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4권 22화 – 하르마게돈 16 : 거인들의 혈투
거인들의 혈투
아하스 페르츠가 나타났다는 말에 박 신부 일행도 몹시 놀랐 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하스 페르츠를 처음 본 것이다.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너무도 음산하고 어두운 것이라 박 신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하스 페르츠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인도인들이 우르르 짚 단처럼 쓰러져서 구석까지 밀려났다. 한 번 손을 저을 때마다 서 너 명씩 뒹굴었는데, 무슨 타격을 받았는지 피까지 토하며 다시 는 일어나지 못했다.
박신부가 그들의 앞을 막아서려 했지만 인도인들은 그를 아 랑곳하지도 않고 계속 괴성을 지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제각기 무기를 거머쥐며 달려들려 했다. 그러자 박 신부는 오 라를 크게 발했고, 인도인들은 오라 막에 밀려 우르르 뒤로 물러 섰다. 그때 이반 교수가 커다랗게 외쳤다.
“아하스 페르츠! 네가 정말 죽지 않는 자라면, 이걸 받아 봐 라!”
이반 교수가 소리치자 이반 교수의 배낭에서 무시무시한 엘리 컨포가 철컥거리며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하스 페르츠는 태연 했다. 아니, 근본적으로 이반 교수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이반 교수가 외쳤다.
“모두 내 뒤로 물러서시오!”
박 신부와 인도인들까지 우르르 물러서는데도 아하스 페르츠 는 동상처럼 버티고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반 교수가 이를 갈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순식간에 두두두 하는 굉음이 신전 안 을 가득 메우면서 화약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고, 탄피가 미친 듯 이 쏟아져 나와 바닥에 쌓였다.
이반 교수는 엘리컨 포를 발사하면서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하 고 계속 뒤로 밀려났다. 그러면서도 손에 든 벨지움콘바인을 연 속하여 철컥거리면서 발사했다. 걷잡을 수 없이 이반 교수가 밀 려나자 성난큰곰이 그의 뒤를 받쳐 주었으나 막강한 힘의 성난 큰곰조차 뒤로 조금씩 미끄러졌다.
실로 이반 교수의 화기의 위력은 엄청나다고밖에 할 수 없었 다. 신전의 돌벽이 삽시간에 허물어지면서 돌 조각들이 미친 듯 이 날아올랐다. 발사 시간은 십 초도 안 되었지만 만약 이곳이 지하가 아니었다면 두꺼운 돌벽 하나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을 터였다.
이반 교수가 발사를 멈추자 죽음 같은 정적이 신전 안을 기득 메웠다. 이따금씩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 말고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리고 먼지와 화약 연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돌연 먼지구름 저편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기는군. 먼지로 나를 질식시켜 죽일 셈이었나?”
이어서 아하스 페르츠가 서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반 교 수는 이를 악물면서 다시 스위치를 누르려다가 다음 순간 한숨 을 쉬며 들고 있던 총구를 떨구었다.
“제기랄.”
박신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도 유머 감각이 있는 줄은 몰랐소, 아하스 페르츠.’ 아하스 페르츠는 박 신부와 그의 몸 주변에 퍼져 있는 오라를 힐끗 보며 물었다.
“사도? 너는 베드로의 후예냐?”
“나는 누구의 후예도 아니오.”
“기도력을 쓰는 것 같은데……. 그럼 교황청의 끄나풀이냐?”
“내 마음은 그렇지만 교황청은 나를 파문시켰다오.”
의외로 박 신부는 미소까지 지으며 마치 친한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되받았다. 그러나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승희는 박신부의 옷이 순식간에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사실 박 신부가 최대한으로 오라를 펼치고 있지 않았다면 아 하스 페르츠가 뿜어내는 암울한 기운에 성난큰곰은 몰라도 이반 교수나 승희는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하스 페르츠가 박 신부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시몬의 후예지. 너 또한 상당한 자로군. 각자 이어받은 힘의 인연이 있으니 너는 특별히 신경 써서 상대 해 주지.”
그 말만 남기고 아하스 페르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카르나와 고반다는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텔레포트를 써서 도 망친 것 같았다. 카르나와 고반다가 사라지자 남은 인도인들은 더 이상 아하스 페르츠에게 달려들지 않고 출구로 달려가 그곳 을 막아섰다.
아하스 페르츠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성난큰곰이 타보트 상자를 내리면서 실로 오 랜만에 큰 소리를 내어 외쳤다.
“여기 타보트가 있다!”
성난큰곰은 어느새 강신술을 써서 거대한 체구로 변해 있었 다. 키건의 커다란 나이트 아머가 오히려 작은 듯 몸에 꼭 죄어 들 정도였다. 성난큰곰은 실로 위풍당당하고 힘이 가득한 것처 럼 보였다. 그는 뚜벅뚜벅 침착하게 걸어서 타보트 상자를 들고 아하스 페르츠를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타보트 상자의 뚜껑을 열려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아하스 페르츠가 천천히 말했다.
“타보트군그래. 하지만 너희는 바보야.”
“모두 내 뒤로 물러서라.”
성난큰곰은 상자의 뚜껑에 손을 대며 소리쳤다. 그러자 박 신부가 말했다.
“아니, 잠깐만….. 너무 성급하게…………”
성난큰곰이 박 신부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자는 상대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성난큰곰은 타보트 상자의 뚜껑을 열려고 했다. 그 러나 기이하게도 뚜껑은 마치 용접이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하 지 않았다. 강신술을 쓴 성난큰곰의 힘은 그야말로 곰만큼이나 강해서 상자를 단숨에 부숴 버릴 정도였는데, 그런 그가 뚜껑을 열지 못하다니.
성난큰곰의 이마에 핏줄이 돋다가 이윽고 땀방울까지 흐르는 데도 뚜껑은 요지부동으로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아하스 페르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보트를 상자에 넣은 너희야말로 바보다. 그건 절대 열리지 않는다. 내가 있는 한 절대.”
성난큰곰이 안간힘을 쓰자 윌리엄스 신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바보였어요. 모두 실수한 겁니다.”
“어떻게 된 거죠?”
승희가 묻자 윌리엄스 신부는 우울한 얼굴로 설명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절대 죽지 않도록 결정지어진 자라 했어요. 타보트의 힘은 비록 확인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타보트 상자는 타보트처럼 신의 힘을 지닌 물건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그 상자는 아하스 페르츠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절대 부서지지도, 열리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뭔가에 넣어 보관하지 않으면 그것을 보는 자가 죽는다면서요?”
이번엔 박 신부가 대신 대답했다.
“모두가 죽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없거나 약한 자가 죽는 것이지.”
곧이어 아하스 페르츠가 냉랭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렇겠지. 믿음이 강한 자가 타보트 자체를 들고 나를 보았어 야 했다. 내가 없는 장소에서 그것을 꺼내서 말야. 허나 지금은 늦었어.”
그러자 박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모두 물러서 있으시오.’
“함께 상대해요!”
승희가 외치자 박 신부는 쓸쓸히 고개를 저었다.
“글쎄다. 솔직히 말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구나. 여러분, 타보트를 잘 간직하시오.”
그 말을 듣고 아하스 페르츠가 조용히 말했다.
“한 놈도 도망칠 수 없다.”
“신부님・・・・・・”
윌리엄스 신부와 이반 교수가 말하려 하자 박 신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지. 오 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것 같소. 그사이 멀리 피해서, 후일을 기약하시오.”
“난 안 가요!”
승희가 울먹이는 소리로 커다랗게 외쳤다. 그러자 박 신부는 승희를 타이르듯 조용히 말했다.
“넌 현암 군을 도와야 해. 현암과 준후와 함께, 나중에 반드시 저자를 상대하고…………..”
그때 아하스 페르츠가 조용히, 그러나 비웃듯이 이죽거렸다.
“꼴사납군.”
돌연 무지무지한 기운이 그들 전체에게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박 신부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박 신부의 오라 막은 무서울 정도로 팽창하여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밝은 녹색을 띠었 다. 박 신부는 어깨를 조금 움찔했지만 계속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우리가 하려던 바를 완성하거라. 알겠니?”
그 말을 듣고 아하스 페르츠는 감탄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법이군.”
승희가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신부님 ・・・・・・ !”
승희가 울먹이자 성난큰곰이 침울하다 못해 파리해진 얼굴로 승희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윌리엄스 신부도 눈물을 글썽였지만 급히 승희에게 말했다.
“방법이 없소. 어서…………….”
그 모습을 보며 아하스 페르츠가 냉정히 말했다.
“한 놈도 도망 못 간다고 했을 텐데?”
그 말과 함께 다시 무서운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때는 박 신부 도 온화했던 표정을 거두고 긴장된 얼굴로 그 공세를 맞받아쳤 다. 박 신부의 머리칼이 하늘로 치솟고, 옷자락이 터질 듯이 부 풀어 올랐으며 오라 막도 무섭게 팽창했다.
박 신부는 피하지 않고 오라 막으로 아하스 페르츠의 무시무 시한 기운을 밀어붙였다. 놀랍게도 아하스 페르츠가 뿜어낸 기 운은 박 신부의 오라 막을 미끄러지듯 비껴가더니 뒤편 출입구 쪽을 강타했다.
굉음과 함께 돌들이 무너져 내렸고 미처 피하지 못한 인도인 들이 돌에 와르르 깔렸다. 실로 순식간에 출입구는 막혀 버렸다. 그것을 보고 박 신부는 급히 오라 막을 부풀려 승희 등을 보호 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하스 페르츠의 기운에 쏘이자 승희 와 이반 교수는 기절할 정도로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그제야 그들은 아하스 페르츠가 얼마나 무서운지와 박 신부가 겉으로 태연한 듯하지만 지금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 신부는 무너진 출입구와 깔려 죽어 버린 인도인들을 보고는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정말로………….?”
아하스 페르츠는 놀랍게도 웃으며 되받았다.
“그렇다면 어쩔 건가?”
그때 박 신부도, 아하스 페르츠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 졌다. 아하스 페르츠가 뚫고 들어온 구멍으로 누군가가 뛰어들 어온 것이다. 놀랍게도 현암이었다.
“현암군!”
현암이 나타나자 가장 먼저 고함을 지른 것은 승희였다. 그리 고 아하스 페르츠도 상당히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네가……………?”
그 뒤를 이어 백호와 무색이 뛰어 내려왔다. 그다음에는 마하 딥을 안은 무음이 뛰어내렸고, 마지막으로 무성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칼키파로 보이는 정신 잃은 인도인 하나가 툭 떨어져 내 리고는 잠잠해졌다.
그제야 박 신부가 입을 열었다.
“역시 무사했군, 현암 군.”
현암은 고개를 끄덕여 박 신부에게 먼저 인사한 다음 승희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승희는 아하스 페르츠가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이 바보 멍청이 둔탱이! 뭐 하고 있었던 거얏!”
승희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다른 사람 들도 현암 일행을 보고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박 신부 와 그들만의 힘으로는 아하스 페르츠를 감당하기 역부족이었는 데, 현암이 나타나 주었으니 용기백배할 수밖에 없었다. 현암을 보며 아하스 페르츠가 말했다.
“용케 도망치더니, 다시 죽으러 온 거냐?”
현암이 아하스 페르츠를 당당히 보면서 되받았다.
“한 번 죽지 않았으니 또 죽지 않을 수도 있겠지.”
박신부가 물었다.
“다른 분들은?”
“이분들은 용화교의 스님들입니다. 이분들도 이미 이자와 한 번 겨룬 적이 있죠.”
용화교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들도 아하스 페르츠와 한 번 싸웠다는 말을 듣고 조금 더 용기 를 얻었다. 아하스 페르츠와 같이 싸울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던 것이다.
승희는 그때야 백호를 쳐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백호 씨도 무사하셨군요………….”
백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덕분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박신부가 다시 묻자 현암 역시 씁쓸히 웃었다.
“설명하자면 깁니다. 여기 이자와 겨루다가 간신히 도망쳤고, 그동안 감금당했죠. 에잇, 나중에 이야기하죠.”
이번에는 윌리엄스 신부가 현암에게 물었다.
“고반다를 보지 못했나요? 카르나는요?”
현암은 월향검을 꺼내 들며 대답했다.
“못 보았는데요?”
그러자 무색이 나섰다.
“그들은 여기 없소. 그리고 이 통로 부근에 있던 자들은 우리가 대강 처리했소.”
“당신들이?”
이반 교수가 묻자 현암이 대신 대답했다.
“지금 밖은 아수라장입니다. 검은 편지 결사, 이단 심판소, 성 당 기사단 사람들이 총공격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새신과 검 은 지하드의 무리들이 칼키파와 합세해서…………….”
“뭐, 뭐라고? 어디가?”
박신부가 몹시 놀란 표정을 짓자 현암이 덧붙여 설명했다.
“어새신과 검은 지하드요. 검은 편지 결사와 이단심판소 등이 연합전선을 편 것처럼 칼키파도 연합한 겁니다. 밖에서는 지금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요.”
“오오.”
그 말을 듣고 박 신부가 탄식했다.
“점토판의 예언대로 되는구나.”
현암이 물었다.
“전 아직 점토판의 내용을 모릅니다. 그게 뭐죠?”
“세상이 끝나려 할 때 고대 주술이 셋에 의해 깨어지고, 이를 막는 자, 막지 않으려는 자, 동방의 땅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리 라・・・・・・・ 동방의 땅이라는건 여기 인도였어. 혹시나 했는데…………….”
“그럼 셋은 누구누구죠? 고대의 주술은 또 뭐고요?”
현암이 묻자 아하스 페르츠가 갑자기 소리쳤다.
“고대의 주술! 흥! 그것까지 씌어 있단 말인가?”
이미 이단심판소에서 점토판의 내용을 세상에 공표한 참이라 그 내용을 모르는 자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검은 편 지 결사와 이단 심판소, 성당 기사단이 힘을 합치게 되고 칼키파 와 검은 지하드, 어새신도 뭉치게 되었으리라.
현암과 아하스 페르츠는 그동안 세상과 연락이 없었던 까닭에 그 내용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고대의 주술이 란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아하스 페르츠의 말을 들어 보니, 고대의 주술을 깨려는 셋 중 하나는 아하스 페르츠임 이 분명했다.
현암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다음 아하스 페르츠에게 소리쳤다.
“고대의 주술이란 라미드 우프닉스에 관한 것일 테지?”
아하스 페르츠가 현암을 노려보며 되물었다.
“네가 어떻게 알았지?”
현암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내가 아니라, 해밀튼이 내게 말했다.”
“그렇구나…… 그런 줄 알았다면 즉시 너를 없애는 거였는…….”
아하스 페르츠는 다시 침착해졌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지. 머릿수가 좀 늘었다고 내 상대가 될 것 같으냐?”
현암이 나섰다.
“너는 라미드 우프닉스를 네 손으로 죽여서 세상에 재앙을 부 를 생각이지? 하지만 소용없을걸?”
그 말에 아하스 페르츠가 이를 갈며 분노한 듯 중얼거렸다.
“해밀튼 그놈이 ………… 정말 라미드 우프닉스를 다 죽였단 말인 가?”
순간 현암과 박 신부는 깜짝 놀랐다. 분명 지난번 해밀튼은 현 암에게 자신도 몇 명의 라미드 우프닉스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 했다. 그런데 아하스 페르츠는 어째서 라미드 우프닉스가 다 죽었다고 하는 걸까?
그때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무음이 안고 들어온 마하딥이었다. 방금 무음은 아하스 페르츠를 보고 긴장하여 마하딥을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돌로 된 신전 바닥의 냉기로 마하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다 죽였소. 어찌할 수가 없었소.”
“어째서요?”
현암이 놀라서 외치자 마하딥이 힘겹게 대답했다.
“라미드 우프닉스는 사람의 손에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저자의 손에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기 때문이오.”
“누구의 생각이었소?”
“해밀튼 씨의 ………… 그의 안배…………..?
마하딥은 힘겹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해밀튼은 자신이 정신 을 차리고 있을 때 치밀한 지시를 내려 두었다. 자신이 타보트를 찾는 데 성공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만약 실종된다면 그것 은 필경 아하스 페르츠가 다시 활동을 개시한 후이니 자신이 찾 아 보호하고 있던 모든 라미드 우프닉스를 죽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당 기사단 전원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타보트를 다시 찾아 아하스 페르츠를 상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일을 일으킨 것은 검은 편지 결사나 이단 심판소가 아니라 성당 기사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칼키파가 방비를 하고 있었소…….”
“혹시 키건이 배신한 건 아닙니까?”
현암이 묻자 마하딥은 고개를 저었다. 박 신부가 한마디 거들었다.
“키건이 배신했다면 칼키파에서는 타보트를 찾으러 간 자들을 방해한 게 자네라는 것도 알았을 거네. 하지만 그들은 모르는 것 같았어.”
그 말에 현암이 말했다.
“어쨌거나 서둘러야 합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혹시 타보트를 으셨나요?”
그러자 박 신부가 힘없이 웃어 보였다.
“찾았지만 쓸 수 없는 물건일세.”
“그런가요? 그러면 이 주술 막에서 빠져나갈 방법은요?”
“그건 이미 얻었지!”
“좋습니다. 그러면 일단 여기서 빠져나갑시다.”
현암의 말에 아하스 페르츠가 소리쳤다.
“아무도 못 나간다! 네놈들은 모두 내 적수야! 모두 죽어야만해!”
그러자 이반 교수가 소리쳤다.
“이제는 너 혼자서 당해 내기 어려울걸? 네가 강한 것은 알지만, 우리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그에 아하스 페르츠가 대꾸했다.
“네놈들도 대단하긴 하나, 아직은………… 아직은 내 상대가 못된다.”
“네놈을 죽일 수 없다는 건 우리도 안다. 하지만 네놈도 우리 를 모두 붙잡아 두지는 못할걸? 안 그런가?”
아하스 페르츠는 화가 나는 듯했다. 확실히 그 누구도 아하스 페르츠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힘을 합쳐 아하 스페르츠의 주술만 차단한다면 타보트를 지닌 채 도망칠 수 있 을 것이 아닌가?
현암이 여유 있게 아하스 페르츠를 보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않나? 한 번 도망칠 수 있으면 두 번도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그때였다. 느닷없이 아까의 구멍으로 또 다른 사람들이 뛰어 내렸다. 그들을 보고 모든 사람이 놀라서 어어 하는 소리를 냈 다. 그들은 수아를 안은 로파무드와 준호, 아라였다. 바이올렛이 그 뒤를 이어 뛰어내렸고, 황달지 교수가 머뭇거리며 거의 떨어 지듯 천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장에서 뛰어내린 사람은 준후였다.
“준후!”
“준후야!”
“네가 어떻게………….?”
승희와 현암, 박 신부가 거의 동시에 외쳤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다 모였던 것이다. 현암이 다급히 준후에게 말했다.
“연희 씨는?”
아까 현암이 라미드 우프닉스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한 것은 연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희가 혹시라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준후가 고개를 젓자 그제야 현암은 안심했다. 아 하스 페르츠는 준후까지 나타나자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별안간 아하스 페르츠가 고개를 들어 껄껄껄 웃었다. 아하스 페르츠의 웃음소리는 특별히 공력이 실리지 않았는데도 현암의 사자후만큼이나 강렬해서 승희와 윌리엄스 신부 등은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준호와 아라, 수아, 바이올렛과 황 교수 등은 모 두 주저앉아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이라 그대로 버텼다.
아하스 페르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기이하군. 너무 기이해서 웃음이 다 나오는군. 이게 얼 마만인가? 정말 세상에 이토록 공교로운 일이 있을까?”
박 신부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하스 페르츠가 말을 이었다.
“나는 요 며칠 사이에 지난 백 년 동안 본 것보다 더 많은 기인 들을 만났다. 벌레들치고는 대단들 하더군. 그런데 그런 자들이 여기 모두 모였어! 정말 대단하군!”
아하스 페르츠는 박 신부를 보면서 말했다.
“세상에 내 상대는 둘뿐이라 여겼는데, 이제 보니 잘못 생각했던 것 같군. 즐거워. 아주 즐거워.”
“둘은 누구지? 고반다인가?”
아하스 페르츠는 기분이 좋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신부가 다시 물었다.
“또 하나는 누구지?”
“그건 여자다.”
그 말을 듣고 박 신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 진짜 바이올렛?’
“나는 고반다가 타보트를 훔쳐 간 것을 알았고, 그가 함정을 판 것도 눈치챘다.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 많은 법이지. 그래서 일부러 늦게 왔는데…………. 하하 하! 우린 모두 남의 장단에 놀아난 거군그래.”
그 말을 듣던 이반 교수와 승희 등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 정을 지었다. 고반다는 아하스 페르츠를 잡으려 함정을 팠고, 아 하스 페르츠는 그것을 역이용했다. 그런데도 아하스 페르츠는 모두 남의 장단에 놀아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 구일까?
이반 교수가 소리쳤다.
“이제 정말 네놈은 우릴 막을 수 없을 거다!”
이반 교수의 말은 결코 으름장이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박 신부와 현암, 준후, 승희가 모두 같이 있었고, 그들은 지금 세 상에서 가장 강한 능력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로파무드와 성난큰곰, 윌리엄스 신부에, 수아와 준 호, 아라도 있다. 그리고 용화교의 삼대 노승들도 있다. 이 상황 에서 무엇이 겁나겠는가? 아하스 페르츠를 죽일 수는 없다 해도, 그는 더 이상 그들을 붙잡아 두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박 신부 혼자서도 아하스 페르츠의 주술을 한참 막아 낼 수 있을 정도였 는데 그 힘이 몇 배로 불어났으니 말이다.
“어서 여기서 나갑시다!”
윌리엄스 신부가 성난큰곰을 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성난큰 곰은 타보트 상자를 다시 들었다. 그때 준후가 냉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직 일이 안 끝났어요.”
순간 모든 시선이 준후에게 집중되었다. 준후가 아하스 페르 츠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저자를 물리칠 방법을 알아요.”
그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 졌다. 감쪽같이 사라졌던 고반다와 카르나가 다시 지하실에 모 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의 뒤에는 두 명의 시동이 여전히 붙어있었다. 고반다가 나타나자 로파무드가 펄쩍 뛰면서 간디바를 꺼내 들었다.
“이 흡수!”
재빨리 준후가 로파무드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고는 차갑게 웃으며 고반다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러자 고반다는 칠판을 쳐들었다가 그것을 내팽개쳤다. 오십 년 동안이나 사용해 왔다는 칠판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리 고고반다는 훌쩍 몸을 일으키며 쉰 목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드디어 네가 왔구나!”
그러자 아하스 페르츠가 껄껄 웃으며 외쳤다.
“드디어 너를 만나게 되었구나, 고반다. 수백 년 동안이나 너를 찾아다녔다!”
이에 질세라 고반다도 아하스 페르츠에게 소리쳤다.
“네놈이 무서워서 피한 줄 아느냐?”
“여우 같은 놈! 주술 막을 쳐 놓으면 내가 그것을 돌파 못할 줄 알았나? 네놈의 간계는 이미 훤히 꿰뚫고 있었다.”
“주술 막을 뚫었다면 네놈의 힘은 크게 손상되었을 테지. 그러니 너도 나를 해치진 못할걸?”
“네놈이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둘 것 같은가?”
다른 사람들은 고반다와 아하스 페르츠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던 철천지원수인 것 같았다.
고반다가 손을 뻗어 준후를 잡으려 하자 준후는 훌쩍 몸을 날 려 피했다. 그러자 아하스 페르츠는 미친 듯 고반다를 향해 공격 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하스 페르츠의 주술은 고반다의 오라 막을 뚫을 수 가 없었다. 아하스 페르츠의 주술은 실로 다양해 어떤 때는 불길 과 열기를, 어떤 때는 냉기를, 어떤 때는 번개와 날카로운 빛 같 은 것을 쏘아댔지만 모든 것이 고반다의 오라에 튕기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고반다는 한 번도 반격을 하지 않았고, 그저 준후 를 잡으려고 분주히 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런데 고반다의 동작 이 이상하게 느려서, 준후는 결코 잡히지 않고 도망 다닐 수 있 었다. 너무도 쉽게 도망 다니기 때문에 힘도 들이지 않았고, 도 와줄 필요조차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박 신부가 입을 열었다.
“아하스 페르츠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고반다는 우리에게 타 보트를 주었는데, 아하스 페르츠가 이미 와 있었던가?” 그 말을 바이올렛이 받았다.
“아하스 페르츠는 우리와 같이 왔어요. 주술 막을 뚫고 말이죠.”
박 신부와 현암과 바이올렛은 한데 모여서 보고 들은 것을 간 단히 정리해 보았다. 비로소 박 신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반다는 아하스 페르츠를 잡기 위해 타보트를 미끼로 삼고 주술 막을 쳤다.
생각과는 달리, 아하스 페르츠는 오지 않고 삼대 세력이 쳐들 어와 부득불 고반다는 화를 떠넘기는 식으로 타보트를 박 신부 에게 주려 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그 이후에 쳐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아하스 페르츠가 자신의 힘으로 주술 막을 뚫었기 때 문에 고반다도 아하스 페르츠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카르나가 다시 타보트를 빼앗으려 했던 것이다.
그때 아하스 페르츠가 돌무더기로 막았던 지하실 문이 폭음과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어 한 떼의 사람들이 와르르 안으 로 들어섰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단 심판소와 검은 편지 결사의 수뇌급 인 물들이었던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넓었던 신전 지하실이 좁아 보였다.
박 신부와 현암 일행은 물론이고, 검은 편지 결사와 이단심판 소, 성당 기사단 사람에다 고반다와 카르나, 아하스 페르츠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출입구 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 었다.
“주의 은총이 있으시기를…“
박신부는 프란체스코 주교에게 목례를 했다. 그는 박 신부를 알은척도 하지 않았지만 맨 앞에 섰던 아녜스 수녀는 박 신부를 보자 반색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모습은 붉은 가발을 쓰지 않은 흑발 그대로였다.
그 뒤에는 아우구스티노 수사와 루카 수사, 가브리엘 수사와 두 명의 다른 가디언도 있었다. 그들은 시므온 수사와 바오로 수 사였는데, 둘 다 특수한 능력자들이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현암을 보자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우두머리인 베드로 수사는 사망한 후였기 때문에 세븐 가디언은 이제 여섯 명뿐이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힘겨운 싸움을 치른 듯, 온몸이 만신창이였 으나 아녜스 수녀만은 먼지 하나 묻지 않고 깨끗했다. 그들은 들 어오자마자 준후를 보더니 화부터 냈다.
“네놈이 여기 와 있었구나! 이놈! 베드로 수사의 원수를 갚겠 다!”
파리한 안색에 교활한 인상을 주는 젊은 수사가 소리를 질렀 다. 시므온 수사였다. 그리고 텁석부리 수염을 기른, 곰보자국 이 얼굴에 가득한 덩치 큰 수사도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바오로 수사였다.
그러나 후는 태연한 표정으로 되받았다.
“올 사람들은 어떻게든 오는군요.”
그러자 프란체스코 주교가 입을 열었다.
“저 아이의 일은 작은 일이고, 일단은 큰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형제들, 일단 아하스 페르츠와 고반다를 주시하세요. 고반다에게서 여길 나가는 방법을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그 말에 시므온 수사가 나섰다.
“베드로 형제가 살아 있었으면 우리가 여기서 쉽게 나갈 수 있 었을 겁니다. 그러니 저 꼬마야말로 원흉이지요.”
이미 죽은 베드로 수사의 능력 중 하나가 텔레포트였던 것이다. 그러니 시므온 수사가 분통을 터뜨릴 만도 했지만 프란체스 코 주교는 고개를 저었다.
“서두르지 마세요, 형제여.”
승희가 놀라서 외쳤다.
“준후야! 네가 정말 그 사람을 죽였니?”
준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박 신부는 속으로 탄식했고, 현 암이 큰 소리로 외쳤다.
“준후야! 네가 그럴 리 없잖아? 왜 아니라고 말하지 않아?”
그때 이단심판소 사람들의 뒤에서 세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 람은 현암이 만난 적이 있던 랍비 안나스였고, 다른 한 사람은 체구가 크고 검은 구레나룻을 보기 좋게 기른 남자였으며, 또 한 사람은 귀엽게 생긴 소녀였다. 랍비 안나스가 현암과 세 노승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이 해냈군요. 그래요. 아주 잘했어요.” 그 말에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스터 현암! 당신은 이 사람들과 한편이었소?”
현암은 일시에 모든 걸 설명할 수 없어 간단하게 되받았다.
“그러는 당신들도 검은 편지 결사와 한편이잖소?”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암울한 듯 외쳤다.
“악마와 소통하고・・・・・・ . 더구나…… 더구나…………….”
돌연 아녜스 수녀가 아우구스티노 수사의 앞을 막아서자 그는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 랍비 안나스가 입을 열었다.
“저런. 우리를 검은 편지 결사라고 하지 마세요. 그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조직에 불과하답니다. 소개드리지요. 이쪽은 랍비 가야바, 그리고 이쪽은 내 딸인 율리아.”
랍비 가야바라는 말에 바이올렛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 나 아무도 그녀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용화교의 무색이 소리 쳤기 때문이다.
“이제 다 되지 않았소? 그러면 약속한 것을 일러 주어야지!”
순간 현암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백호가 얼른 현암에게 물었다.
“저들은 검은 편지 결사와 한편이었군요. 알고 계셨나요?”
“아까 백호 씨와 말하면서 안 겁니다. 처음에는 몰랐지요.”
“어떻게요?”
“그들은 안나스의 부적에 제압당해 모든 공력을 못 쓴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전술을 썼답니다. 공력을 정말 쓸 수 없다면 전음을 어떻게 썼겠습니까?”
“그렇군요.”
“아마 처음부터 같은 편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안나스에게 회유당했겠죠. 안나스는 회유의 천재니까요. 나까지도 회유 했으니 말이죠..”
현암의 말에 백호는 깜짝 놀랐다.
“현암 씨를요?”
현암은 쓸쓸히 웃어 보이고 랍비 안나스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당신이 바라던바는 이제 이루어진 것 같군요.”
“물론이죠.”
“당신은 신부님 일행이 여기 있는 것을 언제 알았나요?”
“갇히고 난 다음이었죠.”
“그래서 그들을 이용하기 위해 나를 풀어 준 거겠죠?”
안나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요. 그들이 칼키파의 손님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러니 칼키파는 그들에게 나가는 방법을 일러 주었을 게 분명 하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세 노승을 회유해서 나를 감시하게 했고 말이죠?”
“당신은 참 영리하군요. 그걸 어떻게 알았죠?”
“과찬의 말씀. 만약 무색 화상이 전술을 쓰지 않았다면 나도 속았을 거요.”
무색 화상이 붉어진 얼굴로 현암에게 말했다.
“자네를 속인 것은 미안하네. 하지만 우리는 자네를 해칠 생각 이 없었네. 오히려 자네가 칼키파의 소굴로 혼자 가는 것이 위험 하다고 판단해서 그와 상의해 약간의 연극을 꾸민 거네.”
현암이 무색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되받았다.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죠.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맙구먼.”
“그런데 안나스는 당신들에게 무얼 준다고 했나요?”
돌연 무색의 눈동자가 빛났다.
“간단하네. 아하스 페르츠와 고반다의 목이지!”
그 말에 현암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절할 수 없었겠군요.”
“거절할 수 없었네.”
“안나스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요. 그를 상대하는 것이 아하스페르츠를 상대하는 것보다도 더 힘들겠어요.”
백호가 현암에게 물었다.
“왜 속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 사람은 내 공력이 탈진된 것을 꿰뚫어 보았어요. 하지만 내가 공력이 회복된다면 자기 말을 들을 리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래서 아예 공력을 회복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겁을 준 겁니다.
주술은 억누를 수 있어도, 공력은 인간 각자의 노력의 결정입니 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억누르는 방법이란 건 없어요.”
그 말에 안나스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맞아요. 사실 나는 겁이 좀 났거든요. 나는 아무 힘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나보다 더 겁나는 게 있어서 그런 걸 테죠?”
“당신, 그 이야기가 하고 싶은가요?”
현암은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안나스가 더 겁낸 것은 백호의 존재였다. 안나스는 해박한 지식을 지닌 자가 분명했고, 그 정도 되는 자가 백호에게 블랙 엔젤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모 를 리 없었다. 더구나 세 노승이 안나스와 손을 잡았다면 현암이 백호의 힘을 빌려 아하스 페르츠에게서 벗어난 것도 알았을 터 였다. 그리고 현암 자신이 그것을 백호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 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현암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정말 상대하기 힘들군요.”
“별말씀을. 사실 아하스 페르츠가 와 있는 줄 알았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건데.”
“주술 막이 뚫렸을 테니 말인가요?”
“그래요. 그러나 당신이 같이 있어 주니, 저 무서운 일행도 우리적이 되진 않겠군요. 다행이라 해야겠지요?”
“적이 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지요.”
그 말에 안나스는 너무도 온화하게 웃으며 되받았다.
“당신, 선물까지 주려는 사람을 박대하려는 건 아니겠죠?”
정말 현암은 안나스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그때 까지도 고반다는 준후를 쫓고, 아하스 페르츠는 고반다를 공격 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후는 냉랭한 표정으로 계속 몸을 피했다. 이단심판소 사람들과 검은 편지 결사 사람들이 모두 들어오 자 고반다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랍비 안나스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지금, 주술 막이 깨어졌다고 했나? 그것이 무슨 유리 조 각인 줄 아느냐? 한 번 깨어졌다고 도로 붙지 말란 법이 있는가?” 그 말을 듣자 안나스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했다. “그러나 저 신부님이 주술 막을 뚫는 징표를 지니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지요.”
“그래서 네가 바라는 건 무엇이지?”
“나는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친구들이 바라는 것을 들어주려 할 뿐이죠.”
“그러면 네 친구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안나스가 용화교의 세 노승을 보며 대답했다.
“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두 사람의 머리예요.”
그러고는 이단심판소의 프란체스코 주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들이 원하는 건 저기 있는 궤짝의 소재와 이교도들의 파멸이죠. 그건 이미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어요.”
“이교도라면? 내 부하들 말인가?”
“당신 부하들은 거의 전멸했죠. 그리고 덤으로 검은 지하드와 어새신들도요.”
“너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 말에 안나스는 아하스 페르츠를 가리켰다.
“저분이 도와주었지요.”
현암은 한숨을 쉬었다. 안나스는 너무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였다. 아하스 페르츠는 주술 막을 뚫고 들어오면서, 당연히 칼 키파의 소굴로 향했을 것이다. 그런 그를 칼키파나 검은 지하드, 어새신으로서는 막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고반다와 카르나는 그때 한참 박 신부 일행과 타보트를 놓고 씨름하고 있었을 테니 제대로 지휘가 되었을 리 없다. 아하스 페 르츠는 무적이니만큼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짚단처럼 속속 쓰러졌을 테고, 안나스는 그 뒤를 따라오면서 남은 자들을 섬멸 했을 것이다.
원래 쌍방의 힘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아하스 페르츠라는 변수 때문에 팽팽하던 균형이 무너져 칼키파 측이 전멸해 버린 것이다.
현암은 아직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아하스 페르츠의 출현을 어떻게 알았소? 우연 히 알게 되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공교로운 일인데……..?
그러자 안나스는 하하하고 작은 목소리로 웃었다.
“나는 용화교의 삼대 고승도 회유했고, 강철 같은 당신도 회유 할 수 있었는데, 칼키파 사람들이라고 그러지 못하겠어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카르나가 재빨리 달려와 안나스의 옆에 섰다. 안나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야바와 율리아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분노한 고반다에게서 카르나를 지켜 주려는 것이리라. 그 광경을 보고 아연해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 어 고반다나 아하스 페르츠까지도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고반다가 분노의 외침 소리를 냈지만 안나스는 재빨 리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당신, 나는 당신의 약점을 알지요.”
“이………… 너는…………… 너는…………..”
고반다는 너무도 화가 나는지 말조차 제대로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두 명의 시동이 재빨리 고반 다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안나스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천하무적이라는 고반다도 내 손가락 하나를 못 당해 내는데, 당신들은 무엇을 걱정하나요?”
그러면서 안나스는 그 손가락으로 아하스 페르츠를 가리켰다.
“저 괴물을 그냥 놓아둘 건가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너무도 의외의 일들이 연속해 서 벌어지는지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박 신부와 현암 까지도 얼떨떨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때 아하스 페르츠가 입을 열었다.
“네놈이었구나, 네놈. 내가 주술사들을 미워한 것은 네놈 같은 놈들 때문이다. 벌레 같은 놈들이 언제나 나를 방해하니! 그 정 점에 서 있던 놈이 바로 너였구나!”
안나스는 태연자약했다.
“그런 거야 아무려면 어떤가요?”
“우리는 모두 네놈의 술수에 놀아난 거다. 그래, 너는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겠지. 네놈이야말로 진짜 원흉이며, 흉수니까.”
“나는 닭 잡을 힘조차 없는 보통 사람이고, 아직 한 번도 손을 써서 남을 해친 적이 없는데 어째서 나를 보고 흉수라고 하나요?” “이제껏 내 진정한 적수는 없다고 여겨 왔다. 하지만 너야말로 정말 대단하구나. 내가 인정하지. 아…………. 이천 년이나 살았음 에도 불구하고…”
아하스 페르츠가 탄식조로 말하자 안나스가 재빨리 되받았다.
“나이가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지요. 나도 젊었을 때에 비하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거든요.”
아하스 페르츠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네놈도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을 어쩔 수 있는 사람이 있지요.”
그러면서 안나스는 현암과 준후, 박 신부를 가리켰다.
“이 세 사람이라면, 당신을 반드시 쓰러뜨릴 겁니다. 사실 그럴 자신이 없었다면 내가 여기 나타나지도 않았겠지요.”
그 말에 아하스 페르츠가 싸늘히 웃었다.
“과연 그럴까?”
“분명 될 겁니다. 예언이 그러니까요.”
“예언?”
박 신부와 현암이 놀라서 동시에 소리쳤다. 그러나 준후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지을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에 아하스 페르츠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너도 이건 몰랐을 거다. 너, 내 신분이 무엇인지 아느냐?”
“당신 신분?”
안나스가 태연히 되묻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비명 이 들려왔다. 칼키파와 검은 지하드, 어새신 등이 전멸했다고 하 는데 또 무슨 싸움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피투성이가 된 사람 하나가 엉금엉금 기어와 프란체스코 주교의 앞에 풀썩 쓰러졌다.
“성당・・・・・・ 성당 기사단이 …………….”
그 사내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것을 보고 프란체스코 주교는 안색이 변해 곧 가디언들을 그쪽으로 파견했다. 다만 아하스 페르츠의 공격에 대비해 아녜스 수녀와 시므온, 바오로 수사 등 셋은 그 자리에 남겨 두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아하스 페르츠가 말했다.
“나는 성당 기사단의 보이지 않는 주인이다. 그것을 왜 짐작하지 못했지?”
느물거리던 안나스도 아하스 페르츠의 말에 안색이 변했다.
아하스 페르츠가 코웃음을 쳤다.
“흥? 네가 날뛰어 봐야 내 손아귀에선 못 벗어난다.”
그 말에 현암이 소리쳤다.
“하지만 아홉 기사들 대부분은..”
현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하스 페르츠가 나섰다.
“너는 사람을 너무 잘 믿는군. 내가 타보트를 지키게 할 만큼 충실한 부하들이 네깟 놈들의 말 몇 마디에 정말 넘어갈 것 같았 나? 전부 나를 배반한 건 아니지.”
그때였다. 방금 밖으로 나갔던 세 명의 가디언이 밀리듯 도망 쳐 돌아왔다. 그중 루카 수사는 심한 부상을 입은 듯했다. 그리 고 그 뒤를 쫓아서 몇 사람의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중 맨 앞에 선 거인은 승희와 한 번 부딪친 적이 있었다. 승희는 그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키건!”
키건은 들고 있던 피 묻은 검을 똑바로 세우면서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 여기 있었구나!”
키건은 미친 듯이 음산한 소리로 웃었다.
“흐흐흐. 드디어! 드디어…………… 다시 만나는군!”
승희는 키건의 눈을 멀게 한 일에 대해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웃자 무심결에 박 신부 등 뒤로 숨었다. 키건은 칼로 승희 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도 곧 어둠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거다.”
키건의 뒤를 따라 여러 명의 갑옷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섰다. 뒤이어 후드를 눌러쓴 기이한 옷차림의 노인들이 따라왔으며, 다시 그 뒤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져 있는 듯 웅성거 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연한 표정으로 프란체스코 주교가 입을 열었다.
“키건! 당신은 어째서…………….”
키건이 무뚝뚝하게 되받았다.
“나는 주인의 말에 충실할 뿐이다.”
현암은 키건의 뒤편에 늘어선 기사들을 쳐다보았다. 그들 중에는 지난번 악숨 지하 동굴에서 현암과 해밀튼이 목숨을 구해준 사람들도 몇몇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암을 보자 고개를 돌려 외면했지만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지는 않았다.
그때 현암의 뒤편에서 벽에 기대어 헐떡이고 있던 마하딥이 힘겹게 외쳤다.
“형제들이여 …………! 사실을 알고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저자는…………… 저자는 세상을 파멸시키고 말거요!”
키건이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말했다.
“그건 어차피 결정된 일이다.”
이어서 아하스 페르츠도 한마디 거들었다.
“흥! 여기 있는 자들 중 세상을 파멸시키지 않을 자가 어디 있나?”
현암이 노기 띤 목소리로 외쳤다.
“헛소리!”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아하스 페르츠가 되받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함부로 입 놀리지 마! 지금 이들이 나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여기 몰려온 것 같은가? 그 때문에 타보트를 찾는 것 같아?”
아하스 페르츠는 성난큰곰이 들고 있는 타보트 상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안에 있는 것이 과연 십계명을 부수고 남은 돌 조각뿐일 것 같은가? 나를 위시하여 믿음 없는 사람은 누구나 죽일 수 있다는 그것! 과연 저들이 그것 하나만을 노리고 이 큰일을 벌였을 것 같은가?”
그 말에 박 신부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저 안에는 뭐가 있소?”
아하스 페르츠가 미친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곧 죽을 자들이 알고 싶은 것이 왜 그리 많은가?”
그때 아하스 페르츠가 말하는 틈을 타서 준후가 넘어져 있는 고반다에게로 대뜸 몸을 날렸다. 그러고 나서 고반다에게 뭐라 고속삭이자, 고반다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정・・・・・・ 정말이구나! 정말…………… 너는………………”
고반다는 무척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준후는 침울한 표정으 로 고반다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더 했다. 그러고 는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고반다에게 말 했다.
“저자를 붙잡고 늘어져!”
준후의 손가락이 아하스 페르츠를 향하고 있었다. 그 말이 떨 어지기가 무섭게, 고반다는 총알처럼 튀어 올라 아하스 페르츠 에게 덤벼들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태였다. 고반다처럼 대단한 자가 준후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리라고는 꿈 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하스 페르츠조차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고반다는 미친 듯이 아하스 페르츠에게 덤벼들었다. 아하스 페르츠는 급히 손을 저어 무서운 기세로 공격을 가했지만 고반 다의 오라 막을 뚫을 수는 없었다.
고반다는 아하스 페르츠에게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하스 페르 츠는 그를 피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고반다의 손이 아하스 페 르츠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굴렀다.
아하스 페르츠가 이처럼 낭패의 모습을 보인 것은 아마 처음 있는 일일 터였다. 두 사람은 함께 구르다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신전 지하실에 또 다른 지하실이 있어 두 사람은 그리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곧이어 지하에서 아하스 페르츠의 성난 외침과 함께 주술을 사용하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왔지만, 그는 고반다가 붙잡고 늘어져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때를 틈타 준후가 현암에게 외쳤다.
“어서 여기서 나가요!”
모든 사람들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 움 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너무도 의외의 일들이 연속해서 벌 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반다가 아하스 페르츠를 붙잡고 매 달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정신을 퍼뜩 차린 현암이 박 신부와 다른 사람들에게 외쳤다.
“지금입니다! 나갑시다!”
그 말을 듣자 키건이 소리 높여 외쳤다.
“출구를 폭파해라!”
성당 기사단원들은 출구에 폭탄을 장치해 둔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 모두 다급해져 출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 작했다. 재빨리 이반 교수가 발칸포를 꺼내 성당 기사단 사람들 이 막고 있는 문 근처 천장에 발사했다. 그곳은 아하스 페르츠의 주술로 인해 많이 부서져 있던 발칸포를 맞자 맥없이 무너져 내 렸다.
키건을 위시한 성당 기사단 사람들이 무너지는 돌 조각들을 피해 무의식적으로 대열을 흐트러뜨리는 순간, 성난큰곰이 타보 트 상자를 메고 황소처럼 돌진했다.
몇몇 사람들이 그 앞을 막아서려고 했으나 뒤에서 로파무드가 간디바의 시위를 핑핑핑 하고 세 번 당기자 그의 앞을 막아서려 는 세 사람이 넘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있는 힘을 다해 성당 기사단 사람에게 공격을 가했다. 아하스 페르츠가 언제 다시 튀어나올지 몰라, 모두 힘을 아끼지 않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술수를 사용했다.
성당 기사단원들은 수가 많았으나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만큼 강한 능력자는 거의 없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총을 가지고 있었 지만, 아하스 페르츠가 고반다에게 공격을 받아 지하실로 떨어 지는 것을 보고 그 충격에 틈이 생겨 한데 엉킨 통에 발사할 수 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죽을 각오로 출구를 막 아섰다.
“가브리엘 형제! 폭파 장치를!”
프란체스코 주교가 외쳤다.
가브리엘 수사는 무화 능력을 사용하여 훌쩍 포위망을 돌파한 다음 뒤에서부터 기습하여 몇 사람을 쓰러뜨리면서 폭파 장치를 꺼내던 사람을 붙잡았다.
그를 몇 사람이 막아서려고 하자 아녜스 수녀는 예의 사대 원 소력을 동시에 사용하여 한꺼번에 여덟 명의 성당 기사단 사람 들을 넘어뜨렸다. 그중 두 명은 얼어붙었고, 두 사람은 온몸에 불이 붙었으며, 두 사람은 바람에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두 명 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다음 순간, 볼링장의 핀이 쓰러지듯 출구를 막아섰던 사람 들이 튕겨 나가면서 성난큰곰의 거대한 몸이 출구를 빠져나갔 다. 그의 힘은 엄청나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출 구를 몸으로 막고 있었지만 단번에 밀어낸 것이다.
그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가브리엘 수사를 도와 성당 기사단원 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밖에는 아직도 상당한 숫자의 성당기사단원들이 있었다. 성당 기사단뿐만 아니라 장미 십자회와 프리메이슨도 와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곧이 어 나머지 가디언들을 거느린 프란체스코 주교가 나오면서 금세 혼전이 벌어졌다.
루카 수사는 다친 참이라 프란체스코 주교와 함께 뒤편으로 물러서 있었지만 아녜스 수녀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닥치는 대로 상대방을 쓰러뜨렸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도 오라력을 발하 며 싸웠는데, 특히 바오로 수사와 콤비로 움직였다. 바오로 수사 는 공중 부양 능력자였기 때문에 몸을 공중에 띄워서 위에서 아 래로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므온 수사는 싸우려고 하지 않고 프란체스코 주교, 부상당한 루카 수사와 함께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단심판소 사람들이 출구를 돌파했지만 아직도 지하실에는 많은 성당 기사단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시 대열을 수습하여 출구를 막으려 했다.
그때 랍비 가야바와 율리아는 아무 생각 없는 듯이 가볍게 성 당 기사단의 인파를 돌진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것 같 았는데 그들의 주변에 있던 여섯 명의 성당 기사단원들이 짚단 처럼 쓰러져 버렸다. 그들 모두 즉사하여 숨이 끊어졌으며, 참담 한 표정과 부릅뜬 눈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어 안나스와 카르나는 그 뒤를 따라 재빨리 통로를 빠져나갔다. 성당 기사단원들 몇몇이 가야바 등에게 쓰러지자 윌리엄 스 신부와 이반 교수, 바이올렛 등이 그 뒤를 따라 문을 나섰고 다음으로 용화교의 세 노승이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간 윌리엄스 신부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랍비 가 야바 율리아와 함께 밖으로 나간 랍비 안나스가 뭔가를 땅에서 집어 드는 것이었다. 조금 전 가브리엘 수사가 빼앗아 던진 폭파 장치였다.
“당신・・・・・・ ! 당신은…………..!”
윌리엄스 신부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랍비 안나스는 폭파 장치의 스위치를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