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9화 : 공명은 충무후(忠武侯)로 정군산에 눕고

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9화 : 공명은 충무후(忠武侯)로 정군산에 눕고


공명은 충무후(忠武侯)로 정군산에 눕고

공명이 죽던 날 밤 하늘은 시름하는 듯하고 땅도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달조차 빛을 잃은 가운데 공명의 외로운 넋은 하늘로 돌아 갔다. 강유와 양의는 공명이 죽기 전에 이른 말을 지켜 함부로 울지 도 못했다. 시킨 대로 시신을 염해 미리 정한 상자에 넣고 장졸 삼백 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그게 끝나자 다음으로 급한 것은 군사를 물리는 일이었다. 강유와 양의는 위연에게 가만히 영을 내려 뒤쫓는 적을 막게 하고, 이곳저 곳의 진채를 하나씩 하나씩 뜯어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마의도 자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날 밤 홀로 천문을 보 고 있는데, 문득 큰 별 한 개가 삐죽삐죽 붉은 빛을 뿜으며 동북쪽에 서 서남쪽으로 흘러갔다. 사마의가 눈길로 뒤따르니 그 별은 세 번이나 촉군의 영채 안에 떨어지는가 싶다가 다시 솟으며 은은한 소리까지 냈다.

사마의가 놀라우면서도 기뻐 소리쳤다.

“공명이 죽었구나!”

공명의 넋이 떨어지는 별을 하늘에 비끄러매도 사마의는 한눈에 그의 죽음을 알아보았다.

사마의는 곧 영을 내려 모든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는 촉군을 뒤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 진문을 나서려니 또다시 걱정이 되었다. 

‘공명은 육정육갑(甲)의 술법을 잘 안다. 요즈음 내가 나가 서 싸우지 않자 그 술법을 부려 자신이 죽은 체하며 나를 끌어내려 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턱없이 뒤쫓다가는 반드시 그의 계책에 떨 어지고 만다……………?’

그런 생각으로 말 머리를 돌려 진채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려 들지 않았다. 다만 하후패를 시켜 몇십 기를 이끌고 오장원으로 가 서 몰래 살펴보게 했을 따름이었다.

한편 자기 진채에서 잠을 자던 위연은 공명이 죽던 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머리에 뿔 두 개가 돋는 꿈인데 깨고 나도 매우 괴이 쩍었다. 이에 이튿날 아침 행군사마 조직이 들어오자 그를 잡고 물 었다.

“그대가 『주역』의 이치에 매우 밝다니 한 가지 묻겠소. 내가 어젯 밤 꿈을 꾸었는데 머리에 뿔 두 개가 돋는 것이었소. 그 꿈이 길한지 흉한지 알 수 없으니 그대가 한번 풀어보구려.”

그러자 조직이 한참이나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거 대단히 좋은 꿈입니다. 기린도 뿔이 있고 창룡(蒼龍)도 머리에 뿔이 있으니 이는 바로 장군께 큰 변화가 있어 용이 하늘에 오르듯 높이 되실 징조올시다.”

그 소리를 들은 위연은 몹시 기뻐했다.

“만약 공의 말처럼 된다면 그때는 한턱 크게 내겠소!”

그렇게 말하며 조금도 조직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은 그 꿈이 결코 길몽은 아니었다. 위연 앞을 물러난 조 직은 얼마 안 가 길가에서 상서 비위를 만났다. 비위는 공명의 죽음을 위연에게 알리러 가는 길이었다.

“아침 일찍 어디 갔다 오시오?”

비위가 그렇게 묻자 조직이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위문장의 영채에 갔다가 그 꿈풀이를 해주고 오는 길입니다. 그 가 말하기를 머리에 뿔 두 개가 돋는 꿈을 꾸었는데 그게 길한지 흉 한지를 알려달라 하더군요. 그 꿈이 결코 좋은 꿈이 아니었으나 바 른 대로 말했다가는 배겨나기 어려울 것 같아 기린과 창룡으로 둘러 대 좋은 걸로 풀어주었습니다.”

“그 꿈이 좋은 꿈이 아닌 줄은 어떻게 아시오?”

비위가 다시 그렇게 물었다. 조직이 가만히 일러주었다.

“뿔 각(角)자는 칼 도(刀) 밑에 쓸 용(用)이 있는 것입니다. 머리에 칼이 쓰이게 되는 게 어찌 좋은 꿈일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비위도 섬뜩한지 정색을 짓더니 문득 조직에게 당부했다. 

“공은 그 얘기가 딴 데 새나가지 않게 하시오.”

그러잖아도 위연이 어떻게 나올까를 걱정하며 가던 길이라 더욱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조직과 헤어진 비위는 얼마 뒤 위연의 영채에 이르렀다. 비위가 곁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물러가게 한 뒤 위연에게 조용히 알렸다. “간밤 삼경 무렵에 승상께서 돌아가셨소.”

그리고 놀란 위연이 무어라고 묻기 전에 다시 이었다.

“승상께서 돌아가시면서 두 번 세 번 당부하시기를, 장군은 뒤를 맡아 사마의를 막게 하고 군사를 천천히 물리되, 발상을 하지 말라 하셨소. 여기 병부가 있으니 어서 군사를 움직이도록 하시오.” 

비위가 거기까지 말하자 위연이 불쑥 물었다.

“승상이 하던 일은 누가 맡게 되는 거요?”

그 말투가 자못 거칠었으나 비위가 기죽지 않고 꼿꼿이 말했다.

“승상께서 하시던 일은 모두 양의에게 맡기셨고, 군사를 부리는 데 관한 것은 모조리 강유에게 전하셨소. 지금 이 병부는 양의로부 터 나온 영이오.”

그러자 위연이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승상은 비록 죽었으나 나는 아직 살아 있소. 양의는 한낱 장사(長 史)에 지나지 않은데 어찌 그같이 큰일을 해낼 수 있단 말이오? 그 는 그저 승상의 시신이나 모시고 서천으로 가서 장례나 잘 치르라 하시오. 나는 군사를 이끌고 사마의를 쳐 공을 이루도록 애써보겠 소. 아무리 승상의 유명이 있었다지만 어찌 그 한 사람의 말만 들어 나라의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단 말이오?”

“그래도 승상께서 돌아가시면서 남긴 말이니 우선은 그대로 따라 물러나는 게 좋겠소. 어겨서는 아니 될 것이오.”

비위가 다시 한번 공명을 내세워 그렇게 말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위연이 더욱 성을 내며 목청을 높였다.

“만약 첫 번째 기산으로 나올 때 승상이 내 계책을 따라주었으면 장안은 벌써 오래전에 우리가 차지했을 것이오. 거기다가 지금 나는 전장군에 정서대장군 남정후(南侯)의 몸이오. 어찌 한낱 장사 따위 의 뒤나 지켜주고 있으란 말이오!”

이에 비위는 하는 수 없이 좋은 말로 위연을 달랬다.

“비록 장군의 말이 옳다 해도 가볍게 움직여서는 아니 되오. 그랬 다가는 적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외다. 잠깐 기다려주시면 내 가 양의에게로 가서 그를 달래보겠소. 그리하여 양의로 하여금 병권 을 모두 장군께로 넘기게 하면 되지 않겠소?”

그러자 위연도 귀가 솔깃한지 비위의 말을 따라주었다.

그런 위연을 두고 급히 대채로 돌아간 비위는 양의를 찾아 위연 이 한 말을 모두 전해주었다. 그러나 양의는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승상께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내게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가 위 연이 딴 뜻을 품고 있다는 거였소. 이제 내가 병부를 그에게 보낸 것 도 실은 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함에 지나지 않았소. 과연 승상께서 말씀하신 대로구려. 뒤를 끊어주는 일은 강백약에게 맡기면 되니 너 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자신은 공명의 영구를 모시고 앞서 떠나면서 강유로 하여 금 뒤에 남아 추격해 오는 적을 막게 했다. 천천히 군사를 물리는 게 모두가 공명이 죽기 전에 일러준 대로였다.

한편 위연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비위가 돌아오지 않자 불쑥 의심이 났다. 마대에게 수십 기를 이끌고 가서 대채 쪽을 살펴보게 했 다. 얼마 후에 마대가 돌아와 알렸다.

“후군은 강유가 도맡아 거느리고 있고, 전군은 이미 태반이 골짜기로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위연이 불같이 성이나 소리쳤다.

“그 떠꺼머리 선비놈이 나를 속였구나! 내 반드시 그놈을 죽이고 말겠다.”

그래 놓고는 문득 마대에게 은근하게 물었다.

“공도 나를 도와주겠소?”

“저 또한 일찍부터 양의에게 품은 한이 있습니다. 장군을 도와 함께 싸우겠습니다.”

마대가 선뜻 그렇게 대답했다. 위연은 몹시 기뻐하며 얼른 진채를 거둔 뒤에 거느린 군사를 모두 이끌고 남쪽으로 달려갔다.

그 무렵 사마의가 보낸 하후패도 오장원에 이르렀다. 하후패는 거 기에 촉병이 한 사람도 없는 걸 보자 얼른 사마의에게로 돌아가 알 렸다.

“병은 이미 모두 물러가고 없었습니다.”

그제야 사마의가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공명이 정말로 죽었구나! 어서 병을 뒤쫓도록 하라!”

하후패가 오히려 그렇게 서두르는 사마의를 말렸다.

“도독께서는 가볍게 적을 뒤쫓아 나서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편장 하나쯤을 먼저 보내도록 하시지요.”

“아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내가 가야 한다.”

사마의는 전에 없이 고집을 부리며 두 아들과 함께 전군을 들어 오장원으로 달려갔다.

사마의가 이끈 위의 장졸들은 함성 소리도 드높게 촉의 영채를 덮쳤다. 정말로 촉병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사마의가 두 아들 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뒤처진 군사를 몰아 쫓아오너라. 나는 먼저 나아가겠다.” 

이에 사마소와 사마사는 뒤에 남아 남은 군사들을 내몰고 사마의 는 앞선 군사만 거느린 채 먼저 달려갔다.

사마의가 어떤 산 아래 이르니 멀지 않은 곳에 병이 보였다. 사 마의가 더욱 힘을 내 뒤쫓는데, 홀연 한 소리 포향이 들리며 산 뒤에 서 함성이 크게 울렸다. 병이 홀연 깃발을 돌려세우고 북소리를 높이며 되돌아서는 것이었다. 나무 그늘에서 드러난 중군의 큰 깃발 에 쓰인 글씨는 이러했다.

‘한승상 무향후武侯) 제갈량’

그걸 보고 깜짝 놀란 사마의는 낯빛이 싹 변했다. 잠시 아뜩했다 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 보니 중군 속에서 수십 명의 상장이 네바 퀴 수레 하나를 밀고 나오는 게 눈에 띄었다. 그 수레 위에 앉은 것 은 놀랍게도 검은 띠 두른 학창의에 윤건 쓰고 깃털부채를 든 공명 이었다.

“공명이 아직 살아 있구나! 그것도 모르고 적지 깊숙이 뛰어들었 으니 이제 정말로 그의 계책에 떨어졌다. 모두 어서 물러나라!”

놀란 사마의가 그렇게 소리치며 말고삐를 당겨 돌아서려 하는데, 등 뒤에서 강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적장은 달아나지 말라. 너는 이제 승상의 계책에 걸려들었다!”

그 소리에 위병들은 얼이 빠지고 넋이 흩어지는 듯했다. 갑옷 투 구를 벗어던지고 창칼을 내동댕이친 채 제 한목숨 건지려 달아나기 바빴다. 그 북새통에 위병은 저희끼리 밟고 밟혀 죽은 자만도 그 수 를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사마의는 그런 군사들을 돌볼 틈도 없이 뒤돌아서 내달았다. 오십 리를 넘게 달린 뒤에야 겨우 등 뒤에서 뒤쫓아오는 두 위장의 목소 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도독께서는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이제 촉병은 없습니다.” 

두 장수가 사마의의 말고삐를 잡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퍼뜩 정신

이 돌아온 사마의가 머리를 어루만지며 그들에게 물었다.

“내 머리가 붙어 있느냐?”

두 장수는 다시 한번 그런 사마의를 진정시켰다.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병은 멀리 물러갔습니다.”

그래도 사마의는 한참을 더 쉬고 난 뒤에야 마음과 몸이 제자리 를 되찾았다. 겨우 분간이 가는 눈길로 자신을 세운 두 장수를 보니 그들은 다름 아닌 하후패와 하후혜였다. 거기서 더욱 안정을 되찾은 사마의는 샛길로 빠져 대채로 돌아간 뒤 장수들을 사방에 풀어 병 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이틀도 안 돼 그곳 토박이 백성 하나가 달려 와 알렸다.

“병이 야곡으로 들 때 슬피 우는 소리가 땅을 울리고 난데없이 흰 깃발이 올랐습니다. 듣기로 강유를 뒤에 남겨 천 명의 군사와 함께 추격을 끊게 하였으며, 어제 수레 위에 있던 공명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로 깎은 상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사마의가 탄식했다.

“나는 그의 삶도 헤아리지 못하고 그의 죽음도 헤아리지 못하는구나!”

이른바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쫓았다[死明走生仲]’란 말은 그런 사마의의 낭패에서 생겨난 촉인들의 우스개였다.

사마의는 공명이 정말로 죽었음을 확신하자 다시 군사를 내어 촉 병을 뒤쫓기 시작했다. 적안파까지 이르렀으나 촉병은 이미 멀리 가 버린 뒤였다. 사마의는 별수없이 군사를 돌리며 장수들에게 말했다. 

“공명이 죽었으니 이제 우리는 베개를 높이 하고 걱정 없이 잘 수 있겠다. 이만 돌아가자.”

장졸들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사마의는 한군데 공명이 진채를 세 웠던 자리를 지나게 되었다. 앞뒤 좌우가 가지런하고 법식에 따른 진터가 다시 한번 사마의를 감탄케 했다.

“공명은 참으로 천하의 기재였다!”

사마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용히 군사를 물려 장안으로 돌아 갔다. 그리고 장수들을 나누어 중요한 길목과 험한 골짜기를 지키게 한 뒤 자신은 낙양으로 돌아갔다.

한편 공명을 대신해 촉병을 모두 거느리게 된 양의는 강유로 하 여금 뒤쫓는 적을 막게 하면서 천천히 물러났다. 그리하여 서천으로 드는 잔도 어귀에 이른 다음에야 비로소 상복으로 갈아입고 공명의 죽음을 전군에 알렸다. 군사들은 그 놀라운 소식에 땅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어떤 군사는 울다가 죽기까지 했다.

하지만 큰일은 공명의 죽음에 그치지 않았다. 병의 전대가 잔도 로 들어섰을 때 홀연 앞쪽에서 불길이 하늘 높이 솟으며 크게 함성 이 일었다. 이어 한 떼의 군마가 길을 막고 나서는데, 앞선 장수는 다름 아닌 위연이었다.

웬 군사가 앞길을 막는다는 전갈을 받은 양의는 놀라 그게 누구 의 군사인지를 알아보게 했다.

“위연이 잔도를 태워 끊고 길을 막았습니다.”

얼마 후에 살피러 갔던 군사가 돌아와 알렸다. 양의가 놀라 어쩔 줄 모르며 주위를 둘러보고 물었다.

“승상께서 살아 계실 때 이미 이 사람이 뒷날 반드시 반역하리라 는 걸 헤아리고 계셨습니다만 이제 정말로 이렇게 나올 줄 누가 알 았겠소? 우리가 돌아갈 길을 끊고 버티니 어찌했으면 좋겠소?” 

비위가 곁에 있다가 말했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폐하께 우리가 반역했다고 거짓으로 먼저 일러바친 뒤 잔도를 태워 우리가 돌아가는 걸 막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땅히 폐하께 아뢰어 위연이 반역했음을 알려야 합니다. 그 를 쳐 없애는 것은 그다음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자 강유가 비위를 거들어 말했다.

“저쪽에 샛길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차산(山)이라 합니다. 비록 산이 높고 험하지만 그럭저럭 잔도 뒤로 나아갈 수는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폐하께 표문을 올려 위연이 반역했음을 아뢰고, 다른 한편 은 군사를 차산 샛길로 몰아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 무렵 공명의 죽음은 여러 불길한 징조로 성도에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맨먼저 그걸 느낀 것은 공명에게 가장 많은 것 을 의지하고 있는 후였다. 후주는 그 며칠 까닭 모르게 침식이 불 안하고 몸이 떨리더니 드디어 한 꿈을 꾸었다. 성도의 금병산이 무 너지는 괴상한 꿈이었다.

놀라 깨어난 후주는 앉아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가 날이 밝는 대로 모든 벼슬아치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그 꿈 얘기를 하며 풀 이를 묻자 그런 일에 밝은 초주가 나와 아뢰었다.

“신이 어젯밤 천문을 보니 한 붉은 별이 뿔 같은 빛을 내뿜으며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졌습니다. 틀림없이 승상께 매우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진 듯싶습니다. 폐하께서 꿈에 금병산이 무너진 걸 보신 것도 거기 관련된 어떤 징조인 듯싶습니다.”

그 말을 듣자 후주는 더욱 걱정이 되었다. 마음 죄며 어서 소식이 있기만을 기다리는데 홀연 오장원으로 보낸 이복이 돌아왔다는 전 갈이 왔다. 후주는 급히 이복을 불러들여 공명의 소식을 물었다. 이 복이 엎드려 울며 아뢰었다.

“승상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공명이 죽기 전에 당부하던 말들을 자세히 알렸다. 그 소리를 들은 후주가 큰 소리로 울며 탄식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시는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그러다가 마침내는 슬픔과 상심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고 용상 에 쓰러졌다. 사람이 좀 모자라는 대로 공명에 대한 믿음과 정이 남 달랐던 그로서는 그럴 법도 했다. 놀란 신하들이 후주를 부축해 후궁으로 모셨다.

공명의 죽음은 또 선주의 계비(繼妃)인 오태후의 귀에도 들어갔 다. 태후 역시 그 놀랍고 슬픈 소식에 목놓아 울기를 마지않았다. 모 든 벼슬아치들도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백성들도 하나같이 눈 물을 뿌렸다.

후주는 너무도 상심이 커서 조회를 받을 기력조차 없었다. 나랏일 도 제쳐놓고 연일 슬픔에 차 지내는데 문득 위연이 급한 표문을 올 려 양의가 반역했음을 알려왔다. 신하들은 모두 깜짝 놀라 궁중으로 몰려갔다.

“위연이 표문을 올려 양의가 반역했음을 알려왔습니다.”

그 같은 신하들의 아룀을 듣자 후주 또한 슬픔 가운데서도 크게 놀랐다. 얼른 근신에게 명을 내려 위연이 올린 표문을 읽게 했다.


‘정서대장군 남정후 신 위연은 두렵고 죄스런 마음으로 머리를 조 아려 아립니다. 승상이 돌아가시자 양의가 스스로 병권을 거머쥐고 무리를 이끌어 반역을 했습니다. 승상의 영구를 빼앗아 앞세우고 적 병을 우리 땅으로 끌어들이려 하기에 신은 먼저 잔도를 태워 끊고 힘을 다해 막았습니다. 삼가 아뢰오니 밝게 헤아리옵소서.’


위연의 표문은 대략 그러했다. 읽기를 마친 후주가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위연은 매우 용맹스런 장수다. 그냥 싸워도 양의쯤은 이길 만한데 어째서 잔도를 태워 끊었단 말인가?”

오태후가 곁에 있다가 말했다.

“일찍이 선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위연은 뒷머리에 반골(反骨)이 있 다 했소. 공명이 그걸 알면서도 그를 죽이지 않고 쓰는 것은 그 용맹 이 아까워서였을 게요. 이제 그는 양의가 반역했다 하나 가볍게 믿 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양의는 문관인데도 그에게 장사의 일을 맡 긴 것은 그가 쓸 만했기 때문임에 틀림이 없소. 만약 한쪽의 말만 듣 게 되면 양의는 갈 데 없이 위로 투항해버릴 것이외다. 이 일은 마땅 히 멀리 내다보고 깊이 헤아리어 처리해서 만에 하나라도 그르침이 없어야 할 것이오.”

다른 벼슬아치들도 그 말을 옳게 들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를 분분히 의논하고 있는데 다시 근신이 알렸다.

“장사 양의가 급한 표문을 올려왔습니다.”

후주가 얼른 그 표문을 뜯어 읽게 하니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장사 유군장군綏軍將軍) 신 양의는 두렵고 죄스런 마음으로 머 리를 조아려 삼가 아룁니다. 승상께서 돌아가실 적에 큰일은 신에게 맡기시어, 있던 제도에 따라 모든 것을 처리하고 함부로 고치지 못 하게 하셨습니다. 또 위연은 뒤를 맡아 쫓아오는 적을 맞으며, 강유 는 그다음 일을 맡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위연은 승상께서 남기 신 말을 지키지 않고, 자신이 이끈 인마와 더불어 한중으로 먼저 돌 아가, 승상의 영구를 빼앗고 흉측한 일을 저지르려 합니다. 변고가 너무도 갑작스레 생긴 것이라 급히 글을 띄워 삼가 그 일부터 먼저 아룁니다.’


그걸 들은 태후가 후주를 대신해 물었다.

“이제 양의의 글이 이르렀으니 어떻게 해야 되겠소?”

“신의 어리석은 헤아림으로는 양의가 비록 성품이 지나치게 급하 고 남을 잘 싸고돌지는 못하나, 군량과 마초를 헤아리고 군기(軍機) 를 보살피는 일을 승상 아래서 오래 해왔습니다. 거기서 보인 어떤 재주 때문에 승상께서 돌아가시면서 그에게 큰일을 맡기신 듯하니 결코 반역할 사람은 아닙니다. 이에 비해 위연은 평소 공을 믿고 높 은 자리를 차지해 사람들을 모두 내려보았으나 오직 양의만은 마음 대로 되지 않아 그에게 속으로 원한을 품어온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이제 양의가 병권을 오로지하니 그에게 굽히기가 싫어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잔도를 불태워 양의가 돌아올 길을 끊고 폐하께 그를 모함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신은 양의라면 전 가솔과 노비를 걸어 그 의 옳음을 보증할 수는 있으나 위연이라면 그리하지 못하겠습니다.” 

장완이 일어나 그렇게 아뢰었다. 동윤 역시 그를 거들었다. 

“위연은 스스로 공이 높음을 자랑해 항상 마음속에 불평을 품었 으며 입으로는 원망의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었습니다. 이제껏 반역 하지 않고 지냈던 것은 다만 승상이 두려워서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승상께서 돌아가셨으니, 그 틈을 타고 난을 꾸민 게 틀림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양의는 재간이 남달라 승상이 쓰게 된 사람이 니 배반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자 후주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정말로 위연이 반역했다면 어떤 계책으로 그를 막겠는가?”

장완이 그런 후주를 안심시켰다.

“승상은 평소부터 위연을 의심해왔습니다. 반드시 양의에게 그를 잡을 계책을 남겨주었을 것입니다. 만약 양의가 믿는 게 없다면 어 떻게 잔도도 없는 야곡으로 들어설 수 있었겠습니까? 위연은 반드 시 승상께서 남기신 계책에 떨어질 것이니 폐하께서는 마음 놓고 기 다리십시오.”

그 말에 후주도 약간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리는데 오래잖아 다 시 위연이 표문을 올려왔다. 양의가 반역했다는 걸 이번에는 좀더 소상히 알리는 내용이었다. 후주가 막 그 표문을 다 읽자 양의가 또 표문을 올려 위연의 반역을 한 번 더 확인시켰다.

두 사람이 잇달아 표문을 올리며 서로 옳다고 우기니 조정은 아 무리 짐작은 가도 함부로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그때 문득 공명을 따라나갔던 비위가 돌아왔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후주가 급하게 비 위를 불러들이고 양의와 위연에 대해 아는 걸 물었다. 비위가 위연 이 반역했음을 자세히 아뢰었다.

“만약 일이 그러하다면 동윤에게 절(節)을 주어 좋은 말로 위연을 달래보라.”

후주가 비로소 결단을 내려 말했다. 이에 동윤은 조서를 받들고 위연을 찾아 떠났다.

그 무렵 위연은 잔도를 불질러 끊은 뒤 남곡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군사들을 풀어 험한 길목을 틀어막고, 스스로 좋은 계책을 썼다고 흐뭇해하는데 뜻밖의 소식이 들어왔다.

“양의와 강유가 밤중에 샛길을 타고 남곡 뒤편에 이르렀습니다.”

양의는 한중을 잃게 될까 두려워 먼저 하평何)에게 군사 삼천 명을 주어 보내고, 자신은 강유와 함께 공명의 영구를 밀며 뒤따라 한중으로 들어갔다.

남곡 뒤편에 이른 것은 바로 그 하평이었다. 하평이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게 하며 군사들을 몰아 나가자 정탐하던 위연의 군사가 나는 듯 달려가 다시 알렸다.

“차산샛길로 나온 양의의 선봉 하평이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위연은 몹시 성이 났다. 얼른 갑옷을 입고 말에 오 르더니 군사들을 휘몰아 맞싸우러 달려 나갔다.

양군이 둥그렇게 마주치자 하평이 기세 좋게 달려 나와 꾸짖었다. “나라를 거스른 역적 위연은 어디 있느냐?”

위연 또한 지지 않고 맞받았다.

“네가 양의를 도와 역적질을 해놓고 어찌 감히 나를 욕하느냐?” 

“거짓말 마라! 승상께서 돌아가셔서 아직 그 몸이 채 식기도 전에 역적질을 시작해놓고 무슨 소리냐?”

하평이 그렇게 맞받아놓고 다시 채찍을 들어 위연을 따르는 군사 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모두 서천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서천에 부모와 처자, 형제와 벗이 있다. 승상께서 살아 계실 때 결코 너희들을 박하게 대 접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어찌해 역적질을 돕느냐? 각기 저 역적 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상과 벼슬을 기다리도록 하라.”

그 말을 들은 군사들은 한 소리 큰 대답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태반이 흩어져버렸다. 그걸 보자 눈이 뒤집힌 위연은 칼을 휘두르며 말을 박차 곧바로 하평을 덮쳤다. 하평도 지지 않고 창을 내지르며맞섰다.

한 서너 합쯤 어울렸을까, 하평이 짐짓 힘에 부친 듯 달아나기 시 작했다. 기세가 오른 위연이 그런 하평을 뒤쫓았다. 하지만 하평의 군사들이 활과 쇠뇌를 비오듯 쏘아 붙이니 뒤쫓을 수가 없었다. 하 는 수 없이 말 머리를 돌려 돌아오는데 자기편 군사들이 분분히 흩 어져 달아나는 게 보였다.

위연은 분이 꼭뒤까지 올랐다. 말을 박차 그들을 뒤쫓으며 여러 명을 베었으나 흩어지는 그들을 붙들어둘 수는 없었다. 움직이지 않 고 있는 것은 다만 마대가 이끈 삼백 명뿐이었다. 위연이 감격해서 마대에게 말했다.

“공만이 참으로 나를 도와주는구려. 일이 뜻대로 된 뒤라도 결코 공을 저버리지는 않겠소!”

그러고는 마대와 함께 하평을 뒤쫓았다.

하평은 군사를 몰아 나는 듯 달아났다. 끝내 하평을 따라잡지 못한 위연은 남은 군사를 수습한 뒤 마대에게 물었다.

“우리 위로 투항하는 게 어떻겠소?”

마대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장군의 말씀은 슬기롭지 못합니다. 대장부로 태어나 스스로 패업 을 일으켜보려 하지는 않고 어찌 가벼이 남에게 무릎을 꿇으려 하십 니까? 장군은 지략과 용맹을 아울러 갖추신 분인데 동천 서천의 어 느 누가 감히 장군께 맞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장군과 함께 먼저 한중을 차지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런 다음 서천으로 들어가면 양천을 얻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들어보니 그럴듯한 말이라 위연은 곧 마음을 바꾸었다. 기꺼이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군사를 휘몰아 남정으로 달려갔다.

그때 강유와 양의는 남정성 안에 있었다. 위연과 마대가 오는 걸 먼저 본 것은 강유였다. 성벽 위에서 보니 위연과 마대가 무용과 위 세를 뽐내면서 벌떼처럼 군사를 몰아오고 있었다. 강유가 급히 영 을 내렸다.

“어서 빨리 적교를 달아올려라.”

그러자 곧 성 아래 이른 위연이 성 위를 올려보며 소리쳤다.

“내가 왔다. 어서 항복하라!”

놀란 강유가 양의를 불러오게 해 물었다.

“위연이 용맹하기 그지없는 데다 마대가 곁에서 돕고 있으니 비 록 군사가 적어도 얕볼 수 없소이다. 무슨 계책으로 물리치겠소?”

양의가 별로 걱정하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승상께서 돌아가실 때 비단주머니를 하나 내주시면서 말씀하셨 소. 위연과 싸우게 되어 말 위에서 마주 바라보게 되거든 그때 열어 보라고. 이제 바로 그걸 열어볼 때인 것 같소.”

그리고 비단주머니를 꺼내 열었다. 주머니 안에서는 글 한 통이 봉해져 있었는데 겉봉에는 ‘위연과 맞싸우게 되었을 때 말 위에서 열어보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강유가 기뻐해 마지않으며 말했다. “이미 승상께서 미리 짜둔 계책이 있다면 장사가 이기게 될 것은 뻔하오. 나는 먼저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 진세를 펼치리다. 공도 어서 뒤따라 나오시오.”

그런 다음 갑옷 입고 말에 올라 창을 꼈다. 강유는 삼천 군사와 더불어 성문을 열고 쏟아져 나갔다. 북과 함성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 는 가운데 금세 한 진세가 벌어졌다.

창을 끼고 문기 아래로 말을 몰아 나아간 강유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역적 위연은 듣거라. 승상께서 일찍이 너를 낮춰보지 않으셨는데, 이제 너는 어찌하여 나라를 배반했느냐?”

위연이 칼을 비껴들고 나와 맞받았다.

“백약은 이 일에 관여하지 말고 어서 양의나 나오라고 하라!”

그때 문기 뒤에서 공명이 남긴 글을 열어본 양의가 기쁨을 감추 지 못하며 가벼운 차림으로 말을 달려 나왔다. 군사들 앞에 나선 양 의가 손가락으로 위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승상께서 살아 계실 적에 네가 머지않아 반역할 것이라고 하시 며 내게 그걸 준비케 하시더니 이제 정말로 그렇게 되었구나. 너는 말 위에서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는가?’라고 큰 소리로 세 번 외칠 수 있겠느냐? 네가 참으로 대장부라면 어서 그렇게 해보아라. 그러 면 나는 한중에 있는 성들을 모조리 너에게 바쳐 올리겠다.”

말투에 웃음기까지 섞인 게 꼭 사람을 놀리는 것 같았다. 위연이 껄껄 웃어 그런 양의의 기를 눌러주며 말했다.

“양의, 이 하찮은 것아, 내 말을 잘 들어라. 공명이 살아 있을 때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두려움이 있었다만, 그가 죽은 지금 천하의 그 누가 내게 맞설 수 있단 말이냐? 세 번이 아니라 삼만 번을 소리친다 한들 어려울 게 무엇 있겠느냐?”

그리고 말 위에서 칼을 든 채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감히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

그런데 미처 첫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위연의 등 뒤에서 한 사람이 나서면서 그 말을 받았다.

“내가 너를 죽이겠다!”

말뿐이 아니었다. 그의 손이 올려지는가 싶더니 칼날이 번쩍, 하 는 곳에 위연의 목이 말 아래로 떨어졌다. 모두 깜짝 놀라 그 사람을 바라보니 그는 다름 아닌 마대였다.

마대는 공명이 죽을 때에 미리 밀계를 주어 위연에게 딸린 사람 이었다. 가장 가까운 체 위연 곁에 붙어다니다가 위연이 그런 소리 를 지를 때를 기다려 갑작스레 뒤에서 목을 베게 한 것이었다. 양의 가 그날 위연을 꼬드겨 그런 소리를 지르게 한 것은 비단주머니 안 에 씌어 있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래 놓고 나니 정말로 힘들이지 않 고 위연의 목을 얻게 되었다. 뒷사람이 그 일을 노래했다.

공명은 미리 위연을 꿰뚫어보고 諸葛先機識魏延

뒷날 서천에 반역할 걸 알았네. 已知日後反西川

비단주머니에 남긴 계책 그 누가 짐작했으리 錦襄遺計人難料

마주 선 말 앞에서 공 이룸을 보네. 却見成功在馬前

하지만 정사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비단주머니 밀계니 하는 것은

제갈량의 신화를 위한 소도구일 뿐 이 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기실 제갈량이 죽은 뒤에 전개된 촉 내부의 심각한 권력 투쟁이다.

양의와 위연의 충돌은 제갈공명의 긴 안목과 위연의 반역 기질이 빚 은 게 아니라 그 둘이 제갈량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툰 쟁탈전이 었다.

위연은 언제나 야전군 사령관으로 밖에 나가 있어 조정에 비호 세력이 없고, 군사적인 재능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공명의 신임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양의는 문관 출신으로서 조정에는 장완, 동윤 등의 비호세력이 있고, 공명을 따름에 있어서도 장부에 밝고 고분고 분해 그의 후계자로 지명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위연과 양의 두 사람의 감정 대립도 첨예했다. 위연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무공을 인정하고 굽신거리는데 한낱 장사인 양 의가 꼬장꼬장하게 맞서는 데 이를 갈아왔고, 양의는 양의대로 공명 까지도 겁내지 않는 거칠고 거만한 무부인 위연을 속 깊이 미워해 왔다.

이런 두 사람은 공명이 죽자마자 정면으로 맞붙게 되었으나 싸움 도 제대로 해보기 전에 결판이 났다. 제갈량의 유언과 조정의 비호 세력 덕분에 명분이 양의에게로 돌아가자 위연이 이끈 장졸들이 하 룻밤 새 흩어져버린 까닭이었다.

아들과 몇몇 심복만 남게 되어 어쩔 수 없게 된 위연은 한중으로 달아났으나 양의가 보낸 마대의 추격을 받고 끝내는 아들과 함께 잡 죽었다. 이때 양의는 잘려온 위연의 머리를 밟으며,

“못난 놈아, 이래도 다시 나쁜 짓을 할 테냐?”

하고 외쳤다는 기록이 전한다. 뿐만 아니라 죄 없는 위연의 삼족을 죽여 앙심을 풀었다고 한다.

결국 정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촉의 불행스런 내 분이며 거기서 촉은 방금 제갈량을 잃은 불행에 다시 나라에서 제일 가는 맹장 한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위연이 위에 투항하려 했 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고, 그 점은 나중에 후주가 그를 고이 묻어주 게 한 것으로도 헤아려볼 수 있다.


그 이면이야 어떻건 후주가 보낸 동윤이 남정에 이른 것은 이미 마대가 위연을 죽인 뒤였다. 마대는 강유와 군사를 한군데로 합치 고, 양의는 곧 후주에게 표문을 올려 위연을 죽였음을 알렸다. 표문 을 읽은 후주가 양의에게 사람을 보내 일렀다.

“이미 그를 죽여 죄를 밝힌 만큼 그가 이제껏 세운 공을 생각해서 라도 관곽을 갖추어 장례를 치러주라.”

아마도 위연이 끝내 위로 투항하지 않은 점이 갸륵해서였을 것이다. 이에 후주의 뜻대로 위연을 묻은 양의는 공명의 영구를 모시고 성도로 돌아갔다. 후주는 모든 문무의 벼슬아치들과 함께 상복을 입 고성 밖 이십 리까지 나와 맞아들였다.

후주가 목을 놓고 울자 위로는 공경대부로부터 아래로는 숲속에 남은 백성에 이르기까지, 또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슬피 우니, 온 나라가 곡성으로 가득했다. 후주는 영구를 성안으로 들여 관을 승상부에 모시게 했다. 그리고 아들 제갈첨으로 하여금 마지막 효성을 다해 장례를 치르게 했다.

후주가 다시 궁궐로 돌아간 뒤 양의는 스스로를 결박해 입궐하여 후주에게 죄를 빌었다. 후주는 근신에게 시켜 양의의 밧줄을 풀어주 게 하며 말했다.

“경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승상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지킬 수 있 었으며, 어느 날이 돼야 승상의 영구가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또 위 연은 어떻게 죽여 없앨 수 있었겠는가. 큰일을 탈 없이 치러낸 것은 모두 경이 힘써준 덕이다.”

그리고 양의에게 중군(中軍師)를 더했다. 뿐만 아니라 마대에게 도 역적을 토벌한 공이 크다 하여 그가 죽인 위연의 벼슬을 고스란 히 물려받게 했다.

양의는 다시 공명이 죽으면서 남긴 표문을 후주에게 올렸다. 읽기 를 마친 후주는 다시 큰 소리로 울며 공명을 고이 땅에 묻게 했다. 시호는 충무후(忠武侯)였다. 비위가 다시 죽기 전에 남긴 공명의 뜻 을 전했다.

“승상께서는 정군산에 묻어달라 하셨습니다. 울타리며 상석 같은 것은 세우지 말고 제물도 쓰지 말라 하셨습니다.”

후주는 그대로 따랐다. 시월의 길일을 뽑아 몸소 영구를 이끌어 정군산에 이르고 그곳에 공명을 고이 묻었다. 조서를 내려 장례를 치른 뒤 면양에 사당을 짓게 하고 철마다 제사를 드리게 했다. 뒷날 두공부[杜甫가 그 사당을 지나다 노래했다.

승상의 사당을 어디 가 찾으리 丞相同堂何處尋

금관성 밖 잣나무가 빽빽한 곳이네. 官外栢森

섬돌에 비친 풀빛은 봄기운을 띠고 있고, 映階碧草自春色

나뭇잎 사이 꾀꼬리 울음소리만 속절없이 곱구나. 隔葉黃鸝空好音

세 번 번거롭게 찾은 것은 천하를 위한 헤아림이었고, 三顧頻煩天下計

두 대를 이어 힘을 다함은 늙은 신하의 마음이었네. 兩朝開濟老臣心

군사를 내어 이기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師未捷身先死 

길이 영웅들의 옷깃을 눈물로 적시네. 長使英雄淚滿襟

그런데 공명의 장례를 마친 후주가 막 성도로 되돌아갔을 때였다. 홀연 근신이 급한 소식을 아뢰었다.

“변방에서 알려오기를 동오가 전종(全)에게 수만 군사를 주어 파구 어름에 머물게 했다고 합니다. 그 뜻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 니다.”

후주가 놀라 주위에 있는 신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승상께서 방금 세상을 버렸는데, 동오가 지난날의 맹약을 어기고 우리 경계를 침범하려 한다 하오.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장완이 나와 찬찬하게 말했다.

“신이 왕평과 장의 및 군사 몇만을 데리고 영안으로 가서 뜻밖의 일에 대비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다시 한 사람 사자를 뽑아 동오에 게 승상이 돌아가신 일을 알리고 아울러 그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게 하십시오.”

후주도 그 길밖에는 달리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반드시 말 잘하는 사람을 하나 얻어 사자로 삼아야 되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한 사람이 나섰다.

“제가 한번 가보았으면 합니다.”

여럿이 보니 그는 남양 안중 사람 종예였다. 벼슬은 참군우중랑장이었는데, 재주 있고 기개도 높았다.

후주는 종예가 스스로 나선 것을 기뻐하며 그를 동오로 보내는 사신으로 삼고 공명의 죽음을 알림과 아울러 그들의 움직임을 살펴 보게 했다.

후주의 명을 받든 종예는 금릉(金陵, 건업의 다른 이름)으로 달려가 오주 손권을 찾았다. 떠날 때는 허실을 살피는 일까지 겸한다 해서 자못 긴장해 있었으나 손권의 궁궐 안에 들어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손권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흰 상복을 입고 있는 게 공명을 위함인 듯했다. 거기다가 손권도 예를 끝내기 바쁘게 낯빛이 변해 물었다.

“촉과 오는 이미 한집안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경의 주인은 무 슨 까닭으로 백제성의 군사를 늘렸는가?”

“전종이 파구에 군사를 더하니 서쪽도 백제성을 지키는 군사를 더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물어볼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러자 손권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경은 전에 사신으로 왔던 등지보다 못하지 않소이다.”

그리고 다시 타이르듯 말했다.

“짐은 제갈승상이 돌아가시었단 말을 듣고부터 하루도 눈물을 아니 흘린 적이 없소. 이 나라의 모든 벼슬아치들에게 상복을 입게 한 것도 공명을 잃은 슬픔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소. 짐은 또 공명의 상을 당한 틈을 타서 위가 촉을 빼앗을까 두려웠소. 그 때문에 파구에 군사 몇만을 보내 일이 있으면 구원하려 했을 뿐 딴 뜻이 있었던 것 은 아니다.”

그 말에 공연히 오를 의심했던 게 부끄러워진 종예는 머리를 조 아려 고마움을 나타냈다. 손권이 그런 종예를 보고 덧붙여 말했다. 

“짐은 이미 경의 나라와 동맹을 맺었는데 어찌 그의를 저버릴까 닭이 있겠소?”

그제서야 종예는 겉으로 내세우고 온 사신의 소임을 밝혀 스스로 를 변명했다.

“저희 폐하께서는 승상이 돌아가셨음을 알리라고 저를 보내셨습 니다. 달리 동오에 의심을 품어서는 아니올시다.”

하지만 손권은 아무래도 촉이 품고 있는 의심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금으로 깃을 만든 화살 하나를 가져오게 해서 꺾으며 맹세했다.

“짐이 만약 지난날 맺은 동맹을 저버린다면 짐의 자손은 모조리 죽어 없어질 것이다!”

그러고는 사자를 뽑아 향과 베와 여러 가지 제물을 가지고 종예 와 함께 촉으로 가게 했다. 공명의 영전에 제사를 올려 그 죽음에 대 한 오의 슬픔과 정성을 보이려는 것이었다.

손권을 작별하고 오의 사신과 함께 성도로 돌아간 종예는 후에게 아뢰었다.

“오주(吳主)는 승상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으며 그 신하들은 모두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파구에 군사를 더한 것은 위나라가 우리의 빈틈을 엿보고 쳐들어올까 걱정하여서였을 뿐 딴 뜻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화살을 꺾으며 맹세하기를 동 맹의 의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주는 종예에 두텁게 상을 내리고 오의 사신을 잘 대접해 돌려보냈다.

공명의 장례일이 매듭지어지자 후주는 공명이 남긴 말대로 나라 안을 정비했다. 장완은 승상 대장군에 상서 일을 맡게 하고, 비위는 상서령(尙書令)으로 장완의 승상 일을 거들게 했다. 오의는 거기장 군으로 절(節)을 가지고 한중을 도맡게 했으며, 강유는 보한장군( 漢將軍) 평양후로 모든 군마를 다스릴 권한을 쥐고 오의와 함께 한 중에 머물게 했다. 그들 둘을 함께 한중으로 보낸 것은 위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밖의 다른 장수들은 모두 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맡게 해, 지나친 자리바꿈으로 어지러움이 일지 않게 했다. 양의도 제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벼슬살이 한 지가 장완보다 오래면서 그 밑에 있게 되었을 뿐만 아 니라, 스스로 공이 크다고 여기는 데도 이렇다 할 상을 받지 못하자 불평이 일었다. 비위를 보고 후주를 원망하는 말을 했다.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차라리 모든 군사를 이끌고 위로 투항했 더라면 오늘 이같이 섭섭한 일이야 당하였겠소!”

그 말을 들은 비위는 양의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 생 각했다. 몰래 후주에게 표문을 올려 양의가 한 말을 그대로 고했다. 비위의 표문을 읽은 후주는 몹시 노했다. 양의를 옥에 가두고 엄하게 심문한 뒤 끌어내 목 베려 했다. 장완이 그런 후주에게 아뢰었다. 

“비록 죄가 있다 해도, 지난날 승상을 따라다니며 세운 공 또한 적지 않으니, 양의를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그를 벼슬자리에서 내 쫓아 서인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후주는 그 말을 따라 양의를 한중 가군으로 내쫓고 그곳에서 이 름 없는 백성이 되어 살게 했다. 그러자 양의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 말았다.

제갈량의 신화를 위해 위연과의 세력 다툼에서 턱없이 그를 미화 했던 『연의』의 저자도 끝내 양의를 봐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원 래 양의는 속이 좁고 시기심이 많아 공명도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 았다. 양의는 유비가 살았을 때 이미 유파(劉巴)란 이와 다투다가 홍 농 태수로 쫓겨난 적이 있고, 다시 제갈량 밑에서는 위연과 다투어 용케 그를 죽였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장완과 다투다가 끝내는 벼슬 자리에서 쫓겨나는 꼴을 당했다.

거기다가 더욱 한심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그렇게 시골로 쫓 겨나서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후주에게 글을 올려 독한 말로 남 을 해치려들다가 더 깊은 산골짜기로 쫓겨나게 되자, 부끄러움과 분 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양의의 실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