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939화


1374화

우웅! 우우웅!

가슴 떨리는 검명과 함께, 존 워스의 어깨 너머에서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검 두 자루.

‘나 보검이야’ 하는 오라를 온몸에서 뿜고 있는 검의 모습은 분명 이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이었다.

덕분에 확인할 수 있었다.

존 워스의 정체는 혼돈의 파편 중 하나였던 페르세르라는 사실을 말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짐작이 사실로 밝혀져 신이 났을까. 이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사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두 자루의 검을 본 이드는 황당하게도 조금 반가운 마음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가움은 오로지 이드의 것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두 자루의 검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콰릉!

움직인 그 순간 음속의 벽을 돌파한 검은, 검이라기보다는 총알 같은 느낌으로 이드의 머리와 단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두 자루의 검이 출현하는 순간,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대비하고 있던 이드는 어렵지 않게 두 자루를 걷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검의 공격은 그게 시작이었다. 하긴, 겨우 이게 끝이라면 굳이 존 워스가 이 시점에 검을 꺼내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콰콱!

순간 목표를 잃은 두 자루의 검은 백육십 도 선회, 즉시 방향을 바꾸어 다시 이드를 향해 쏘아졌다. 가속도니, 관성이니 그런 물리 법칙은 쓰레기통에 내던진 듯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대단한 점은, 그런 방향 전환에도 속도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떨어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어. 이쪽의 반탄력을 이용하는 건가? 짜증 나네.’

이용하는 쪽이라면 또 모를까, 허락도 없이 이용당하는 쪽이 된다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충돌 시 반탄력이 상대의 속도를 높여 준다는 사실을 바로 파악한 이드는 즉시 그 힘을 허공으로 흩어 버리기 시작했다.

카가가가각!

과연 효과는 있었다. 검의 비행 속도는 더 빨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빠르다. 이미 음속의 세 배속이다.

더욱이 그런 속도를 조정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 워스의 검은 그야말로 존 워스가 세 명으로 늘어난 듯했다.

무인이 꿈에도 그리던 어검술의 최고 경지 중 하나가 펼쳐지는 중이었다.

이에 이드의 검도 변했다.

숫자도 많고, 빨라진 적의 검에 대응하는 그의 검은 오히려 느려진 것이다. 아니, 속도는 느려지지 않았지만 느려진 것처럼 보였다. 흔한 말로 정중동.

유유자적 강물 위를 떠 가는 낙엽처럼 움직이는 이드의 검이, 어느 순간 낚싯바늘이 되어 세 자루의 검을 휘감아 내리눌렀다. 콰르르릉!

그리고 힘을 더해 마각철황격의 공능이 세 자루의 검을 찍어 누르며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네 자루의 검.

이드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맞물려 삐걱대는 네 자루의 검을 보고는 말했다.

“갑자기 궁금해서 그런데 검이 왜 세 자루뿐이지?”

이드는 대답 대신 자신을 노려보는 존 워스를 향해 재차 물었다.

“당신, 원래 네 자루의 검을 사용하지 않았냔 말이야. 그런데 왜 세 자루뿐이냐고. 친절하게 경고하자면, 암수는 안 통해.”

“왜 세 자루인지, 그걸 지금 몰라서 묻나?”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굳이 물을 이유가 없다.

그런 당당한 모습에 열이 오른 걸까. 존 워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놈들 덕분에 잃어버렸다. 나의 애검, 브리트니스가 차원 너머로 사라져 버렸단 말이다!”

“아니, 그거야 나도 알지. 내가 궁금한 건, 왜 잃어버린 검을 보충하지 않느냐는 거다. 죽어 봉인된 동료도 깨우고, 잘린 팔도 다시 재생했잖아.” 

이드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죽음에서 돌아오고, 팔을 재생하는 일에 비하면 검을 다시 만드는 것쯤이야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만족할 만한 품질의 검을 만들어 낼 장인을 찾는 건 다른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괜히 역사에 남을 명검, 보검이 수십, 수백 년에 한 자루씩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설마 존 워스도 눈에 차는 검이 없어서 보충하지 못한 것일까.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적다. 아무렴, 라일론의 숨은 흑막인 혼돈의 파편이다.

라일론 제국의 보물창고를 뒤지면 지금 그가 가진 검에 못지않은 검 한 자루가 없었으려고.

그러나 검에 대한 문제는 존 워스에 있어서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의 검은 내 영혼을 벼른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쇳덩이와는 비교할 수 없단 말이다.”

진짜 영혼의 일부이기 때문일까?

이드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존 워스의 반응이 새로웠다. 그에게 있어 검이 가지는 의미가 그렇게나 중요했던가.

이드는 그런 그를 위해 그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브리트니스의 소식을 전해 주기로 결정했다.

“영혼이라니, 대단하네. 그래도 나는 파괴된 브리트니스가 다시 당신에게 돌아간 줄 알았지. 팔이 재생되는 것처럼 말이야.”

“・・・・・・브리트니스가 파괴되었다고?”

“영혼으로 벼른 검이라면서. 그건 몰랐던 모양이네? 하긴, 차원 너머의 일이니까. 몰랐을 수도 있지.”

순간 이드는 눈가를 파르르 떠는 존 워스를 볼 수 있었다. 놀라움과 분노가 적절하게 뒤섞인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것 같다. 바이트 타블렛에 이상이 생겨도 크게 동요하지 않던 그 존 워스가 말이다.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손댈 수 없는 터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인가 싶다.

“브리트니스가 부러졌단 말이냐? 그걸 어떻게..

“뭐, 짐작대로, 내가 날아간 차원에 먼저 와 있더라고. 그것도 내 적의 손에 들려서 그래서 부숴 버렸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존 워스의 반응을 살피던 이드는 내심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듯 굳어 있던 존 워스의 입술이 쭉 찢어지며 음울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는데, 그런 이빨 사이로 허연 김이 뿜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실수했나?’

위압감이라고 할까, 광기라고 할까. 그런 것을 내비치는 존 워스에 이드는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뱉어 놓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

“크흐흐흐흐. 비어 있는 영혼 한쪽이 채워지지 않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좋아, 아주 좋아.”

“……”

“그대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로 이보다 좋은 것이 없겠어.”

그럼 지금까지는 목숨을 걸고 싸운 게 아니었나?

자동적으로 머리에 떠오른 말이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발아래가 너무 흔들렸다.

존 워스의 분노는 이미 폭발한 상태였다.

그가 움직이는 세 자루의 검에 알 수 없는 힘이 더해졌다. 그 힘의 이름이 아마 분노가 아닐까.

이드가 그 힘이 터지지 못하도록 꾹꾹 내리눌렀지만, 한계는 금방 찾아왔고.

쩌저저정!

묶여 있던 힘은 광폭하게 폭발하며 튀어나왔다. 네 자루의 검이 박혀 있던 지점을 중심으로 대지가 사방으로 찢겨 졌다. 깊이만 이십 미터가

넘으니, 이후 작은 호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복구는 어려울 것이다. 복구를 한다고 해도, 이만한 살기와 분노가 녹아든 땅이다. 그 악의를 이겨 내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식물은 아마 없으리라. 게다가 지금은 이 땅이 호수가 될지, 농지가 될지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브리트니스의 원한을 돌려주겠다!”

있는 대로 분노를 분출 중인 존 워스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그가 한번 공격에 나설 때마다 세 번의 공격이 중첩된다.

이드의 손이 바빠졌다. 동시에 반성했다.

입을 함부로 놀린 것도 반성하고, 무엇보다 뭐가 이쁘다고 존 워스의 정체가 밝혀진 데

반가워했단 말인가.

“원한은 무슨! 정당한 싸움이었다고. 오히려 지금 당신 모습이 더 보기 흉하거든?”

이드는 정중동의 둔검식을 응용해 세 자루의 검을 걷어 내고는, 자신과 존 워스 사이에 은하수를 수놓았다.

그러자 허공을 가르던 존 워스의 두 자루 검이 나타나 바다를 가르는 범선처럼 은하수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자신이 페르세르를 반가워한 이유가 떠올랐다.

과거 자신이 처음 혼돈의 파편을 알았을 때, 그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장애물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을 막아서는 장애물.

더욱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내는 족속들도 하나같이 제대로 된 자들이 아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면 그리프 베어 돌이었다. 곰 인형과 어린아이의 외형을 한 적이라니. 너무 비양심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가운데 페르세르는 유일하게 검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같은 검사였던 이드에겐 차라리 반가운 대상이었다.

호감과 함께 호승심이 일어난 것.

물론 그와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직접 검을 맞댄 것도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페르세르와의 인연은 의외로 길게 이어졌다.

바로 지구에 떨어진 브리트니스로 인해서 말이다. 브리트니스로 인해 일어난 지구의 변화를 보며 이드는 혼돈의 파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때까지 인간이 쌓아 올린 지구 문명이 통째로 흔들리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다행히도 지구의 사람들은 지혜롭게 위기를 극복해 냈지만, 그 충격은 세계 곳곳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 그 사건이 혼돈의 파편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사실을 지구의 사람들이 알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원을 넘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페르세르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극복을 했다 해도 그만큼 큰 충격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이드는 개인적으로 조금 달리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다.

과연 이런 사건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일까, 라는 의문.

물론 그 사건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이라면 절대 인정하지 않을 이야기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세계를 움직이는 절대적인 에너지인 마나의 존재를 부정하던 지구의 문명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좋은 계기였을 수가 있었다. 만약 그 상태로 지구의 문명이 발전을 거듭했다면?

아마도, 아니, 거의 확신에 가까운 확률로 지구 문명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을 것이다. 세상을 운용함에 있어 마나는 그만큼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물론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마나를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가능성을 기다리기에는 그에 소모되는 시간과 자원을 감당해야 할 지구와 인간의 희생은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이야기도 어차피 가정에 가정을 더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건을 일어났고, 지구는 이미 변했으니까.

지구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겐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일 뿐.

하지만 여기.

그 과거를 놓지 못하고 추하게 질척대는 인물이 있다.

“그만 좀 떨어져라!”

이드는 이제 그만 그 인물을 잘라 내기로 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