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1화 – 현경과 탈마
현경과 탈마
무공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정(正)과 사(邪)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사이엔가 무공의 원류는 이렇게 둘로 나뉘더니 서로가 피를 피로 씻는 복수와 반목을 거 듭해, 서로 왜 싸웠는지 그 시초조차 아리송해졌다. 정파는 사파를, 사파는 정파를 원수 보듯 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죽였다.
정파는 달마가 중원에 보급한 역근(易筋)과 세수(洗髓)의 두 진경(眞經)을 기반으로 성장한 무공으로, 대부분이 불가(佛家)나 도가(道家) 계통의 무술들이 주종을 이뤘다. 이른바 5대세가의 경우도 원류를 따지면 9파1방(九派)의 속가제자 중 뛰어난 자가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 문파에서 뛰어난 자들이 튀어나와 새로운 문파를 만들다 보니 근래에 이르러서는 그 갈래조차 희미해질 정도였다.
고대의 무술은 들짐승이나 날짐승의 행동을 흉내 내고 모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유명한 소림오권(小林五拳)은 호랑이, 표범, 뱀, 원숭이, 학의 움직임을 따라 이 루어졌으며, 도가(道家)로부터 전수된 검법(劍法)도 동물들을 흉내 내어 시작되었다. 이러한 검법(劍法), 도법(刀法), 창법(槍法), 봉법(棒法), 권법(拳法), 장법(掌 法) 등의 무술을 통틀어 외가무공(外家武功)이라 한다.
반면에 내가무공(內家武功)은 단전호흡(丹田呼吸)이나 숨을 뱉고 쉬는 법을 일컫는 토납술(吐納術)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을 두고 토납을 반 복하면 몸속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인 내공이 쌓이게 되는데, 그 내공을 권이나 장, 또는 검에 실어 내보내는 무술을 내가무공이라 한다.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이면 몸 안을 일주천시키며 더욱 그 힘을 증폭시켜 내공이 쌓이는 속도를 증가시킨다. 이때 그 힘을 어떤 순서로 어떤 혈도에 보내느냐에 따라 다양한 운기조식의 기법들 이 생겨났다.
정파는 내공을 익힐 때 그 공력이 천천히 쌓여 나간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진신내공(眞身內功)을 얻거나 영약을 복용하지 않고서는 통상의 경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을 해도 40세가 넘어야 절정고수에 이를 수 있고, 초절정의 고수가 되려면 60세가 넘어야 했다. 물론 타고난 신력(神力)으로 외공(外功)을 사용하는 자들 도 있지만, 내공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절정고수의 대열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이렇듯 정파 내에서도 무공을 쌓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마교에서처럼 파 격적인 방법을 써서 속성으로 내공을 쌓지는 않는다.
정파에는 명문(名門)이라 불리는 많은 방파가 있다. 그들은 대부분 도가나 불가 계통이며 뛰어난 고수들을 많이 배출했기에 명가의 칭호가 주어졌다. 그리고 명가 의 제자들이 방문외도(傍門外道 : 명가가 아닌 다른 다수의 군소방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라 칭하며 깔보는 경향도 있지만 실질적인 정파의 저력은 소수의 명문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군소방파들에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군소방파들은 내가무공보다는 외가무공을 익히고 가르친다. 명가들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우수한 내공심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외가무공을 익히고 가르치는 것이다.
명가(名家)에서는 후계자에게 진신내공(眞身內功)을 전수하거나 영약을 먹여 빠른 속도로 내공이 쌓이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각 문파의 정통 무공들이 교육되었 고 그들은 적전제자(適傳弟子)라고 불린다. 적전이 아닌 제자들은 내공이 상당히 취약하기 때문에 같은 초식(招式)을 써도 그 위력은 최소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고 한다.
상대에게 진신내공을 전수할 때는 내공을 전수하는 쪽이 엄청난 고통을 겪기 때문에 일가 피붙이라도 잘 전수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진신내공을 전수받는 데도 한 가지 위험이 따른다. 같은 수련을 한 사람의 진신내공이라면 성질이 같기에 전수받아도 상관없지만, 다른 종류의 수련을 하여 얻은 내공을 전수받으면 아예 무공 을 익히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진신내공과 새로 얻은 진신내공이 합쳐지지 않고 서로 충돌하여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치료나 공격 등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내공을 불어넣기도 하는데, 그때의 내공은 진신내공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내공을 받은 사람의 내부에서 이 종(異種)의 내력은 소멸되며, 또 내공을 집어넣은 사람도 곧 내력을 회복할 수 있다.
내공을 특출한 경지까지 연마한 정파의 고수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삼경(三境)의 고수라 한다. 초절정고수가 되면 내공의 정도와 무술 실력이 거의 비례하기 때문 에 삼경의 고수에 들어가면 거의 적수를 찾기 어렵다.
제1경(第一境)은 조화경(造化境), 즉 화경(化境)이다. 이것은 천지인(天地人)의 삼화(三化)와 수목금화토(水木金火土)의 오기(五氣)를 고루 몸 안에 이루어 낸 삼 화취정(三化聚頂) 오기조원(五氣造元)의 고수를 말한다. 이 수준에 이르면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통해 온몸이 무예를 시전하기에 최적의 상태로 바뀌는 반로환동 (反老換童)을 경험한다.
이때는 능히 소리로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들어 작은 산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한다. 화경에 오른 현존하는 고수는 여덟 명인데 그들을 3황5제(三皇五帝)라고 불렀다. 거의 비슷한 무공 수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3황과 5제로 구분하는 이유는 서로 간의 나이 차 때문이기도 하며, 5제보다는 3황의 무공이 좀 높았다. 또 정파의 고수들은 마교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네 명의 고수를 4천왕(四天王)이라고 했는데, 그 칭호에서 정파고수들의 은근한 자존심을 엿볼 수 있었다. 과거 현경 의 고수가 한 명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 최강의 고수들인 이들은 모든 정도무림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제2경(第二境)은 신(神)으로의 입문이라 할 수 있는 현묘(玄妙)한 경지(境地), 즉 현경(玄境)이라 한다. 현경의 경지에 이르면 더욱 뛰어난 육체로 변하게 되고, 그 결과 몸에 만독이 침범하지 못하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이 되며 겉으로 전혀 정기가 드러나지 않는 반박귀진(返縛歸眞)의 상태가 된다. 또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이 경지를 이루면 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치아(齒)까지 새로 나오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젊음을 되찾는다고 한다. 그들은 능히 몸에서 뿜어 나오는 예기만으로 사람 을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데, 현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는 수천 년 무림사에 과거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을 창설한 조사인 신검대협(神劍俠) 구(區揮) 단 한 명뿐이었다. 무림에서 인간이 달성해 낸 최고의 경지가 이 현경이었다.
마지막 제3경(第三境)은 불노불사(不老不死)의 진정한 신의 경지, 즉 생사경(生死境)이다. 인간의 생과 사를 초월하고 우주만물의 법칙을 한눈에 꿰뚫어 내는 무 예의 최고 경지로 추측되지만, 단 한 명도 그 근처까지 접근조차 하지 못했기에 생사경은 완전한 미지의 세계다. 수천 년 무림사에 단 한 명도 탄생하지 않았던 지고 무상(至高無常)의 경지가 바로 생사경이다. 혹자는 이 생사경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냈다고 질책할 정도다.
어쨌든 정파의 무공이 이상과 같다면 사파의 무공은 정파의 무공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사파는 달마가 전래한 무공과는 달리 중원에서 자연스럽게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