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1권 – 8화 파문당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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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1권 – 8화 파문당한 신부


정 신부는 다음 날 신자들에게 강론할 내용을 노트에 간략하 게 옮겨 적고 있었다. 내일의 강론 주제는 사탄의 유혹에 관한 내용이었다. 정 신부는 성경의 구절들을 성경에서 옮기는 한편, 적절한 비유와 예시를 위해 다른 참고 문헌도 뒤적이고 있었다. 이미 십이월에 접어든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하늘은 금세라도 한바탕 눈을 쏟아부을 것처럼 이미 땅 거미가 진 널따란 교회 뜨락에 잔뜩 찌푸린 모습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사제관 안은 무척 훈훈했다. 정 신부의 책상 모퉁이에는 찻잔이 모락모락 김을 올리고 있었다. 정 신부 는 노트를 접고 몸을 의자에 깊숙이 묻으며 천장으로 시선을 돌 렸다. 이제 적당히 피곤해진 참이었고, 강론 노트도 대강 마무리 지어도 될성싶었다. 저녁 기도를 올리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노크도 없이 문이 활짝 열렸다.

“아, 박 신부님! 웬일이시죠?”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박 신부의 얼굴은 벌겋게 얼어 있었 다. 추위 탓인지 평소에 입가에 머금고 있는 잔잔한 미소가 보이 지 않고, 약간 초췌하고 피곤에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 신 부가 문을 닫고 정 신부의 앞에 있는 소파로 뚜벅뚜벅 걸어와 앉 는 동안에, 정 신부는 신학교 동기였던, 자기보다 열다섯 살이나 나이가 많은, 항상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슬슬 피하게 하던 박 신부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박 신부는 오늘따라 더욱 이상한 느낌을 풍겼다. 외모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조금씩 세어 가는 머리, 백팔십은 족히 넘을 듯한 큰 키와 떡 벌어진 체 구도 여전했고, 후덕해서 보기 좋았다가 요즘 들어 부쩍 수척해 진뺨도 그대로였다. 이마에 살짝 고랑을 짓고 있는 주름도 변함 이 없었다. 그러나 박 신부에게서는 오늘따라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게 풍겨 왔다.

“오늘 미사는 잘되었습니까, 박 신부님?”

박 신부는 미간에 양손을 대고 몹시 피곤한 듯 문지르더니 지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뇨, 정 신부님.”

“이런 무슨 실수를 하셨습니까? 아니면……………

박신부가 미간에서 손을 떼고 정 신부를 바라보았다. 형형하

게 빛나는 안광이 마치 불을 뿜는 듯했다. 정 신부는 자기도 모 르게 움찔했다.

“정 신부님, 제가 오늘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온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아, 아뇨.”

“그러시겠지요.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누구에게라도 말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같은 일을 하시는 정 신부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차라리 묻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 요. 들어 주시겠습니까?”

“뭐죠? 만약 제가 고해성사를 해 드려야 한다면……….”

“아닙니다. 고해라고까지 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정 신부는 섬뜩함을 느꼈다. 예전부터 이 사람이 과연 신부일 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많았지만, 지금 마주 앉아 저렇게 눈 빛을 빛내고 있는 것을 보니 기묘한 분위기와 함께 눈앞의 앉아 있는 사람이 신부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미혹시키려는 사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인간? 인간이라……………. 박 신부 는 별로 말수가 없었지만 논의나 논쟁을 하게 될 때는 항상 인간 이라는 말을 붙였다.

“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정 신부님, 그냥 편하게 들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박 신부님. 차라도 한잔?”

“아니, 고맙습니다만 됐습니다.”

박신부는 심호흡을 하며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러더니 불쑥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뭘 했는지 말씀드렸던가요?”

“아니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전 의사였습니다.”

“아, 그러셨던가요?”

박신부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드 문 일이었다. 같이 신학교를 나온 정 신부마저도 박 신부의 과거 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외과의였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생활도 몇 년 했죠. 참 끔찍한 일들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물론 의사였으니까 끔찍 하다는 생각은 제 스스로 추슬러야 했지요. 하지만 수술을 치르 고, 또 제 능력이 모자라거나 어쩔 수 없어서 사고로 다친 젊은 이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되면, 며칠씩 밤잠을 설치고 꿈을 꾸곤 했습니다. 마음이 약했던 거죠.”

“아닙니다. 그건 박 신부님이 선한 마음을 갖고 계시다는 증거 겠죠.”

“의사는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눈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생명을 생명체로 인정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여 실 수를 하거나 오진을 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모든 의사들은 그런 과정을 거칩니다. 마음을 단단히 다지는 과정을요. 그래서 눈앞 에 아무리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더라도 피와 살을 기계 부품이 나윤활유 정도로 볼 수 있도록 침착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 대로 의술을 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생명은 그런 것들보다 고귀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환자 를 보고 난 다음에는 환자가 겪는 고통이 느껴지는 거예요.”

“환자의 고통을 보았으니까요. 저도 공감이 갑니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닙니다. 팔이 잘라진 환자를 치료하면 제 팔이 정말 아파집니다. 배를 꿰매면 제 배가 아파오고요.”

“그럴 리가요! 신경성이었겠죠.”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환자만큼 고통을 당했다곤 할 수 없 겠지요. 하지만 그런 게 대수로운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그때부터 인간이 받는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몸을 바치기로 하셨군요.” 

“아닙니다. 더 들어 보세요. 군의관을 마친 이후 저는 개업을 했습니다. 그때도 역시 환자들을 보게 되면 아픔이 제게 새겨지 곤 했습니다. 감히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이 제 게 직접 느껴지는데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거룩하신 하느님의 역사하심입니다.”

“글쎄요. 솔직히 말해서 당시 저는 제가 받는 고통을 면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선 제 고통부터 면하고 싶었다는 것이 본심이었어요.”

“꼭 그렇게 생각하실 게 아니라…………….”

“잠깐 잠깐만요. 이야기를 계속하게 해 주시겠습니까?”

“아, 좋으실 대로요.”

“감사합니다……………. 고통을 면한다는 것, 그게 제 솔직한 심정 이었습니다. 제 고통을 면하기 위해 남을 도왔던 거죠. 저는 그 것에 대해, 그런 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 나 그건 그릇된 일이 아닌 것 같았어요. 존재라는 것은 일단 스스로를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이지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니, 그런 얘긴 그만두죠. 그런데 그 와중에 저는 놀라운 일 을 겪었습니다. 벌써 칠 년이 흘렀군요.”

박 신부의 머릿속에 칠 년 전의 일이 다시금 비추어지기 시작 했다. 미라. 그렇다. 미라의 일이 고통스럽게 떠올랐다.


외과 의사 박윤규. 그래요. 그때는 박 신부가 아니었지요. 외 과 의사인 박윤규, 박 박사라고 불리기를 싫어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닥터 박이라 불렀습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고 기억합니다. 바쁜 업무, 사람을 살리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일들. 그런 뒤에 느끼는 피곤함. 아마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모양입니 다. 그래요, 캔 맥주 하나를 채 다 마시지도 못하고 고개를 자꾸 만 아래로 처박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려 왔습니다. 아 주 요란하게요. 차 교수, 옛 친구인 차 교수에게 온 전화였습니 다. 수화기 속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의 딸이 몹시 아프다는, 그러나 병원으로 데려갈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 습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 외에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차 교수의 딸. 이름이 미라였습니다. 차미라……………. 결혼도 못 해서 가족 하나 없는 내가 여러 친구의 자식들 중 가장 예뻐했던 아이였죠. 하는 짓이 어찌나 곰살맞고 귀여운지 쳐다보고만 있 어도 흐뭇한 미소가 절로 배어 나오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아빠 하고 아저씨하고 누가 더 좋으냐는 장난스런 질문에 얼굴이 빨 개져서 도망쳐 버릴 정도로 나를 따랐던 아이였죠.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놔둘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화가 다급하게 끊어져 버렸어요. 무슨 일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울음과 비명 소리 가 들려오고 있었거든요. 왜 앰뷸런스를 부르지 않았을까? 왜 병 원으로 갈 수 없다고 했을까? 도대체 어디가 얼마만큼 다친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걷잡을 수 없게 들더군요.

아무튼 되는 대로 가득 챙겨서 황급히 차 교수의 집으로 갔습 니다. 영문도 모른 채, 아무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말입니 다. 아니, 그건 변명입니다. 결국 나는 아무 일도 해 주지 못했으니까요.

박 신부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정 신부에게 물었다.

“정 신부님, 귀신이나 영의 존재를 믿습니까?”

“예? 그, 글쎄요. 그런 존재를 믿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저 숭이 아닌 인간 세상에 그런 것이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벌이는 일은 자주 일어나고 있어요. 사람들은 그런 일을 믿으려 하지 않죠. 아니, 마음속으로는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뭔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거부하는지도 모르죠.”

“성서에 보면…….”

“성서에도 귀신에 대한 언급은 많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귀신 들린 자를 쫓아낸 기록*이라거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뭇 귀 신들이 복종했다는 구절** 예수 그리스도조차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 「마태오복음 8장 28절~34절, 10장 32절~35절, 마르코복음 1장 23절~28 절, 9장 14절~29절, 「루가복음 8장 26절~39절 등등.

** 「마르코복음 3장 11절~13절 등.


“그것은 비유나 상징 아닐까요? 주 그리스도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비유나 상징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또렷해요. 그리고 그리스도만의 권능을 나타내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귀 신들린 사람을 구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는 곧 믿음을 가지 면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실제로 악 귀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요.”

정신부가 뭐라고 말을 더 했지만 박 신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악귀! 그렇다. 그때 차 교수의 집에서, 미라의 방에서 그 가 본 것은 분명 악귀였다.

박 신부는 계속 말을 이으면서 옛날의 끔찍했던 기억에 다시 한번 몸서리쳤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통곡 소리 가 들려왔습니다. 차 교수가 무엇에 얻어맞아 찢어진 머리 한 귀 퉁이에서 피를 흘리며 나를 맞았습니다. 동공이 크게 확대되어 있었고 쇼크를 받은 듯했어요. 차 교수는 입도 열지 못하고 마치 바보처럼 저, 저, 하는 소리만을 내면서 희게 뒤집히려는 눈을 간신히 뜨고는 손가락으로 미라의 방을 가리켰습니다.


* 『루가복음 4장.

** 「사도행전 19장 13절~19절,


마루에 차 교수의 운전사가 늘어져 기절해 있는 모습이 보였으나 나 는 일단 미라의 안위가 급하게 여겨졌습니다.

방 안에 들어서려던 나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미라의 어머니, 차 교수의 부인인 박 여사가 허공에 떠 있었어 요. 미친 듯이 울면서 미라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두 팔목 과 두 발목이 무엇에 붙들린 양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방 안의 물건들이 허공에 떠서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고요. 바로 제 눈앞에서 꽤 나이가 든 가정부가 돌로 만든 연필꽂이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미라는…………… 허공에 몸을 반쯤 띄운 채, 흰 잠옷을 아름답게(이상하게 아름다워 보였 습니다) 펄럭이며 허공에 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새파랗게 변해 있었어요.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쳤습니다. 그러다가 뭔가에 부딪혀 서 걸음을 멈추었지요. 차 교수였습니다. 그의 눈이 나와 마주쳤 습니다. 그는 아직도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목소리도 얼이 빠진 듯했으나, 그 말만은 마치 종소리처럼 내 귀에 크게 울렸습니다.

“도와주게! 누가, 제발 누가…………….”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였습니다. 항상 침착하고 냉정하게 보이던 차 교수도 눈물이 있었어요. 그의 손아귀는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억세게 내 팔을 잡고 있었습니다.

차 교수가 멍한 눈으로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보더군 요. 박 여사는 무언가에 의해 목이 졸려지는 듯 컥컥거리면서 몸 을 떨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차 교수가 미라에게 돌진해 갔어요. 그래선 안 된다는 소리를 지르면서요. 미라는 소름이 끼칠 정도 로 싸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달려가던 차 교수는 뭔가 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져 나가더니, 벽에 머리를 찧고는 외마디 신음 소리와 함께 잠잠해졌습니다.

나는, 나는・・・・・・ 그래요. 나는 그 자리에 발이 붙은 듯 그대로 서서, 몸을 후들후들 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미라가 작은 손을 쳐들자 미라의 어머니인 박 여사가 땅에 털 썩 떨어져 내렸습니다. 다행히 죽은 것 같지는 않더군요. 미라는 놀랍게도 컬컬한 남녀를 분간할 수 없는 음성으로 크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진 정제 주사를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 놓을 생각이었 으나, 딸깍하고 앰플을 자르는 순간 박 여사가 더 급하다는 생각 이 들었어요. 박 여사는 심한 충격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 었거든요. 슬픔과 무서움과 놀라움이 뒤엉킨 눈…………. 나는 그때 의 박 여사의 눈매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미처 고무줄을 꺼내지도 못하고 급한 김에 옷을 찢어 박 여사의 팔을 졸라매고 있는데 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니, 그것은 다른 자의 목소리였습니다.

“물러가라. 쓸데없이 방해하지 마라.”

허공에 떠 있는 미라의 눈은 거의 감겨져 있었고, 얼굴은 이제 완전히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나는 몸이 마구 떨리고 무 서웠지만, 그에 못지않게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나는 외쳤습니다.

“넌, 넌 대체 뭐냐? 왜 그 아이에게………….”

그 와중에도 나는 기계적으로 박 여사에게 진정제 주사를 놓 았던 것 같습니다. 박 여사가 휘청하며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기 대어 쓰러졌습니다.

“이 아이의 몸이 좋다. 아주 좋아!”

“물, 물러가라!”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귀신이니 영이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았고, 설령 그런 소리를 들 어도 웃음거리나 사기로 여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분 명히 내 눈앞에 있는 어떤 것에게 이야기했던 겁니다. 처음으로 그런 존재를 인정하게 된 셈이죠.

이윽고 정신을 차린 차 교수가 내게 눈짓을 보냈어요. 주사를 놓으라는 표시 같았습니다. 그래요, 일단 진정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차 교수는 눈짓을 교환하고는 용기를 내어 미라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차 교수가 미라 의 허리를 잡고 끌어내리려 애쓰는 동안에 나는 미라의 팔에 사 정없이 진정제 주사를 찔렀습니다. 주삿바늘이 들어가자 미라의 몸이 벌떡 위로 솟구쳐 올라갔고, 차 교수가 나가떨어지는 소리 가 들렸어요. 미라의 몸은 아직도 떠 있는 채였습니다. 나는 있 는 힘을 다해서 주사기를 눌렀으나 주사기는 반쯤 들어가더니 다시 튀어나왔습니다. 나는 주사기를 양손으로 잡고 힘을 다해 눌렀습니다. 주사기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피가 흘러들어 주사 기 안이 시뻘겋게 변해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내 눈에서는 절박 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사기가 터져 버렸어요. 오른쪽 뺨으로 뭔가 선뜩 지나갔는데 유리 조각 같았습니다. 지금은 희미해져서 보 이지 않습니다만 한동안 흉터가 남아 있었지요. 미라의 팔에 뚫 린 주사기 구멍이 스프레이처럼 눈에 피를 뿜어댔습니다.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가가 나를 허공에 들어 올리는 듯하더 니 무서운 힘으로 벽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러고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정 신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박 신부는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떠들어 대고 있을 뿐이었다. 박 신부 자신이 처음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놓고 면박을 줄 수는 없었지만 너무 황당한 이 야기가 아닌가? 아니, 설혹 그런 일이 있었다손 치자. 그래도 이 제 신부까지 된 사람이 그런 일들을 남에게 떠들고 다닐 이유가 있을까? 정 신부는 박 신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시선도 살 짝 다른 곳으로 돌리고 이런 사악한 데에 물들지 않게 해 달라고 마음으로 기도할 따름이었다. 정 신부의 눈치가 달라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신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한참 뒤 정신을 차렸습니다. 미라는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 고, 흐느끼는 박 여사를 차 교수가 달래고 있었습니다. 차 교수 는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듯했지만, 제 희미한 정신으로 도 가벼운 뇌진탕 증세를 일으키고 있는 듯이 보였어요. 둘 다 환자인 셈이었죠. 박 여사는 쇼크 상태, 차 교수는 뇌진탕 돌아 보니 가정부와 운전사는 어디론가 도망쳐 버린 후더군요.

나는 일단 박 여사와 차 교수에게 응급처치를 해 주고 진정제 도 놓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서 쉬게 했죠. 박 여사는 한 사코 자신의 딸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지만, 내게 맡기라고 하고 몰아내다시피 그들을 내보냈어요.

방문을 닫은 나는 미라의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정상이었어 요.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내가 본 것은 꿈이 아니었고 헛것도 아니었습니다. 미라는 평상시처럼 착한 얼굴로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 착한 아이가 어째서 그런 지독 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분명 악귀의 짓이었습니 다. 사탄이었어요. 나는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일정을 미 루고 차 교수의 집으로 옮길 수 있는 기구들을 전부 가져오라고 일렀습니다. 병원으로 미라를 옮길까 생각해 보았지만 오히려 좋지 않을 듯싶었습니다. 병원으로 가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없 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다음 날이 될 때까지 미라는 잠잠했습니다. 그러더니 멀쩡한 듯이 깨어나서는 엄마를 찾았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 다. 차 교수와 박 여사는 기뻐했지만, 하도 끔찍한 일을 당한 후 라서 가능하면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러마고 했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미라는 세 번 더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정 도가 점점 심해졌어요. 차 교수는 처음에 근처 사찰의 스님이나 교회의 목사들을 불러 보았습니다만 그것도 소용이 없더군요. 오히려 목사와 스님 사이에 언쟁까지 일어나게 되자, 차 교수가 모두 돌려보냈어요. 상황이 그렇게 되자 미라를 침대에 묶어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하다는 무당까지 불러 보았지만, 무당은 자기 힘으로는 어림없으니 아무리 돈을 줘도 싫다고 피해 버리 더군요. 그즈음 미라는 자신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바보라도 알 수 있었겠지요. 그 난리를 쳤으니까요. 미라는 우 리와 함께 한없이 울곤 했습니다. 나보고 도와 달라고 했죠. 제 발 살려 달라고요. 입버릇처럼 말입니다.


박 신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정 신부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여전히 냉랭한 태도를 취한 채 입을 다 물고 있었다.


하루는 어떤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알고 오신 거죠. 그 신부님은 모두 나가달라고 하고는 미라의 방에서 몇 시간이나 계셨어요. 기도 소리와 싸우는 소리, 남자의 외침 소리와 미라의 비명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 는 우리 셋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한참 후 신부님 이 나오셨어요. 만신창이가 되어 있더군요. 그러더니 자신의 믿 음이 부족하여 혼자서는 어쩔 수 없으니, 상부의 품의를 받아 엑 소시즘을 해야만 미라를 구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다시 연락 하겠다고 하고는 떠나갔습니다. 희망이 보이는 듯했죠. 일이 풀 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언급이라도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 고,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가톨릭에 몸을 바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신부님이 떠나고 내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미라는 정신을 차 리고는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사 아저씨 (미라는 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제게 믿음을 가지래요. 아까 그 신부님이요. 그런데 믿음이 뭐죠?”

미라는 고작 여덟 살이었어요. 여덟 살…………. 그 애는 그날 이 후 뭔가 깨달은 듯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발작을 하고 있을 때 에도 문득문득 정신을 차리기도 했고, 뭔가의 속박에서 벗어나 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럴 때에는 무서운 고통이 뒤따 르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안쓰러워서 평생 안 하던 기도를 올려 보기도 하고 별의별 수를 다 썼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 다. 오히려 그런 애를 쓰면 쓸수록 기가 막힐 따름이었습니다.

신부님에게는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 이지만, 엑소시즘을 행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로서 허가를 받 기가 아주 까다로운 일이었지요. 지금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겠 구나 하고 이해를 합니다만 당시에는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 다. 그러다 어느 날,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믿어지십니까? 미라의 몸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침대, 그 무거운 침대까지 함께 말이죠. 그리고 두 가지. 아아, 분명 두 가지 음성이 섞여서 들려 왔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간다. 이 아이는 내 것이다. 내가 이 아이의 몸을 부릴 것이다.”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음성과 살려 달라고 하는 미라의 가냘 픈 음성・・・・・・ 두 소리가 한 입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미라의 눈썹이 치켜져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빨이 짐승과도 같은 송곳니가 조금씩 비집고 나오고 손톱이 쑥쑥 길어지고 있었어 요. 방 안에 이상한 기운이 흘러넘치면서 물건들이 부서지고 날 아다녔습니다. 박 여사는 졸도하고, 차 교수도 조금 더 버티다 가 역시 기절해 버렸어요. 나는 고함을 치면서 미라에게 다가가 려고 했습니다만, 무언가에 발목을 잡힌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 었습니다. 미라는 나보고 살려 달라고 계속 외쳤습니다. 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지요. 미라만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요.

그러자 내 귓전에 그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러면 네가 대신 죽겠느냐? 네가 이 아이 대신 몸을 바치겠느냐?

수십 가지 생각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자고 해도 되는 것일까? 정말 내 몸을 빼앗기게 될까? 그러면 죽는 게 아닐까? 아니, 저 놈의 속임수가 아닐까? 내가 그런다고 해서 미라를 놓아줄 것인 가? 공연히 개죽음만 당하는 것이 아닐까? 나도 미라처럼 이빨 이 비죽하게 나오고 시퍼런 얼굴을 지닌 악마가 되어 버리는 것 일까? 이런 내 생각은 자기합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놈은 나를 철저히 가지고 논 것이었어요. 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분명 미 라를 그 누구보다 아낀다고 스스로를 속여 왔지요. 어쨌든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 자신만을 생각했던 겁니다. 미라는 내가 그

애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지만요….. 결국, 나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나 자신도 구할 수 없었던, 바보 천치, 얼간이에 위선 자였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대신 죽겠다고, 내 영혼을 가 져가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뒷걸음쳤을 뿐이에요.


박 신부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러나 박 신부는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면서 말을 이었 다. 정 신부도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건 신성과는 다른 문제 였다. 한낱 작은 연민일 뿐이었다.


웃음소리…………. 나는 그 웃음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그건 분명 순수한, 맞습니다. 완벽하고 순수한 악의 소리였어요. 웃음소리 가 길게 멀어져 가고 미라의 몸이 땅에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머 뭇거리다가 미라에게 다가갔어요.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나 할까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죠. 부끄러웠습니다. 눈물만 쏟아져 나왔습니다. 말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노라니. 한참 지나 미라 가 먼저 말을 걸더군요.

“의사 아저씨, 전 그것하고 같이 가긴 싫지만 아무래도……….”

나는 안된다고 소리쳤습니다. 이겨 내라고, 기운을 내라고 했 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 것은 이미 체념하고 있었던 겁니다. “안 갈게요. 아저씨. 약속할게요. 저 잘래요. 그럼…….”

미라는 편안히 누워서 잠들었습니다. 아니, 잠든 척한 겁니다. 바보 같은 나는 피곤에 지쳐 나도 모르게 잠들었습니다. 그러고 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박여사의 비명 소리에 나는 눈을 떴습니다.

미라는…………… 어떻게 풀었는지 침대에서 나와 자기를 묶었던 끈으로 전등 고리에 목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평안했습니다. 악귀가 싫어서, 그 애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택한 겁니다. 전등 고리에 묶은 무명 천에는 리본까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아아, 그 애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천국으로 갔다고 요? 자살한 자가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까? 안식을 얻을 거라고 요? 어떻게요? 그 애는 아무 죄도 없었습니다. 겨우 여덟 살, 초 등학교 일학년에 다니던 여덟 살짜리 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런 애가 자살을 했습니다. 평안해지기 위해서………….


* 사람이 죽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의식불명인 상태더라도 제정신이 돌아오고 맑 은 정신 상태를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박 신부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 신부의 눈에서도 어느덧 눈물 이 흘러내렸다. 정 신부는 손을 뻗어 박 신부의 넓은 등을 마치 아이에게 그러는 것처럼 다독거려 주었다.

“기도하십시오. 저도 기도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박신부가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 눈물이 얼룩져 있었 으나, 눈빛은 매섭게 변해 있었다.

“기도라고요? 그렇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학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있어서 들어온 겁니다. 진리를 알 기 위해,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 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런 일이 일어나도 막을 수 있는 힘을 얻 기 위해 성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니, 얻지 못하면 훔치기 라도 하기 위해 이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아아, 박 신부님, 진정하세요. 당신은 정식으로 서품을 받은 신부입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아니요. 그 이후에도 저는 많이 번민했습니다. 신학교 때부터 저는 교리문답 같은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경전 연구와 묵상에만 몰입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힘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 힘으로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박 신부님, 그런 힘은 구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기적을 추구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힘…………… 아아, 하느님은 매정하십니다!”

“그런 불경스런 말은 하지 마세요! 아멘.”

“나는 오늘 강론을 했습니다. 성당에서요. 꽤 많은 사람들이 제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저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전에 미라가 악귀에 씌었을 때에 느꼈던 것 같은 기분, 그런 기 분을 느꼈습니다. 모인 회중(衆), 모두가 하느님의 양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조차 악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아닙니다! 성소를 모욕되게 하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요. 나는 그 기운을 너무나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들 은, 그들은 비웃고 있었습니다. 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 니까? 교단에 멍하니 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읊조리고, 아니 실 례했습니다.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한다고 입을 놀리고 있었습니 다. 그건 분명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느님을 믿고 사람들에게 복음 이 전파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조급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아니요, 급합니다. 분명 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그들도 미 라와 마찬가지로 급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악한 마음, 그렇습니다. 미라에게 달라붙었던 악귀와 같은 악한 마음으로 물들어 있 었습니다. 그게 보였습니다. 사람들 하나하나의 마음이 잠시 동 안 잠시 동안 느껴졌어요. 끔찍했습니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얄 팍한 기도 몇 마디, 헌금 몇 푼으로 죄가 없어지기라도 한 듯 쾌 감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을 팔아 먹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피와 살로 속죄하신 죄를 더욱더 무 겁게 하면서 예수님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만! 그만두세요! 거룩한 공회를 모독하다니! 박 신부님, 제 정신입니까? 그런 악한 자들을 밝은 길로 이끌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게 아닙니까!”

“무엇을, 무엇을 한다는 거요? 악마, 마귀, 사탄, 나는 분명히 느꼈고, 존재를 냄새 맡았습니다. 거기에 대고 강론을 한다고 사 탄들이 순순히 물러간답니까? 아아, 내가 그렇게 독실한 신앙을 지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게 바로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 는 바입니다. 그게 안 된다면, 나는 그런 힘만이라도 달라고 간 구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적을 행하기 위해 금지된, 아닌 사탄의 힘을 빌린다 는 겁니까? 강론과 기도만이 참된 힘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된 힘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오! 우리 성직자들이, 그리고 나 자 신이 기도를 하고 스스로도 구원하지 못해 중얼거리는 동안 그

들, 악귀와 사탄은 뭘 할 것 같소? 사람들의 목을 조르고, 피를 빨고, 마음을 훔치는 짓을 태연히 저지르고 다닙니다. 강론이요? 기도요? 그것이 가장 큰 힘을 지녔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당신, 당신은 자신의 기도에 얼마나 자신을 갖고 있습니까?” 

“신앙을 그런 척도로 재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척도로밖에 잴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당장 숨이 막히고 목숨을 잃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 이 과연 고통을 이겨 내는 길을 택할 수 있을 것 같소? 모든 사람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소?”

“그건 이단적인 생각입니다! 마음을 돌리십시오, 박 신부님!” “예수님도 민중의 생각을 돌리고자 이적을 행하시었고, 많은 무지한 사람들을 구원하시었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 이라도 구원하고 있는 것 같소?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하물며 가장 밑에 있는 인간 하나를 구원하지 못하고 경전만 읊조리고 있다 면, 우리가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고통받는 사람은 많고 도 많소. 커다란 성당을 짓고, 가끔 가다 봉사 활동이나 나가고 코골며 조는 신자들에게 강론만 하면 끝나는 건가요? 나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도 믿지 않는 일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한 힘, 바로 그 힘을 얻기 위해서 성직에 들어왔습니 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고, 모두가 쉬쉬하며 피하는 눈치만 보였고, 그만한 신앙심과 기도력이 있는 사람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아아, 일반인과 성직자 가 다를 것이 무엇이오? 거룩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는 흉내 낼 뿐,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 무엇 하나 있소?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내 믿는 바대로 행하겠소. 악귀들, 인간의 죄는 인간에게 맡긴다 칩시다. 그러면 악귀나 악령이 범하는 죄는 누가 다스려 줍니까? 그것이 하느님을 거부하거나 가르침을 모독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다만 누군가는 그 누군가는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그런 일들은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신부는 분노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아, 박 신부님. 당신은, 지금 당신이 얼마나 끔찍한 말을 하 고 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이 일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주교님 께 보고하겠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속죄할 것이 없소. 필요한 것을 구하 려 애쓸 뿐이오. 내 뜻에 조금이라도 옳은 구석이 있다면, 하느 님은 내 편이 되어 주실 것이오.”

“사탄에게 몸을 팔겠다는 소립니까?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 고 싶단 말입니까?”

“사탄이 나를 사는 대가로 많은 사람들을 포기해 준다면 그러 고 싶소. 그러나 나는 하느님을 믿소. 내 기원을 들어주시리라 믿소.”

“영웅주의에 빠져 있구려! 박 신부님, 제발 회개하시오!”

“나 자신, 수없이 그런 질문을 했었소. 그러나 어쨌든 내 눈에 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받는 모습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요! 나는 지나칠 수 없습니다. 옛날에 나는 이미 악귀에게 패했고, 가련한 미라가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도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 소.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소. 미라와 같은 사람들이 이 유도 모르는 채 여기저기에서 고통받고 있소! 나는 내 길을 갈 것이오. 그리고 힘을 얻을 것이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말이오!” 

“아멘! 파문당할 겁니다. 박 신부님.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지요?”

“교단이 나를 파문한다고, 하느님까지 나를 파문하지는 않으 실 거요. 아멘!”

방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쾅 소리와 함께 한쪽 벽에 부딪혔다. 박신부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닥치는 밖으로 성큼성큼 나가 버렸다. 매서운 바람이 한 움큼 몰아쳐 들어왔다. 정 신부는 망 연히 앉아서 이 일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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