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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40화


1375화

따땅!

이드의 검이 연어처럼 튀어 오르며 함께 얽혀 있던 두 자루의 검을 튕겨 냈다. 그러자 곧바로 몸을 뒤집어 집요하게 이드를 노리는 두 자루 검. 쿠콰콱!

그리는 궤적이 매우 흉폭하다. 원래도 사나웠지만, 점점 더 사나워진다. 식인 상어가 범고래로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하지만 상어든 범고래든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긴 마찬가지.

이드가 은하수의 그물을 넓게 펼쳐 내자, 그 그물에 막힌 두 자루의 검은 목표에 닿지 못하고 이내 다시 미끄러져 나간다.

그렇게 사나운 범고래 두 마리를 밀어낸 이드는 곧장 그 뒤에 숨어 있던 존 워스를 노렸다. 범고래가 마음껏 날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천검의 요새 덕분.

이드는 단단히 세워 놓은 요새를 향해 은하수의 별빛을 모아 내리쳤다.

콰지지직!

벼락처럼 시퍼런 불길이 번쩍이고, 요새에 균열이 생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균열에 별빛이 고이고, 고인 별빛에 은하수 한 줄기가 연결되어 균열을 벌려 틈을 만든다.

이드는 당연히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빠지직!

일라이져 끝에서 번개처럼 뿜어진 검강의 파편이 틈을 뚫고 들어갔다. 그것은 변형된 뇌정화였다. 목표를 놓친 범고래와 달리 뇌정화는 목표를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

퍼퍽!

요새 뒤에 있던 존 워스의 왼쪽 폐부에 주먹보다 큰 구멍이 생겨났다.

“칫!”

그 모습에 이드가 아쉬움을 토했다. 상대가 평범한 생물이라면 이 한 방으로 승부가 났겠지만, 상대는 혼돈의 파편이었다.

봐라. 한쪽 폐가 통째로 날아갔음에도 작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는 모습을.

사실 그래서 머리를 노렸던 건데. 그걸 쉽게 당해 주지 않는 존 워스다. 그래도 일단 폐가 날아갔으니 복구될 때까지 움직임이 둔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의 위험을 알고 달려온 범고래 두 마리가 그런 이드를 막아섰다. 쾅!

콰쾅!

두 자루 검은 마치 요새 위에 설치된 포대라도 된 듯 강력한 공격을 뿜어냈다. 그것은 치명타를 노린다기보다는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견제에

가까웠다. 동시에 요새의 틈을 벌리고 있는 은하수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미 도도하게 흐르기 시작한 은하수의 방향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다.

무엇보다 공격에서 방어로 돌아선 공격은 위협적이지 못했다. 괜히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자리에 그런 간단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판을 만들어 가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고수라고 불릴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또한 지금처럼 내가 원하는 상황을 상대가 피할 수 없도록 강요하는 것.

그런 부분에서 고수와 하수가 갈린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의 전장을 틀어쥔 ‘고수’는 이드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드는 한번 손에 쥔 흐름을 놓치지 않는 법을 아는 노련한 인물이었다.

일라이져가 일필휘지로 허공을 갈랐다. 홍옥처럼 붉은 검강에서 맑은 이슬 같은 별빛들이 쏟아졌다.

‘비릿한 피 냄새는 검은 구름 타고 천지간에 고이고……..’

문득 떠오르는 수라만마무의 구결 한 조각.

그것을 되뇌는 순간, 별빛들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며 존 워스의 요새를 중심으로 커다란 은하수를 만들어 냈다. 

콰콰쾅!

그에 위기를 느낀 존 워스가 곧장 반격을 시도했다. 이드는 그의 반격을 철저하게 막아 내며 별의 배치를 더욱 촘촘히 했다. 서로를 향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자신의 영역을 완전히 하는 모습. 어느새 그런 형태로 두 사람의 전투는 변해 있었다. 누가 더 치명적인 공격을 넣느냐에서 누가 먼저 상대를 자신의 영역 속에 가두느냐로.

존 워스가 두 자루 검을 꺼낸 그 순간부터 전투의 내용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드는 이런 변화의 주도권을 쥐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말이다.

“잡았다!”

환희에 찬 탄성과 함께, 이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일라이져를 흔들었다. 현묘하게 흔들리는 검 끝을 따라 별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재배치되었다. 별들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존 워스를 감싼 은하수는 점점 완전한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존 워스를 중심으로 둥근 띠를 형성하고 있던 은하수는 점점 그의 머리 위를 점령하며 그를 완전히 감싸는 반구 형태를 완성해 냈다. 이제 땅을 뚫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빠져나갈 틈은 없다.

촘촘히 깔린 은하수의 벽은 천검의 요새 이상으로 단단한 것이었으니까.

콰콰쾅!

이런 위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존 워스는 천검의 요새를 거두고 온전히 공격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한쪽 폐가 아직 완전히 재생되지 않았음에도 그 힘은 산을 날려 버릴 정도로 강맹했다.

‘하지만 늦었지.’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더욱더 은하수를 바짝 조였다.

분명 존 워스의 반항은 강력했다. 특히 일점에 집중되는 그의 공격은 은하수를 형성하는 의형강기를 넘어서는 부분이 있었다.

아마도 은하수가 완성되기 전이었다면 구멍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완벽한 구성으로 완성된 초식은 유연하면서 유기적이었다. 그래, 마치 완성된 마법처럼 말이다.

은하수는 넓게 퍼진 동시에 일점에 집중되어 있다. 존 워스의 반응에 따라 유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의 공격이 일점에 집중되는 순간, 은하수의 힘도 그의 공격이 집중된 일점에 모였다.

그것은 상대의 힘을 분산하는 화경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그에게 공격할 기회는 없다.

반짝!

은하수에 박힌 별빛이 강렬해졌다. 아름답지만 차갑고 무서운 느낌의 별빛. 그런 별빛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존 워스.

“빠드득!”

이런 변화에 섬뜩한 예감을 감지한 존 워스는 이를 갈며 검을 들었다.

검이 어지럽게 분열되며 천검의 요새가 발동되었다. 그러나 이드를 상대하던 때와는 그 형태가 다르다. 오로지 존 워스만을 가린 요새는 훨씬 더 작아진 대신에, 촘촘하고 두껍다.

요새라기보다는 일인용 벙커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촤르르륵!

존 워스와 함께 은하수 안에 갇혀 버린 두 자루의 검이 각각 천검의 요새를 만들어 냈다. 앞서 허공을 날던 저 두 자루 검은 여태 존 워스의 무공이 아닌, 과거 이드와 싸웠던 페르세르의 검술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드의 공격이 심상치 않다고 예상되어서일까. 과거의 검술을 버리고 천검의 요새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3중의 요새가 세워졌다. 그 견고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뚫을 수 없을 듯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감각이 느껴지는 벽이었지만, 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거북이처럼 등껍질 속에 숨는다고 해결될 줄 알았다면,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말해 주고 싶군. 등껍질 안에서 어디 천천히 말라 죽어 보든가.” 

이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강렬하게 빛나던 별빛이 존 워스와 그를 둘러싼 천검의 요새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수천수만의 별빛이 쏟아지자 일순간 세상 모든 게 은빛 세계로 변하는 것 같았다.

바로 12대식 광인멸혼류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였다.

파아아아!!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겹쳐진 수많은 별빛. 그러나 별빛이라서일까.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대신 냉혹했다.

파스스스스-

사방으로 퍼진 별빛에 닿은 모든 게 분자 단위로 쪼개지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광인멸혼류의 정체. 그건 광자 단위의 작고 미세한 검강이었다. 그렇기에 흘러나온 그것에 닿은 것만으로 돌이, 풀이, 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끼이이익!!

그리고 그 속에서 단단히 벽을 세우고 있던 천검의 요새도 결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광인멸혼류의 광자 검강의 집중 조사(照射)를 받은 요새의 벽이 마치 바람에 깎여 나가는 모래성처럼 조금씩, 그러나 점점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이드의 말은 정확했다.

이대로라면 천검의 요새 안에 있는 존 워스는 서서히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천검의 요새를 거둘 수도 없다. 그걸 거두는 순간, 존 워스가 걸치고 있는 육체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테니까.

그가 아무리 갈고닦은 육체라고 해도 검강을 견딜 수는 없었다. 아무렴 지금 존 워스가 걸치고 있는 말랑말랑한 육체가 아니라, 질기고 단단한 신랑의 형태를 한 메르시오의 육체도 뚫어 낸 검강이 아니던가.


“누가 저걸 보고 무공이라고 그러겠어?”

라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원래 바이트 타블렛이 있던 그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영혼의 관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의 발을 지지해 줄 바닥도 사라지고 없다. 현재 그는 온통 녹색으로 가득한 공간에 둥둥 떠 있는 상태였다. 사실 라울은 조금 답답했다. 현재 바이트 타블렛이 어떤 상태인지,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벨의 모든 정보를 손에 넣고 주무르던 그로서는 낯선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설명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바이트 타블렛에 접속하기 위해 깊이 빠져 있는 라미아를 방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용히 라미아의 상태를 관찰하는 동시에, 발아래서 벌어지는 이드와 존 워스의 전투를 지켜봤다. 그리고 전투가 이어짐에 따라 라울은 고개를 흔들고, 흔들고, 또 흔들었다.

그리고 저게 무공이 맞느냐고 수십 번을 되물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라울 자신이 그에 대한 답을 잘 알고 있었다.

저것은 분명 무공이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의 손에서 펼쳐지는 것이 무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드를 만나고 몇 번이나 경험했지만, 지금 전투는 결정적이었다. 라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공에 대한 개념을 강제로 교정 당했다.

동시에 단단히 마음먹었다. 바벨에 속한 초인들에게 무공을 필수로 익히게 만들겠다고.

또한 검후에 대한 태도도 조금은 달라질 필요를 느꼈다.

대륙에 퍼진 무공은 대부분이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광인멸혼류가 발동된 시점에서 극에 이르렀다.

저 얼마나 찬란한 빛인가.

무공으로 저와 같은 빛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니. 얼마나 맑고 강력하면 온통 녹색으로 물들어 있던 주변 공간이 별빛에 씻겨 투명해질 정도였다. 뿐인가.

아직 해가 뜨지 않았음에도 사방 수 킬로미터가 마치 낮이 된 듯 환하게 밝아졌다.

무공은 잘 모르지만, 라울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저 한 수로 이 전투는 끝이 난 것 같다고.

그와 동시에 슬쩍 고개를 돌린 라울.

그의 눈에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바이트 타블렛 속에 들어가 있는 라미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바이트 타블렛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 라미아.

만약 라미아가 미리 말을 해 주지 않았다면 정말 아찔했을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저건 어떤 마법인 것일까.

라울은 재차 라미아와 이드를 번갈아 보고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진짜 너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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