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8권 – 11화 : 콩깍지를 태워 콩을 볶누나
콩깍지를 태워 콩을 볶누나
조조가 죽자 문무 벼슬아치들은 모두 모여 발상을 하는 한편 사 람을 보내 세자 조비, 언릉후(陵侯) 조창, 임치후(臨淄侯) 조식, 소 회후(蕭懷侯) 조웅에게도 부음을 전했다. 그런 다음 금으로 만든 관 에 조조의 시신을 염해 들인 뒤 은으로 겉을 두르고 업군으로 모셔 갔다.
영구가 밤길을 달려 업군에 이르자 조비는 크게 목놓아 울며 대 소 관원들과 더불어 성문 밖 십 리까지 나가 맞아들였다. 그리고 정 중히 영구를 성안으로 모셔 편전에 들였다.
관원들은 모두 상복을 입고 편전 앞에 엎드려 곡을 했다. 왕도(王 都) 밖에서 갑작스레 맞은 죽음이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이 문득 몸을 일으키며 조비에게 말했다.
“바라건대 세자께서는 잠시 슬픔을 거두시고 먼저 대사부터 의논 하도록 하십시오.”
여러 사람이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중서자 사마부(司馬孚)였다. 사 마부는 다시 여러 벼슬아치들을 돌아보며 나무라듯 말했다.
“위왕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마땅히 세자를 받들어 왕위를 잇게 해야 할 것이오. 그래야 흔들리는 천하의 인심이 가라앉을 것 인데 어찌하여 우시기들만 하고 계시오?”
그 말에 여러 벼슬아치들이 머뭇머뭇 대꾸했다.
“세자께서 마땅히 왕위를 이으셔야 할 줄은 알고 있소만, 천자의 조서를 아직 받지 못했으니 어찌하겠소?”
그러자 병부상서 진교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 엄한 낯빛을 지으며 말했다.
“대왕께서 도읍 밖에서 돌아가셨다고 사랑받은 아들을 사사로이 세워 왕위를 잇게 하여서는 아니 되오. 그렇게 하면 형제들 간에 변 란이 일게 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말리다.”
그런 다음 문득 칼을 뽑아 자신의 소매를 베며 한층 소리를 높였다.
“오늘로 세자를 모셔 왕위를 잇게 합시다. 누구든 딴소리를 하는 사람은 이 소맷자락처럼 될 것이오.”
세자인 조비 외에 다른 왕자, 특히 조식을 왕으로 받들려는 의논 이 있을까 봐 미리 엄포를 놓은 것이다.
그 거센 기세에 그 자리에 있던 뭇 벼슬아치들은 한결같이 겁먹 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다시 화흠이 허창에서 급히 말을 달려 그곳에 이르렀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화흠 같은 중신(重臣)이 그토록 급히 달려왔다니 예삿일 같지가 않아 모두 놀란 얼굴로 화흠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오래잖아 화흠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거기 있던 벼슬아치들이 모두 입을 모아 물었다.
“공은 무슨 일로 오시었소.”
화흠이 대답 대신 여럿을 꾸짖듯 되물었다.
“위왕께서 돌아가시어 천하가 흔들거리는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빨리 세자를 왕위로 모셔 올리지 않으시오?”
“아직 천자의 조서가 내리지 않아 그리되었소. 이제 여럿이 의논 하기를 왕후 변씨(卞氏)의 뜻[慈旨]을 받들어서라도 세자를 왕으로 모시려 하고 있소이다.”
여럿이 변명하듯 그렇게 대꾸했다. 화흠이 문득 품속을 더듬으며 말했다.
“천자의 조서라면 내가 이미 얻어가지고 왔소. 바로 이것이외다.”
그리고 품속에서 꺼낸 천자의 조서를 소리 높여 읽었다. 조비를 조조의 뒤를 이어 위왕으로 봉한다는 내용이었다.
화흠은 원래가 한실보다는 조조의 위를 무겁게 섬기던 사람이었 다. 진작부터 그런 내용의 조서를 써놓았다가 조조가 죽었다는 소리 를 듣기 바쁘게 천자를 얼러 그대로 조서를 내리게 했다. 조비에게 조조를 이어 위왕, 승상, 기주목을 겸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조비는 그날로 왕위에 올라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등위 (登位)를 경하하는 자리니 술과 풍악이 없을 수 없었다. 한창 흥겹게 술자리가 어우러지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언릉후께서 십만 대병을 이끌고 장안으로부터 달려오셨습니다.”
언릉후는 조조의 둘째 아들 조창이다. 용맹이 남달리 뛰어난 그가 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왔다니 조비는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낯빛이 변해 여러 벼슬아치들에게 물었다.
“터럭 누른[鬚내 아우는 평소 성격이 거친 데다 무예에 뛰어 났소. 이제 멀리서 군사를 이끌고 온 것은 틀림없이 나와 왕위를 다 투려고 함일 게요.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한 사람이 계하에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대왕께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언릉후를 만나보 고 몇 마디 말로 달래보겠습니다.”
조비가 보니 간의대부 가규(賈)란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잘 생각하시었소. 대부가 아니면 누구도 이 화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오.”
가규의 언변과 재치를 아는 조비도 그가 스스로 나서자 믿음이 생겼다. 곧 가규에게 명해 먼저 조창을 만나보게 했다.
성을 나간 가규는 조창이 군사들과 더불어 머물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옥새와 인수는 잘 있는가?”
조창이 가규를 보고 그것부터 물었다. 가규가 정색을 하고 나무라 듯 그 말을 받았다.
“집에는 맏이가 있고 나라에는 세자가 있는 법입니다. 돌아가신 대 왕의 옥새에 대해서는 둘째 왕자이신 군후께서 물을 바가 아닙니다.”
그 말에 뜨끔했던지 조창은 옥새 얘기를 더 꺼내지 못했다. 말없이 가규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궁문 앞에서 가규가 다시 한번 다짐하듯 물었다.
“군후께서 이번에 오신 것은 선왕(先) 상을 치르기 위함이십니까? 아니면 왕위를 다투려 하심입니까?”
“나는 아버님의 상을 치르러 왔을 뿐 딴 뜻이 없소.”
조창이 얼른 그렇게 대꾸했다. 가규가 그 말끝을 잡고 다그쳤다. “이미 딴 뜻을 품지 않으셨다면 어째서 군사를 이끌고 성안으로 드셨습니까?”
그제서야 조창도 놀란 듯 따르던 군사들을 물리치고 홀몸으로 궁 문을 들어섰다.
아우 창이 홀몸으로 들어서자 조비는 마음을 놓았다. 새삼 솟는 형제의 정과 아비 죽은 설움을 합쳐 서로 끌어안고 크게 곡을 했다. 장례를 마친 뒤 조창은 자기가 이끌고 온 군마를 모두 조비에게 바쳤다. 조비는 그걸 아우에게 기꺼이 되돌려주며 언릉으로 돌아가 그곳이나 잘 지키라 일렀다.
조창이 형에게 절하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왕위도 차차 든든해 지자 조비는 연호를 건안(建安)에서 연강(延)으로 바꾸었다. 건안 이십오년이 곧 연강 원년이 되었다.
그다음은 벼슬아치들의 자리바꿈이었다. 조비는 가후를 태위로 삼고, 화흠은 상국으로, 왕랑은 어사대부로 삼았다. 그리고 다른 벼 슬아치들도 모두 자리를 높여주거나 상을 내려 조정의 인심을 모 았다.
죽은 조조에게는 무왕(武王)이란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장지는 업군 고릉(高陵)으로 정하고 그곳에 큰 무덤을 꾸미게 했다. 이때 무 덤을 꾸미는 공사를 맡은 이가 우금이었다.
우금이 조비의 영을 받들어 가보니 무덤은 거지반 되어 있었는데, 한군데 희게 칠한 벽 위에 그려진 그림이 눈에 띄었다. 가만히 보니 관운장이 물로 조조의 일곱 갈래 군사를 쓸어버릴 때의 일이 그려져 있었다. 관운장이 높은 자리에 떡 버티고 앉은 아래 성난 얼굴로 버 텨선 방덕이 그려져 있는데, 그 곁에 있는 우금 자신은 땅에 엎드려 애처롭게 목숨을 빌고 있었다.
조비의 짓이었다. 원래 조비는 우금이 관운장에게 사로잡혔을 때 절개를 지켜 죽지 못하고 항복을 했다가 다시 오의 구함을 받아 위 로 되돌아온 것을 보고, 그 사람됨을 비루하게 여겼다. 그래서 먼저 사람을 보내 그 그림을 그려놓게 하고 다시 우금을 그곳으로 보내 그 그림을 보게 했다. 비굴하게 살아 돌아온 것을 부끄럽게 만들려 함이었다.
그 그림의 효과는 조비가 바란 것보다 더 컸다. 그날의 참담한 자 신의 모습을 그림 속에서 다시 본 우금은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사무 쳐 병이 되었다. 그리고 자리에 누운 지 얼마 안 돼 마침내 죽고 말 았다. 따지고 보면 채 일 년도 못 되는 삶을 더 누리려고 두 번 욕된 죽음을 맛본 셈이었다.
한 번은 관운장에게 항복했을 때로, 그때 이미 그는 한 무장으로 서의 목숨을 잃은 것이었고 또 한 번은 조비의 가혹한 조롱으로 병 을 얻게 된 때로, 그때는 육신이 죽었다.
대군을 이끌고 왔던 조창이 별일 없이 자기 땅으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돼 화흠이 조비를 쑤석거렸다.
“언릉후는 군마를 모두 대왕께 바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만 임치후(臨淄侯)와 소회후(蕭懷侯)는 아직 장례조차 치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그 죄를 물어야 합니다.”
조식, 조웅이 오지 않은 걸 싸잡아 말하고 있으나 실은 조식만을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식은 한때 조비와 세자 자리를 다투었 을 만큼 야망이 컸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그 주위에는 재주 있는 이 들이 여럿 몰려 있었다. 조창의 일로 자신을 얻게 된 조비는 두말 않 고 화흠의 의견을 따랐다. 그날로 조식과 조웅에게로 사자를 보내 장례에 오지 않은 죄를 물었다.
하루도 안 돼 사자가 돌아와 알렸다.
“소회후는 겁을 먹고 스스로 목매 죽었습니다.”
조조의 막내아들 조웅은 병들고 약한 몸에 마음까지 굳세지 못해, 조비의 노여움을 샀다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 자살해버렸다. 그제서 야 조비는 자신이 지나치게 아우를 몰아댄 게 후회스러웠다. 조웅을 후히 장례 지내주게 하고 죽은 뒤에나마 소회후에서 소회왕(蕭) 으로 높였다.
다시 하루도 안 돼 조식에게로 갔던 사자가 돌아와 알렸다.
“임치후는 날마다 정의(丁儀), 정이(丁) 형제와 술을 마시며 보 내는데 그 몸가짐이 패만慢)스럽고 무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왕 명을 받든 사자가 이르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정의 형제만 개 처럼 짖어댔습니다. 먼저 정의가 나서서 사자를 꾸짖기를, ‘지난날 선왕께서는 본시 우리 주인을 세자로 세우시려 했건만 아 첨하는 신하들이 가로막아 뜻대로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금왕(今 王)께서는 아직 장례를 치른 지 며칠 되지도 않는데 형제의 죄부터 따지고 계시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정녕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하였고, 또 정이가 나서서는,
‘우리 주인이 밝고 어짊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마땅히 대위를 이어받으셔야 하건만 오히려 그리되지 못하셨으니, 너희들 조정의 신하들은 어찌 이리도 우리 주인의 재주를 몰라보느냐?’
라고 떠들어댔습니다. 임치후는 그들의 말을 듣고 한술 더 떴습니 다. 크게 성을 내며 무사를 불러들이더니 저희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한 뒤 내쫓게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비는 불같이 노했다.
그 자리에서 허저를 불러 엄명을 내렸다.
“그대는 호위군(虎衛軍)삼천을 이끌고 급히 임치로 달려가 조식을 비롯한 못된 무리를 모두 잡아오라.”
이에 허저는 그날로 군사 삼천을 이끌고 임치로 달려갔다. 성을 지키던 장수가 허저를 막아보려 했으나 어림없었다.
허저가 한칼에 그를 베고 성안으로 짓쳐들자 아무도 나서서 막을 사람이 없었다.
똑바로 조식의 부중에 이른 허저가 방문을 여니 조식은 정의, 정 이 형제와 더불어 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허저는 그들을 묶어 수 레에 태우고, 그밖에 높고 낮은 관속들도 모조리 사로잡아 업군으로 끌고 와, 조비의 새로운 영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먼저 저 두 놈을 끌어다 목 베어라!”
조비는 끌려온 이들 가운데서 정의와 정이 형제부터 없애버렸다. 조식에게 붙어 조식의 문사적인 허영과 야망을 부추긴 죄였다. 정의 는 자가 정례(正禮)요, 정이는 경례(敬禮)로 둘 다 패국 사람이었다. 글재주가 남달리 뛰어나 문사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렇게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아깝게 여겼다.
조식은 아비 어미를 함께한 아우라 조비가 차마 단번에 죽이지 못하고 구실을 찾고 있을 때, 소문을 들은 왕후 변씨가 달려 나왔다. 자기 속에서 난 막내 조웅이 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여 자살했다는 소리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셋째 아들 조식 이 사로잡혀 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밑에서 일하던 정의와 정이 형 제가 죽음을 당했다는 소리가 들리자 두고볼 수 없었다.
대전에 나온 변씨는 맏이 조비를 불렀다. 어머니가 대전까지 나온 걸 보자 조비는 황망히 달려가 절하며 뵈었다. 변씨가 울며 그런 조 비에게 말했다.
“네 아우 식은 평소 술을 지나치게 좋아할 뿐만 아니라 미치광이 짓도 자주 한다. 모두 제 가슴에 있는 재주만 믿고 멋대로 굴어 그리 된 것이다. 너는 한 배에서 난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 아이의 목숨만 은 남겨두어라. 그래야 내가 죽더라도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조비도 좋은 말로 어머니를 위로했다.
“저도 그 아이의 재주를 매우 아낍니다. 설마 그 아이를 죽일 리 야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다만 그 못된 성깔을 고쳐놓으려 하는 것 뿐이니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변씨도 조금 마음이 놓이는지 눈물을 거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비는 편전(殿)으로 나가 조식을 불러들이게 했다. 조비가 갑 자기 그러는 걸 보고 화흠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태후(后)께서 나오신 것은 전하께 자건建, 조식의 자)을 죽이지 말라고 당부하려 하심이 아니었습니까?”
“그렇소.”
조비가 그리 밝지 못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화흠이 정색을 하고 권했다.
“자건은 재주와 지식을 지녀 끝내 못 속에서만 놀 이무기의 부류 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용이 되어 하늘을 날려 할 사람이지요. 이번 에 없애버리시지 않으면 반드시 뒷날 큰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머님의 말씀을 어길 수야 없지 않소?”
조비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볼멘소리를 했다. 화흠이 얼른 꾀를 내었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자건은 입만 벌리면 바로 그게 문장이 된다 하나 저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주상께서는 그를 불 러 먼저 재주부터 시험해보십시오. 만약 소문대로 잘 짓지 못하면 그 핑계로 죽이시고, 정말로 소문대로라면 귀양을 보내도록 하십시 오. 그렇게 하면 세상 문사들의 쑥덕거림은 막을 수 있습니다.”
조비도 들어보니 좋은 꾀였다. 조식의 재주랬자 글뿐이니, 그게 시원찮으면서도 그걸 믿고 형인 왕에게 방자하게 굴어 죽음을 내렸 다면 말 많은 세상 글쟁이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화흠의 말을 따르기로 마음먹고 있는데 곧 조식이 들어와 엎드려 빌었다.
“못난 아우가 술에 취해 형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
술에서 깨어나 보니 아끼던 정의, 정이 형제가 이미 죽음을 당한 뒤라 어지간한 조식도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조비는 그런 아우를 차갑게 내려보며 말했다.
“나와 너는 정으로 보면 형제이나 의로 보면 임금과 신하 사이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 재주만 믿고 감히 신하의 예를 업신여겼느냐? 용서를 해도 사사로운 정으로는 아니 될 것이니 그리 알고 내 말을 잘 듣거라. 일찍이 아버님께서 살아 계실 때 너는 항상 글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뽐냈으나 나는 그게 늘 미덥지 않았다. 남이 지은 글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제 한번 알아봐야겠다. 네게 일곱 걸 음 걸을 틈을 줄 터이니 그동안에 시 한 수를 읊어보아라. 만약 그걸 해낸다면 너는 죽음을 면할 것이요, 해내지 못한다면 중한 벌을 면 치 못하리라. 그만 재주도 없고서야 어찌 용서를 바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조식이 얼른 대답했다.
“바라건대 제목을 내려주십시오.”
믿는 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글이 의심당한 데서 갑작스레 솟은 오기였으리라.
이때 마침 벽에는 수묵화 한 폭이 걸려 있었다. 두 마리 소가 담벼 락 곁에서 싸우는 그림인데, 한 마리는 상대의 뿔에 받혀 우물에 떨 어져 죽는 내용이었다.
조비가 그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그림을 제목으로 하라. 그러나 그 시 속에는 두 마리 소가 담 곁에서 싸워 한 마리는 우물에 떨어져 죽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들어 가서는 아니 된다.”
곧 소, 흙담, 싸움, 우물, 떨어짐, 죽음이란 말을 하나도 쓰지 말고 그 광경을 읊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조식은 조금도 어려워하는 빛 이 없었다. 말없이 일곱 걸음을 떼어놓은 뒤에 조용히 읊었다.
두 고깃덩이 나란히 길을 가는데 兩肉齊道行
머리에는 모두 튀어나온 뿔이 있구나 頭上帶凹角
붕긋한 산 아래서 만나 相遇凸山下
문득 서로 뜨고 받게 되었네 欸起相搪突
두 맞수가 다 굳세지는 못해 二敵不俱剛
한 고깃덩이는 흙구덩이에 쓰러졌구나 一肉臥窟
힘이 저만 못함이 아니라 非是力不如
한꺼번에 모아 다 쏟아내지 못한 탓이네 不泄
조식이 그같이 읊자 조비와 여러 신하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소란 말이나 싸움이란 말은 물론 우물, 떨어짐, 죽음 따위는 한마디도
쓰지 않고 그 그림을 읊어낸 까닭이었다.
그러나 조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말했다.
“네 재주에 대한 떠들썩한 소문에 비한다면 시 한 수 짓는데 일곱 걸음 걸을 틈을 주는 것도 오히려 길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재주 있는 이라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지을 수 있어야 한다. 네가 그걸 한 번 해보겠느냐?”
“제목만 주십시오. 그리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번에도 조식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문사의 묘한 오기를 건드 려 어떻게든 아우를 곤경에 몰아넣어 보려던 조비는 됐다 싶었다. 곧 조식에게 새로운 시제를 주었다.
“너와 나는 형과 아우다. 그걸 제목으로 삼되 조금 전처럼 형이란 말도 아우란 말도 써서는 아니 된다.”
그러자 조식은 별로 생각하는 기색도 없이 시 한 수를 읊어나갔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볶누나 煮豆燃豆萁
솥 속의 콩은 울고 있다 豆在釜中泣
원래 한뿌리에서 자라났는데 本是同根生
어찌 이리도 급하게 볶아대는가 相煎何太急
바로 자기 형제의 일을 콩과 콩깍지를 빌려 절묘하게 노래한 것 이었다. 조비가 원래 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를 듣자 자신도 모 르게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그때 그들의 어머니 변씨가 전각 뒤에서 달려 나오며 울음 섞어 조비를 나무랐다.
“형이 되어 어찌 그리도 심하게 아우를 핍박하느냐?”
그 소리에 조비가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아직도 조식에게 쌓인 노여움이 다 풀어지지는 않은 듯했다.
“나라에는 법이 있으니 아무리 아우라도 그 법을 어겨가며 보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곧 조식을 안향후(安鄕侯)로 낮춰 쫓아내듯 임지로 돌려보냈다.
그 뒤 조식의 모습은 『연의』에서는 다시 나타나지 않으나 정사로 보면 참으로 기구하고 한 많은 삶이었다.
조조가 살아 있을 때 그가 세자 자리를 다툰 일은 조비의 가슴에 원한과 의심으로 남아 일생 동안 조식을 괴롭혔다. 조비는 조식이 정사에 참여하기는커녕 도성에 드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형제라는 것 때문에 왕호(號)를 주기는 했지만 그 식읍 邑)은 보잘것없었고, 그나마 자주 옮겨다니게 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식은 일평생 가슴속의 야망을 버리지 못했 다. 틈만 나면 조비에게 글을 올려 자신의 재주를 천하를 위해 쓸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다. 정사에 남아 있는 그의 여러 상소문들은 간 절하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조비는 번번이 그의 청을 거절하고 입조(入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울분과 번민 속에 지내던 조식은 끝내 병을 얻어 죽으니 그때 그의 나이 마흔하 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조비가 조식에게 품은 원혐 중에 는 뒷날 문소황후(文昭皇后)로 불린 조비의 아내 진씨(甄氏)에 대한 조식의 연모도 있다는 설이다. 진씨는 원소의 며느리로 사로잡힌 걸 조비가 아내로 맞은 여자인데 조조도 그녀를 보고는,
“이번 싸움은 그놈(조비)에게 좋은 일만 해준 것 같군.”
하며 아까워했을 만큼 미인이었다고 한다. 조식은 남몰래 형수인 그녀를 연모하였는데 그가 남긴 유명한 「낙신부(洛神賦)」의 신녀(神 女)가 바로 그 진씨라는 말도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는 조조, 조비, 조식 삼부자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