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워커 3권 – 6장 잊혀진 것을 부르는 목소리 6

퓨처 워커 3권 – 6장 잊혀진 것을 부르는 목소리 6


6

신스라이프는 피로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력을 무시하며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신스라이프는 주블킨과 똑같았다. 발은 허공을 딛고 눈은 무의미를 보고 있었다. 귀로 소음을 들으며 입으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스라이프는 거기 서 있었다.

신스라이프는 자신을 향해 고함을 지른 할슈타일 후작을 바라보았다. 후작은 이를 사려 물며 신스라이프를 마주보았지만 신스라이프는 거만하게 후 작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저놈이!”

후작이 검을 뽑아든 채 달려들지 않은 까닭은 그가 바닥도 보이지 않는 구멍의 상공에 떠 있기 때문이었다. 후작은 두 손으로 롱 소드를 부여잡은 채 신스라이프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신스라이프는 태연하게 그를 외면하며 주블킨을 보았다.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을 때 주블킨은 그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햇빛 찬란한 날이군. 이런 날이기를 원했지.”

“예?”

신스라이프는 우울한 표정으로 주블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말했을 때는 주블킨도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콜리의 프리스트인가.”

“그,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넨, 혹시 다르말 일레드마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주블킨은 무릎을 꿇고 싶었다. 발 아래 땅이 있었다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제 아버님이십니다!”

“아아, 다르말의 아들인가. 자넨 아버님을 몹시 닮았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경악을 넘어선 경악 속에 주위는 고요했다. 할슈타일 후작은 적의 어린 시선으로 그 둘을 쏘아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보기 좋군. 우애로운 사교 생활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 기어올라 왔느냐.”

그러나 신스라이프와 주블킨은 다시 후작을 무시했다. 후작은 급성 위궤양에 걸려 비명을 토하며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둘을 쏘아보았지만, 둘은 여전히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다르말의 아들이 이토록이나 늙었다면, 그 동안 많은 시간이 경과한 모양이군.”

“66년입니다. 신스라이프!”

“오……, 66년이라고.”

신스라이프는 경악인지 감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신음을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았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는가.”

“예. 그러실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새로이 배워 익히실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또한 생겨났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래. 알았네. 일단 땅을 디뎌보도록 하세. 그래야만 내가 살아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군.”

“아, 알겠습니다. 네. 신스라이프.”

주블킨은 재빨리 허공을 미끄러졌다. 그는 군중들이 서 있는 쪽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콜리의 프리스트들이 도열해 있 었다.

주블킨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구덩이 곁에 엄숙하지만 흥분된 얼굴로 서 있는 자들은 매일같이 만나는 푸줏간 주인이 며 구두장이에 대장장이들이었다. 그리고 초라한 몰골의 거지에 수레꾼에 마구간 허드렛일꾼들이었다. 붉은 코를 가진 양조장 주인은 아예 펑펑 울 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바로 콜리의 프리스트들인 것이다. 66년 동안 자신들을 숨겨왔던, 그리고 이제서야 태양 아래 당당히 서서 오래된 약속의 현 장에 와 있는.

콜리의 하이 프리스트 주블킨 일레드마는 그들 모두를 한 명 한 명 얼싸안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노라고, 형언할 수 없는 그 노고를 치하해 주고 싶었다. 그들은 그런 치하를 받아 마땅하다. 어떤 자가 66년 동안…….

그들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다.

주블킨은 당황했다. 그들 콜리의 프리스트들이 마치 비명을 지를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뭐지? 주블킨은 땅에 서서는 그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형제들이여, 무슨……?”

“하, 하이 프리스트! 뒤를 보십시오!”

뒤라고? 주블킨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경악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신스라이프는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관이 그를 가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스라이프는 주블킨의 뒤를 따라 허공을 미끄러지려 애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 지만 그가 땅 쪽으로 다가올 때마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가로막는 것처럼 그의 비행이 저지되었다. 신스라이프는 당혹과 분노로 사방을 향해 날 아갔지만 그때마다 그의 비행은 고통스럽게 저지되었다. 신스라이프는 두 주먹을 쥐어 올리며 부르짖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주블킨은 눈이 튀어나올 듯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찌된 거지? 어째서 신스라이프가 땅을 밟을 수 없단 말인가? 땅을…………, 땅이? 땅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블킨의 무릎이 볼썽사납게 떨리기 시작했다. 대지와 회상의 시무니안은 유피넬과 헬카네스의 법칙을 어긴 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좀비 는 땅에 누울 수 없는 몸으로 영원히 떠돌아다닌다. 시체는 누울 수 있어도, 살아 있는 시체는 땅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 하지만 왜? 시, 신스라이프는 부활했는데, 그, 그는 시체가 아냐. 그런데, 그런데 왜?”

주블킨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신스라이프는 여전히 격노한 얼굴을 한 채 사방으로 움직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허공에 부딪히며 물러 나는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그때 주블킨의 중얼거림을 들은 프리스트 하나가 재빨리 다가서며 숨 막히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하이 프리스트, 하이 프리스트! 지금까지, 지금까지 몇 명이었습니까?”

주블킨은 다시 경직해 버렸다. 조금 전 그가 떠올렸던 의문이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일곱 명이다. 여덟 번째 사나이가 그 문제를 파괴해 버렸다. 주 블킨은 어이없는 눈으로 계단 위의 할슈타일 후작을 바라보았다. 후작은 여전히 검을 단단히 쥐고 있었지만 그 역시 의아한 눈으로 신스라이프를 바 라보고 있었다.

“이건 뭐야. 66년 동안 잠들었던 자의 코미디인가?”

신스라이프는 허공에 갇힌 채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블킨을 쏘아보며 노성을 터뜨렸다.

“이 미련한 놈! 이게 무슨 일인가, 설명하라!”

“하, 한 명이………….., 한 명이 모자랍니다. 마지막 하나가……………. 저자를 잡아라!”

더듬더듬하던 주블킨의 목소리가 마지막에 가서는 찢어지는 비명처럼 바뀌었다. 주블킨은 계단 위의 후작을 가리키며 고함질렀고, 그러자 콜리의 프리스트들은 살기 어린 얼굴을 후작에게 돌렸다. 그들 모두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계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의 신스라이프 역시 거세게 몸을 돌려 분노에 찬 시선으로 후작을 쏘아보았다.

“이놈들이…………!”

후작은 그들을 흘긋 보고선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뒤로 몰리면 계단참 위에 고립될 뿐이다. 저택 안으로 도망칠 것인가? 하지만 그럴 경우 궤헤른과 합류하기 어려워질 뿐더러, 내부도 모르는 저택 안에서 도주도 쉽지 않을 것이다. 후작은 이를 악물며 검을 세워들었다. 그러나 콜리의 프리스트는 검광을 보자 더욱 흥분하며 서로를 짓밟을 듯한 격한 동작으로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그 자리에서 멈춰! 한 녀석이라도 움직이면 신스라이프는 죽는다! 젠장, 협박 치고는 이상하잖아. 죽은 자를 또 죽이겠다니. 설명하기 귀찮으니 대 충 알아먹기를 바라겠다!”

후작은 고개를 쳐들었고 달려들던 콜리의 프리스트들 역시 허공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주블킨은 기막힌 표정으로 군중들의 머리 위로 솟아오른 사내를 바라보았다.

“마법사?”

군중들의 머리 위 상공 10큐빗 정도의 높이에 한 사내가 떠 있었다. 평범한 옷차림에 평범한 얼굴, 하지만 공중에 떠 있는 것으로써 신스라이프의 독보적인 위치에 도전하고 있다. 게다가 머리 위로 들어올린 그의 오른손 위에는 작열하는 불덩어리가 떠 있었다.

오른손에 받쳐든 불덩어리는 맹렬한 소음을 내며 타오르고 있었고, 그 때문에 사내의 얼굴과 상체는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늘어진 앞머리 는 붉게 타오르고 있지만 그 아래 얼굴은 어둡다. 그 어두운 얼굴에서 두 눈만이 반짝이며 콜리의 프리스트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이 가공할 불가사의의 연속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내는 왼손으로 신스라이프를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부활을 축하드리지요. 하지만 66년 만에 일어나서 이걸 맞고 잠들게 되면 당신도 참 허무할 거요. 그렇잖습니까? 이건 딜레이드 파이어볼이라는 거요. 파이어 차크라의 극한 회전수에서 임계점을 유지하며 알파 3급수를 이용해 억제하면 되는 거지. 이론만이라면 머저리 견습생도 설명할 수 있 는 간단한 거야. 실제로는 좀 어려운 거지. 회전수를 포착하는 것이 조금 어렵거든. 오우, 젠장! 나는 약장수가 아닙니다. 조금 흥분했을 뿐이지. 하지 만 이런 상황에서 횡설수설하는 거야 이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대로 말해서 나는 지금 바지를 적실만큼 흥분했단 말입니다. 아아,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적셨다는 말은 아니고.”

신스라이프는 수염을 흩날리며 외쳤다.

“웬 놈이냐!”

“레이저라고 불러주슈. 그리고 거기 할아버지들, 콜리의 이름으로 맹세하겠는데, 당신들이 조금만 움직이면 나는 이걸 던질 거야! 그리고 친절한 레 이저의 상냥한 조언 한 마디. 나는 자제력이 약한 편이야. 아시겠어들? 숨도 너무 크게 쉬지는 마시지! 놀라서 던져버릴지도 모르는 거 아니오.” 주블킨 일레드마가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콜리의 프리스트들은 손바닥 위에 불덩어리를 띄워놓고 협박하는 마법사를, 비록 그가 횡설수설하 고 있다고 해도 무시해 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으르렁거리며 손에 든 로드들을 움켜쥐었지만 레이저의 말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레이저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왼손을 이마로 가져가 땀을 훔쳐냈다.

“어, 제기랄. 덥기도 하다. 머리 위에 불을 이고 있으니 안 더울 수가 있나.”

신스라이프는 이런 수작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원하는 게 뭐냐, 말해라!”

“아아, 이야기.”

“이야기?”

“고양이와 꿈의 콜리의 신실한 지팡이들이여. 당신들의 성공은 일단 축하하겠어. 대륙의 어떤 종단에서 이런 위업을 해낼 수 있을까. 당신들은 66년 의 시간을 무의미로 돌리고 생사의 갈림길을 역전시켰어. 잊혀진 것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지요. 박수 쳐 드리고 싶지만 지금 오른손이 바빠서. 그런 데 말이야, 설명 좀 해주시구려. 나는 이 사태가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태들과 연관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거든? 여보슈, 주블킨이라고 했지요?”

그렇다!”

“좋아요. 설명 좀 부탁합시다. 그덴 산의 거인의 부활은 신스라이프 선생의 부활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갬블러 행동 강령 위반이야. 숨 막히는 상황 속에 몸 전체를 던져 넣은 레이저였지만 그의 머릿속 한적한 곳에서는 이런 말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내가 마법사라는 것은 이제 헤게모니아에서는 모르는 녀석이 없게 되었군. 갬블러 끝장이다. 어디 한적한 곳에 숨어서 배추나 키워볼까.

“그덴 산의 거인이라고?”

주블킨은 의혹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 이상한 목소리로 레이저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리고 레이저는 도박사였다.

“시간을 끄시나? 그런 행동을 내 질문에 대한 긍정으로 생각해도 되는 거요?”

“자, 잠깐 기다려라. 마법사 레이저. 그러니까….”

“젠장맞을, 설명햇! 나는 지금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며 동시에 신경질이 나서 죽을 지경이란 말이야! 내가 진짜 죽기라도 하면 어떤 프리스트라도 내 사인을 밝혀내진 못할 거야. 당신도 이 위치에 올라와 봐. 우와, 짜릿할 정도로 부끄럽네.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야. 때론 그렇다는 말이지. 게다가 죽은 녀석이 부활하는 거, 일단 마음에 안 들어. 그것만으로도 이걸 던지고 싶어!”

신스라이프는 수염이 꼿꼿이 설 정도로 노기를 띠고 레이저를 쏘아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흥분한 레이저로 하여금 이성과 감성의 경계선 을 넘어서게 만드는 것은 너무 쉬워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레이저가 원한 것도 그것이었다. 레이저는 일부러 횡설수설함으로써 신스라이프와 콜리 의 프리스트들을 제자리에 묶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후작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아아압!”

후작은 거친 고함 소리를 내지르며 콜리의 프리스트들의 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뛰어오른 할슈타일 후작은 발에 닿는 첫 번째 경비 대원을 그대로 걷어찼다.

“커헉!”

경비대원은 캐터펄트에 직격당한 꼴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비행은 짧았고 충돌은 격렬했다. 계단 위에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서 있던 경비대원들 은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렸다. 다시 계단을 밟으며 후작은 맹렬하게 고함질렀다.

“궤헤른!”

궤헤른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갑니다! 가이버! 니크! 나를 따르라, 후작님을 구해라!”

“으아아아!”

가이버와 니크는 뽑아든 검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격노한 콜리의 프리스트들은 흉흉한 기세로 궤헤른의 앞을 막아섰지만, 그들은 프리 스트였고 가지고 있는 무기들도 로드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어디까지나 푸줏간 주인이며 대장장이며 농사꾼이었다. 반면 궤헤른과 가이버, 니크는 이 머나먼 땅까지 도망친 단련된 칼잡이들이었고 그들의 실력을 발휘하기에 가장 적절한 도구도 가지고 있었다. 연속적으로 비명이 터지며 핏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레이저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호통을 질렀다.

“이이익! 움직이면 이걸 던지겠다고 했잖아!”

“던져!”

“뭐라고?”

레이저는 얼빠진 얼굴로 할슈타일 후작을 바라보았다. 후작은 앞을 가로막는 경비대원들의 창을 쳐내며 고함지르고 있었다.

“너! 산 자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그걸 던져!”

“안 돼! 던지면 안 돼!”

주블킨 일레드마 역시 마차에 꼬리가 깔린 고양이보다 더 사납게 고함지르고 있었다. 레이저는 이 복잡한 상황이 싫었다.

“제길, 뭐가 이래?”

하늘을 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손 위에 불덩어리까지 고정시켜 두었기 때문에 레이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한편 허공에 갇힌 신스라이프 역시 무 력감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되씹으며 레이저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후작은 경비 대원들을, 그리고 궤헤른 일당은 콜리의 프리스트들 을 상대로 건전한 사회와 화목한 인간관계를 꿈꾸는 이들의 악몽 같은 장면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젠장! 뭘 알아야 던지든지 말든지 하지, 이런 상황에서 무슨 판단력을 발휘하라는 거야!”

곤혹스러워하는 레이저에 비해 볼 때 경비 대원들은 신바람이 날 지경이었다. 그들은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할슈타일 후작은 그들을 공격해 들어왔 고, 따라서 아프게 때려주고 싶은 녀석이며, 그들은 그 감정대로 행동했다.

턴빌 경비대원들은 험악한 욕설과 고함을 내지르며 계단 위로 뛰어올라 갔다. 하지만 높은 곳에 위치한 후작은 가공할 힘을 발휘하며 경비 대원들 을 쳐내리고 있었다. 경비 대원들 중 한 명이 삼엄한 기합 소리와 함께 포차드를 내질렀다.

“하으아압!”

“무례한 놈! 감히 누구에게!”

후작은 포차드를 손으로 받아낸 다음 그것을 잡아당겼다. 경비 대원은 비명을 지르며 계단 위에 쓰러졌다. 후작은 롱 소드를 경비 대원에게 집어던 지고는 두 손으로 포차드의 끝을 쥔 다음 사방으로 휘둘러대었다. 퓽퓽! 일순간 계단 위에 끔찍한 원들이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돌계단에 포차드의 날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어올랐다.

경비대원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발 뒤는 계단이었고 경비 대원들은 다시 한 덩어리가 된 채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졌 다. 그리고 후작은 포차드를 옆구리에 비껴든 채 쓰러진 경비 대원들을 짓밟으며 달려내려 왔다.

콜리의 프리스트들도 난처한 처지에 빠진 것은 경비대원들과 마찬가지였다. 기다란 로드로 찌르고 후비고 휘둘러댔건만 후작의 전사들은 입을 굳 게 다문 채 칼로 쳐내고 허리를 뒤틀어 피하며 육박해 들어왔다. 전사들이 접근하자 길고 무거운 로드는 오히려 방해물이 되었고 콜리의 프리스트는 무력한 턴빌 시민의 모습으로 쓰러져갔다. 가이버는 한 프리스트에게서 로드를 빼앗아 든 다음 로드는 이렇게 쓰는 법이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으로 휘둘렀다.

“끄아아압!”

노련한 전사의 손에 쥐어지면 테이블 다리도 명검에 필적한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전한 공격이 허공에 그려지자 콜리의 프리스트들의 갈빗대 가 박살나며 끔찍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가이버 역시 당혹해야 했다. 로드에 부딪힌 콜리의 프리스트들이 쇳소리를 내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 자식들, 갑옷을 입고 있다!”

가이버의 외침과 동시에 니크와 궤헤른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분명히 치명상을 입혔다고 생각한 상대가 단지 조금 휘청였을 뿐, 다시 사나운 외 침과 함께 공격을 재개해 왔다. 찢어진 옷자락 아래에서 반짝이는 금속광을 보며 궤헤른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윽고 열린 그의 입에서는 같은 신을 섬기는 자들에 대한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잔인한 말이 터져나왔다.

“베지 말고 찔러!”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지금 하고 있는 그 흉측한 짓들 멈추지 못해!”

레이저는 발악하듯 고함질렀지만 후작과 그의 전사들은 레이저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공격이 계속되는 한 턴빌 경비 대원들 과 콜리의 프리스트들 역시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 모든 것들이 피와 비명, 그리고 널브러진 시체의 파국으로 끝나 버릴 것 같은 암담한 상황 속에서 주블킨은 재빨리 행동했다. 주블킨은 손을 내밀어 후작을 겨냥했고 순간 후작은 짙은 불안감을 느꼈다.

“홀드 퍼슨!”

‘덜컥!’ 하는 소리가 났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경비대원들을 짓밟으며 달리던 후작이 갑자기 멈춰 선 것이다. 눈에는 불신감을 가득 담고 벌어진 입술도 닫지 못한 채 할슈타일 후작은 동상처럼 멈춰 서서는 주블킨을 바라보았다. 니크는 비명을 터뜨렸다.

“후작니이이임! 저놈이 마법을!”

주블킨은 곧장 달려갔다. 후작이 집어던진 롱 소드를 주워든 주블킨은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후작의 목에 롱 소드의 날을 가져가며 외쳤다. “움직이지 마!”

“저 할아버지가 누구 흉내를 내는 거야? 어쨌든 잘하는 일이지만.”

레이저는 감탄처럼 말했지만 궤헤른과 가이버, 그리고 니크는 별로 감탄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궤헤른은 관자놀이에 상당한 열기를 느끼며 멈춰 서야 했다. 가이버와 니크 역시 주위를 매섭게 바라보면서도 검을 눕히며 자세를 낮추었다. 결국 레이저가 신스라이프를 인질로 콜리의 프리스트들을 억누르고 주블킨이 후작을 인질로 후작의 전사들을 억누르는 2중 인질극이 되고 나서야 숨 가 쁘게 진행되던 사태는 파국의 끄트머리에서 간신히 멈춰 섰다. 레이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주블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블킨의 머릿속에서 이 상황은 2중 인질극이 아니었다. 그는 할슈타일 후작의 전사들보다는 오히려 레이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레이저의 손이 조금만 움직인다면 신스라이프는 화형을 당하기 위해 66년 만에 간신히 부활한 꼴이 될 것이다. 주블킨은 레이저를 진정시킬, 혹은 제압할 방법을 고 민하며 뇌를 혹사시켜 보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마법사를 제압할 방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당장이라도 칼부림을 재개할 듯한 표정으로 쏘아 보고 있는 후작의 전사들도 큰 골칫거리였다. 주블킨은 자신이 상당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씁쓸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쳉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2중 인질극이니 66년 만의 부활이니 하는 것이 아예 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사람들 사이를, 태평하다는 것 때문 에 더 괴상해 보이는 얼굴을 한 채 뚜벅뚜벅 걸어간 다음 한 사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땅에 무저갱이 뚫리고 66년의 죽음을 뛰어넘은 자와 불덩어리를 가지고 노는 자가 허공에 떠 있고 넓은 계단에는 유혈과 쓰러진 사람들이 가득한 상황이었기에 이 말도 상당히 괴상했다. 그래서 사무엘은 얼빠진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돌렸고, 쳉은 사무엘의 콧잔등과 자신의 주먹 중 어느 것이 더 단단한지 비교해 보았다(물론, 사무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고.).

뻑! 맞는 사무엘로서는 고통도 느낄 수 없는 일격이었다. 코가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사무엘은 히죽 웃을 정도였다. 반짝이는 별, 별, 별, 사무 엘은 그 별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듯한 동작으로 나가떨어졌다.

“청!”

미는 숨 막히는 얼굴로 쳉을 올려다보았지만 쳉은 그녀가 더 이상의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리고 미 역시도 더 이상 다른 말을 꺼내고 싶 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미는 자신을 끌어안는 쳉의 팔 안에 몸을 던져 넣으며 그 목에 매달리듯 안겨들었다.

포옹은 격렬했다. 쳉은 미를 자신의 가슴 속으로 집어넣겠다는 듯이 그녀를 힘 있게 끌어안았고 미 역시 숨이 막혀 헐떡거리면서도 얼굴 바로 앞에 있는 쳉의 가슴을 수천 큐빗쯤 떨어져 있는 것이라도 되는 양 안타깝게 끌어당겼다. 조금 후, 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던 쳉은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미,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응, 으응, 쳉, 쳉.”

“내가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이어도 내 인생은 충분히 값지다는 거야, 미.”

열기와 호흡 곤란으로 미는 쳉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POG 상단의 호위 무사 쳉이 말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자기 부정이었 다.

미는 미래를 안다. 그렇다면, 미의 입장에서 쳉이 이 순간 그녀를 구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과거와 미래를 현실과 동시에 살아가는 퓨처 워커 앞에서, 쳉은 이 순간 미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기 위해 태어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상관없어.’

쳉은 자신의 팔이 어떻게 그녀를 향해 뻗어갔으며 자신의 손이 어떻게 그녀의 여린 어깨를 움켜쥐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미가 가르쳐줘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의 팔 안에 있으면서도 그가 떠날까 봐 무섭다는 듯이 그에게 파고들고 있는 미의 얼굴은 거짓이 아니었다. 미가 이 모든 현상들을 미리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적어도 이 순간만은 쳉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서 로를 맹목적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달탄은 쳉과 미 주위를 뛰어다니며 컹컹거리고, 동시에 즐거운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두 남녀와 한 마리 개의 모습은 이 혼란과 공포로 가득 찬 공간에서 퍽이나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진실 속에 있었다.

그러나 파는 이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리고 네리아는 파의 얼굴을 본 순간, 끌어안은 미와 쳉을 바라보고 있는 파의 시선을 본 순간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맙소사. 흔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덜 슬프지도 않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잖아.’

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모멸감과 이유를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떨고 있었다. 벌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린다면 파는 비명 같은 고함 소리를 내 지르고 말 것이다. 이건 엉터리야. 이럴 수는 없어. 말도 안 돼. 하지만 파는 입술을 끊어낼 듯이 깨문 채 그저 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주블킨은 여전히 후작에게 검을 겨눈 채 레이저를 향해 외쳤다.

“이보시오, 마법사! 당신은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소. 66년 동안 우리가 겪어온 노고와 고통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방해하게 끔 내버려둘 수도 없소! 물러나시오. 당신에게 감사할 것이오.”

레이저는 한 치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손에 으뜸패가 남아 있는데도 물러나는 도박사는 없수. 내 으뜸패는 신스라이프 선생이지. 당신 패를 보여주시겠소? 내 패보다 센 거라면 질 수밖 에 없지. 하지만 나는 당신 패를 보기 전부터 지레 겁을 집어먹고 죽어버릴 수는 없단 말이야. 말씀하시지! 그덴 산의 거인은 왜 깨어난 거요?”

“내 알 바 아니오! 그덴 산의 거인이 깨어나다니, 그건 도대체 무슨 말이오?”

“당신이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당신 말을 믿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없어.”

주블킨은 다시 고함을 지르려 했지만 레이저는 계속해서 말했다.

“젠장, 손바닥이 익어버릴 지경이군.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면 나 이거 던지고 튀어버리고 싶은데. 당신이 정말 아무 관련이 없다면, 콜리의 이름 으로 맹세할 수 있습니까?”

주블킨은 고함을 지르려고 벌렸던 입을 그대로 벌린 채 경악한 눈으로 레이저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환상처럼 즐거웠던 상황들이 레이저의 등장과 더불어 모조리 악몽으로 바뀌어간다고 생각했다. 레이저는 사납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셋을 셀 때까지 말하시죠. 고양이와 꿈의 콜리의 이름으로, 그덴 산의 거인의 부활에 나, 또는 콜리의 프리스트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대답이 없다면 난 던지겠어. 하나, 둘.”

“안 돼!”

주블킨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외쳐버리고는 허옇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신스라이프는 그런 주블킨을 불타는 눈으로 쏘아보았지 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이저는 입을 다문 채 싸늘한 시선으로 주블킨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검을 치우고 물러나시오.”

레이저는 자신이 주도권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원에는 주도권을 잡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 너무 많아. 그러니 사태는 해결이 안 되고 싸움 만 요란한 거지. 주블킨은 마치 레이저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레이저는 기다리지 않았다.

“거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들. 당신들도 뒤로 물러나시오. 그리고 콜리의 프리스트들도 물러나시오. 이건 협박이라는 것인데, 별로 권장할 만 한 짓은 못 돼. 하지만 조금만 하겠어. 콜리의 프리스트들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나는 신스라이프 씨를 태워버리겠어.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 이들, 당신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저 계단 위의 후작인가 하는 작자를 태우겠어. 그런데 저 친구가 무슨 후작이지?”

궤헤른과 니크는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입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조금 전 그들이 다급하게 외쳤을 때 말한 후작님이라는 단어를 저 마법사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히 명령을 받았지만 콜리의 프리스트들도, 그리고 후작의 전사들도 주춤거리기만 할 뿐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자 레이저는 고함 을 빽 질렀다.

“뒤로 물러나!”

“제기랄. 물러나라.”

궤헤른은 가이버와 니크에게 명령을 보냈다. 얼핏 뒤를 바라본 궤헤른은 사무엘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고 미가 웬 사나이와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보 게 되었다. 궤헤른은 움찔했지만 지금 거기까지는 손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물러났다.

후작의 전사들이 뒤로 조금 물러나는 데 맞춰서 콜리의 프리스트들도 뒤로 물러났다. 주블킨은 이를 악문 채 레이저를 쏘아보았지만 레이저는 냉엄 한 표정을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주블킨은 검을 치우고 콜리의 프리스트들에게로 물러났다. 하지만 마법에 걸린 후작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보기에 참 안쓰러운 모습. 그래서 레이저는 말했다.

“주블킨 할아버지. 저 후작에게 디스펠 좀 해주시지요.”

궤헤른은 레이저의 입에서 후작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심장이 덜컹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주블킨은 사나운 얼굴로 레이저를 쏘아볼 뿐, 아무 래도 후작에게 건 마법을 해소시킬 생각은 없는 듯했다. 레이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뒤로 젖힌 오른손 위에 타오르는 불을 얹은 채 사람들의 머리 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레이저의 모습은 마법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마법사의 얼굴에는 근심, 걱정, 장난기가 뒤섞여 매우 복잡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근심과 걱정은 마법사에게 어울릴 지 모르며 장난기도, 어차피 법칙을 희롱하고 세상에 대해 장난치는 마법사인 만큼 어울리는 표정일지 모르지만, 그것들이 한꺼번에 뒤섞이자 퍽이 나 희한한 표정이 되었다. 레이저는 그런 희한한 표정을 한 채 신스라이프가 떠 있는 구멍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구멍 앞에 멈춰 선 레이저는 흠칫 놀랐다는 표정을 떠올리며 바닥도 보이지 않는 그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레이저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오른손을 휘둘렀다. 주블킨은 목이 졸리는 신음 소리를 냈지만 레이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 위에 떠 있던 불덩어리를 구멍 속으로 집어던졌다.

화르르르! 불덩어리가 타오르는 소리는 구멍 속에서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레이저는 귓가에 손을 가져가서 소리를 듣는 시늉을 했지만 아무리 기다 려도 뭔가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레이저는 어깨를 으쓱했다.

“장난이 아니게 깊은 모양이군.”

주블킨은 이해할 수 없었다. 레이저가 이 사태를 장악할 수 있었던 무기를 포기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동시에 주블킨은 그가 손에 들고 있 던 불덩어리를 포기함으로써 더 강도 높은 협박을 전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레이저는 신스라이프의 바로 앞에 서 있었고, 그리고 마법사다. 레이저 가 어떤 수단으로든 신스라이프를 공격할 수 있음은 분명할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어떤 수단인지 주블킨은 알 수 없었다. 뭔지 모를 것으로 협박당 하는 것은 분명한 방식으로 협박당하는 것보다 더 행동하기 어려워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때 주위를 주욱 훑어보는 레이저를 향해 한 아가씨가 달려 나왔다.

“레이저!”

여자는 손에 기다란 글레이브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레이저에게 다가서자마자 앞을 막아서며 글레이브를 내밀었다. 마치 레이저를 보호하겠다는 듯한 동작이었지만 주블킨과 궤헤른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웃어버릴 뻔했다. 저 깜찍해 보이는 아가씨가 마법사를 보호한다고? 옛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로군. 레베카 휴레인 장군과 가이너 카쉬냅이 저런 꼴이었을까.

하지만 레이저는 앞을 가로막은 루손의 모습을 보며 든든함을 느꼈다. 이젠 둘이군. 한결 낫겠어. 레이저는 이제 자신 있는 어조로 말했다.

“자, 복잡하니까 빨리빨리 넘어갑시다. 나는 질문하고 지적당한 사람은 대답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대답은 어떤 경우에도 스무 마디 이하로 제한하 겠수다. 쓸데없이 말 질질 늘이는 꼴은 못 봐줄 것 같으니까. 먼저 주블킨 할아버지.”

주블킨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레이저를 바라보았다. 레이저는 씩 웃으며 말했다.

“콜리의 이름으로 묻겠소. 신스라이프 씨의 부활은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진 겁니까?”

주블킨은 분통이 터졌다. 프리스트임이 밝혀진 이상 주블킨은 콜리의 이름 앞에 어떤 거짓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콜리의 이름으로 그에게 진실을 강요하는 자가 법칙을 희롱하는 마법사라는 것은 도저히 참아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이놈! 그 천한 마법사의 입으로 어디 콜리의 이름을 함부로 주워섬기느냐!”

“이거 알려드리면 도움이 될지. 나는 올로레인입니다.”

주블킨은 놀란 눈으로 레이저를 바라보았다.

“오, 올로레인? 그가 남아 있을 리가…………….”

레이저는 주블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정확한 동작으로 주블킨의 어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

“코, 콜리의 프리스트? 그가 남아 있을 리가…………….”

주블킨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레이저는 ‘당신 역시 역사의 흐름 아래에 숨어서 외로운 흐름 한 줄기를 이어온 자들의 후예 아닌가. 당신이 놀란다면 그거야말로 웃기는 일이다.’라고 말한 셈이었다.

“말씀하시지요. 주블킨, 신스라이프는 어떻게 부활하게 된 거요?”

주블킨은 입술을 깨물었다. 노회한 사나이답게 주블킨은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때 가장 강력하며, 밝혀진 진실은 오히려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콜리의 이름 아래 거짓을 말할 수는 없다. 단순한 결론이 도출되었고, 주블킨은 말을 돌리기로 결심했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아홉 명이 죽으면 신스라이프 씨가 부활한다고 들었지. 하지만 그거 엉터리로 판명났수. 일곱 명이 죽었어. 그런데 신스라이프 선생은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 뭔가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다는 증거가 될 거요.”

레이저는 말을 하면서 조금씩 사나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게다가 한 명이 모자라다는 말도 들리더라고요. 일곱 더하기 하나가 아홉이 되는 것이 콜리식 수학입니까? 설마. 왜 여덟 명이지? 아니, 그건 중요 한 것이 아냐. 만일 여덟 명이라면, 뒤의 이 후작이 죽어야 신스라이프 씨는 완전히 부활한다는 의미인 거요?”

공중에 묶인 채 처절할 정도의 무력감에 빠져 있는 신스라이프였지만 레이저의 말에 눈을 부릅떴다. 그는 허공에서 몸을 돌려 할슈타일 후작을 쏘아 보았다. 그리고 역시 마법에 의해 몸이 묶여 있는 할슈타일 후작도 증오 어린 눈으로 신스라이프를 마주보았다. 레이저는 그 모습을 잠깐 돌아보고는 다시 주블킨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요? 이젠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콜리의 이름으로 묻는 것이겠지. 그렇다!”

주블킨은 짓씹듯이 말했다. 순간 콜리의 프리스트들 뒤쪽에 서 있던 궤헤른은 어깨를 움찔했다. 레이저는 그런 궤헤른의 모습을 못 본 체하며 고개 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블킨은 열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마법사여. 당신은 저자를 지킬 것인가? 신스라이프의 부활을 방해할 것인가?”

“산 자와 죽은 자의 교환이라면, 나는 산 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걸요.”

“왜! 당신이 저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저자가 그토록이나 중요한가? 마법사 레이저, 당신은 아까 협박이라는 말을 꺼냈는데, 그런 것은 나 도 할 수 있는 것이지. 게다가 나에게는 많은 형제들이 있다. 당신이 우리 일을 방해하고도 남은 일생이 쾌적할 것 같나?”

레이저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콜리의 프리스트들의 추격을 받으며 그가 잔명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주븜킨의 지적은 정확했 다. 게다가 그는 할슈타일 후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레이저에게는 할슈타일 후작의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긴, 뒤의 이 후작 선생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는 않아. 내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지요.”

“좋아, 잘 생각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하하, 잘못 생각했어요. 내가 말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데.”

“뭐라고? 그럼?”

“여러 번 질문했던 겁니다만, 그덴 산의 거인은 왜 깨어나는 것인지?”

레이저의 질문이 떨어진 순간 루손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죽일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루손의 얼굴에 주븜킨은 섬뜩함을 느꼈다. 맙 소사, 인간이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주블킨은 침을 한 번 삼킨 다음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답했다.

“과거로 향하는 흐름과 미래로 향하는 흐름, 그 흐름의 교차점이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굳어 있다는 것 때문에 끔찍한 분노를 느끼고 있던 할슈타일 후작이었지만 그의 말에는 의아했다. 그것은 신스라이프의 문제였다. 그런데 그것은 후작이 밝혀냈듯이 엉터리였다. 그 엉터리 문제를 왜 거론하는 거지?

그러나 올로레인 학파의 마지막 계승자이자 사기 도박사인 사나이의 눈에서는 섬광이 번득였다.

“그것이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뭐?”

주블킨은 자신이 한 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저의 말은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저는 자신이 말한 것뿐만 아니라 주블킨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전부를 이해해 버렸다.

“그것은 문제의 답이었을 텐데?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마치…………, 아아, 그랬군!”

주블킨은 의혹에 빠진 눈으로 레이저를 바라보았다. 레이저는 자신의 이마를 찰싹 갈겼다.

“그것은 이 문제의 답이 아니라 이 문제의 목적이었군요!”

루손은 잠시 고개를 돌려 레이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지, 레이저?”

하지만 레이저는 루손에게 말하는 대신 주블킨을 곧장 바라보며 말했다.

“유피넬의 저울대는 길고, 헬카네스의 추는 무거운 법. 그래, 당신들이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겠지. 당신들의 문제는 진실이었군요! 하지만 진실의 일부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어. 보통 수수께끼란 정답이 말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제출되는 거지. 하지만 당신들의 경우는 반대였군. 당신들이 문 제를 낸 까닭은,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서였어!”

주블킨은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레이저는 주블킨이 대답할 틈을 주지 않은 채 파상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그래.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아홉 명의 목숨을 대가로 당신들은 신스라이프의 부활을 이루어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턴빌 시청에서 아홉 번째 도전자를 처형시킬 까닭이 없지. 하하하. 나는 도박사지요. 인간 심리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어. 내가 턴빌 시장이라면 절대로 아홉 번째 도전자 를 처형시키지 않을 거야. 왜냐고? 그래야만 66년 전에 사라졌던 신스라이프가 되돌아와 재산을 도로 내놓으라고 말하는 짜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 지 않을 테니까!”

계단참 위에 엎드린 채, 차마 사태의 귀결을 보지 않고 도망칠 수는 없었기에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계단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바라보고 있 던 턴빌 시장 데커드는 레이저의 말에 상쾌함까지 느꼈다. 레이저는 정확하게 자신의 심리를 지적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의 선임 시장과 그 선임 시장, 턴빌 시장들이 항상 마음속으로 숨겨왔던 심리를 정확하게 드러내 보였다.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는 것만으로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것을 믿기는 어렵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왜 아홉 번째 도전자를 처형시키 는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가.

데커드 시장은 허공에 묶여 있는 신스라이프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것은 분명한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턴빌 시청은 66년 동안 마음껏 사용해 왔던 재산을 모조리 반납해야 한다.

‘제기랄! 그 재산들을 모조리? 하지만…………, 그게 사기였다면?

데커드 시장은 레이저의 말을 보다 잘 듣기 위해 조금씩 일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저는 명쾌한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 특유의 밝고 빠른 어조로 설명했다.

“그래. 이건 잘 될 리가 없지요. 턴빌 시청을 아무리 졸라대더라도 아홉 번째 도전자까지 처형시키는 것은 힘들겠지. 당신들이 그 정도도 몰랐을 리 는 없어요. 차라리 자신들의 손으로 아홉 명의 희생자를 찾는 편이 확실하겠지만, 흐음. 당신들 스스로의 안전도 보장하기 힘든 판국에 그런 살인극 을 벌이기는 쉽지 않았겠지.”

레이저는 오른손을 주먹 쥐어 왼손 바닥에 부딪치며 말했다.

“그럼 아홉 명의 생명을 담보로 신스라이프를 부활시킨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어!”

“거짓말이라고?”

주블킨은 힘없이 반문했고 데커드 시장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레이저는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머리 뒤쪽을 가리켰다. “지금 일곱 명의 희생만으로 부활한 저 신스라이프 선생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하지! 아홉 명의 희생은 거짓말이었어요. 그렇죠?” 주블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레이저에게 있어 가장 커다란 응원이었다. 레이저는 씩씩하게 결론을 도출했다.

“그럼 지금까지 일곱 명의 희생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문제의 정답, 즉 과거로 향하는 흐름과 미래로 향하는 흐름의 교차점을 찾아내기 위해서였지 요. 아까 말했지. 이 문제의 목적은 그 정답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찾아내는 것이었어. 그렇다면 그 희생자들은 그 정답을 찾기 위한 제물이 었겠지. 아마도, 그래요! 아마도 여덟 번째의 도전자가 희생된다면 그 정답이 확실히 드러나는가 보죠? 여덟 명의 희생자는 확실하게 담보되겠지. 왜 냐하면 그 문제에는 정답이 없었으니까. 적어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의 정답은 없었을 거요.”

레이저는 손을 들어 주블킨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아홉 번째! 그 아홉 번째는 그 자체로 정답이었을 거야. 과거로 향하는 흐름과 미래로 향하는 흐름, 그 교차점을 찾아오라. 하하. 하지만 그 정답은 아홉 번째에 이르러 그 스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겠지! 그리고 신스라이프는 그 교차점을 만났을 때 완전한 부활을 성취하게 되는 것일 테 고.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데, 내 추리가 어떻습니까?”

주블킨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신음처럼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 교차점이 뭡니까!”

그 대답은 레이저의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귀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발음의 헤게모니아 어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온 쪽 을 돌아보았다.


신스라이프의 저택 정문을 들어서는 한 사내가 있었다. 잔뜩 지쳐 입으로 거품을 뿜어내는 말 위에 역시 흙먼지로 엉망이 된 몸을 얹은 채 들어선 사 내는, 그 몰골엔 의외일 만큼 힘찬 표정으로 레이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표정이야 어쨌건 말에서 내리는 사내의 동작은 흡사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사내는 땅바닥에 서자마자 그대로 허리를 붙잡으며 굳어버리고 말았다.

“하으윽…………, 허리야. 큰일이군.”

레이저는 지금껏 발휘했던 추리력에 걸맞은 냉혹한 추리를 해냈다.

“당신 허리가 큰일이라고요?”

“오, 테페리여! 그게 아닙니다!”

사내는 분통 터진다는 표정으로 외치더니 말고삐를 끌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내는 곧 지쳐빠진 말의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래서 말을 그냥 내버려둔 채 허겁지겁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오며 소리쳤다.

“정답이 뭡니까? 과거로 향하는 흐름과 미래로 향하는 흐름, 그 교차점은 뭐란 말입니까?”

레이저는 당혹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건 도대체 누구지? 입고 있는 옷을 보면 프리스트인 것 같은데. 그때 정원 한 귀퉁이에서 한 여자 가 빨강머리를 흩날리며 달려 나왔다.

“우와, 제레인트! 제레인트잖아요!”

“네리아 양? 헉, 헉. 아니, 운차이 씨와 그란 씨도?”

제레인트는 숨을 몰아쉬며 네리아와 그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란은 당황 반, 기쁨 반의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제레인트를 보았고 운차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계단 위도 보시지, 제레인트. 이건 마치 갈색 산맥에 돌아온 것 같은데.”

제레인트는 얼빠진 표정으로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헉헉, 에……, 후작? 후작이 여기에?”

궤헤른은 그런 제레인트를 보다가 운차이와 그란에 이르러서는 눈썹을 찌푸렸다. 저놈들, 역시 이곳에 와 있었군. 궤헤른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법 에 걸린 후작은 아직도 무방비 상태로 굳어 있는데 사태를 더욱더 곤란하게 만드는 인물들만 등장하고 있었다.

후작 역시 궤헤른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게다가 그의 경우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처지에 빠진 채 모든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제외된 입장에 있 었으니 분노가 더욱 컸다.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도구로 생각하는 후작이었기에 이런 상황은 감내하기 어려웠다.

후작은 온 힘을 다해 손끝에 신경을 모았다. 자연력은 한곳에 비정상적으로 마력이 집중되는 것을 거부한다.

‘저 따위 돌팔이의 마법이 나를 이토록이나 묶어둘 순 없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후작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쳉은 미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운차이 일행에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말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미를 구한 이상 이 곳에는 그가 관심을 가질 대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미는 그런 쳉의 의도를 깨닫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쳉은 미를 내려다보았다.

“쳉, 조금만 기다려봐. 미는 알고 싶어.”

“미, 이곳은 위험해 보여.”

“그래도…………….”

쳉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멈춰 서서는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는 쳉의 눈에 파가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파를 찾아보는 쳉의 귓가에 제레인트를 향해 고함지르는 네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아! 반가워요, 반가워! 나 드디어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히이잉! 그런데 혼자 왔나 보군요?”

“후우, 후우. 어라,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당연하잖아요, 당신은 항상 제일 먼저 출발하지만 제일 나중에 도착하잖아요.”

“후으음. 이번에는 제가 제일 먼저 도착하게 되었군요. 다른 일행들도 있습니다만 제가 먼저 달려왔습니다. 그들이 위험합니다. 이봐요! 정답은 무 엇입니까! 그걸 빨리 말해 주지 않으면 제 일행들이 위험하단 말입니다! 그 정답을 찾아야 해요! 그걸 찾아야 이 모든 사태가 해결된다고 하셨단 말입 “니다!”

제레인트의 정신사나운 화법은 그렇잖아도 시원찮은 헤게모니아 어 발음 때문에 더욱 알아듣기 힘들었다. 운차이는 간신히 그 끝의 말을 포착하여 질문했다.

“누가 그랬단 말이지?”

“그걸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어요. 일행들이 위험하다고 말했잖습니까!”

레이저는 눈을 껌뻑거리며 제레인트가 보기엔 답답해 미칠 정도로 느리게 말했다.

“당신 일행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오오, 테페리여, 잠시만 귀를 막으소서. 이런 우라질! 제 일행들이 턴빌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그덴 산의 거인을 붙잡아 두고 있단 말이에요! 빨리 정답을 찾지 못하면 신장 100큐빗짜리 횡포가 이 도시로 곧장 달려올 거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