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15화 : 결사 [완결]

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15화 : 결사


결사

하늘 아래의 큰 흐름은 나뉘면 다시 아우러지게 되어 있다던가. 이로써 이웃나라 솥발[鼎足]처럼 나뉘어 서고, 꽃답고 빼어난 이들 구름같이 일어 다투며 치닫던 온 해[百年]는 다했다. 착한 이 모진 이 가릴 것 없이 모두 죽고, 힘센 이 여린 이며 고운 이 미운 이 또 한 모두 죽어, 이제는 한결같이 끝 모를 때의 흐름 저쪽으로 사라 졌다.

부질없을진저, 그들의 빛나는 꿈 큰 뜻 매운 얼을 추켜세움이여. 이미 그 몸이 스러진 뒤에 낯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이름이 뜻있다 한들 그 얼마이겠으랴. 그걸 위해 한 번뿐인 삶을 피로 얼룩 지우거나 모진 아픔에 시달리고, 또는 외로움과 고단함 속에 내던진 그들이 저승에서 뉘우치고 있지 않다 뉘 잘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까닭 모를레라, 그들의 어리석음이며 어두움과 못남을 뒤에 살아 깎아내리고 꾸짖음도. 누군들 하늘과 땅의 고임받는 아들딸로 태어 나, 더러운 이름 아래 죽고 업신여김 속에 되뇌어지기를 바랐으랴. 한 자투리의 땅이나 몇 닢의 돈에 그 뜻을 팔고, 끝을 날카롭게 한 쇠붙이나 무리의 힘에 눌려 남 앞에 무릎 꿇을 때, 하마 그 마음의 단근질이 없었는지 어찌 알랴 그러하되, 헛된 매달림일지라도 없음[虛無]보다는 있음[] 값지게 여겨져야 하고, 그게 우리의 좀스러움이 될지라도 가림 [選 擇]과 나눔[分別]은 뚜렷이 지켜져야 한다. 우리가 있음에 껴 있기 때문이요, 아직도 뒤를 이어 이 땅을 살아야 할 우리가 끝없이 남아 있기 때문이며, 그 삶은 어둠보다는 밝음에, 굽음보다는 곧음에 이 끌어져야 함을 우리의 지난 겪음이 일러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주어진 동안만을 모였다 흩어지는 없음으로 보기보다야 비록 있음의 빈 껍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길이 남는 이 름을 믿는 게 한결 든든하지 않겠는가. 이름이라도 기림받는 이름을 가꾸어 삶을 아득한 없음에서 건져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 런 애씀 가운데서 이 살이 []가 더욱 밝고 따뜻하고 편해지도록 서 로를 북돋우고 뒷사람을 부추기는 게 작은 대로 앎과 슬기로움을 가 진 이의 할 바가 아니겠는가.

무릇 말과 글의 쓰임은 여러 갈래이나, 이로써 이웃나라, 흘러간 때, 스러진 삶에 여러 낮 여러 밤을 친한 작은 구실로 삼으며, 아울러 옛사람의 긴 노래 한 가락으로 그 어지러운 처음과 끝을 얽어본다.

한고조 칼 빼들고 함양으로 드니 高祖提劍入咸陽

불타는 붉은 해 동쪽 바다에 뜨고, 炎炎紅日升扶桑

광무제 크게 일어 뒤를 이으니 光武龍興大統

그해 하늘 가운데 높이 솟았다. 金烏飛上天中央

슬퍼라, 헌제 천하를 물려받음이여. 哀哉獻帝紹海宇

한의해 서편 하늘에 짐이로구나 紅輪西墜咸池

하진이 꾀 없어 나라 어지럽자 何進無謀中貴亂

양주의 동탁이 조당에 자리 잡네. 凉州董卓居朝堂

왕윤이 계책 써서 역적의 무리 죽이니 王允定計誅逆黨 

이각과 곽사 다시 창칼을 드는구나. 李傕郭汜興刀槍

도적은 사방에서 개미 떼처럼 일고 四方盜賊如蟻聚

온 세상의 간특한 영웅 매처럼 나래친다. 六合奸雄皆鷹揚

손견 손책은 강남에서 일어나고, 孫孫策起江左

원소 원술은 하량에서 떨쳐 서며, 袁紹袁術興河梁

유언 부자는 파촉에 근거하고, 劉焉父子據巴蜀

유표의 군사는 형양에 머무르네. 劉表軍旅屯荊襄

장막 장로는 남정을 움키고 張邈張魯覇南鄭

마등 한수는 서량을 지키며, 馬騰韓忿守西凉

도겸 장수 공손찬도 각기 陶謙張繡公孫瓚

웅재 떨쳐 한 땅을 차지했네. 各逞雄才占一方

조조는 권세를 오로지해 승상 되더니 曹操專權居相府 

 뛰어난 인재 모아 문무로 썼다. 牢籠英俊用文武 

천자를 떨게 하고 제후를 호령하더니 威震天子令諸侯

사나운 군사 휘몰아 중원을 휩쓸었다. 總領鎭中土

누상촌 현덕은 원래가 황손, 樓桑玄德本皇孫

관우 장비와 의를 맺어 천자 돕기 원했으나 義結關張願扶主

동서로 뛰어다녀도 근거할 땅 없고 東西奔走恨無家

장수 적고 졸개 모자라니 떠돌이 신세였다. 將寡兵微作羈旅

남양 땅 세 번 찾으니 그 정 얼마나 깊은가. 南陽三顧情何深

와룡선생은 한눈에 천하의 나눔님을 알아보네. 臥龍一見分寰宇

먼저 형주 뺏고 뒤에 서천 차지하니 先取荊州後取川

패업과 임금의 길 거기 촉 땅에 있었다. 霸業王圖在天府

안됐구나, 유현덕은 삼 년 만에 죽게 되니 鳴呼三載逝升遐

백제성에서 어린 자식 당부 그 슬픔 컸으리라. 白帝託孤堪痛楚

공명은 여섯 번이나 기산으로 나가, 孔明六出祁山前

힘을 다해 천자를 도우려 했으되, 願以雙手將天補

어찌 알았으랴, 받은 목숨 거기서 끝나 何期歷到此終

긴 별 한밤중에 산그늘로 떨어지네. 長星夜半落山塢

강유 홀로 그 기력 높음만 믿고, 姜維獨憑氣力高

아홉 번 중원을 쳤으나 헛되이 애만 썼다. 九伐中原空劬勞

종회와 등애 군사를 나눠 밀고 드니 鍾會鄧艾分兵進

한실의 강산, 조씨 것이 되었네. 漢室江山盡屬曹

조비로부터 사대 조환에 이르러 不叡芳髦纔及奐

사마씨가 다시 천하를 가로챔에 司馬又將天下交

수선대 앞에는 구름과 안개 일고, 受禪臺前雲霧起

석두성 아래는 물결조차 없었다. 石頭城下無波濤

진류왕이며 귀명후 안락공 같은 이들, 陳留歸命與安樂

그 왕공 벼슬은 그런 뿌리에 나온 싹이네. 王侯公爵從根苗

어지러운 세상일 끝난 데 알 수 없고 紛紛世事無窮盡

하늘의 뜻 넓고 넓어 벗어날 수 없어라. 天數茫茫不可逃

천하 솥발처럼 셋으로 나눠 이미 한바탕 꿈인데 鼎足三分已夢

뒷사람이 슬퍼함을 핑계로 부질없이 떠드네. 後人憑弔空牢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