이 있어요.”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고마워요. 필요하면 요청하죠.”

라미아가 생긋 웃으며 라울의 도움을 거절했다. 그의 골든아이가 아무리 뛰어나도 마법사의 영역에서 그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라울도 그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라미아가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탑주와 그를 둘러싼 가시나무 앞으로 다가섰다. 라미아의 접근에도 탑주와 가시나무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잠시 멈춘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오류는 없는지를 되새겼다. 그리고 오류가 없음을 재확인하고는 손을 움직였다. 그 손은 거침이 없었다.

“원시의 기원을 담은 비석이여, 마나의 부름에 따라 하늘과 대지가 어우러지는 곳에서 나와 푸른 생명의 나무를……………”

마치 음유시인의 노랫소리 같은 주문이 시작되며, 라미아의 양손에서 다섯 쌍의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마법진은 갈고리처럼 가시나무의 걸어

당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능숙한 정원사의 손길을 연상시켰다. 가시나무는 마법진을 따라 꼬이고 꼬인 가지를 서서히 풀어내며 감싸고 있던 탑주를 라미아 앞으로 내보였다.

“읍읍! 읍읍읍!”

“으으으읍!!!”

이 모습에 마법사들이 배에 올라온 생선처럼 펄떡거렸다. 그런 마법사들을 대신해 라울이 물었다.

“이대로 빼내시는 겁니까?”

“아뇨. 이미 완전히 결합된 상태라서 그러긴 힘들어요. 그럴만한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도 아직은 없고요.”

어떻게 보면 혼돈의 파편에 당한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달리 보면 자업자득인 부분이 많았다.

더욱이 탑주와는 딱히 친분이랄 것도 없다. 냉정한 말이지만 굳이 그를 구하기 위해 없는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되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만?”

“영혼이 속박되어 있을 뿐, 육체적으로는 이미 죽은걸요. 그 증거로,”

말을 멈춘 라미아가 검지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손끝에 빛이 머물렀다. 그녀는 그 손가락을 탑주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찌이이잉!

곧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가락이 탑주의 머리를 따라 원을 그렸고,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딸깍.

탑주의 두개골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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