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12화 : 흥한(漢)의 꿈 한 줌 재로 흩어지고

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12화 : 흥한(漢)의 꿈 한 줌 재로 흩어지고


흥한(漢)의 꿈 한 줌 재로 흩어지고

등애가 올린 도본과 글을 본 사마소는 크게 노했다.

“강유가 여러 차례 중원을 넘보았는데도 그를 없애지 못하니 실 로 배와 가슴의 모진 병과도 같구나!”

그러고는 곧 촉을 칠 의논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사마소로서는 기다리고 있던 핑계 같기도 했다. 규모가 큰 대외 전쟁으로 한층 더 자신의 권세를 굳건히 함으로써 쇠약한 조위(曹魏)를 자연스레 이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소의 내심이 그러하니 의논은 하나마 나였다. 곧 촉을 쳐 없애기로 결정을 보고 사마소는 크게 군사를 일 으켰다.

이때 새로 뽑힌 장수가 종회)였다. 종회는 영천 장사 사람으 로 자를 사계(季)라 했다. 태부 종요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슬기로울 뿐만 아니라 배포도 컸다. 한번은 종요가 두 아들을 데리고 위 문제(文帝)가 된 조비를 만난 적이 있었다. 형인 종육(鍾毓)은 여덟 살 이고 종회는 일곱 살 때인데, 조비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종육에 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그토록 땀을 흘리느냐?”

“떨리고 무서워 절로 이렇게 땀이 납니다.”

종육이 그렇게 대답하자 조비가 이번에는 곁에 있는 종회에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땀을 흘리지 않느냐?”

그 물음에 종회가 대답했다.

“떨리고 무서워 감히 땀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에 조비는 종회를 유달리 기특하게 여기고 자라는 걸 눈여겨 살폈다고 한다. 점점 자라면서 병서를 즐겨 읽었고, 육도삼략(六三 略)에 매우 밝아 사마의 같은 당대의 병가들도 그의 재주를 알아주 었다.

사마소는 종회를 진서장군으로 올리고 청(靑), 연(兗), 예(豫), 형 (), 양(다섯 주의 군마를 모아 촉으로 향하게 하는 한편 애 에게도 사람을 보내 정서장군 도독관외농상사(都督關外隴上使)로서 또한 서촉을 치라 했다. 종회는 군사를 내기에 앞서 그 일이 먼저 촉 에 알려지는 게 싫었다. 동오를 친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하는 한편 자기가 거느리게 된 다섯 주 군사들로 하여금 배를 만들게 했다. 그 소문을 들은 사마소가 종회를 불러 물었다.

“그대는 물길로서 촉을 칠 작정인데 배는 무엇 때문에 만드는가?”

종회가 조용히 그 까닭을 털어놓았다.

“서촉은 우리 군사가 쳐들어가면 틀림없이 동오에 구원을 청할 게 뻔합니다. 따라서 먼저 떠들썩하게 동오를 친다는 소문을 퍼뜨리 면 동오는 제 발등의 불이 급해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거 기다가 지금 배를 만들기 시작해야 서촉을 차지한 뒤 다시 그 배로 동오를 공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촉은 기껏해야 일 년이면 무 너지고 말 것입니다.”

대단한 배짱이요, 자신이었다. 사마소는 그런 종회를 더욱 든든하 게 여기며 얼른 군사를 내게 했다. 이에 종회가 먼저 군사를 서촉으 로 움직이니 때는 위(魏) 경원(景元) 사년 칠월 초사흘이었다. 사마 소는 떠나는 종회를 성 밖 십 리까지 배웅한 뒤에야 돌아갔다. 서조연 소제(邵)가 사마소를 찾아보고 가만히 말했다.

“이제 주공께서는 종회에게 십만의 군사를 주어 촉을 치게 하였 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종회는 품은 뜻이 커서 홀로 대권을 잡 게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내가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사마소가 빙긋이 웃으며 그렇게 받았다. 소제가 다시 물었다.

“주공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면 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 를 함께 맡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아직 촉을 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는 마음으로 겁내고 있기 때문이니, 만약 그런 사람들을 억지로 싸 우게 하면 반드시 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종회 홀로 촉을 치겠다고 나서니 이는 그가 겁을 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겁을 내지 않는다면 반드시 촉을 쳐부술 것이고, 그리되면 촉 땅 사람들의 의욕과 용 기도 갈가리 찢기고 만다.

‘싸움에 진 장수는 용기를 말하지 않고, 망한 나라의 대부(大)는 (그 망한 나라) 지킴을 꾀하지 않는다[敗軍之將不可以言勇 亡國之大夫 不可以圖存]’란 말이 있다. 설령 종회가 딴 뜻을 품는다 해도, 지고 망 한촉 땅 사람들이 어찌 도울 수 있겠는가? 또 우리 위나라 군사들 은 싸움에 이겼으니 돌아올 마음뿐이라 종회를 따라 모반하지는 않 을 것이니 다시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하지만 이 말은 그대와 나만 알고 있어야 한다. 결코 밖으로 새나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사마소의 그 같은 말에 소제는 머리 숙여 탄복했다.

한편 한중 가까이 이르러 진채를 내린 종회는 장막을 걷고 모든 장수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영을 듣게 했다. 거기에는 감군 위관과 호군 호열 외에 대장 전속(續), 방회, 관운장에게 죽은 방덕의 아 들), 전장(章), 구건(丘健), 하후함(夏侯咸), 왕가(王賈), 황보개(皇甫 閬), 구안句) 등 여든 명이 넘는 장수가 있었다.

종회가 그들을 보고 말했다.

“반드시 한 장수가 앞장을 서서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야 한다. 누가 이 일을 맡아보겠는가?”

그러자 한 장수가 그 말을 받아 나섰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종회가 보니 호장(虎將)이라 불리던 허저의 아들 허의(許儀)였다.

다른 사람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저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앞장을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종회가 허의를 불러내 일렀다.

“너는 부자 이대에 걸쳐 이름 있는 장수일 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 들이 모두 네가 선봉으로 알맞다 하니 마군 오천과 보졸 일천을 거 느리고 한중으로 나아가라.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너는 중로군 (中路軍)을 거느리고 야곡으로 길을 잡고, 좌군은 낙곡으로 우군은 자오곡으로 나아가게 하라.

네가 지나갈 길은 모두 거칠고 험한 산길이다. 먼저 길을 고르고 다리를 놓아 군사들이 나아가기 쉽도록 만들라. 산을 뚫고 바위를 깨뜨려 길을 열 것이요, 만일 게을리 해 영을 어기는 날에는 군법으 로 엄하게 다스릴 것이다.”

그러자 허의는 군령장을 써두고 앞장을 서고, 종회는 뒤를 이어 십만 대군을 휘몰아갔다.

그 무렵 등애는 농서에 있었다. 촉을 치라는 조칙을 받자, 사마망 (司馬望)은 강인을 막게 하고, 옹주 자사 제갈서, 천수 태수 왕기, 농 서태수 견홍, 금성 태수 양흔에게는 각기 이끈 군사를 데리고 자기 밑으로 와서 군령을 받으라 했다.

명을 받은 각처의 군마가 구름처럼 모여들 때였다. 등애는 밤에 꿈을 하나 꾸었다. 꿈속에 높은 산에 올라 한중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발 아래에서 샘물이 솟았다. 솟는 물기운이 매우 세찬 샘이 었다. 이내 놀라 깨어보니 온몸이 진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등애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 앉아 날새기를 기다렸다가 진로호군 소완(邵緩)을 불러 물었다.

“이 꿈이 어떠한가?”

소완은 평소 주역에 밝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등애로부터 꿈얘기를 자세하게 듣더니 머뭇거리며 풀이해주었다.

“주역에 이르기를 ‘산 위에 물이 있으면 건()이라 한다. 건괘(蹇 卦, 水山蹇)는 서남쪽이 이롭고 동북쪽이 이롭지 못하다’ 했습니다. 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건은 서남쪽이 이롭다는 것은 그리로 가 면 공을 이루기 때문이요, 동북쪽이 이롭지 못하다는 것은 그 길이 다한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장군께서 이번에 가시면 반드 시 촉을 이길 것입니다만, 안타깝게도 막히고 걸리는 일이 있어 돌 아오시지는 못할 것입니다.”

등애는 그 말을 듣고 어두운 낯빛을 지으며 기뻐하지 아니했다. 그때 갑자기 종회의 격문이 이르렀다. 군사를 일으켜 함께 한중을 치자는 내용이었다.

등애는 먼저 옹주 자사 제갈서에게 일만 오천의 군사를 주고 강 유의 뒷길을 끊으라 했다. 이어 천수 태수 왕기에게 일만 오천 군사 를 주며 왼쪽에서 답중을 공격하게 하고, 농서 태수 견홍에게도 일 만오천을 주며 오른쪽에서 답중을 치게 했다. 또 금성 태수 양흔은 역시 일만 오천의 군사로 감송(松)에서 강유의 등 뒤를 기습하게 한 뒤, 등애 자신은 삼만 군사를 이끌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그 네 갈 래 군사를 돕기로 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종회가 군사들과 도성을 떠날 때도 좋지 않 은 조짐은 있었다. 사마소와 함께 여러 벼슬아치들이 배웅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 위풍당당한 종회의 출전을 부럽게 여겼다. 그러나 한 사람 상국참군 유실(劉)만이 비웃듯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태위왕상이 그 차가운 웃음을 알아보고 말 위에서 유실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이번에 종회와 등애 두 사람이 가면 촉을 평정할 수 있겠습니까?” 

“촉은 틀림없이 쳐부수겠지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살아서 도성 으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유실의 그 같은 말에 왕상이 그 까닭을 물었다. 유실은 그저 가만 히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왕상도 야릇한 느낌이 들어 다시 묻지 않았다.

위의 대군이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은 곧 강유에게도 전해졌다. 염 탐꾼들에게서 그 일을 들은 강유는 급히 후주에게 글을 올렸다.


‘….좌거기장군 장익은 군사를 이끌고 양평관을 지키게 하시고, 우거기장군 요화는 음평교를 지키게 하십시오. 그 두 곳은 어느 곳 보다 긴요한 곳이니, 그 두 곳을 잃게 되면 한중은 지키기 어렵습니 다. 또 한편으로는 동오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는 것도 잊으셔 서는 아니 됩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법, 그들도 가만히 앉 아 우리가 망하는 걸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따로 답중 의 군사를 일으켜 적을 막겠습니다.’


그때 후주는 경요(景耀) 오년을 염흥(興) 원년으로 바꾸고 매일 같이 환관 황호와 더불어 궁중에서 잔치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갑 자기 날아든 강유의 표문에 놀란 후주는 그것도 의논 상대라고 황호 를 잡고 물었다.

“지금 위나라가 종회와 등애를 대장으로 삼아 크게 군사를 일으켜 오고 있다 하니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황호가 간신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것은 강유가 공명을 탐내 한 소리일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후주를 안심시키고 엉뚱하게 점쟁이 노파를 불러들여 나 라의 운세를 물어보게 했다. 후주는 그 말을 따라 점쟁이 노파를 불 러들이고 갖은 정성을 다해 굿판을 마련해 주었다. 궁궐 한가운데서 모두를 물리치고 벌어진 굿판에서 노파가 푸닥거리 끝에 신들린 듯 말했다.

“나는 서천의 토신(土神)이외다. 폐하께서는 걱정 말고 태평이나 즐기시오. 몇 년 안에 위의 땅까지 모두 폐하께 돌아올 것이오.” 

그러고는 거품을 물고 스러졌다가 반나절이나 지나서야 깨어났다. 어리석은 후주는 그 말을 믿었다. 몹시 기뻐하며 점쟁이 노파에게 거듭 상을 내리고 전과 같이 즐기기에만 바빴다. 거기다가 황호가 가운데서 막아버리니 연이어 날아드는 강유의 표문은 다시 후에 게 이르지 못했다.


그사이 종회의 대군은 한중으로 쉼 없이 밀려들었다. 앞장서 오다 가 남정관에 이른 허의가 슬며시 공명심이 일어 이끄는 장수들에게 말했다.

“이 관만 지나면 한중이다. 관 위에 인마가 많지 않으니 우리가 힘을 써서 한번 뺏아보자.”

그러고는 장졸들을 휘몰아 대뜸 관을 덮쳤다.

성을 지키던 촉의 장수 노손은 진작부터 위나라 군사가 이 를 것을 알고 있었다. 미리 관 앞 나무 다리 좌우에 군사들을 매복시 키고 공명이 남긴 십시연노(矢連弩)를 걸어두었다. 그리고 허의의 군사들이 몰려오자 딱다기 소리를 군호로 돌과 화살을 비오듯 퍼부 었다.

놀란 허의가 급히 군사를 물렸으나 이미 앞선 수십 기는 한꺼번 에 열 개씩 쏘아 부치는 쇠뇌에 맞아 쓰러진 뒤였다. 거기다가 관안 의 촉병들이 치고 나오니 위군은 여지없이 뭉그러졌다.

쫓겨간 허의는 종회에게 그 일을 알렸다. 그 소리를 들은 종회가 갑사 백여 기를 이끌고 남정관을 살피러 갔다가 허의와 똑같은 꼴을 당했다. 활과 쇠뇌에 쫓겨 급히 말 머리를 돌리는데 관 위에서 노손 이 오백 군사를 이끌고 쳐내려왔다.

종회는 말을 박차 달리다가 다리 하나를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다리 상판이 꺼지면서 말굽이 끼어버려 빠지지 않는 바람에 하마터 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말이 끝내 다리를 빼지 못하자 종회는 말 을 버리고 뛰어서 다리를 건넜다. 그때 뒤쫓아 온 노손이 창을 들어 종회를 찌르려 했다.

마침 위군 속에 순개愷)란 이가 그걸 보고 몸을 틀어 활을 쏘 았다. 화살은 보기좋게 노손을 맞히어 노손은 비명과 함께 말에서 떨어졌다. 종회는 승세를 타고 무리를 휘몰아 다시 남정관으로 치고 들었다.

관 위의 촉병들은 위군 앞에 자기편이 있어 자랑하는 쇠뇌를 함부로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바람에 종회의 군사들에게 죽거나 흩어져 남정관은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싸움이 끝난 뒤 종회는 순개를 호군(護軍)으로 올리고 안장을 갖 춘 말과 갑옷 및 투구를 상으로 주었다. 그런 다음 허의를 불러 꾸짖 었다.

“너는 선봉으로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우리 군사가 나아가기 편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길을 고르게 하고 다리를 고치는 것도 네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다리에서 말발 굽이 끼어 하마터면 말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만약 순개가 아니었 더라면 나는 어김없이 죽음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너는 군령을 어졌으니 마땅히 군법에 부쳐야겠다!”

그러면서 좌우를 호령해 허의를 목 베게 했다. 여러 장수들이 말렸다.

“그 선친 허저는 조정에 많은 공을 세운 분입니다. 바라건대 도독께서는 부디 너그럽게 살펴 주십시오.”

하지만 종회는 들은 척도 않았다.

“군법이 밝지 못하면 어떻게 무리를 이끌 수 있겠는가?”

성난 소리로 그렇게 외치며 기어이 허의를 목 베 여럿에게 보이게 했다. 장수들은 하나같이 놀라고 두려워하면서도 괴이쩍게 여겼다. 그때 촉장 왕함은 낙성을 지키고 장빈은 한중을 맡아 있었다. 둘 다 위군의 세력이 엄청남에 질려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하고 성안에서 굳게 지키기만 했다.

“군사를 부리는 데는 신속함을 귀하게 여긴다. 조금도 지체해서는 아니 된다.”

종회는 그렇게 말하며, 전군 이보(李輔)에게는 낙성을, 호군 순개는 한성을 치게 하고 스스로는 양평관을 뺏으러 갔다.

양평관을 지키는 촉장은 장서와 부첨이었다. 관을 나가 싸울까까를 의논하고 있는데 종회의 대군이 와서 관을 에워쌌다. 종회가 채찍을 들어 관 위의 두 사람을 보고 소리쳤다.

“나는 십만 대군을 이끌고 여기 왔다. 일찍 항복한다면 벼슬을 높 여 받아들일 것이나 쓸데없이 뻗댄다면 관이 부서지는 날 옥과 돌이 함께 타듯[玉石俱焚]모두 함께 죽으리라!”

그 소리를 들은 부첨은 분했다. 장서에게 관을 지키라 하고, 스스 로 날랜 병사 삼천 명을 골라 관을 나갔다.

큰소리와 달리 종회는 부첨이 나오자 싸움 한번 해보지 않고 달 아났다. 위군도 모두 그런 종회를 뒤따랐다. 부첨은 기세를 타고 그 들을 뒤쫓았다. 그러다가 위군이 다시 뭉쳐 덤벼오는 걸 보고 관으 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셈인가. 부첨이 돌아가니 관 위에는 어느새 위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부첨이 기가 막혀 쳐다보고 있는데 장서가 성벽 위에 나타나 말했다.

“나는 이미 위에 항복하였소. 장군도 어서 항복하시오.”

그 소리에 성난 부첨이 소리 높여 장서를 꾸짖었다.

“나라의 은혜를 저버린 역적 놈아, 네 이제 무슨 낯으로 우리 폐하를 뵙겠느냐?”

그리고 돌아서서 위병과 힘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워낙 머릿수가 모자라 오래 견디지 못했다. 그가 거느리고 있던 군사들도 열에 여덟 아홉은 죽거나 다쳤다. 부첨이 문득 하늘을 우러르며 외쳤다. 

“나는 살아서 촉의 신하였으니 죽어서도 촉의 귀신이 될 것이다!”

그러고는 말을 박차 위군 속으로 돌진했다. 닥치는 대로 베고 찌 르며 하는 동안 그도 여러 번 창칼을 맞아 전포와 갑옷이 모두 피투 성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타고 있던 말이 쓰러지자 부첨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그를 기렸다.

하루 충성스런 분노를 펼치니 一日抒忠憤

의로운 이름 천년을 우러르네 千秋仰義名 

차라리 부첨처럼 죽을지언정 寧為傅僉死 

장서같이 살지는 아니하겠네 不作張舒生

양평관을 빼앗고 보니 관 안에는 군량과 말먹이에 병기들이 그득 쌓여 있었다. 종회는 몹시 기뻐하며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그날 밤은 양평관 안에서 쉬게 하였다.

그런데 밤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서남쪽에서 크게 함성이 일었다. 놀란 종회가 장막을 나가 살펴보았으나 밖에서는 아무런 움 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겁먹은 위군은 밤새 잠들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밤이 되었다. 이경 무렵 하여 다시 서남쪽에서 함성이 일 었다. 위군이 놀라 살폈으나 이번에도 함성뿐 다른 움직임은 없었 다. 이상한 느낌이 든 종회는 날이 밝자 사람을 풀어 부근을 살펴보 게 하였다.

“멀리 십여 리나 나가 살펴보았으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되돌아온 군사들이 그렇게 알려왔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 다. 이에 종회는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수백 기를 딸린 뒤 스스로 서 남쪽을 돌아보았다. 어떤 산 앞에 이르자 사방에서 살기가 뻗쳐오르 며 음산한 구름이 모여들고 안개가 산마루를 감싸버렸다. 종회가 말 고삐를 당기며 길라잡이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산이냐?”

“바로 정군산(定軍山)입니다. 지난날 하후연 장군께서 돌아가신 곳입니다.”

길라잡이가 그렇게 대답했다. 종회는 그게 어두운 옛일이라 즐겁 지 아니했다. 시무룩히 말 머리를 돌려 관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 데 어떤 산비탈을 돌 무렵이었다. 갑자기 미친 듯한 바람이 일며 등 뒤에서 수천의 말 탄 군사들이 뛰쳐나왔다. 깜짝 놀란 종회는 무리 를 이끌고 말을 박차 달아났다. 말에서 떨어지는 장수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양평관에 돌아와보 니 그 난리통에도 불구하고 죽은 사람이나 말은 하나도 없었다. 다 만 미끄러져 다치거나 투구를 잃은 정도였다. 그들이 입을 모아 말 했다.

“시커먼 구름 속에서 사람과 말이 뛰쳐나왔는데 가까이 다가와서 는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한바탕 회오리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갔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종회가 항복한 장수 장서에게 물었다.

“정군산에 무슨 사당이 있소?”

“상당은 없고 오직 제갈무후의 무덤이 있을 뿐입니다.”

장서의 그 같은 대답에 종회가 놀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후의 혼령이 나타나신 것이다. 내 마땅히 찾아보고 제사를 올려야겠다.”

다음 날 종회는 제례에 쓸 소와 양과 돼지를 마련한 뒤 스스로 무 후의 무덤 앞으로 나가 두 번 절하며 받들어 올렸다. 제사를 마치자 거센 바람이 멈추고 음산한 기운이 흩어졌다. 갑자기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가랑비가 흩뿌리더니 다시 날이 맑아졌다. 위의 장졸들은 모두 크게 기뻐 절하며 감사하고 돌아왔다.

그날 밤 종회는 장막 안에 탁자에 엎드려 잠깐 잠이 들었다. 갑자 기한 자락 맑은 바람이 불어와 그쪽을 보니 한 사람이 나타났다. 윤 건을 쓰고 깃털 부채를 들었는데 몸에는 학창의를 입고 발에는 검은 테 두른 흰 신을 신고 있었다. 키는 여덟 자쯤이나 될까, 관옥(冠玉) 같이 흰 얼굴에 주사를 바른 듯 붉은 입술이며 깨끗한 눈썹과 맑은 눈이 한가지로 신선 같은 데가 있었다.

“공은 어떤 분이십니까?”

놀란 종회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오늘 아침 무거운 예로 대접받은 터이나 한마디 그대에게 할 말 이 있어 왔소. 비록 한나라의 운이 다하고 천명은 거스르기 어렵다 하나, 동천과 서천의 백성들이 전쟁의 참화에 휩쓸리게 된 것은 실 로 가여운 일이 아닐 수 없소. 그 땅에 들어서거든 부디 백성들의 목 숨을 함부로 앗지 않도록 하시오.”

그러고는 소매를 떨치며 사라졌다. 종회가 그를 잡으려 하다가 문 득 깨어나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그게 무후의 혼령임을 깨달은 종 회는 몹시 놀랍고 괴이쩍게 여겼다. 곧 전군(軍)에게 영을 내려 흰 깃발 위에 ‘보국안민’ 넉 자를 써서 들게 하고, 어디를 가든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자는 자신의 목숨으로 그 죄를 갚아야 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이에 종회가 한중으로 들어가자 백성들은 모두 성을 나와 절을 하며 맞아들였다. 종회도 그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터 럭만큼도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거나 괴롭히는 일이 없게 했다.

그 무렵 답중에 있던 강유도 그런 위군의 침입을 맞아 적절하게 대응해나갔다. 요화, 장익, 동궐 등에게 격문을 보내 위병을 막게 하 는 한편 자신도 장졸을 이끌고 싸움을 기다렸다.

오래잖아 위병이 밀려들었다. 강유는 군사를 이끌고 맞아 싸우러 나갔다. 천수 태수 왕기(王)가 앞서 말을 달려 나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군사는 사졸 백만에 좋은 장수만도 천여 명이 넘는다. 모두 스무 갈래로 길을 나누어 나오는 중인데 앞선 갈래는 이미 성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네 어찌 천명(天命)도 모르고 항거하려 하느냐?” 

그 소리를 들은 강유는 왈칵 성이 났다. 아무 소리 없이 창을 끼고 달려 나가 왕기를 덮쳤다.

왕기는 싸운 지 세 합을 넘기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강유 가 기세를 올려 그를 뒤쫓았다. 그런데 이십 리쯤이나 갔을까, 갑자 기 북소리 징소리가 요란하더니 한 무리의 군사들이 길을 막았다.

앞선 장수의 깃발에는 농서 태수 견홍’이라는 여섯 글자가 크게 씌 어져 있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무리는 나의 적수가 못 된다.”

강유는 그렇게 비웃으며 군사를 몰아치고 들었다. 다시 견홍을 뒤 쫓기를 십 리나 했을까, 이번에는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길을 막았 다. 그래도 강유는 기죽지 않고 등애의 군사들을 상대로 혼전을 벌 이고 있는데, 문득 등 뒤에서 북소리 징소리가 요란했다. 놀라 군사 를 물린 강유에게 급한 전갈이 들어왔다.

“감송에 있는 우리 영채를 위의 금성 태수 양흔(楊欣)이 모두 태 워버렸습니다.”

그 소리에 더욱 놀란 강유는 장수들에게 깃발을 어지럽게 벌여 세워 등애와 맞서게 하고, 자신은 후군을 거두어 감송을 구하러 달 려갔다.

감송에 이른 강유는 이내 양흔과 마주쳤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양흔은 강유와 맞설 생각을 않고 되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강 유가 그 뒤를 쫓았으나 어떤 바위산 아래 이르자 산 위에서 통나무 와 돌이 굴러떨어져 더 나아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돌려 돌아오는데 남겨두고 온 촉군을 가볍게 쳐 흩어버린 등애가 어느새 대군을 이끌고 따라와 강유를 에워쌌다.

강유는 말 탄 군사를 휘몰아 간신히 위병을 뚫고 본채로 돌아갔 다. 그러나 더 싸울 힘이 없어 굳게 지키며 구원병이 오기만을 기다 렸다. 홀연 유성마가 달려와 알렸다.

“종회가 양평관을 깨뜨려 장서는 항복하고 부첨은 싸우다 죽었습니다. 이로써 한중은 적의 손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낙성 을 지키던 왕함과 한성을 지키던 장빈은 한중이 함락됐다는 말을 듣 자 성문을 열고 위에 항복했고 호제는 성도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놀란 강유는 곧 군사를 몰아 한중으로 달려갔다. 금성 태수 양흔이 강천 어귀에 군사를 벌여놓고 있었다.

강유는 성난 외침과 함께 말을 박차 양흔을 덮쳤다. 양흔은 겨우 한 합을 부딪고는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강유가 활을 꺼내 쏘았으나 연거푸 세 번이나 화살을 날려도 빗나가기만 했다. 절로 화가 나서 활을 꺾어버린 강유는 창을 꼬나들고 양흔을 뒤 쫓았다. 그때 강유가 탄 말이 헛디뎌 쓰러지며 강유를 땅에 내동댕 이쳤다. 그걸 본 양흔이 말을 되돌려 강유를 덮쳐왔다. 얼른 몸을 일 으킨 강유가 급하게 창을 내질렀다. 창은 바로 양흔이 탄 말의 머리 를 찔렀다. 그러나 뒤쫓아온 위군이 몰려들어 말에서 떨어진 양흔을 떼메고 가버렸다.

다시 말에 오른 강유가 그런 양흔을 뒤쫓으려 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등애의 군사가 밀고 들어옴을 알렸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볼 수 없는 지경에 빠진 강유는 군사를 거두었으나 한중을 되찾으 려는 뜻은 버리지 않았다. 막 군사를 내려는데 다시 급한 전갈이 들 어왔다.

“위의 옹주 자사 제갈서가 벌써 우리의 돌아갈 길을 끊어버렸습니다.”

이에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게 된 강유는 산이 험한 곳에 진채를 세우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 이제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때 부장 영수(寧隨)가 말했다.

“위병이 음평교를 끊었다 하나, 옹주에는 군사가 많지 않을 것입 니다. 장군께서 만약 공함곡에서 지름길로 옹주를 친다면 제갈서는 틀림없이 음평의 군사를 물려 옹주를 구할 것인즉, 그때 장군께서는 군사를 이끌고 교두곡을 지나 검각으로 옮기십시오. 거기서 굳게 지 키신다면 한중을 회복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강유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군사를 공함곡으로 돌려 옹주를 치러 가는 체했다.

놀란 제갈서는 제 근거지인 옹주를 지키러 달려가고 군사 한 갈 래만 남겨 음평교를 지키게 했다.

강유는 북쪽으로 삼십 리쯤 가다가 얼른 군사를 돌려 교두곡으로 되돌아갔다. 짐작대로 위군의 대부대는 옹주를 지키러 가고 얼마 되 지 않는 군사만 남아 음평교를 지키고 있었다. 강유는 가볍게 그들 을 무찌르고 진채마저 태워버렸다. 제갈서가 속은 줄 알고 되돌아왔 을 때는 이미 강유가 지나간 지 반나절이나 지난 뒤였다.

강유는 검각으로 가는 길에 요화와 장익을 만났다. 강유가 그간의 일을 묻자 장익이 대답했다.

“내시 황호가 점쟁이 노파의 말만 믿고 천자를 꼬드겨 군사를 내 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한중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스 스로 군사를 일으켜 떠났습니다만 이미 양평관은 종회에게 빼앗긴 뒤였고, 장군께서 어려움에 빠져 계시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달려오는 길입니다.”

이에 세 사람은 거느린 군사를 합쳐 적을 막기로 했다. 그때 요화가 말했다.

“지금 우리는 사면으로 적을 받고 있습니다. 양식을 나를 길이 없 으니 잠시 군사를 물려 검각을 지키고 있는 게 나을 듯합니다.” 그러나 강유는 한중을 포기하고 검각으로 물러나기가 괴로웠다.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급한 전갈이 들어왔다. “종회와 등애가 군사를 나누어 열 갈래로 쳐들어오고 있다 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강유는 장익과 요화에게 군사를 나누어 적을 막 으라 했다. 그때 요화가 다시 권했다.

“이곳 백수는 땅이 좁고 길이 여러 갈래라 싸울 곳이 못 됩니다. 물러나 검각을 지키는 게 옳을 듯합니다. 만약 검각을 잃는다면 우 리는 돌아갈 길이 끊기고 맙니다.”

이에 드디어 강유도 마음을 바꾸었다. 즉시 군사를 이끌고 검각으 로 향했다. 그런데 촉군이 거의 관 아래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북소리 피리소리가 들리고 크게 함성이 일더니 무수한 깃발이 일어 서면서 한 무리의 군사가 길을 막았다.

그때 보국대장군 동궐은 위군이 밀려온다는 소문을 듣고 군사 이 만과 더불어 검각을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흙먼지가 크게 이는 걸 보고 위군이 오는가 싶어 군사를 이끌고 관을 나왔다. 그런데 맞고 보니 자기편 강유와 장익, 요화의 군사들이었다. 동궐은 크게 기뻐 하며 그들을 관 위로 맞아들였다. 오랜만에 보는 예가 끝나자 동궐 이 통곡하며 후주와 황호의 일을 말했다. 강유가 그런 동궐을 위로 했다.

“공은 너무 상심 마시오. 이강유가 살아 있는 한 위가 촉을 삼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우선 이 검각을 굳게 지키면서 천천 히 적을 물리칠 계책을 짜봅시다.”

동궐이 그래도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말했다.

“이 관을 지켜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도에 사람이 없으니 어찌 하겠습니까? 만에 하나 그곳이 적에게 기습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모든 일은 글러지고 맙니다.”

“성도는 산이 험하고 땅이 거치니 쉽게 빼앗을 수 있는 땅이 아니 오. 너무 걱정할 것 없소.”

그렇게 서로 주고받고 있는데 군사들이 달려와 위장 제갈서가 군 사를 휘몰아 관 아래 이르렀음을 알렸다. 강유는 군사 오천을 이끌 고 위세 사납게 성을 나가 위병을 들이쳤다. 제갈서가 당해내지 못 해 수많은 인마와 물자를 잃고 몇십 리나 달아난 뒤에야 겨우 진채 를 내렸다.

그때 종회는 검각에서 이십오 리쯤 되는 곳에 군사를 머물게 하 고 있었다. 제갈서가 스스로 찾아와 죄를 빌자 성난 종회가 말했다. 

“나는 네게 음평교를 지켜 강유가 돌아갈 길을 끊으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잃었는가? 거기다가 지금은 또 내 명도 듣지 않고 멋대로 군사를 내었다가 이렇게 지고 쫓겨왔으니 용서할 수 없다.”

“강유는 꾀가 많아 거짓으로 옹주를 치려는 것처럼 하니 구하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빠져 달아나니 어찌 뒤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관 아래에서 다시 지게 될 줄은 생각하 지 못했습니다.”

제갈서가 그렇게 변명했으나 성난 종회는 그를 끌어내 목 베게했다. 감군 위관이 그런 종회를 말렸다.

“제갈서가 싸움에 진 죄가 있다고는 해도 정서도독 등애 장군의 아랫사람입니다. 함부로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자 종회가 큰 소리로 대꾸했다.

“나는 천자의 조서와 진공(公)의 명을 받들어 촉을 토벌하러 나온 사람이다. 제갈서가 아니라 등애라도 죄가 있으면 목을 벨 것 이다!”

하지만 여럿이 말리자 마지못해 목숨만은 살려주었다. 제갈서를 죄인 싣는 수레에 묶어 낙양으로 보내 사마소에게 처분을 맡겼다. 그리고 제갈서가 거느렸던 군사들은 모조리 거두어 제 밑에다 흩어 버렸다. 그 일이 등애의 귀에 들어가자 일은 커졌다.

“나는 종회 제놈과 벼슬이 같을 뿐만 아니라 오래 변방을 지키며 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놈이 감히 스스로를 높여 내게 함부 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이냐!”

등애는 그렇게 소리친 뒤 아들 등의 간곡한 말림에도 불구하고 종회를 만나러 갔다.

종회는 등애가 왔다는 말을 듣고 곁에 두고 부리는 이에게 물었다. “등애가 군사를 얼마나 거느렸더냐?”

“여남은 기뿐이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알려주자 종회는 즉시 자신의 장막 안팎에 수백 명의 무사를 줄지어 세웠다. 오래잖아 등애가 말에서 내려 종회를 보러 들어왔다. 예를 마치고 보니 무사들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어 기가죽었다. 성난 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고 떠보는 말부터 했다.

“장군이 한중을 얻게 된 것은 이 조정의 크나큰 행운이오. 이제는 어서 계책을 정해 검각을 취하는 게 좋을 듯하오.”

“장군의 밝은 살피심으로는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습니까?”

종회가 짐짓 겸손한 척 물었다. 등애는 자신이 무능하다는 핑계로 세 번이나 답을 피했다. 그래도 종회가 부득부득 물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어리석은 마음으로 헤아리기에는,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음 평 샛길을 따라 한중 덕양정으로 나간 뒤 기병(兵)을 써서 성도를 치면 강유는 놀라 구하러 달려올 것이외다. 그때 장군이 그 빈곳을 틈타 검각을 빼앗으면 큰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종회는 몹시 기뻐했다.

“장군의 그 계책이 참으로 신묘합니다. 그럼 먼저 군사를 이끌고 떠나십시오. 나는 여기서 이겼다는 소식이나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두 번 묻는 법도 없이 등애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이에 뜻이 맞은 두 사람은 마음에 없던 술까지 마시고 헤어졌다. 자신의 장막으로 돌아간 종회는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빈정거렸다. “사람들은 등애가 유능하다고 하지만, 오늘 보니 보잘것없는 재주 로구나!”

“어째서 그렇습니까?”

여럿이 그렇게 까닭을 묻자 종회가 자신에 차 말했다.

“음평 샛길은 산이 높고 고개가 험해 촉군 백여 명만 그 요긴한 곳을 지키면서 돌아갈 길을 끊는다면 등애의 군사는 모두 굶어 죽고말 것이다. 나는 큰길로 떳떳하게 가겠다. 촉 땅을 쳐부수지 못할까

봐 걱정할 게 무엇이냐?”

그러면서 구름사다리와 돌을 쏘아 부치는 시렁 [砲架]를 걸고 검각관을 치기 시작했다.

한편 종회와 작별하고 그 진채 문을 나서 말에 오른 등애는 따르 는 군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종회가 나를 어떻게 대하더냐?”

“말이나 표정으로 보아서는 장군의 말씀을 전혀 그럴듯하게 여기 지 않으면서도 입으로만 마지못해 따르는 듯했습니다.”

물음을 받은 군사가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자 등애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내가 성도를 빼앗지 못할 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반드 시 빼앗고 말 것이다!”

등애가 좋은 기색으로 자신의 영채로 돌아가자 사찬과 등을 비 롯한 여러 장수들이 물었다.

“오늘 종진서(西, 진서대장군)와 무슨 좋은 의논이 있었습니까?”

“나는 참마음을 밝혔는데 저는 나를 보잘것없는 재주로 여기더구 나. 저는 지금 한중을 얻은 것을 무슨 큰 공이나 세운 줄로 알지만 내가 강유를 답중에 묶어두지 않았다면 제까짓 게 무슨 수로 그 같 은 공을 세울 수 있었겠느냐? 게다가 이제 내가 성도를 우려빼면 한 중을 얻은 것보다 훨씬 큰 공이 될 것이다.”

그러고는 그날 밤으로 진채를 뽑아 음평 샛길을 향해 나아갔다. 검각에서 칠백 리쯤 떨어진 곳에 진채를 내린 등애는 먼저 사마소에게 글을 올려 성도를 치러 가는 걸 알리는 한편 장수들을 불러 새삼 다짐을 받았다.

“나는 지금 촉의 비어 있는 곳을 지나 성도를 치러 간다. 너희들 과 함께 길이 잊혀지지 않을 공을 세우러 가는 길인 바, 너희들도 그 런 나를 기꺼이 따라주겠느냐?”

그러자 모든 장수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군령을 받들어 만 번 죽더라도 마다하지 않고 따르겠습니다.”

이에 등애는 먼저 아들 등충에게 영을 내렸다.

“너는 오천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되, 몸에 갑옷을 입히지 말고 도 끼와 정만 들려 데리고 가라 가다가 길이 험하면 바위를 깨뜨리고 골짜기가 있으면 다리를 놓아 뒤따르는 군사들이 지나기에 어려움 이 없게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삼만 군사를 가려 뽑은 다음 마른 양식과 밧줄을 준 비하게 하여 등충을 뒤따라 갔다. 그 나아가는 방법도 신중해서 백 리마다 진채를 세우고 삼천 명씩 머물게 하는 식이었다.

그해 시월 음평을 떠난 등애의 군사는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험 한 골짜기 사이를 스무 날에 걸쳐 칠백 리나 갔지만 사람은 전혀 만 날 수가 없었다. 그사이 백 리마다 영채를 세우고 사람을 남겨 등애 곁에 남아 있는 인마는 이천으로 줄어 있었다. 그러나 등애는 군사 가 적은 걸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 마천령(摩天嶺) 이란 고개 앞에 이르렀다. 높을 뿐만 아니라 말을 타고는 아무래도 넘기 어려운 고개였다.

이에 등애는 말을 버리고 군사들과 함께 기어올랐다. 고개 위에 이르니 먼저 떠난 아들 등충이 길을 뚫고 있는데, 군사들이 일하다

말고 울고 있었다. 등애가 까닭을 묻자 아들 등이 까닭을 밝혔다. 

“이 고개 서쪽은 모두 높은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바위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끌로 파고 정으로 쪼아도 헛되이 힘만 들 뿐 길을 뚫을 수가 없어 모두 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군사가 여기까지 이미 칠백 리나 왔다. 이제 머지않아 강유(江油)땅에 이르게 되는데 어찌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느냐?”

등애는 그렇게 대꾸하고 곧 장졸들을 불러 소리쳤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겠는가? 이 제 여기서 공을 이루면 부귀와 영화는 우리 것이다. 나와 함께 힘써 공을 이뤄보지 않겠느냐?”

그러자 여럿이 입을 모아 다짐했다.

“장군께서 하라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이에 등애는 먼저 군사들이 가지고 있던 군기(軍器)며 양식을 모 두 골짜기 아래로 던지게 했다. 그리고 이어 스스로 두꺼운 담요로 몸을 싼 채 골짜기 아래로 뛰어내렸다. 부장(副將)들도 담요가 있는 자는 등애를 따라 했고, 없는 자는 밧줄을 허리에 묶어 나뭇가지를 휘어잡으며 벼랑을 내려섰다.

그렇게 마천령을 넘은 등애와 그가 이끈 이천 군사 및 먼저 등충 이 데리고 왔던 오천 군사는 골짜기 바닥에 이르자 다시 갑옷을 두 르고 병기를 찾아 쥐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문득 길가에 비석 하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승상 ‘제갈무후 가 썼노라’라는 제자(題)밑에는 이런 글귀가 보였다.

두 불이 처음 일어날 때 이곳을 넘는 사람이 있다 二火初興有人越此

두 선비가 재주를 다투나 오래잖아 절로 죽으리라 二士爭衝不久自死

그걸 본 등애는 깜짝 놀랐다. 두 불이 일어난 첫 해란 염흥(興) 원년인 그해를 이름이요, 이사(二)는 자신과 종회를 가리키고 있 음에 분명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등애의 놀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 다. 얼마 가지 않아 비어 있는 영채가 하나 보여 알아보니 대답은 이 랬다.

“듣기로 제갈무후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이 영채에다 이천 군사 를 두어 험한 길목을 지키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후주(後) 유선 이 여기 있던 군사를 거두어버려 지금은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등애로서는 다시 간담이 서늘한 소리였다. 촉의 후주가 어리석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장수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다짐을 받았다. 

“우리는 나아갈 수는 있으나 돌아갈 길은 없다. 앞에 있는 강유성 은 양식이 넉넉히 마련돼 있는 곳이니 너희들은 나아가면 살 것이요, 물러나면 죽을 뿐이다. 힘을 다해 성을 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장수들이 이번에도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서 한번 죽기로 싸워보겠습니다!”

이에 힘을 얻은 등애는 말 한 마리 없는 군사를 이끌고 밤길을 달려 유성으로 밀고 들었다.

그때 강유성을 지키던 촉의 장수는 마막(馬邈)이란 자였다. 동천을 이미 잃었다는 소리를 들어 방비를 하고는 있었으나, 큰길이 뚫린 쪽으로만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것도 강유가 검각을 굳게 지키 고 있음을 믿는 터라 그리 엄중하지도 못한 방비였다.

그날도 군사를 조련하는 시늉만 내고 집으로 돌아온 마막은 아내 이씨(李氏)와 화롯가에 앉아 마음 느긋하게 술을 마셨다. 아내가 걱 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듣기로 국경 쪽의 형세가 매우 위급하다 하더이다. 장군은 조금 도 걱정하는 빛이 없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나라의 큰일은 강백약伯)이 알아서 할 터인데 나 같은 게 무에 걱정할 게 있소?”

마막이 그렇게 대꾸하자 그 아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비록 일이 그렇다 하더라도 장군이 이 성을 지키는 것 또한 무겁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막은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

“천자가 내시 황호의 말만 믿고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니 내가 헤 아리기에 화가 머지않은 듯싶소. 위군이 이곳에 이른다면 항복하는 것이 상책이 될 것이니 무엇 때문에 걱정하고 있겠소?”

그러자 그의 아내가 성난 얼굴로 일어서더니 마막의 낮에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당신은 사내가 되어 그렇게 불충한 마음을 품고서도 몸을 굽혀 나라의 벼슬과 봉록을 받아먹었단 말이오? 내 이제 무슨 낯으로 당 신같은 사람과 마주 보며 살 수 있겠소!”

아무리 여자라 하나 그 말이 그르지 않으니 마막에게 대꾸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무안해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집안 사람이 뛰어들어와 알렸다.

“위나라 장수 등애가 어느 길로 왔는지 이천의 군사를 이끌고 성 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놀란 마막은 황망히 성을 나가 등애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등애를 맞아들여 당 위에 앉힌 뒤 그 아래 엎드려 울며 말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항복할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제 성안 백성 들과 거느린 군사들 모두를 불러 장군께 항복드리게 하겠습니다.” 

이에 등애는 그 항복을 받아들이고 강유의 군사들을 거두어 자신 이 거느린 뒤 마막을 길잡이[嚮導官]로 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마막 의 부인이 스스로 목매 죽었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등애가 까닭을 묻자 마막이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등애가 그 부인의 밝고 어짊 에 감동하여 후하게 장례 지내주게 하는 한편 스스로 가서 술잔을 올렸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마막의 부인 이씨를 기렸다.

후주가 어두워 한 왕실 기우니 後主昏迷漢祚顚

하늘이 등애 보내 서천을 치게 했네 불쌍하다, 天使鄧艾取西川

파촉의 여러 이름난 장수들 可憐巴蜀多名將

강유 땅 이씨에게도 미치지 못했네 不及江油李氏賢

강유성을 힘들이지 않고 차지한 등애는 비로소 음평 샛길에 남겨 둔 군사를 모두 그리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시각을 지체함이 없이 그다음 부성으로 쳐들어갔다.

부성도 강유성이나 비슷했다. 등애가 갑자기 군사를 몰아 에워싸 자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해버렸다. 두 성이 잇달아 떨어지자 그 급한 소식은 후주의 귀에도 들어갔다. 놀란 후주가 황호를 불러 물었다.

“위병이 쳐들어왔다니 어찌해야 되겠는가?”

“결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잘못 전해진 것이겠지요. 귀신 과 사람이 아울러 폐하를 그릇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후주는 이번에는 황호의 말조차 미덥지 않았다. 전에 앞날 을 좋게 말해준 적이 있는 점쟁이 노파를 찾게 했으나 그녀는 어디 로 갔는지 자취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사이 멀고 가까운 곳에서 위급을 알리는 글이 마치 눈발 흩날 리듯 조정으로 날아들었다. 급한 전령들도 잇달아 뛰어들었다.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후주는 벼슬아치들을 모조리 불러모으고 계책을 물었다.

모든 벼슬아치들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극정이 나와서 말했다.

“일이 매우 급하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무후의 아드님을 불러 적을 물리칠 계책을 의논해보도록 하십시오.”

원래 공명에게는 제갈첨(諸葛瞻)이란 아들이 있었는데 자를 사원 (思遠)이라 했다. 남양의 은사 황승언의 딸 황씨 부인이 낳은 아들이 었다. 황씨 부인은 모습이 비록 못생겼으나 재주가 뛰어나 공명은 그 재주 때문에 그녀를 맞았다고 한다.

제갈첨은 그런 부모의 피를 받아 어렸을 적부터 총명했다. 후주는 그를 사위로 맞아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삼았는데 뒷날에는 무후의 벼슬까지 이었다. 그래서 경요 사년에는 행군호위장군이 되었으나 그때는 황호가 한창 나랏일을 농탕질 치고 있을 때라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후주는 긍정의 말을 들어 그런 제갈첨을 불러들였다. 사신 셋을 거듭 보내 부른 뒤에야 제갈첨은 후주 앞에 나타났다. 그를 잡고 후 주가 울며 말했다.

“등애의 군사가 벌써 부성에 이르러 성도가 위태롭게 되었소. 경 은 돌아가신 무후의 정을 보아서라도 짐을 살려주시오!”

그러자 제갈첨 역시 울며 아뢰었다.

“신 부자는 선제의 두터운 은덕을 입었고 폐하께서도 지극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비록 간과 뇌를 땅바닥에 쏟는다 하더라도 나라의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성도에 있는 모든 군사를 일으켜 신에게 딸려주십시오. 신은 그들과 더불어 한번 죽기로 싸워 결판을 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주는 곧 성도의 군사 칠만을 모아 제갈첨에게 주 었다. 제갈첨은 아들 제갈상(諸尙)을 선봉으로 세워 그날로 성도 를 떠났다. 제갈상은 비록 열아홉 살이었으나 병서도 두루 읽고 무 예에도 능해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한편 등애는 마막으로부터 서천의 지리를 그려둔 도본 한 권을 얻었다. 거기에는 부성에서 성도까지의 백육십 리 사이에 있는 산과 내와 길이며 지형의 높낮이와 험하고 거침이 뚜렷이 나와 있었다.

그 도본을 살피던 등애가 문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이 부성만을 지키고 있는 동안 적병이 저 앞산을 차지해 버리면 어찌 공을 이룰 수 있겠는가? 꾸물거려 날을 끌다가 강유의 군사들이 이르기라도 한다면 우리 군사들이 위태롭게 된다.”

그러고는 곧 사찬과 등을 불러 일렀다.

“너희들은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이 밤으로 지름길을 달려 면죽 으로 가라. 가서 촉병을 막고 있으면 나도 뒤따라가겠다. 결코 늑장 을 부려서는 아니 된다. 만약 적병들이 먼저 험하고 요긴한 곳을 차 지하게 되는 날에는 반드시 너희들을 목 벨 것이다.”

사찬과 등충은 군사들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거의 면죽에 이르렀 을 무렵 촉병들과 만나자, 양군은 각기 진세를 펼쳤다. 사찬과 등충 이 말에 올라 문기 아래로 나가보니 촉병들은 팔괘진(八卦)를 펼 쳐놓고 있었다.

한차례 요란한 북소리가 울리더니 촉군의 문기가 열리면서 수십 명장수들이 네 바퀴 달린 수레 한 대를 밀고 나왔다. 수레 위에는 윤건에 깃털 부채 들고 학창의를 입은 사람이 단정히 앉아 있었고, 그 머리 위에 펄럭이는 누른 깃발에는 ‘한 승상 제갈무후라 씌어 있 었다.

사찬과 등충은 놀란 나머지 온몸에 진땀이 흘렀다. 저도 모르게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공명이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 이제 우리는 끝장이다!”

그러고는 급히 군사를 돌리려 했다. 기세를 얻은 병들이 그런 위군을 덮쳐 이십 리나 뒤쫓았다. 그때 마침 등애가 나타나 쫓기는 위군을 구하니 병도 쫓기를 그만두었다 양군이 각기 군사를 물린 뒤 등애가 사찬과 등충을 장막으로 불러 꾸짖었다.

“너희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달아났다. 어찌 된 까닭이냐?”

“촉군 진중에서 제갈공명이 군을 이끌고 있는 걸 보고 급히 군사 를 물렸습니다.”

등충이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등애가 성난 소리로 꾸짖었다.

“제갈공명이 되살아났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게 무엇이냐? 너희들 은 가볍게 군사를 물리다 싸움에 졌으니 군법에 따라 목을 베겠다!” 

여러 장수들이 애써 말려 등애의 노여움을 거두게 했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내막은 이랬다.

“공명의 아들 제갈첨이 대장이요, 제갈첨의 아들 제갈상이 선봉이 었습니다. 수레 위에 앉은 것은 나무로 깎은 공명의 유상(遺像)이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등애는 등충과 사찬을 불러 엄하게 말했다. 

“이기느냐 지느냐는 이 한판 싸움에 달렸다. 너희들이 이번에도 이기지 못한다면 반드시 목을 베겠다!”

이에 사찬과 등충은 다시 일만의 군사를 이끌고 싸우러 나갔다. 이번에는 제갈상이 홀로 뛰쳐나오더니 창 한 자루로 마음껏 용맹을 펼쳐 두 사람을 물리쳤다. 그런 다음 좌우의 군사를 휘몰아 위군 진 지를 좌충우돌하며 짓밟기를 수십 번이나 거듭했다.

그렇게 되니 위군은 크게 몰릴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는 수를 헤 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고, 사찬과 등충도 상처를 입은 채 달아났다.

제갈첨이 군사를 휘몰아 이십 여리나 위병을 뒤쫓으며 죽였다.

무참하게 지고 만 사찬과 등충은 등애를 찾아가 죄를 빌었다. 두 사람이 몹시 다쳐 등애도 차마 죄를 물을 수 없었던지 그들을 꾸짖 어 물리치고 장수들을 불러모았다.

“촉의 제갈첨이 아비의 뜻을 잘 이어받아 두 차례나 우리 군사 만 여 명을 죽였다. 만약 빨리 그를 쳐부수지 못한다면 뒷날 반드시 큰 화가 될 것이다!”

그러자 감군 구본(本)이 나서서 말했다.

“어찌하여 글을 보내 달래보지 않으십니까?”

등애도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 여겼다. 곧 글 한 통을 닦아 사자에 게 주어 촉군 영채로 보냈다. 제갈첨이 열어보니 그 내용은 대강 이 러했다.


‘정서장군 등애는 행도호위장군 제갈사원(思遠, 제갈첨의 자) 휘하 에 글을 드리오. 가만히 살피건대, 근래의 어질고 재주 있는 이로 공 의 선친 만한 이가 없었소. 지난날 초려를 나설 때부터 이미 천하가 셋으로 나뉠 것임을 아셨고 형주와 익주를 평정하여 마침내 패업을 이룩하셨으니 고금을 통틀어도 따를 만한 이가 드물 것이오. 그 후 여섯 번이나 기산으로 나오셨으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신 것은 지 모나 군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천명이었소. 지금 촉은 후주가 나약 하여 왕기는 이미 다 되었소. 이 등애는 천자의 명을 받고 촉을 쳐서 이미 많은 땅을 점령한 터라, 성도가 무너지는 것이 아침저녁의 일 이 되었는데 어찌 공은 천명과 인심에 순순히 따르지 않으시오. 만약 의를 짚어 귀순한다면 이 등애는 우리 폐하께 상주하여 공을 낭야왕으로 삼아 조종을 빛낼 수 있게 하겠소. 결코 빈말이 아니니 아 무쪼록 밝게 살펴주시오.’


그 글을 읽은 제갈첨은 크게 노했다. 편지를 발기발기 찢어버린 뒤 사자를 선 채로 목 베게 했다. 그리고 그 목을 등애에게 돌려보내 자신의 굳은 뜻을 밝혔다.

성난 등애는 곧 군사를 내어 제갈첨과 싸우려 했다. 구본이 그런 등애를 말렸다.

“장군께서는 가볍게 나아가셔서는 아니 됩니다. 마땅히 적이 생각 하지 못한 군사奇兵]를 내어 이기셔야 할 것입니다.”

성난 중에도 등애는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천수 태수 왕기와 농 서태수 견홍을 불러 뒤편에 군사를 매복시킨 다음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진채를 나갔다.

때마침 싸움을 걸어볼까 하던 제갈첨은 등애가 스스로 군사를 이 끌고 나왔다는 말을 듣자 바로 위군을 덮쳐갔다. 등애는 제대로 싸 워보지도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기세가 오른 제갈첨은 함부로 군 사를 휘몰아 그런 위군을 뒤쫓았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위의 복병이 양편에서 밀려 나왔다. 거기 다가 등애가 되돌아서서 치고 드니 촉군은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한바탕 크게 지고 면죽으로 물러났다. 등애는 그런 제갈첨을 뒤쫓아 면죽성을 철통같이 에워싸버렸다.

그렇게 되자 성도에 남은 군사를 모조리 긁어 나온 제갈첨은 급했다. 팽화(和)란 장수에게 글을 주어 오주 손휴에게 보내 구원을 청했다. 손휴는 그냥 볼 수 없는 일이라 여겨 곧 구원병을 냈다. 노 장 정봉을 장수로 삼고 정봉(丁)과 손이(孫異)는 부장으로 삼아 오 만 군사를 이끌고 촉을 구하게 했다. 정봉(丁奉)은 부장 정봉과 손이 에게 이만 군사를 거느려 면중으로 나아가게 하고 스스로는 삼만 군 사와 더불어 수춘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제갈첨은 구원병이 오기를 지그시 기다리지 못했다. 구원 병이 얼른 이르지 않자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오래 지키기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다.”

그러고는 아들 제갈상과 장준에게 성을 지키라 한 뒤 스스로 갑 옷 입고 성을 나갔다.

등애는 제갈첨이 성문을 크게 열고 쳐나오자 얼른 군사를 물리게 했다. 복병을 감추고 쓰는 계책이었으나 제갈첨은 다시 걸려들었다. 힘을 다해 군사를 휘몰아 위군을 뒤쫓았다. 그런데 얼마쯤이나 뒤쫓 았을까, 갑자기 한소리 포향이 들리더니 사방에서 위군이 쏟아져 나 왔다.

제갈첨은 거꾸로 위군에게 에워싸여 고단한 신세가 되었으나 조 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군사를 휘몰아 좌충우돌하니 잠깐 동안에 죽은 위병이 수백 명이 넘었다. 등애는 제갈첨이 굳세게 저항하자 사로잡으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숨겨두었던 군사들에게 활을 쏘게 하니 제갈첨은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맞고 말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있는 힘을 다했다. 마땅히 죽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리라!” 

제갈첨은 그렇게 외치며 칼을 뽑아 스스로의 목을 찔렀다.

성 위에서 아버지가 죽는 광경을 본 제갈상은 참지 못했다. 불길이 이는 눈으로 갑주를 걸치고 말에 올랐다. 장준이 그런 제갈상을 말렸다.

“젊은 장군. 가볍게 나서서는 아니 되오!”

제갈상이 긴 탄식과 함께 외쳤다.

“우리 부자와 조손(祖孫)은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소. 이제 아 버님께서 이미 적의 손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살아 무얼 하겠소!” 

그러고는 말을 채찍질해 뛰어나가 싸움터에서 죽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제갈첨과 제갈상 부자를 기렸다.

충신의 꾀함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不是忠信獨少謀

푸른 하늘이 촉한을 끊었음이네 蒼天有意絶炎劉

그해 제갈량의 훌륭한 아들손자 當年諸葛留嘉胤

절의는 참으로 무후를 이을 만했네 節義眞堪繼武侯

등애는 제갈 부자의 죽음을 의롭게 여겨 그 시체를 거둬 함께 묻 어주었다. 그리고 힘을 다해 면죽성을 공격하니, 장준, 황숭, 이구 세 사람은 힘을 다해 싸웠으나, 병의 수는 적고 세력은 외로워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후주 유선은 등애가 면죽성을 빼앗고 제갈첨 부자가 싸움에 져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몹시 놀랐다. 급히 여러 벼슬아치들을 궁궐로 불러들여 의논했다. 곁에서 모시는 신하 한 사람이 아뢰었다.

“성 밖의 백성들은 늙은이와 어린이를 이끌고 각기 목숨을 건지려고 달아나고 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천지를 흔드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후주는 더 한층 놀라고 두려워 어찌할 줄 몰랐다. 거기다 가위병들이 벌써 성 아래로 밀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겁먹 은 벼슬아치들이 입을 모아 전했다.

“군사는 힘이 없고 장수는 적으니 적과 맞설 수가 없습니다. 성도 를 버리고 남중칠군(南中七郡)으로 달아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곳 은 땅이 험준해 지키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만병의 힘을 빌려 다시 성도를 회복할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광록대부 초주가 나서서 말했다.

“그건 아니 되오. 남만은 이미 오래전에 우리에게 반역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혜택을 베푼 것도 없소. 만약 그곳으로 갔 다가는 반드시 큰 화를 당할 것이오.”

“우리 서촉과 동오는 동맹을 한 나라입니다. 이제 일이 급하니 차 라리 그리로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초주의 말에 찔끔한 벼슬아치들이 다시 그런 의논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초주는 이번에도 머리를 가로젓고 나섰다.

“그것도 아니 되오. 옛날부터 남의 나라에 의지했다가 임금 자리 로 되돌아간 임금은 없었소이다. 또 신이 헤아리기에는 위는 오를 삼킬 수 있어도 오가 위를 쳐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위가 오를 쳐부수는 날에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그때 다시 위에 항복하면 폐하께서는 두 번 남의 신하 노릇을 하게 되니 곧 두 번 욕을 당하는 격입니다. 오로 가지 마시고 항복한다면 바로 위에 게 항복하도록 하십시오. 위는 반드시 땅을 주어 폐하를 세울 것이니 그리하면 위로는 종묘를 지킬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보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소리였으나 이제는 그것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러나 후주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궁궐 안으로 들어가 누워 버렸다. 초주는 일이 급한 것을 보고 다시 상소를 올려 위에 항복하 기를 권했다.

마침내 후주도 항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람을 불러 항서(降 書)를 짓게 하려 할 때 홀연 한 사람이 나와 초주를 꾸짖었다. 

“살기만 주장하는 썩은 선비놈이 어찌 함부로 나라의 큰일을 말 하느냐? 예부터 이제까지 남의 나라에 항복하는 천자가 어디 있더 란 말이냐?”

후주가 그렇게 소리치는 사람을 보니 그는 다섯째 아들인 북지왕 (北地王) 유심(劉諶)이었다. 후주의 일곱 아들 중에 가장 총명하고 용기 있는 이였다. 후주가 그런 심에게 나무라듯 말했다.

“지금 모든 대신들이 다 항복하기를 주장하는데 너만 홀로 혈기 를 믿고 마다하는구나. 만약 싸워서 지면 이 성안은 그대로 피바다 가 될 것인즉, 그때는 어찌하겠느냐?”

유심이 씩씩하게 대꾸했다.

“지난날 선제께서 살아 계실 적에는 초주 같은 이는 함부로 나랏 일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되지도 않은 말로 나랏일을 논하고 있으니 온당치 못합니다. 신이 알기로 이 성도 성안에는 아직 수만의 군사가 있고, 검각에도 강유가 거느린 군사가 온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강유는 위병이 성도를 치려 한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달려와 구원할 것인데, 그때 안에서 호응해 안팎으로 위병을 친다면 반드시 큰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한낱 썩은 선비의 말만 듣고 선제께서 일으킨 기업을 가볍게 폐한단 말입니까?”

실로 옳은 소리였으나 마음 약한 후주에게는 턱없는 우김으로만 들렸다. 한번 그쪽으로 생각을 돌려보는 법도 없이 꾸짖기부터 먼저 했다.

“너 같은 어린것이 어떻게 천시(天時)를 알겠느냐?”

“만약 세력이 떨어지고 힘이 다해 화가 눈앞에 이른다면, 부자와 군신이 성을 등지고 싸우다 함께 죽어 선제의 혼령을 뵙는 것이 옳 습니다. 어찌 욕되게 항복을 한단 말입니까?”

유심이 울며 다시 그렇게 말했으나 소용없었다. 후주는 끝내 아들 의 말을 들으려 아니했다.

마침내 유심이 통곡하며 소리쳤다.

“선제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도 하루아침에 이 나라를 적에게 넘기려 하시니 나는 차라리 죽을지 언정 항복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대궐 안을 메우는 것 같았으나 후주는 군사를 불 러 아들을 쫓아내고 항복을 전하는 글을 짓게 했다.

촉의 사서시중 장소(張昭)와 부마도위 등량(鄧良), 초주 세 사람이 항서와 옥새를 받쳐들고 위진陣)으로 찾아가자 등애는 몹시 기뻐 했다. 옥새를 거둬들이고 항서를 읽은 뒤 세 사람에게 말했다.

“세 분은 어서 성안으로 돌아가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케 하시오.”

세 사람이 돌아가 후주에게 등애의 답서를 바치자 그걸 뜯어본 후주는 적이 마음이 놓였다. 한목숨 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항복뒤에도 모든 게 잘 풀릴 듯했기 때문이었다.

후주는 곧 사람을 강유에게 보내 빨리 위나라에 항복하라는 조서 를 내리고 상서랑 이호(李虎)를 등애한테 보내 서촉의 모든 문서와 장부를 바쳤다. 그때 촉의 호수(戶數)는 이십팔만이요, 인구는 남녀 를 합쳐 구십사만이었다. 창고에는 곡식 사십만 섬이 쌓여 있었고, 그밖에 금과 은이 삼천근에 비단이 이십만 필이 있었다.

후주가 항복의 예를 올리기로 잡은 날은 그해 동짓달 초하루였다. 북지왕 유심은 그 소리를 듣고 참지 못했다. 자신의 궁으로 달려가 아내 최씨에게 항복하여 더럽게 사느니보다 깨끗이 죽을 일을 의논 했다. 최씨가 남편의 뜻을 받들어 기둥에 머리를 부딪고 먼저 자결 하자, 유심은 어린 세 아들을 죽인 뒤 처자의 목을 베어 소열묘(昭 廟, 유비의 사당)로 갔다.

“신은 백년 기업을 남에게 바치는 걸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먼 저 아내와 자식을 죽여 거리낌을 없애고 이제 목숨마저 할아버님께 바칩니다. 할아버님의 혼령이 계시다면 이 손자의 마음을 굽어살피 소서!”

유심은 그렇게 아뢴 뒤에 한바탕 통곡과 함께 피눈물을 쏟으며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실로 한 나라의 왕자다운 죽음이었다. 촉 의 백성들은 그 소문을 듣자 하나같이 슬퍼해 마지않았다.

유심이 죽은 다음 날 촉은 성문을 활짝 열고 항복했다. 후주 유선 은 태자 및 아들인 여러 왕들과 모든 벼슬아치들을 거느리고 성을 나갔다. 얼굴을 가리고 스스로 몸을 묶은 뒤 관을 실은 들것을 멘 처량한 꼴로 북문 밖 십 리나 걸어가 등애에게 무릎을 꿇었다.

등애는 싸움에서뿐만 아니라 항복한 적을 거둬들이는 데도 뛰어 난 장수였다. 스스로 뛰어내려가 꿇어앉은 후주 유선을 일으켜 세우 고, 관과 들것을 불사르게 해 촉의 군신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유 선과 수레를 나란히 해서 성안으로 들어가니 그것으로 촉한은 막을 내렸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그 일을 노래했다.

위병 몇만이 서천으로 들어가자 魏兵數萬入川來

후주는 목숨 아껴 할 일마저 다 못했네. 後主偷生失自裁 

황호에 끝내 나라를 속일 뜻 있으니 黃皓終存國意

강유의 큰 재주도 부질없구나. 姜維空貧濟時才

충의 다한 선비의 마음 참으로 맵고 全忠義士心何烈

절개 지킨 왕손의 뜻 실로 슬퍼라. 守節王孫志可哀

소열황제의 나라 세움 쉽지 않았건만 昭烈經營良不易

그 공업 하루아침에 재가 되었구나. 一朝功業頓成

약한 게 백성이던가, 성도 사람들은 모두 향불을 피워 들고 등애 의 군사를 맞아들였다. 등애는 후주에게 표기장군을 내린 뒤에 나머 지 촉의 벼슬아치들에게도 그 높고 낮음에 알맞은 위(魏)의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후주를 궁궐로 돌려보내니 촉의 군신은 그저 감격할 뿐이었다.

등애는 다시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촉의 창고들을 고스란히 인수받았다. 촉의 태상 장준과 익주별가 장소에게는 서천각 고을의 군민을 달래라 일렀으며, 한편으로는 사람을 강유에게 보내 항복을 권했다. 낙양에 사람을 보내 싸움에 이긴 소식을 전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다음 등애가 손대려 한 것은 촉의 간신 황호였다. 황호가 간특 하다는 걸 들어서 잘 아는 등애는 성도가 안정되는 대로 그를 잡아 다 목 베려 했다. 그러나 황호는 금은보석으로 등애의 측근들을 매 수해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한편 태복 장현(顯)이 검각에 이르러 후주의 칙명을 전하며 항 복을 권하자 강유는 깜짝 놀라 말을 잃었다. 강유를 따르던 장수들 은 모두 그 기막힌 소식에 원한이 끓어올랐다. 이를 갈며 눈을 부릅 뜬 채 머리털을 곤두세웠다.

“우리들이 여기서 죽기로 싸우고 있는데 어째서 먼저 항복한단 말이냐!”

성난 장수들이 칼을 뽑아 돌을 찍으면서 입을 모아 그렇게 외치 고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울부짖는 소리가 수십리 저편까지 들릴 지 경이었다. 강유는 그들이 깊이 한나라를 생각하고 있음을 보고 허탈 에서 깨어나 오히려 그들을 좋은 말로 위로했다.

“장수들은 모두 너무 걱정하지 말라. 내게 한 계책이 있으니 반드 시 한실은 회복될 것이다.”

“그게 어떤 계책입니까?”

장수들이 눈물을 거두고 입을 모아 물었다. 강유는 귓속말로 그들에게 자신의 계책을 밝혔다. 듣고 난 장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평온을 되찾았다.

다음 날 강유는 검각 관 위에 두루 흰 깃발을 꽂고, 먼저 사람을 위장(魏) 종회에게 보내 항복의 뜻을 밝혔다.

강유가 저항을 끝냄으로써 촉한의 저항은 모두 끝났다. 강유에게 따로 속셈이 있었다 해도, 그로써 촉한은 선주, 후주 이대 오십 년 만에 완전히 막을 내렸다.

저 복사꽃 흐드러진 동산에서 유, 관, 장 세 사람이 형제의 의를 맺은 뒤로 꼭 팔십 년, 서기로는 262년의 일이었다. 그때 그 세 사람 이 기치를 들고, 그 기치를 따라 숱한 사람들이 피를 뿌렸던 흥한(興 漢)의 꿈은 그렇게 한 줌 재로 흩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