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10화 – 보이지 않는 적 4 : 세상에서 고립되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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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10화 – 보이지 않는 적 4 : 세상에서 고립되는 병


세상에서 고립되는 병

현암이 마침내 한숨을 쉬며 박 신부를 돌아보았다. 통신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또 기계에 대해 약간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에 말없이 지켜보던 박 신부가 물었다.

“뭔가 알아냈나?”

“예, 알아냈다고 하면 알아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면 아닌 건데.”

“뭐 특이한 점이라도……?”

“있죠. 왜 할머니가 준후에게 절대로 아이디를 안 가르쳐 주려고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박 신부가 다가가서 보니 현암은 화면에 떠오른 할머니가 작성한 글들 몇 개를 골라서 보여 주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보고 있던 박신 부의 얼굴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이 할머니, 왜 이러시는 건가?”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나 보죠.”

할머니가 작성한 글들은 거의 다 욕이나 무분별한 비난과 원색적 인 표현 일색이었다. 상당히 많은 곳에 글을 남기고는 있는데 주제 가 뭐든, 동호회든 자유 게시판이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갖가지 불만과 욕설과 비난을 쏟아 놓고 있었다. 표현도 다양하지 않고 주 제 의식도 없어 보였지만 뭔가의 불만과 비난으로 모든 글이 점철되 어 있는 것은 한결같았다.

현암도 푸념했다.

“뭐, 사실 이런 사람들 꽤 됩니다. 이것도 그리 큰 특징은 아니에요.”

“정말인가? 허…………. 어찌 이럴 수 있지? 아는 사람이 본다고 생각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익명이니까요. 자기 이름은 감춰지고 아이디만 남으니, 맘대로 하는 거죠.”

“이거 참. 이렇게 공개적으로 쓰는 글은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보면 그렇습니다만………….”

“정말 이 사람들이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 원색적인 욕을 할 수 있 을까?”

“뭐. 그 집 할머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아니, 그분도 안 되겠 네요. 그러고 보니 그분이라 해도, 이런 시사, 정치 등 모든 분야에 비난을 가하시진 못할 것 같은데.”

“옛날부터 이런 부류의 사람은 항상 존재해 왔지. 사람 사는 세상 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 통신이란 것, 별로 좋지 않군.” 

“좋은 면도 많습니다.”

“아냐. 과거에는 이런 의견이 이렇게 활개 치고 다닐 기회가 없었 어. 가정 교육이라는 틀, 사회 윤리의 틀, 규범과 도덕의 틀에 의해서 말야. 자기 집의 어른이나 연장자조차도 설득 못 하면서 다른 사람 들 앞에서 떠들어 댈 수는 없었거든.”

“근데 그게 이걸로 가능해진 거군요. 익명성 때문에.”

“더구나 소리는 한 번 떠들면 사라지지만, 글은 계속 남지 않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지 않습니다. 정보의 수단으로 잘 이용하고 또……”

“그거야 당연하겠지. 그러나 이런 행동을 막을 규범이 없다는 게 문제라서 그래.”

현암은 할 수 없다는 듯 양팔을 벌려 보였다.

“문제인 줄은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보고 크게 상처받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이렇게 남을 욕함으로서 자기의 괴로움을 덜어 내려고 하는 건지도 몰라. 심리적으로 따지면 이해는 가능한 일이지.”

과거 의사이기도 했던 박 신부가 말하자 현암이 쳐다보았다.

“그런가요? 그럼 이런 것을 무엇이라고 하나요?”

“딱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보통 이런 것이 더 심해지면 간단히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지.”

“어떻게요?”

“‘정신병’이라고.”

“네?”

“정신병이라고 했네. 표현이 거칠게 느껴진다면 ‘세상에서 고립되 는 병’이라고나 할까?”

“아니, 사람들 안 보이는 게시판 같은 데니까 누구를 욕하거나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눈 딱 감고 안 보고 안 읽으면 그만이니 별것 아닐 수도……”

박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네는 이 할머니가 올린 글의 비난의 대상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모양인데.”

“그런 뜻 아니셨습니까?”

“아닐세. 내 생각은 달라. 사실 이런 언행으로 진짜 상처를 받는 것은 대상이 되는 쪽, 욕 먹는 쪽이 아니야. 욕하는 자야말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는 거지.”

“그렇게 되나요?”

“얼핏 외면적으로 보기엔 반대의 경우만 드러나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믿네. 남에 대한 비난과 터무니없는 증오는 자기 자신에 대 한 불신과 불안함에서 오는 거야. 그리고 그것을 폭발시켜 발산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삼는 거지.”

“그건 이해가 갑니다만. 그렇게 발산한다면 어쨌든 기분이라도 풀리지 않을까요?”

“기분이야 풀리겠지만 그렇게 기분을 푸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어 떻게 되겠는가? 상처가 생긴 것이야 안된 일이네만, 문제를 해결하 지 않고 회피하는 방식으로 두면 덧나는 법일세. 버릇이 되면 더더 욱 곤란해지고.”

현암이 대답이 없자 박 신부는 다시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네만, 처음에는 비난을 받는 대상이 기분 상하겠 지만, 진정 위험한 것은 그런 이유 없는 비난에 중독된 사람들이야. 사람은 누구나 모자란 점이 있고 결핍된 부분을 지니고 있네. 허나 그걸 치유하여 건강해지느냐, 또는 모자란 점을 채워 앞으로 더 나 아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람이 크게 되는가, 아니냐가 결정되겠지.”

“그건 그럴 테죠.”

“사람들 스스로 마약을 거부하는 이유가 뭔가? 마약이야말로 사 람에게 좋은 기분을 주는 것인데 말야. 그러나 그렇게 쉽게 쾌감을 얻다 보면 거기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고 결국은 타 락하게 되기에 법으로까지 금지한 거야. 그런데 이런 행위는…………….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 그저 비난을 위해 남을 헐뜯는 행위는 마 약보다 더 문제라 생각하네. 이런 쉽고도 확실한 효과를 주는 비난 으로 그런 감정을 속이게 되면, 치유의 기회,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막게 돼. 결국은 자신은 아무것도 못 하면서 남만 욕하고 모든 것을 대안도 없이 비난만 하는 존재로 타락하겠지. 현암 군, 인간의 타락중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겠나? 욕망? 도덕? 나는 정신의 타락이라 생각하네.”

“무섭네요.”

“스스로는 그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게 더 무섭지. 아마도 상태가 심해지면 당사자는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져서 자신은 항상 정당한 비판만 해 왔다는 변명이나 해 대겠지. 세상과 통하지 못하고 스스 로를 세상과 단절시키게 되는 거야. 힘든 일,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조금만 생겨도 자기 합리화와 비난으로만 대응하는 인간이 대체 무 엇을 할 수 있겠나? 그렇게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키고 나면, 필연 적인 일이지만, 그때에도 그들은 더더욱 격렬하게 세상을 원망할 거 네. 자신은 항상 옳고, 항상 옳아야만 하니까.”

현암은 한숨을 쉬었다.

“너무 심하게 생각하시는 것 아닐까요?”

“글쎄. 내 분명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욕설이나 비난 등의 철없는 행 동을 하는 본인에게 가장 큰 피해가 간다고 말했네. 자업자득이니 사회 문제까지는 안 되겠지만 확실히 쌍방에 모두 피해자는 생기겠 지. 비난당한 사람은 물론 아무것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인생을 망치 는・・・・・・ . 그것도 별생각도, 큰 죄의식도 없이 행한 자기 행동에 의해 서 말일세.”

“말씀이 조금 어렵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욕을 먹는 대상보다 욕을 하고 있는 당사자 가 훨씬 위험하다고 봐. 욕을 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정신이 침식 당하고 좀먹어 들어가고 있는 거지. 물론 정당한 근거에 의한 비판이라면 이런 분석이 통용되는 것은 아니네만. 그리고 나는 이들의 행동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냐. 이건 비난하거나 박멸할 일이 아니 라… 뭐랄까. 치료가 필요한 일이야. 정신과적인 치료 말이네.” 

“이런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일 리는 없을 텐데요.”

“그러니 답답하지. 내가 알기로 중증 정신병 환자 중에 자신이 병 자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실 정신병 치료의 구 할은 치 료가 아니라 설득에 있다고 알고 있네. 치료 자체는 쉬운데,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아 거의 모든 노력이 그 ‘인정’이란 것 하나에 쏟아진 다는 거지.”

“치과나 피부과에 가는 건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왜 정신과는 부 끄러워하는지 저도 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픈 걸 고쳐 건강해 진다는데 왜들 그러는지요.”

현암이 중얼거리자 박 신부는 말했다.

“음? 그거 신선한걸.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 네. 실제로는 약간의 치료만 받으면 나을 수 있는 중증 환자들이 고 집스레 살아가기에 사회 전체가 입는 피해가 몹시 크다고 생각해 왔 어. 벌을 주자는 것도, 놀리거나 모욕을 주자는 것도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 오히려 자네같이 생각하는 게 드문 일이야.”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꼭 필요했나요?”

현암이 말하자 박 신부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가 흥분했던 것 같군. 굳이 준후까지 부리고 단말기까지 구해 가면 서 애썼는데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허탈해서 그만…………….”

현암도 이제는 지쳐 가는지 박 신부에게 말했다.

“그런데 신부님.”

“응?”

“그 집에 이상한 기운이 제일 강했던 게 맞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거참 이상한 일이지. 분명 영적인 기운이 느껴지기는 했는데.”

그때 준후가 옆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 두 사람 사이로 들어오며 말했다.

“영적인 기운요?”

“음, 그래.”

현암은 준후의 말은 넘기고 다시 박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은 그 집에서 비교적 강한 기운이 느껴지셨다는데 저는 모 르겠더라구요. 아시다시피 저는 그런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몸 이니.”

그러자 준후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 신부를 쳐다보았다.

“저도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요?”

“음? 너도 현암 군처럼 영력을 느끼지 못하니?”

“아니에요. 제가 영감 하나는 누구보다도 발달했다고 스승님들이 그러셨어요. 조금이라도 뭔가 있었다면 제가 그걸 발견 못했을 리가 없는데요. 저도 똑같이 그 집에 들어가서 두 시간 동안이나 벌까지 섰었는데요.”

박신부는 조용히 말했다.

“글쎄・・・・・・ 하지만 분명히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어. 내가 말한 영력이라는 것은 사방 어디에서나 희미하게 흩어져 있는 아주 작은 그런 기운들을 말하는 거야. 그 집에서 이상하게 도드라질 만큼 세 게 느껴지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떤 존재 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자취를 찾지 못한다는 거지.”

박신부가 설명했는데도 준후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게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응? 어디가?”

“신부님, 그러니까 이래요. 신부님은 아주 미세한 영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고 하셨는데, 제가 아는 기준에선 그게 그렇지 않거든요. 영적인 기운은 그렇게 아무 데서나 느껴지지 않거든요.” 

박신부가 말했다.

“세상에 생명을 가진 생물은 누구나 조금씩의 영적인 기운을 가지 고 있지 않니. 그러니 그런 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지.”

준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제가 느끼는 건 달라요. 일반적인 사 람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사람의 몸에 깃들어 있는 영혼에 서 영적인 느낌이라는 게 도드라질 리가 없는 거죠. 그러나 순리에 서 이탈하여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는데도 이 세상에 떠도는 영이 나. 또는 다른 세상의 존재가 이쪽으로 넘어왔을 때…………… 그렇게 불 일치가 이루어졌을 때 이지러짐이 생기는 것을 저는 영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라 배웠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경험도 많이 했고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이상한 게 있습니다.”

현암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사실 할머니의 집에 갔을 때, 저도 뒤뜰에서 월향검을 들고 나름 대로 영적인 투시를 행해 봤어요. 하지만 제게도 정말 아무것도 느 껴지지 않았죠. 저는 신부님이 말씀하신 기운이 아주 미약한 것이라 서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준후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이상하네 요. 정말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무슨 말인가, 현암 군. 그럼 내가 잘못 보고 잘못 느낀다는 말이야?”

“아닙니다. 절대 그런 뜻은 아니고요.”

현암은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사실 영적인 기운이 어떤 거라는 게 교과서에 나오는 것은 아니 지 않습니까? 각자의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고, 빨간색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을 여러 사람이 보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 이 느끼는 빨간색과 정말 똑같을 것이라 단정은 할 수 없죠. 주관적 인 감정이니까요.”

“그렇겠지.”

박신부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암은 계속 설명했다.

“그러니 우리가 각각 느끼고 있는 영기나 영적인 기운이라는 것 도, 어떻게 보면 똑같은 게 아닐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준후가 말 하는 영기라는 것은 그런 부자연스러운, 준후의 말에 따르면 자연의 순리에 위배되는 이질적인 존재의 감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제가 보는 영기는 정말로 육신을 잃고 떠도는 영혼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 같고요. 하지만 신부님이 말씀하신 영기는……………?

“나는 그냥 생명체가 본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종의 기운이라고 생각했네만…….”

“그런데 그게 이상하단 말이죠. 그런 일반적인 기운이라고 하면 그 집에서 더 강하게 기운이 느껴진다는 게 말이 되지 않잖아요. 그 집에는 할머니 한 분과 개 한 마리밖에 없으니까요.”

박 신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게 이상해서 그 집을 조사하는 걸세. 그리고 말이야, 나는 실제 로 내가 느끼고 있는 그 기운을 추적해서 여태까지 사람들을 해치는 악령을 여럿 잡아 봤어. 그러니 내가 특별히 잘못 보고 있다고 생각 하지는 않네만.”

현암이 설득하듯 말했다.

“신부님께서 약간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신부님께서 잘못 보 고 있다고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다만 보고 있는 게 서로 다를 가능 성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준후가 악령의 무게를 느낀다고 치죠. 그리고 저는 악령의 겉모습을 본다고 치고 요. 하지만 신부님은 악령의 속마음을 느낀다고 할까요? 이런 식으 로 서로 다른 측면을 보고 느끼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말이 되지 않을까요? 신부님이 생명의 기운 자체라고 판단하신 것도 그 어떤 절대적인 평가 기준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자 박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건 뭐지?”

그 말에는 현암도 준후도 대답하지 못했다. 박 신부도 궁금한 듯 말을 이었다.

“준후와 자네는 그 집에 분명히 어떤 영적인 존재는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제껏 상대했던 영적인 존재에서 느꼈던 어떤 기운을 그 집에서 특별히 다른 곳보다 강하게 받았어. 물론 엄청나게 강한 것 은 아니지만 다른 곳보다는 꽤나 강했단 말이지. 그럼 이게 대체 뭘 까? 어떤 것이 있어서 영적인 존재가 아닌 것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영적인 존재가 없는 곳에서 나타나는 걸까……?”

박 신부의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현암은 날카로운 표 정이 되어 깊이 생각에 잠겼고, 박 신부도 그랬다. 준후도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아무 말도 없 이 한참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현암이 먼저 말했다.

“그러면 일단 신부님이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 로 확인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글쎄. 아까 자네가 이야기했듯이 이건 극히 주관적인 느낌이고 누구와 비교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야.”

“신부님께서는 희미하게 거의 모든 곳에서 느껴진다고 하셨죠? 그 느낌이 말입니다.”

“음, 그랬지.”

“정말 모든 곳에서 느껴졌습니까?”

“아주 폭넓게 퍼져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주 미약한데다 너무 넓어서 내가 그렇게 판단했던 것 같아. 지금 돌이켜 보니…………….. “짚이시는 거라도?”

“내가 속단했을 수도 있는 것 같아. 생명체…… 생명체라. 거의 모든 경우, 생명체가 있는 곳과 악령이 있는 곳에서 느껴지기에 그걸 영혼 그 자체의 기운이라 생각했네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근 거는 없었어. 나 혼자 그렇게 판단했던 거지.”

“그럼 생명체나 악령에게 모두 동일하게 포함되어 있는 기운 자체 를 읽어 내신 게 되나요? 이거 정의 내리는 것만도 어렵습니다만.”

“그런 셈이 되겠지. 그렇다면 그게 꼭 영혼 자체의 기운이라고 단 정할 수는 없을 것 같네.”

“그렇다면 그게 뭘까요?”

단초는 잡았지만 너무 막연했다. 현암은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박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

“왜 그러나?”

“지난번 제게 처음 그 느낌에 대해 설명하실 때, 말씀하시려다가만게 있었죠?”

“그랬던 것도 같군.”

“무슨 말씀을 하시려 했습니까? 혹시라도…………….”

“뭐였더라…….”

박 신부는 깊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갸웃하며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아까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할 때 생각난 게 있는데. 준후는 잘 모르겠지만 현암 군은 아마 알겠지. 내 과거에 대해서.” 

“네. 전에 들은 바 있습니다.”

“그래, 마음 아픈 사건이었지. 미라의 일도 있었고, 당시는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때도 어떤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 악령에 대한 느낌 말야. 또 내가 처음 으로 오라의 기도력을 얻었을 때도 말이지. 나를 비웃고 희롱하던, 성소인 교회까지 침범해서 히죽거린 녀석이 있어. 내가 단식 기도를 올릴 때도 옆에서 끊임없이 떠들어 대던 놈이기도 하고. 그때 나는 교회 안에서 이상한 능력을 보여 동료 사제를 공격하고 기이한 힘을 허락 없이 사용한다 하여 파문당했지.”

“예, 굳이 그렇게 괴로운 기억을 반추하지 않으셔도………… 이미 들 어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 그럴 필요가 있네. 지금 돌이켜 보니 그때부터였을 거야. 나는 그놈을 쫓고 있었던 것 같아.”

“그놈을요?”

박 신부의 표정은 전에 없이 심각했다. 현암은 조심스레 말했다.

“그게 같은 녀석이었습니까? 신부님 말씀대로라면 그때 교회에서 다른 사제분의 몸에 있었던 악령은 신부님이 소멸시키지 않으셨습 니까?”

“그래, 그랬어. 아니, 그랬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지. 현암 군, 나 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때 그 녀석의 기운은 확실하게 없어졌지. 하지만 그게 정말 없어진 것일까? 소멸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죽 음과 같은 것은 아니야. 그리고 영혼이라는 존재는 하나가 사라졌다 고 해도 다른 실체가 있을 가능성도 있는 거야. 나는 그때 분명히 그 놈이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이라 생각했지. 그놈은 없어 졌지만 이후에 만난 다른 녀석들 중에는 비슷한 기운을 가진 것들이 있었다네. 평소 악령이 없는 장소에서도 희미하게나마 기운이 느껴졌지. 그래서 나는 그 기운이 영혼이라면 공통적으로 갖는 기운이라 생각했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라…”

박 신부는 생각을 정리한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공통된 기운이 아니라 내가 지금 생각한 대로라면…………”

박 신부의 말끝이 떨렸다.

“그렇다면 정말 엄청난 존재일지도…………. 내가 상대했던 것, 그리고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은 정말 엄청난 것일지도 몰라.”

현암은 박 신부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청나다니요? 신부님은 극히 미약한 기운만 느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냥 보이지 않는 적 아니겠습니까. 두려워하실 필요까 지는…….”

“아니, 그게 아니야. 내가 왜 아픈 과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 나? 내가 처음 만났던 놈, 그리고 단식 기도를 올릴 때 나를 괴롭혔 던 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소에서 공격했던 놈・・・・・・ . 그것들이 서 로 다른 게 아니라면 뭘까? 그리고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아주 미약 한 느낌이 만약 그놈의 잔재라고 한다면…………….”

“뭔지 모를 그 악령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씀인가요?”

“살아 있다는 개념 자체가 뭔가 잘못된 거야. 이렇게 생각해 보게. 여러 번 모습을 드러낸 것들은 손가락처럼 지엽적인 일부분이라고 생각을 해 보잔 말이야. 만약 그렇다면 내가 교회에서 소멸시킨 것 은 거대한 놈의 손가락 끝일 뿐이고, 실제로는……”

현암은 망연한 눈길로 자신들이 앉아 있는 마룻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신부님의 느낌이 사실이라면, 그놈은 이 땅 전체에 퍼져 있는 겁니까?”

“아니, 이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말도 안 돼.”

“그렇다면 여태까지 신부님이 쫓으신 건 뭐고요?”

“그러니까 나는 결국・・・・・・ 물론 나는 악령을 쫓았고, 여러 악령을 해결했네. 근데 정말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내가 정말 악령을 추적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악령을 추적한 게 아니라 나를 괴롭혔던 어떤 존재의 그림자, 그 느낌을 쫓아 왔던 것은 아닐까? 여태까지 벌 어진 모든 일들조차 그 느낌만을 쫓아 왔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 신부님이 상대하고 쫓은 것이 엄청나게 거대한 존재라는 건가요? 신부님은 어디에서나 가는 곳마다 이런 희미한 느낌을 받으 셨을 거 아닌가요?”

“그래. 만약 그렇다면 이건 지금 우리나라 전체에 촉수를 내리고 있는 엄청나게 거대한 존재일 수도 있는 거야.”

박 신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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