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988화


1423화

마르텔 겔로이드 a.k.a 블러디 혼.

또는 피를 부르는 투사로 불리며 삼검왕 중 가장 소문이 무성한 자.

그런 이미지 때문일까.

세상 사람들은 그에 대해 떠들기를 즐겼다.

혹자는 블러디 혼이라면 삼검왕 중 최강인 검왕과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속사정을 모르는 세간의 이야기.

나름 삼검왕에 대해서 아는 사람, 이를테면 후배 기사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

실제 대련을 보았을 땐 오히려 미세한 차이로 블러디 혼이 꼴찌다.

다만 문제는 실력 이외의 부분이다.

인망이나 신뢰, 혹은 존경 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덕목 말이다.

그 기준에서 블러디 혼 마르텔은 압도적인 꼴찌를 유지 중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단 한 번도 미미하다는 말이 나온 적 없이 그냥 붙박이다.

크고 작은 작전이나 훈련에 참여하며 그와 엮인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증언했다.

블러디 혼과 함께 하는 시간은 짜릿하고 충격적이었으며, 전혀 즐겁지 않았다고.

이런 평가는 소드 팰러스의 수련생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련생으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 선배 기사들이 보기에 열심히 꼬물거리며 기사의 꿈을 키워 가는 수련생이 얼마나 귀엽게 보이겠는가.

그렇기에 진심으로 수련생을 괴롭히는 경우는 없다.

혹여 그런 미친놈이 있어도 일찌감치 걸러진다.

이곳은 소드 팰러스. 기사의 성지다. 그런 미친놈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기사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괴롭힘이 아닐지언정 지나치게 엄격, 근엄, 진지한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수련생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 역시 존경받아 마땅한 태도이니까.

하지만 블러디 혼은 이 사례에 속하지 못했다. 그의 성격은 오히려 불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수련에는 꼭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사고로 인해 기사의 꿈을 접은 수련생이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검후는 그에게서 수련생을 가르칠

권한을 박탈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이런 모습 등으로 인해 블러디 혼에 호응하고 같이 불타는 경우는 많아도 그에 대한 신망은 깊지 않았다.

당장 지금만 해도 앞선 사고로 인해 자숙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그런 블러디 혼에게 지금과 같은 중차대한 위기에 대한 대처를 맡겨야 한다고?

“이건 그다지 좋은 생각 같지 않은데.”

“옳소, 자칫 사태만 키울 가능성이 다분하오.”

“다분한 정도가 아니라, 확실하게 사태가 커질 거요. 나는 이미 경험이 있소.”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 중 마르텔에 대해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마르텔과 어떤 식으로든 엮였던 경험이 있을수록 부정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그럼, 지금 그 말고 이 사태에 나설 사람이 있소?”

그에 누군가 그들에게 물었다.

“…….”

한마음으로 반대하던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 말대로 현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삼검왕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을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당장 삼 일 뒤면 여기 있는 자신들의 목이 떨어지고 없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내 목만 떨어지고 끝나면 다행이지.’

그들이 범한 죄는 단순한 ‘배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대는 검후, 자연히 황실에 대한 반역으로 이어지는 행위인 것이다.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소. 차후 다른 수를 찾더라도, 일단은 마르텔 경이 나서 주셔야 하오.”

“그분이 중심만 잡아 주시면 사람들이 모일 겁니다.”

과연 사람들이 모인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인가. 게다가 모여 봐야 한 줌이나 될까.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당연한 사실을 잊은 것처럼 동조하고 나섰다.

“다른 동지들도 불러 모아서 마르텔 경에게 갑시다.”

“삼검왕분들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가 누굴 보고 이 일에 가담했는데, 이렇게 끝날 수는 없는 겁니다.”

뒷줄에 앉은 어느 남자의 물기 묻은 목소리에 삼검왕에 대한 원망이 담겼다. 세상이 알아주는 소드 팰러스의 기사님이, 항거할 수 없는 사태를 앞에 두고 눈물을 보인 것이다.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는 내심 한숨을 지었다.

눈물? 그건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에 지금 와서 누굴 탓한단 말인가. 자신도 그렇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협박받아 검후를 배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삼검왕의 능력을 믿고, 그들이 제시하는 미래에 몸을 던진 결과였다. 남자라면, 그리고 기사라면 최소한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가지는 모습 정도는 보여 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는 분위기가 더 추잡해지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움직이시죠. 지금 이러고 있는 시간조차 아깝습니다.”

“오, 옳은 말씀입니다. 이럴 시간이 없지요.”

그렇게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던 차였다.

처음 악을 쓰던 남자가 그 모습을 불쾌하다는 듯 노려보고 있었다.

제 놈이 뭐라고 사람들을 움직인단 말인가.

왜 내가 저놈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평소였다면 속으로 삭였을 불만이지만, 지금의 상황 때문일까. 불만이 너무 쉽게 목을 넘어왔다.

“지금 어딜 가겠다는 거요?”

“당연히 성이지, 어디긴 어디요?”

“거기에 마르텔 경이 있는 게 확실하오? 확인해 보셨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사람들이 주춤했다. 마르텔이 거기 있는 게 확실하냐니.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보시오! 파렐 경!”

다시 나온 그의 억지에 화를 내는 누군가.

“임무를 핑계로 검왕도 사라진 상태인데. 마르텔 경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잖소?”

하지만 파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기어이 제 할 말을 뱉어 놓았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그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소식을 알 수 없는 검왕은 둘째 치고, 마르텔이 있냐니.

“제발, 헛소리 좀 작작 하시오. 내 오늘 새벽에도 그분이 수련에 나오신 모습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나도 봤소.”

한 사람의 목격담에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파렐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흥, 그래 봤자 멀리서 마르텔 경으로 짐작되는 사람을 본 것뿐이잖소. 그분의 얼굴을 봤소? 이야기는 해 봤고? 당연히 아니겠지. 마르텔 경이 수련하는데 누가 가까이 갈 수 있겠어.”

누가 그렇지 않겠냐만, 특히 마르텔은 자신의 수련을 방해받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만약 정당한 사유가 없이 수련을 방해하는 경우, 최소한 팔다리가 부러질 각오는 해야 했다.

당연히 지금 나오는 목격담도 멀리서 마르텔을 봤다는 사람뿐이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마르텔 경은 벌써 도망쳤고, 다른 놈이 남아서 마르텔 경인 척 흉내를 내고 있다. 뭐, 그런 헛소리요?”

“크벨・・・・・・・・ 로 경이었지요?”

“크펠로요!”

“좋소. 크펠로 경. 앞뒤 상황을 봅시다. 우리가 이 소문을 처음 접한 것이 언제요? 이틀 전이오. 그 주인공이 검후라는 말이 나온 건 하루 전이고. 우리가 들었으니, 당연히 마르텔 경도 모르지는 않을 거요. 그렇지요?”

확인하듯 되묻는 파렐.

그러나 그 앞에 선 크펠로는 대답 없이 고개를 삐딱하게 꼬았다. 어디 헛소리를 더 지껄여 보란 표정이다.

동시에 검을 향해 슬그머니 내려진 손. 이 이상 선을 넘는다면 참지 않겠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당연히 반쯤 눈이 뒤집힌 파렐은 그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생각해 보시오. 냉정히 따져서 우린 방관자요. 그것도 죄라면 죄일 수 있지만, 직접 검을 들고 검후를 찌른 적은 없다는 소리요. 뭐, 거기 계신 몇 분은 상황이 다르겠지만.”

“……”

까득!

“아무튼, 나라면 말이오. 내가 검후를 찔렀다면! 검후가 오고 있다는 소리에 정신이 멍했을 거요. 직접 검을 들지도 않은 우리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그런데, 대책을 찾거나 도망을 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 수련을 했다고? 일단 나는 그렇게는 못 하겠소. 여러분들은 어떻소?”

평소 입담 때문일까.

폭주 중이면서도 나름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뒤흔드는 언변이었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마르텔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떨어트림과 동시에, 조급한 사태에 대한 공감을 강요하고 있었으니까.

실제 제법 많은 사람이 그의 말에 흔들렸다. 다른 두 검왕이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에 더욱 쉽게 흔들린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비록 배신을 선택했지만, 소드 팰러스의 기사라는 타이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들을 대표해 크펠로가 흉흉한 눈을 하고서 말했다.

“헛소리는 충분히 떠들었느냐?”

“・・・・・・・ 지금 내게 살기를 드러내신 거요?”

“그나마 눈이 삐지는 않았구나.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도 알겠지?”

“흥, 당신이 검을 뽑는다고 내가 두려워할 줄 아시오? 그리고, 내가 어디 못할 말이라도 했소?”

“했지! 대책을 궁리해도 모자랄 판에 자꾸 분란을 일으키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마르텔 경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여기서 성까지는 고작 십 분이다! 단 십 분이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단 말이다. 그런데 굳이 여기서 마르텔 경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서 뭘 얻겠다는 거냐. 네 놈의 말이 가져올 것이 분란 말고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순간 흔들렸던 사람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화들짝 놀라는 얼굴이 되었다.

크펠로는 틀리지 않았다. 그 말처럼, 직접 확인하면 된다. 그 쉬운 일을 하지 않고서 여기서 끙끙거리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평소였다면 절대 걸려들지 않았을 헛소리에 현혹되다니. 그건 그만큼 그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

파렐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잠깐 눈이 뒤집혀 무조건 반대되는 소리를 하고 나섰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가서 확인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순순히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내 말은,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었소. 사람들을 모아 마르텔 경을 찾았을 때, 정작 그가 없으면! 그땐! 어쩔 거요? 그 자리에 모였을 사람들의 혼란을 어쩔 거냐는 말…….”

서걱!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던 파렐.

하지만 그의 머리는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 앞에 다가와 검을 빼 들고 있는 인물.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코, 코랄 경……”

“움직입시다. 정말 시간이 없소.”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