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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247화


검월선문의 제자들이 머무는 곳은 15층이었다.

호텔의 총 층수가 15층이고 위로 갈수록 고급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거의 최고급 객실에 머물고 있는 셈이었다.

보통 하루 묵는 데만도 수십에서 수백만 원의 돈이 깨지는 호텔 최고급 객실.

그런 곳이 공짜라니 호텔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무림인들에게 투자하고 있는지 새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스페셜 객실일수록 내부의 인테리어는 현격하게 차이가 나서 마치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넓다는 것 자체로 고급의 기준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가끔 호텔 소개가 나올 때 보면 객실 안에서 뛰어다녀도 좋을 정도란 걸 알 수 있다.

여기 15층도 마찬가지였다.

검월선문만 아니라 다른 문파의 제자들도 머물고 있는 덧에 무림인들 전용이란 이름을 붙여도 좋을 만한 14층의 객실도 넓은 공간 때문에 그 거대한 층에 달랑 일곱 개의 객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섯 명 정도가 나란히 지나가도 공간이 남을 커다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일곱 개의 고풍스런 문양이 새겨진 문.

일행과 함께 14층에 다다른 나나는 도도도 날뛰는 걸음으로 1405란 숫자가 붙여진 문 앞으로 달려가 이드와 라미아에게 어서 오란 듯이 손짓했다.

딩동

객실의 초인종이 눌려지며 부드럽고도 편안한 종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사저! 나나예요.

대사저와 손님들이 도착했어요.”

나나 특유의 고음이 복도에 메아리쳤다.

최고급 객실인 만큼 완벽한 방음으로 방 너머로는 절대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인데도, 잘도 떠들어대는 나나였다.

당연히 그녀의 목소리 뒤로는 파유호의 일상적인 주의가 뒤따랐다.

이드는 놀랍다는 눈으로 파유호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지치지도 않고 매번 잘도 잔소리를 해대고 있는 파유호였다.

‘정말 대단하군요, 유호 언니.’

‘그래, 차라리 벽을 보고 말하고 말지…… 전혀 들은 체도 않는 것 같은 나나한테 잘도 저러네.’

뭐, 저런 역할이 첫째의 역할이긴 하지만…… 정말 끈질기고, 참을성 있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드였다.

말이 먹히지 않을 경우 보통은 화를 내거나 포기하고 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이 파유호의 인격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사이 화려한 객실의 문이 스르륵 열리며 그 사이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 테의 안경을 쓰고 있는 단발머리의 여자였다.

파유호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어 단번에 검월선문의 제자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덧붙여 말하면 나나는 그들과는 달리 하늘색과 흰색이 어울려 하늘거리는 수련복 차림이었다.

“아, 대사저.

돌아오셨군요.

나가셨던 일은 잘되셨나요?”

눈꼬리가 살짝 처져서 순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가 파유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파유호가 아닌 나나에게서 투다닥 튀어나왔다.

“오사저, 나나도 왔어요.

그리고 저기 손님.

이드 오빠와 라미아 언니라고 부르면 된대요.

두 사람 다 너무너무 예쁘죠.

나 처음에 두 사람 보고 반할 뻔했다니까요.

라미아 언니는 눈부신 은발이 특히 예뻐요.

나나 너무너무 부러운 거 있죠.

오사저, 나도 은발로 염색이나 해볼까요?”

“그래, 그래.

나나도 그럼 예쁘겠네.

하지만 그건 사부님께 허락부터 받고 나서야.”

“야호, 역시 오사저뿐이에요.”

소개를 하는 건지 수다를 떠는 건지 도대체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파유호는 다시 나나에게 주의를 주었고, 오사저라 불린 여성은 호호호 웃고는 이드와 라미아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검월선문의 제자 오묘라고 합니다.

사숙님이 대사저를 통해 하신 말씀 들었습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희야말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예천화라고 합니다.

이드라고 불러 주세요.”

“라미아라고 합니다.

말씀 편히 하세요.”

오묘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파유호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말은 천천히 놓기로 하고, 들어가요.

밖에서 이러지 말고.

다른 사제들도 소개시켜 줄게요.

나나도 이리 와.

대사저!”

파유호의 말은 한 귀로 흘려보내던 나나가 오묘의 말에는 대뜸 크게 대답하고는 쪼르르 객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그래, 들어가자.”

“네, 그런데 선객이 와 계세요.

남궁 공자와 초 공자, 초 소저가 대사저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벌써 나나로부터 전해들은 말이기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오묘가 열어놓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이 객실로 들어서는 순간 호텔 로비로 들어설 때처럼 한 사람의 목소리가 도드라지게 객실을 울렸다.

그 목소리의 크기나 음색은 달랐지만 그 목소리가 향하는 주인공은 똑같았다.

“유호 소저! 이제 오시는군요.”

바로 파유호를 향한 낭랑한 목소리였다.

막 객실로 들어선 일행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그 주인공에게로 돌려졌다.

그곳에는 짙은 곤색의 캐주얼 정장을 걸친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 성큼 앞으로 나와 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마중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기대감에 설레고 있는 것처럼 약간은 들떠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써 눌러 참는 듯한 기색도 빤히 내보였다.

청년은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져서 덩치가 유난히 커 보였다.

얼굴의 윤곽선도 단단해 보여 누가 보더라도 남자답다고 할 것 같았다.

단지 입술이 얇은 것이 성격을 가벼워 보이게 하는 것 같았고, 그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런 청년이 은근한 열기를 담은 눈으로 파유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남궁 공자시군요.

기다리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숙님의 손님을 모셔 오느라 기다리시게 했군요.”

“무슨 말씀을요.

오히려 기별도 없이 찾아온 제 잘못이지요.

그저 오늘도 유호 소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생각에 너무 서둘렀다 봅니다, 하하하.”

다분히 노골적인 칭찬의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파유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초 공자, 초 소저도 함께 오셨군요.”

“오늘 또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되었어요.”

“오빠는 매일 오면서 무슨 예를 그렇게 차려요.

더구나 바로 옆방에 있는 사이인데…… 그리고 편하게 미미야라고 부르라니까 언니는……”

한 사람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세 사람의 요란스런 말소리로 객실 안은 금세 시끄러워져 버렸다.

이드는 그들의 인사를 지켜보면서 한편으론 마음을 놓으며 빙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궁 공자와 파유호의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무슨 일인가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지금 인사 나누는 걸 보니 큰일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두 남녀의 일방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얼른 직감할 수 있었다.

‘한쪽에서 마구 대쉬해 오니까 불편했나 보네요.

유호 언니.’

그런 것 같았다.

너무도 노골적으로 엿보여서 그 일방의 방향을 짐작 못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남궁 공자라 불린 청년이 파유호에게 좀 더 다가가려 안달하는 걸 보면 말이다.

뭐, 본인에겐 이것보다 더 큰일이 없겠지만.

또 남궁이란 성이 가지는 소위 가문의 파워라는 것 때문에 일방적으로 피할 수도 없어 파유호는 더욱 곤란했을 것이다.

아무튼 갑자기 찾아든 선객들 덕분에 이드와 라미아는 뒷전으로 밀려나 소개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 둘에게 생각이 미쳤는지 파유호는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제들을 이드와 라미아에게 정식으로 소개시켜 주었다.

중간에 파유호를 대신해서 나나가 다시 한번 설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일찌감치 오묘에 의해 제지되었다.

덕분에 서로 편하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동춘시에 파견된 검월선문의 제자는 모두 일곱 명이었다.

앞서 파유호를 포함한 세 사람과는 인사를 나누었기에 이드와 라미아는 나머지 네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차례대로 고인화, 공손비령, 고하화, 유유소라는 여성들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인화와 고하화는 자매였는데, 모두 고운 얼굴에 잔잔한 기도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들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검월선문의 제자 선발 기준에 외모도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명백히 아니었다.

다만 올바른 신체 단련과 검의 수련이 외모를 균형 있게 만들어 준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무림에 미인이 많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했다.

또 저 잔잔한 기도는 검월선문 특유의 내공심법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나나도 그녀들과 똑같은 내공심법을 익혔는데, 이상하게 저 잔잔한 기도는 도대체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고 대신 통통 튀는 부푼 공과 같은 활기만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문파의 어른들도 이 신기한 현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나?

덧붙여 말하면 이 일곱의 인원 중 실제 몬스터와의 전투에 투입된 건 나나를 뺀 여섯이라고 했다.

나나는 말 그대로 사저들과 놀러 왔다는 말이 된다.

이드와 라미아가 검월선문의 사람들과 한 가족처럼 인사를 나누는 사이, 문외자로 한쪽으로 밀려나 있던 세 사람은 이드와 라미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파유호와 오묘에게 가려 보지 못하다가 정식으로 인사를 하면서 온전히 드러나자 그들은 저도 모르게 그대로 굳어 버린 것이다.

뭐, 두 사람의 미모와 이때까지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국지색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미녀나 출중한 미남자를 몇이나 볼 수 있겠는가.

또 직접 만나 보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백이면 백 지금 세 사람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 사람은 파유호가 다가오는 모양에 자세를 바로 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문내의 인연이라 사제들과의 대면이 먼저라서요.

인사 나누세요.

옥련 사숙의 조카가 되는 이드와 라미아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이쪽은 검으로 강호에 위명을 날리는 남궁세가의 이공자 남궁황 공자와 무당파의 제자인 초씨 세가의 초강남 공자, 초미미 소저.”

파유호의 소개에 따라 다섯 사람은 서로 첫인사를 나누었다.

이드와 라미아로서는 오늘 하루 동안만 벌써 다섯 번째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잠깐 시끄러웠던 분위기가 조용하게 가라앉자 오묘는 사람들을 거실로 보내고 차를 준비했다.

거실은 웬만한 집의 집터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중앙에 놓인 탁자에는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앉아 있었던 듯 찻잔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금방 오묘에 의해 치워져 버렸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거실에서는 다시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새로운 인물인 이드와 라미아가 있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 가고, 질문들도 부담 없이 던져졌다.

당연했다.

실력이나 출신 문파 등을 생략하더라도, 두 사람의 외모는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나나가 손님이 온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걸.

그런데 라미아 말대로 이드의 머리가 길었으면 더 보기 좋을 텐데, 아쉽다.

참, 여기 동춘시에는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걸 아직 못 물어봤네.”

적극적이면서도 은근히 이드에게 관심을 표시하는 초미미였다.

그와 동시에 이드의 곁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 그녀였다.

앞서 짧게 오갔던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미미는 이드, 라미아와 같은 열여덟 살이라고 했다.

“나나도, 나나도 궁금해.

사숙님이 도와주라고 해 놓고는 무슨 일을 도와주라고는 해 주지 않으셨단 말이야.

괜히 궁금하게…… 부!”

나나는 이드와 라미아 사이에 끼어 들어앉아서는 뾰로통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물론 그런 나나를 향한 파유호의 주의도 연쇄적으로 뒤따른 건 당연했다.

이드는 자신과 라미아에게 모아지는 궁금증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사숙이 도와주란 명령을 내리고 갑자기 찾아든 손님이니, 동춘시에 온 이유가 알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현재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 동춘시이니 말이다.

“동춘시에 머물고 있는 제로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볼일이 있거든요.”

이드가 파유호에게 이미 말했던 것처럼 사실대로 말했다.

파유호가 어차피 제자들에게 알려 줄 테니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헌데 이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밋밋했다.

파유호도 요리점에서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만 거실에 모인 모두도 그저 그렇구나 하는 반응들이었다.

가디언처럼 제로에 대해 격하게 반응하거나, 반발하길 바란 건 아니지만 이건 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너무도 방관적인 태도였다.

“에엑! 정말이에요?

와, 여기에 제로가 있었다니……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여기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헤, 그럼 이드 오빠와 라미아 언니가 제로를 찾으면 이번 기회에 볼 수 있겠네, 히힛.”

파드득파드득 쉴 새 없이 호들갑을 떨어대는 나나였다.

이것도 놀랍기보다는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나나의 반응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기도 했다.

실제 제로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정부와 가디언 그리고 몇몇 작은 단체들뿐이었다.

각국의 시민들은 제로든 가디언이든 상관하거나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는 무림인이 일반의 사람들보다 더 심했다.

정부의 존속을 인정한 가디언과 정부의 존재를 아예 부정한 제로.

무림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던 것이다.

옛날 무림의 관과 불가근불가원의 소 닭 보듯 하는 관계, 그것이 지금의 무림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엄청난 몬스터의 활동으로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사이에 말이다.

막말로 제로가 무작정 사람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는 악의 집단이 아닌 이상 무림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기도 했다.

물론 가디언에 가입한 문파의 제자들이 많고, 가디언에 협력하는 문파도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선 것은 조직적으로 몬스터에 대항하며, 인간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지, 제로와 싸우며 정부의 높으신 분들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같은 무림맹 내에서 관과 협력 관계를 갖자고 주장하는 세력과 관과의 협력 관계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세력 간의 몰이해로 인한 다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는 중에 가까운 사람이 죽어 정말 원수 관계가 되는 이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좌우간 이런 상황을 이드와 라미아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확인하고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볼일인 거야?

내가 알기로는 제로와 접촉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걸로 아는데……”

그 말이 맞았다.

덕분에 이드와 라미아도 지그레브에서 직접 룬과 통신을 할 수 있었으니까.

“좀 개인적인 일이라서.

제로와의 일이기보다는 제로에 속한 한 사람과의 일이지.

돌려받아야 할 내 물건이 있거든.”

“헤에, 그렇구나.”

“하하핫, 그런 일이라면 우리 남궁가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다오.

소협의 일이 검월선문의 일인 듯하니 내 충분히 도와드리리다.”

지금까지 라미아와 파유호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남궁황이 크게 웃으며 나섰다.

이곳 동춘시도 안휘성에 위치한 만큼 남궁세가의 힘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남궁황의 도움이라면 확실히 큰 힘이 될 것이었다.

‘뭐…… 그 동기가 조금 불순한 듯하지만 말이야.’

아마도 파유호와 라미아에게 동시에 좋은 인상을 남겨 보겠다는 것일 게다.

이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도움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도 없다는 마음에 고맙다는 인사를 해 주었다.

그런데 저렇게 과신하며 가볍게 나서는 모양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파유호도 저런 부자연스럽고 자만하는 태도를 싫어한 것은 아닐까.

후루룩

후후 불어서 식힌 쌉싸름한 찻물이 입 안을 감싸 돈다.

차의 맑은 느낌이 입 속에 남아 있던 요리의 뒷맛을 깨끗하게 씻어 내고 있었다.

중국의 차는 물 대신 마시는 것이라 그런 느낌은 당연했다.

또 여기 음식이 대부분 기름진 것들이기에 이런 식후의 차는 꼭 필요한 것이다.

이드는 개운한 느낌의 최고급 보이차를 마저 비웠다.

그리고는 한쪽 벽면으로 완전히 트여진 창문 너머로 어두워진 동춘시를 잠시 바라보다 슬쩍 커다란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낮에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모두 그대로 남아 차를 들고 있었다.

한낮의 만남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뭐, 숙소가 다 옆방이니 이렇게 모이는 게 대수로울 것도 없긴 했다.

“에이, 맛없어.

나나는 주스가 더 좋은데…… 근데 오빠, 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차 맛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지 장난스레 입술만 축이고 있던 나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나고서부터 지금까지 이것저것 물어놓고도 아직 궁금한 게 남은 모양이었다.

이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다고 해도 아랑곳없이 물어올 나나의 성격을 파악했기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훗, 또 뭐가 궁금한 건지.

좋아, 물어봐.”

“에헤헤…… 다른 게 아니라…… 오빠는 얼마나 세요?”

“응?”

나나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강함을 추구하는 무림인이다 보니 나나의 말에 저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진 것이다.

솔직히 지금과 같은 질문은 나오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상대의 위력을 알려 달라고 하는 것은 옛날과 달라진 현 무림에서도 여전히 주의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이니 말이다.

파유호의 목소리가 나나의 뒤를 곧바로 따른 것은 당연했다.

“나나야.

너 또……”

“우와우와…… 하지만 대사저, 궁금하단 말예요.

사숙님이 이드 오빠가 엄청 강하다고 했었잖아요.

대사저보다 더 강하다고 하니까 궁금하다구요.”

“호오!”

나나의 말에 남궁황을 비롯한 초씨 남매가 더욱 관심을 보였다.

실력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정도가 후기지수, 무림의 젊은 층에서도 수위에 드는 파유호보다 뛰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세 사람 모두 그 후기지수에 속하는 사람들.

굉장히 흥미가 동하는 표정들이었다.

“호오! 나나야, 다정선사 문 선배께서 정말 이드 소협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셨단 말이냐?”

“응, 응.

정말이에요.

대사저만 이기는 게 아니라 현재 후기지수에는 오빠 상대가 없을 거라고 하셨다니까요.

그쵸?”

나나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 달라는 양 사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을 받은 검월선문의 제자들은 대답 대신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나, 나나야.

너 또 말을…… 휴우.”

지금 나나의 말은 함부로 할 것이 못 되었다.

같은 문파의 사람들이야 사숙의 말이니 고개를 끄덕인다지만, 어디 다른 문파의 제자들까지야 그렇게 인정하겠는가.

더구나 혈기방장한 후기지수들이 보지도 못한 사람을 가지고 자신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면……

“하하핫, 이거, 이거 이드 군의 실력이 그 정도일 거라고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놀랍군.

문 선배님의 안목이라면 잘못 보셨을 리는 없고…… 내가 알아보지 못하다니, 한번 보고 싶은걸.

그 실력.”

……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게 당연하다.

이 나이 또래 무인의 호승심과 열기는 굉장한 것이었다.

특히 파유호에게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고 하는 남궁황인 만큼 파유호보다 앞선다는 이드의 실력을 확인하고 겸사겸사 자신의 실력도 보이고 싶은 것이 그 진짜 속마음이었다.

파유호를 알기 전까지 남궁황은 안휘에서 풍류공자로 행세하며 꽤나 많은 여자를 알아 왔었다.

그러다 동춘시에서 파유호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남궁황은 파유호로부터 지금까지 만난 여성들에게서 느낀 적이 없는 단아한 분위기를 맛보곤 한 방에 가 버린 것이다.

바람둥이에게 어렵게 찾아온 순정이랄까.

하지만 무수한 편력 끝에 문을 두드린 순정답게 파유호를 상대하는 일은 몹시 어려웠다.

남궁황이 그동안 닦았던 노하우를 발휘해 자신이 가진 모든 실력을 쏟아 부으며 파유호에게 다가갔지만 파유호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파유호의 성격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 오히려 처음에는 간간히 역효과를 봤다고나 할까.

하지만 남궁황은 여전히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도 그녀를 위해 좋은 검을 구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해 놓은 상황이었다.

그런 덕분에 라미아를 보고도 제법 덤덤한 듯 행동할 수 있었다.

물론…… 은연중에 흘러나온 바람둥이의 기질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저도 모르게 라미아에게 관심을 끌려고 나서기도 했지만 말이다.

좌우간 파유호에 대한 구애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궁황의 상황에서는 나나의 말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문옥련이 높게 평가한 이드를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된 것이다.

그런 남궁황의 머릿속에선 어느새 문옥련이 보증한 이드의 실력에 대한 평가는 한쪽으로 치워진 후였다.

그와 더불어 초씨 남매도 이드의 실력에 꽤나 강한 관심을 보였다.

각각 다른 의도를 가졌기에 서로 다른 색깔로 빛나는 눈빛이었지만 그 눈길이 향하는 곳은 동일하게 이드였다.

순수하게 실력을 겨루고 싶은 초강남과 남자로서 흥미를 보이는 초미미였던 것이다.

“저도 보고 싶군요.

기회가 될는지요.”

“나도, 나도.

오빠, 나 궁금해요.”

“나나야.

내가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니.”

“아하하……”

이드는 부담스럽게 모여드는 시선과 팔에 달라붙는 나나의 앙증맞은 짓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애매한 긍지에 몰린 이드를 향해 라미아가 딱하다는 눈길을 보내며 슬쩍 고개를 돌려 버렸다.

‘조심하신다더니…… 벌써 나나 때문에 일이 꼬인 것 같은데요, 이드님.’

스스로 나나에게 휘말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한 나절도 넘기지 못한 이드였다.

“야호, 먹을 것 들고 가서 구경하자!”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정말 마이 페이스인 사람에겐 약하단 말이야.

아니,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소녀의 공세에 약한 건가?

이드는 호텔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동춘시의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무른 성격에 한숨을 내쉬었다.

나나로 인해 촉발되었지만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객실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까지 가세한 데다 어물쩡거리는 바람에 어느새 이곳까지 올라와 버리다니……

“에이, 괜찮아요.

다 이드님이 착해서…… 그런 거예요.”

툭툭 어깨를 두드려 주는 라미아의 위로가 왠지 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위안을 주느라 하는 행동에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려고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나나의 우렁찬 목소리는 그것마저 어렵게 만들었다.

이드는 눈물을 머금고 처연히 고개를 돌려야 했다.

“오빠, 어서 준비하라구.

사숙님이 자랑한 만큼 엄청난 걸 보여줘야 돼.

알지? 승리!”

“아아……”

두 손가락을 V자 형태로 꼽아 보이는 나나에게 이드는 의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싸울 맛 나는 상대와의 전투도 아니고, 서로 싸워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끌려나왔으니 어디 의욕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저 슬슬 하다가 마는 거지.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의 억지로 끌려나온 건 그렇다고 해도 한꺼번에 모인 저 많은 구경꾼들이라니.

그랬다.

여느 때라면 조용해야 할 한밤의 호텔 옥상은 지금 꽤나 시끄럽게 웅성대고 있었다.

한밤중의 축제 마냥 갑작스런 비무에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이드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여느 학교 운동장만한 호텔의 옥상 한쪽에 모여 느긋하게 서성이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무림인이었고, 몇몇은 그들과 인연이 있거나 같은 층에 머물고 있는 투숙객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들 알고 죄다 모여든 것일까? 무슨 광고를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혹시 누군가 광고를……

잠깐 그런 궁금증도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부인할 수 없이 확실한 답이 나와 있었다.

영호 나나

“자, 그럼 청소호 호텔배 제1회 비무시합을 시작합니다.

야호!”

가장 힘차게 이드의 등을 떠밀었던, 청소호 호텔의 제일 유명인.

바로 그녀가 아니면 저 사람들을 누가 불러들였겠는가.

사회자처럼 나서서 팔을 걷어붙이고 아예 진행까지 보려는 그녀를 파유호가 끌고 가 다시 한번 주의를 주지만 이미 모여든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된 것! 빨리빨리 끝내 버리고 내려가자.

그게 제일 좋겠어.”

간단히 상황을 끝낼 생각인 이드였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라미아의 목소리에 생각을 조금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 남궁세가의 도움을 받기가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 그렇겠지?”

그것은 약간은 고려해 볼 문제였다.

아무리 실력 차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한 방에 눕혀 버렸다가는…… 아마 삐지지 않을까나?

특히 파유호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당한다면 도움은커녕 먼저 제로를 찾아서 이드의 방문을 알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처참한 꼴을 보이면 정신이 나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남궁황도……

“뭐, 대충 상황을 봐 가면서 하는 수밖에……”

어쨌거나 지금은 제로를 찾는 게 먼저니까.

이드는 그렇게 좀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뭐, 정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경우 한 방에 눕혀 버리는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차피 적당한 거리까지만 다가간다면, 라미아의 마법으로 탐색이 가능하다.

남궁세가와 검월선문의 도움이란 건 어디까지나 제로가 머물 만한 건물을 찾는 데까지만 소용될 것이었다.

앞으로의 계획과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비무 치를 준비가 다 되었는지 높은 고음에서 또랑또랑 울리는 나나의 목소리가 옥상 위에 울려 퍼지며, 이드의 이름이 불려졌다.

“자, 이드 오빠.

이리 오세요.

시합을 진행해야죠.

자자, 여러분들 기대하세요.

오늘 시합을 치를 두 사람입니다.”

제 흥에 겨워 천방지축이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자로 나선 듯한 나나였다.

그런 나나의 뒤로 나나를 말리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던 파유호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폭폭 내쉬는 모습이 보였다.

“자, 주목하세요.

오늘 시합의 두 선수를 소개합니다.

우선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우리의 풍류공자 남궁황 소협입니다.

그에 맞서 싸울 상대는 저희 사문의 다정선자님이 조카로 삼으시고, 그 실력을 인정한 이드 소협입니다.

모두 박수!”

완전 권투 시합을 진행하는 사회자가 따로 없었다.

거기다 흥을 돋우기 위한 사회자의 제스처를 따라 하면서 콧소리까지 내는 과장된 목소리라니……

그 귀엽고, 위트 있는 포즈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며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 나나의 하는 짓에 파유호가 얼굴을 붉히고, 풍류공자라는 말을 들은 남궁황이 헛기침을 해 대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나 진행자에 의해 비무 공간이 금방 마련되었다.

구경꾼으로 올라온 사람들과 무림인들이 한쪽으로 물러났다.

만약 충돌의 여파가 일반 사람을 덮친다면 같이 있던 무림인들이 막아 줄 것이다.

이때 겨우 이드와 떨어진 라미아를 향해 스리슬쩍 다가서던 몇몇의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금세 검월선문의 제자들 사이로 끼어 버리는 그녀를 보고는 아쉽게 뒤돌아서야 했다.

비무에 앞서 몇 가지 주의사항이 나나로부터 주어졌다.

보통의 비무와 비슷한 내용들이었다.

무엇 무엇을 조심하고, 과한 공격은 말아라.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니라면 어디나 끼이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에 더해 특이한 한 가지 주의사항이 더해졌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비무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인데요…… 제발 바닥 조심하세요.

무너지지 않게.

두 분이 디디고 있는 곳은 단단한 땅이 아니라 남의 집 지붕 위니까요.

아셨죠?”

나나의 말대로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생각 가는 대로 아니,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하던 나나였지만, 따로 돌아가는 머리라도 있는 것인지 장소에 대한 파악까지 확실히 한 것 같았다.

어쩌면 당부하듯 파유호가 언질해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나의 말대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없었다.

호텔인 만큼 보통의 가정집에 비할 수 없이 튼튼하고 두텁겠지만, 혹시라도 강력한 검기라도 떨어진다면 어떻게 부서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뭐래도 단단한 땅이 아닌 빈 공간으로 채워진 건축물이니 말이다.

그 말에 관객 중에서 나이 지긋하고 무게 있어 보이는 남자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하하핫, 정말 나나 양이 말한 대로야.

그 말대로지.

혹시라도 지붕이 날아가면 내가 잘 곳이 없거든.

하하핫.”

“크하하하, 정말 그렇군요.

이거 잘못 하다가는 한밤중에 이사를 하거나 별을 보면서 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멋진 비무만 볼 수 있다면 그게 대수겠어요, 호호호홋.”

순간 여기저기서 와, 하는 웃음소리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유쾌한 한밤의 작은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들의 가벼운 농담과는 달리 비무를 하는 두 사람이 정말 주의해야 할 점이었다.

사람들의 웃음에 따라 나나도 깔깔깔 웃어 보이고는 시작 신호를 알리며 검월선문의 제자들 곁으로 물러났다.

타앙

그저 쇳덩이와 시멘트 바닥이 부딪힌 소리라기엔 너무나 경쾌한 음과 함께 남궁황의 앞으로 한 자루의 검이 세워졌다.

“본가의 자랑은 당연히 검! 자연 나의 자랑도 이 한 자루의 검.

소협, 나는 이 한 자루의 검으로 말하겠네.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장기인 검을 사용하겠다는 말을 엿가락 늘이듯 늘여 말하는 남궁황이었다.

이드는 그 소리를 듣고 서야 정말 나나의 말대로 느끼공자의 느끼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동시에 솟아오르는 닭살을 내리 누르며, 그냥 아무 생각 말고 한 방에 보내 버릴까 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맘 좋은 자신이 참기로 하고, 천천히 일라이져를 뽑아 들었다.

차앙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맑은 목소리의 일라이져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달빛 아래서 더욱 순백으로 빛나며 순결해 보이는 일라이져는 평소보다 아름다움이 더해 여기저기서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그것은 한껏 멋을 부리고 있던 남궁황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만큼 달빛에 비친 일라이져의 자태는 뛰어난 것이었다.

다만…… 라미아만이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뾰로퉁한 인상을 짓고 있었는데, 꼭 연인을 아름다운 여인에게 잠시 뺏긴 것 같은 질투 어린 표정이었다.

“저는 이 일라이져를 사용하지요.”

“아? 아, 흠.

대, 대단히 아름다운 검이군.”

잠시 홀린 듯 더듬거리며 묻는 남궁황의 눈에는 강한 소유욕 같은 것이 한가득 번쩍거리고 있었다.

하기야 무인이라면, 아니 꼭 무인이 아니라도 저 아름다운 자태의 소검을 누가 탐내지 않겠는가.

저기 멀리 서 있는 나나는 완전히 입까지 떡하니 벌리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이드가 대답할 것이라곤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네.

너무나 소중한 검입니다.

라미아, 일리나와 함께 제게 가장 소중한 녀석이죠.”

순간 그런 이드의 마음을 알았는지, 우우웅 하는 낮지만 유쾌한 울림을 지어 보이는 일라이져였다.

동시에 뾰로퉁해 있던 라미아의 얼굴까지 활짝 펴졌다.

남궁황은 보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고개를 한 번 휘젓고는 자신의 손에 잡힌 검을 뽑으며 입맛을 다셨다.

주인에게 화답하는 신검.

하지만 그런 검일수록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검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검의 남궁가인 만큼 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남궁황은 파유호에게 좋은 검을 선물하겠다고 장담한 상황에서 그게 잘 안 되고 있었다.

그런 차에 구하려던 검에 못지않은 검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구할 수 없다니.

이런 상황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남궁황이었다.

“크흠, 확실히 무인에게 일생의 검만큼 소중한 것은 없지.

자, 선공을 양보하지.

오시게.”

검을 들며 큰 소리로 호기를 보이는 남궁황이었다.

지금은 검보다 자신의 실력을 보이는 게 우선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검을 부여잡은 남궁황은 상당한 수련을 거쳤는지 검의 날카로운 기운을 그대로 소화해 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정도 실력이 되고 보니 가문에서 동춘시로 보냈을 테지만.

“그럼…… 갑니다.

합!”

이드는 남궁황의 자세를 꿰뚫어 보고는 갑자기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느끼하고, 능글맞아 보이는 성격과 달리 확실히 실력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이의 가문의 실력이 그대로라니.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이 그대로 초식에 전해졌다.

한 방에 보내지 않고 우선 남궁황의 실력을 보기로 한 것이었다.

찌르기.

어떤 초식도 없는 단순한 찌르기였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강호에 떠도는 어린 아기까지도 외우고 있는 세 초식 중 하나인 선인지로가 이드의 선공으로 선택되었다.

보통 비무의 첫 초식은 그저 시작을 알리는 가벼운 초식으로 가는 게 대부분이다.

서로 감정이 있는 비무가 아니라면 가벼운 초식으로 스타트를 끊는 게 서로에게 좋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로 공격할 시점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매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실력이 비슷할 경우의 당사자들에게 해당되는 일이지만, 대개의 경우 그랬다.

거기에 상대가 선공을 양보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남궁황도 그렇기 때문에 이드의 찌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검을 들었다.

하지만 다름 아닌 이드의 공격이었다.

가벼운 시작을 알리는 한 수이긴 했지만 절대로 가볍게만 상대할 수 없는 공격!

남궁황도 일라이져에 맞서는 순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피해야 할지, 맞받아쳐야 할지 결정하기 힘든 미묘한 타이밍의 공격.

“치이잇…… 수연경경!”

결국 찌르기를 맞서 흘리기로 한 남궁황은 대연검법의 일초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장 깊게 익힌 두 개의 검법 중 하나.

일라이져와 검을 부딪치는 그의 마음엔 방금 전과 같은 가벼운 마음은 이미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연검의 날이 제대로 섰구나.”

이드는 자신의 찌르기를 흘려내는 남궁황의 실력에 그의 대연검법이 제대로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연이어 베고, 치고, 찌르는 등의 기초적인 검식을 펼쳐 나갔다.

그 공격이 모두 앞서 찌르기와 같아서 남궁황은 대연검으로 흘려내며 쉽게 공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파고들려고 해도 쏟아져 들어오는 공격에 쉽게 기회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구경하고 있던 무림인들 사이에서 놀람과 의아함에 찬 웅성거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단순한 검식에 남궁황이 대연검법으로 대항하고 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라면 이드의 검에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파유호도 끼어 있었다.

이미 이드와의 대련 약속을 잡은 그녀의 눈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익!”

남궁황은 대연검법의 일, 이 초의 초식으로 이드의 검을 받아 넘기며 갑갑한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원래는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멋지게 초식을 펼치며 자신의 위용을 크게 보이고 싶었는데.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전혀 그렇게 되질 않고 있었다.

큰 초식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그저 두 개의 초식으로 상대의 기본적인 ‘검 휘두르기’를 받아 내고만 있으니……

‘이래서야 도저히 폼이 안 나잖아.’

우스운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싸우는 이유가 바로 자신을 파유호와 라미아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남궁황.

그는 힘껏 이드의 검을 걷어내고는 곧바로 자신의 검을 뻗어 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 않는 비무라는 점을 생각한 대답한 방법이었다.

“카앗, 이런 단순한 것 보단, 요즘 관객은 화려한 걸 좋아하거든.

총영뇌전!”

즈즈즈즉

남궁황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검에서 백색의 뇌전이 일었다.

확실히 남궁황의 말대로 화려해 보이는 뇌전의 검기는 그야말로 번개 같은 속도로 이드를 향해 뻗었다.

가장 강력한 검기를 중심으로 그물처럼 퍼져 흐르는 검기.

방금 전의 공방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이드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섬전십삼검뢰…… 좋은 반응인걸.”

바로 이드가 남궁황의 공격을 허락한 것이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상황에서 남궁황이 어떻게 공격을 가할 수 있었겠는가.

이드는 남궁황이 펼치는 검법의 이름을 외치며 일라이져에 붉은 검기를 입혔다.

“그럼 그 말대로…… 확실히 화려하게 해 주지.

흩날리는 꽃잎이 아름다운 난화!”

꾹꾹 눌러 담아 놓았던 꽃잎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듯 일라이져의 검신으로부터 순식간에 펼쳐진 붉은 꽃잎들이 이드를 감싸 안았다.

파팍 파파팍 퍼퍽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검기의 꽃잎이 이드를 감싸는 순간 번개의 검기가 꽃잎에 맺히며 번쩍이는 붉은 스파크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성격은 조금 이상하지만, 실력은 제대로 된 남궁황과 조금 놀아 주기로 마음먹은 이드가 난화십이식을 꺼내 들었다.

덕분에 그 순간 이후로 옥상에 올라온 사람들까지 정말이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궁황은 그가 바라던 대로 원 없이 화려한 비무를 가질 수 있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아름다워라, 낙화!”

“이익…… 뇌영검혼!”

두 사람의 검기가 부딪치는 순간 그것은 떨어지는 붉은 꽃잎을 헤엄치는 하얀 뱀의 모양이 되었다.

“일양뇌시!”

“하늘의 화살을 타고 나는 꽃잎이여…… 뇌정화!”

두 사람의 강기가 부딪치는 순간 그것은 황금색과 붉은 색의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섬전종횡!”

“흩날리는 꽃잎이 아름다워 바람에 취하나니…… 화령화!”

두 사람의 강기가 부딪치는 순간 그것은 백색 빛 속에 흩날리는 붉은 꽃잎이 되었다.

두 사람의 공방은 마치 여러 장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이 전개되었다.

공격하는 족족 철저하게 받아 내고, 화려하게 반격까지 해 주는 이드 덕분에 남궁황은 정말 정신없이 화려함에 취할 수 있었다.

그 화려함에 도취해 옷 여기저기가 검기에 베이는 것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남궁황은 그제야 나나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의 실력을 어필할 생각에 잠시 치워 두었던, 다정선사가 극찬했다는 이드의 실력.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한 톨의 공격도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이드의 평온한 모습이라니……

순간 남궁황은 전력으로 공격을 날리면서 후회했다.

괜히 나섰다가 파유호 앞에서 이게 웬 망신이란 말인가.

그러나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남궁황은 서서히 바닥을 보이는 내력을 느끼며 개 발에 땀날 정도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차피 승패는 나온 상황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냥 졌다고 하기에는 뭔가 섭섭했다.

기왕 질 게 뻔한 거……

‘…… 끝이라도 멋있게.

확실히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최대한 멋진 수를 펼치고 쓰러지는 거야.

마지막엔 검을 짚고 패배를 인정하는 게 나을까?’

아주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 내는 남궁황이었다.

그냥 패배를 인정해도 지금까지의 공방을 보면 충분히 그의 실력을 알아 줄 텐데 말이다.

좌우간 남궁황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초식으로 끝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모습도 멋있을 테고, 혹시나 이드에게 한 방을 먹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상대의 옷깃도 건드리지 못하고 패하는 건 명색이 최고의 후기지수들 중 하나로서 부끄러운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크아앗…… 대연별리! 십인섬전! 일염층연화! 가랏!”

일단 마음을 정한 남궁황은 한꺼번에 세 개의 초식을 연달아 펼쳐 냈다.

첫 초식으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꽃잎 모양의 검기를 비켜 내고, 두 번째 초식으로 이드의 검기를 상대하고, 마지막 세 번째 초식으로 이드와 거리를 벌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물러난 남궁황의 행동에 이드의 공격은 자연히 멈추어졌고, 그 틈을 타 남궁황은 급히 입을 열며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과연, 과연! 대단하오.

다정선사 문 선배님의 말씀대로 우리들 후기지수 중에서는 소협의 상대가 없을 듯하오.

정녕 이드 소협의 무위에 감탄하는 바이오.

이번 비무는 이미 그 승패가 결정이 난 것 같으나.

이 남궁황 마지막 남은 최후의 힘까지 모두 쏟아 보고 싶어졌소.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소.”

남궁황은 온갖 멋들어진 수사를 갖다 붙이며 이드를 향해 정중히 포권을 해 보였다.

딴에는 멋진 말을 잔뜩 쏟아 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우! 역시 느끼공자님.

느끼해!”

역시 말하는 것에 거침이 없는 나나였다.

나나의 가벼운 야유에 이드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항상 직설적인 나나였기에 남궁황은 내심 벌게지려는 얼굴을 헛기침으로 식히고는 검을 들었다.

남궁세가의 이공자답게 남궁황의 검은 잡티 하나 없는 미끈한 보검이었다.

남궁황은 그 검을 허리 쪽으로 눕혀 가슴 쪽으로 당기며, 몸과 검 사이로 팔을 내밀어 목표인 이드를 향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총을 장전한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 뇌룡경천포!”

구경하고 있던 초강남의 입에서 놀람에 찬 탄성이 튀어나왔다.

십전십산검뢰의 최후 초식으로 그 파괴력 또한 강호의 일절로 알려진 검초를 알아본 것이었다.

보기 힘든 그 공격에 여기저기서 호기심 어린, 또는 기대 어린 소요가 일어났다.

‘그래, 이거야.’

남궁황은 귓가로 들려오는 소리들에 만족했다.

경탄과 놀람이 섞여 드는 저 소리들!

바로 그가 바랐던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마주 선 이드의 빙글거리는 표정에 남궁황의 좋았던 기분이 금세 꺼져 버린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도 저런 여유라면…… 설마 이것도 통하지 않는 건가.

순간 남궁황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앗, 느끼공자님.

그거 쏘면 옥상이 무너진다구요.

당장 다른 걸로 바꾸지 못해욧!”

분위기를 확 깨 버리는 나나의 째지는 목소리가 옥상을 울렸던 것이다.

그 소리에 남궁황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문득 여기서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이 솟아오른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헷, 노룡포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되니 반가운걸.

오세요.”

쩌르르릉

정말 반가운 듯한 이드의 말과 함께 맑은 일라이져의 검명이 일었다.

동시에 검신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한 붉은 빛가루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황은 이드의 말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어떻게 소협이 노룡포라는 이름을 아는 것이오? 그 이름은 가내에서만 사용하는 것인데…… 외부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오.”

“핫핫, 예전에 남궁가와 인연이 있었죠.

그나저나 어서 오시죠.

아니면 제가 먼저 갑니다.”

이드는 자신이 말실수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일라이져를 앞으로 내밀어 살짝 흔들었다.

짜르릉

순간 옥상 위에 난데없는 청아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근원에는 일라이져가 있었다.

검신을 감싸던 붉은 빛이 마치 방울처럼 검신의 주위로 흩어져 휘돌며 맑은 방울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지만 남궁황은 이드의 말대로 궁금증을 뒤로하고 노룡포를 쏘아 냈다.

“음…… 그럼 후에 묻도록 하지.

알겠지만 노룡포는 강하네.

조심하게.

뇌룡경천포!”

콰우우우우

말 그대로 뇌룡의 포였다.

다름 아니라 남궁황의 검으로부터 통나무 굵기의 백색 뇌전이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기를 질리게 만드는 엄청난 박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드는 그 기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에 집중된 파괴력은 다르지만 옛날의 그것과 거의 같았던 것이다.

덕분에 노룡포에 알맞은 초식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노룡의 분노가 꽃향기에 씻겨지니라.

멸혼향!”

딸랑딸랑 딸랑딸랑

앞으로 뻗어 내는 일라이져를 따라 검신 주위에 머물고 있던 붉은 방울과 같은 검강들이 서서히 회전하며 앞으로 날아갔다.

방울의 속도는 순식간에 빨라졌고, 몇 번 눈을 깜빡이는 사이 방울은 어느새 노룡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커다랗게 확대해 놓은 모터의 외형과 비슷했는데, 중앙에 놓인 백색의 노룡과 방울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전이 강렬해지면서 두 기운이 이드와 남궁황의 중앙에 섰다.

거기다 그 회전이 강렬해지는 어느 순간 방울과 뇌전이 서로를 향해 붉고 흰 기운을 뿜으며 섞이는 장관이란……

쯔자자자작 카카칵

엄청 불안해 보였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발전기 모습이 저럴까?

“제길 터진다.

모두 물러나!”

꽈과과광 쿠구구구구

순간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기운이 하얗게 물들면서 폭발해 버렸다.

폭발의 기운이 옥상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헌데 그 엄청난 소리를 뚫고 사람들의 귓가로 들리는 고음의 째지는 목소리가 있었다.

“꺄아악! 느끼공자가 일낼 줄 알았어.

모두 피해요.

옥상 무너져요.”

나나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녀 말대로 폭발의 중심부가 움푹 패이며 그대로 내려앉아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 이렇게 되면 오늘 잠은 어디서 자야 하는 거지?

급히 몸을 피하는 와중에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비무 장소를 잘못 고른 그들의 잘못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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