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16화 – 준후의 학교 기행 5 : 옥상에서
옥상에서
준후가 곤경에 빠진 교실은 3층이다. 교실의 창이 면해 있는 담아 래 1층에서 현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준후가 걱정되 어서 현암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더구나 박 신부는 아이들이 뛰 어놀아야 할 운동장에 차를 주차해 놓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차를 몰고 일단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걱정되어도 수업중인 교실 근처 에 있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머리를 써서 준후를 관찰하기 위해 택 한 장소다.
3층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1층에서 엿듣는 것은 굉장히 어 렵고 거의 모든 공력을 순환시켜야만 가능한 일이다. 귀를 자극하는 혈도에 별도로 공력을 집어넣을 수 없는 현암은 그나마 공력이 돌아가는 팔에다만 무식할 정도로 공력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그러면 그 반작용 때문인지, 희미하게나마 혈도가 자극을 받아서인지 몰라도 귀가 훨씬 더 예민해지는 것이다. 물론 공력 소모가 막대했기 때문 에 함부로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아, 이거 정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교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가지고도 현암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세한 것까지는 몰라도 준후가 혼나는 것이나 매 맞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는 일이고, 나서 서 설명하기도 그렇다.
‘전학 온 첫날부터 담임 선생님에게 저렇게………… 허…… 준후가 대단한 건가? 아니, 아니 이게 다 오해 때문인데, 알고 보면 굉장히 착한 녀석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낯선 청년이 안절부절못하며 으슥한 곳에서 꼼짝도 않고 계속 서 있자 의심을 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국민학교에 성인이 드나들 지말란 법은 없지만 저렇게 담장 밑에 오래 뿌리박은 듯 서 있는 일 은 거의 없다. 지나가는 선생님들이나 교직원들도 조금씩 흘낏거리 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자리를 떠날 수 없 었다. 제아무리 공력이 강하고 귀가 밝다 해도 엿들을 수 있는 거리 에는 한계가 있으니 이 자리를 떠나면 준후의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리를 떠날 수가 없는데, 사람들이 의 심스러워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현암은 비록 어른이었지만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탓에 허름한 옷차림이었고, 나이도 학부모로 보기엔 너무 젊었다. 결국 학부모나 관계자라기보다는 ‘지나가는 부랑자’로 보일 공산이 컸다.
교실 안에서는 준후가 아이들에게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고, 교 실 밖에서는 현암이 어른들에게 비슷한 눈총을 받고 있는 셈이다. 현암도 의심스러워하고 흘낏거리는 눈빛들이 거북했지만 그보다는 준후가 걱정되었기에 억지로 참았다.
‘원, 이건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드네.’
하지만 준후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잠시 나 갔다가 들어온 뒤로 (틀림없이 눈물을 보였을 것이다.) 준후를 무시 하다시피 수업만 진행해 갔다. 이제는 준후에게 무엇을 시키지도 않 았다. 그다음 시간은 산수였는데, 준후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다른 모든 과목들 중에 제일 자신 없는 것이 바로 이 요상한 (아라비 아 숫자라는) 기호로 가득한 산수였기 때문이다. 수의 개념을 모르 는 바는 아니지만 각종 기호와 도형까지 그려 가며 진행되는 수업은 준후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이건 도대체 원리부터가……………. 이건 꼭 주술과 같은 느낌이 드는 데. 아니, 이건 주술이 아니지, 그럴 리 없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뭔 가가 비슷해.’
다른 수업과는 다르게 이번만은 준후도 멍하니 앉아 잡생각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이 되자 마침내 사달이 났다.
아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현암은 점심시간이 되자 달음질치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준후의 교실로 올라갔다. 어떤 핑계를 대서든 준후와 만나서 뭔가 조언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재잘대며 도시락을 먹고 있는 교실 안에 준후의 모습은 없었다. 분명 도시락은 만들어 주었다. 낯선 환경에서 돌아 다닐 성격도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수련 덕에 마음만 먹으 면 며칠이라도 화장실조차 가지 않을 수 있는 준후가 굳이 ‘점심시 간’으로 정해진 시간에 이유 없이 다른 곳으로 나갔을 리가 없다. 그 리고 그럴 만한 이유라는 것은…………. 현암은 급히 반 학생을 하나 붙 잡고 물어보았다.
“저, 여기 장준후 학생 어디 갔지?”
“장・・・・・・ 장준후요?”
아이가 멍하니 말하자 현암은 조급해져서 다시 캐물었다.
“얼굴 하얗고, 그, 왜, 오늘 전학 온 학생.”
“아……!”
아이는 순간 반응을 보였으나 겁먹은 듯 고개를 돌렸다.
“모르겠는데요?”
분명 뭔가 아는 것 같았지만 다그칠 수도 없다.
‘어떻게 된 거지?’
현암은 답답해서 발을 굴렀지만 그 시간에 준후는 학교 옥상에 올 라가 있었다. 물론 그 반의 짱, 혹은 대빵인 성철에 의해 반 강제로 끌려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성철의 입장에서의 이야기고, 준후는 다만 누군가가 같이 가자고 하니 태연히 따라나섰을 뿐이다.
“하, 이거 뻗대는거 봐라?”
성철이 너무나도 명백한 시비조로 말을 걸어 오자 준후도 그제야 성철 패거리가 좋은 의도로 자신을 불러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상황이 낯설어서 그렇지 준후는 결코 눈치 없는 아이가 아니다. 준 후에게는 이들이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어리석고 가련하게만 보 였다.
준후가 나름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너희는 폭력으로 나를 겁주겠다고 하는 거니? 이 런 방식으로는 어떤 문제에서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겠어?”
성철 패거리가 아무리 국민학교 3학년이라고 해도 준후의 말뜻을 못 알아듣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게 풀어서 이야기할 말주변과 경험 이 없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준후의 말은 비록 어조도 조용하 고 특별히 시비 거는 말투도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고깝게만 들릴 뿐이었다.
“너 이 자식. 전학 온 첫날부터 되게 나댄다. 응?”
성철은 나름대로 있는 힘껏 인상을 쓰며 준후를 겁주려는 듯 말했 지만 준후에게는 그저 딱하게 보일 뿐이었다.
‘어찌 이렇게도 무지몽매할 수가 있나. 사리분별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준후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이들과 같은 수준의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통하리라. 분명 겁 먹을 것이고, 맞는 게 무서워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보 다 몇천배는 무서운 존재들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준후로서는 이들의 협박은 가소로울 뿐이었다. 하루 종일 두들겨 맞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신도 있다. 그런 육체의 고통 따위는 가볍게 흘려 버릴 정도로 단련받은 준후다. 때문에 아이들이 가소롭게 보이 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으로밖에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르는 이 아이들이 가련하기도 했다. 정말 좋은 마음으로 준후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불경 이야기를 들려주려 입을 열었다.
“너희들, 석가모니께서 아난존자께 설법하시기를……..?
그러나 준후의 좋은 의도는 시도도 해 보지 못하고 깨어졌다.
“아난존자? 씨발, 그게 뭐냐? 몹”이냐?”
준후는 그게 뭔지 몰랐다.
“뭐?”
“이 자식이 무슨 게임 이야기하냐?”
성철이 소리치는 순간, 준후는 이들과의 대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말씀도 이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게임이겠구나.’
그 게임이라는 단어조차도 현암에게 들어 간신히 뭔지만 아는 것이지 해 본 일은 없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었지만 준후와 이들과의 간극은 그 정도로 떨어져 있었고, 달라도 너무 달랐다.
대화라는 것도 기본 전제가 어느 정도 공유될 때 가능한 것이지, 아예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보고 있는 이들끼리 대화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들의 단순함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기는 싫 다. 이미 다 알아 버리고 깨달은 것을 억지로 뒤로 돌려 무지해질 수 는 없기 때문에.
준후는 답답함을 넘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라는 것은 이런 건가? 그렇지, 어리니까. 어리고 배워 나가는 중이니까. 그런데…………….’
준후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러면 나는 뭐야……………’
준후는 문득 서글퍼졌다. 자신과 세상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벽 이 이제는 손에 잡힐 듯 확연하게 실감났다. 서글퍼진 준후의 귀에 는 성철이 뭐라고 으르렁대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준후 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자 자신감이 생긴 성철은 시비조로 준 후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주먹까지 쥐고 준 후의 얼굴을 포함한 여기저기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맞고 있는 준후는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맞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는 했지만 이런 작은 아픔 정도는 그냥 무시해 버렸다. 아이들이 솜 주먹으로 때리는 것 정도야 준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준후는 가만히 생각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현암 형이 왜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지 이젠 알 것 같아. 나는 역시……………..’
석가모니의 제1수제자.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류의 괴물, 몬스터,
이제는 박 신부와 현암이 학교에 가는 것을 말린 이유도, 그리고 그 말이 정말 자기를 잘 알고 염려했기에 한 말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았다. 그동안 성철의 패거리는 준후가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맞고 만 있자 흥분한 듯 아예 떼로 몰려 두들겨 팼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 는 두들겨 팬 것이지만 그래 봤자 아이들이다. 마음속에 은근한 두 려움이 있어서인지 전력으로 때리는 것도 아니고, 또 전력으로 때린 다 해도 아파할 준후도 아니다. 그러나 한 대 한 대의 손이 스치고 지 나갈 때마다 준후는 마음속에서 울려 나오는 또 다른 아픔에 전율해 야만 했다.
‘그래, 아이들은 원래 이런 거지. 아직 모르고 철없고, 자기가 무 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나는……………. 도대체 나는 뭣 때문에……..’
준후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깨닫지도 못했지만 이미 자 기보다 덩치가 큰 몇몇에게 떠밀리고 맞은지라 준후의 몸은 벌써 바 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꼼짝도 않고 있던 준후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자 기세등 등하게 때리던 성철 패거리가 오히려 흠칫하고 놀라 뒤로 주춤 물러 섰다. 준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태까지 태연하게 맞고만 있던 준후의 눈빛이 번뜩이자 성철 패거리는 뭔가 섬뜩함을 느꼈다. 오히려 아이이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주술을 쓴 것 도 아니고, 염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었다. 허나 치뜬 눈초리 하나만 으로 순식간에 모든 분위기가 변했다. 그 눈빛은 안광을 내쏘는 것 도, 불이 번쩍거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성철 패거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중에 ‘촉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한 아이는 놀란 나머지 비틀대며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촉새가 넘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가장 덩치 가 큰 성철조차 이유 모를 두려움에 떨며 옥상 문 쪽으로 달아났다. 준후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옥상 한구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넘 어졌던 아이는 공포에 질려서 울음을 터뜨리며 거의 기다시피 옥상 문 쪽으로 달려갔다.
준후는 아이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 아이들이 때렸다고 감 정이 생긴 것도 아니다. 준후에게는 그냥 지나가던 소나기를 맞은 것과 같았다. 그런 준후가 일어나 걸음을 옮긴 것은 다만 옥상 구석 에서 뭔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이 볼 수 있는, 그리고 자기만 이 느낄 수 있는 것…………. 준후는 절망 속을 헤매다가 뭔가를 찾아낸 듯한 신선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