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1권 강호출행(江湖出行) 편 :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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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1권 강호출행(江湖出行) 편 : 7화


제6장. 흑포괴인(黑袍怪人)

진산월은 온화하면서도 부드러운 눈으로 낙일방을 바라보았다.

“그 불같은 성질을 죽이고 말썽을 일으키지 말라고 그토록 당부했는데 나오자마자 일을 벌리다니… 이거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로군.”

내용은 꾸짖는 것이었으나 어투나 음성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낙일방을 응시하는 시선 속에는 웃음기까지 감돌고 있었다. 하나 낙일방은 더욱 쩔쩔매며 어쩔 줄을 몰랐다.

“대사형… 저… 그게…”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으나 진산월이 더 이상 아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만 있자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진산월은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사소한 일을 참지 못하는 자는 큰 일을 도모할 수 없다. 너도 알고 있겠지?”

낙일방은 더욱 풀이 죽은 음성으로 조그맣게 대답했다.

“네.”

“하지만 이번 일은 네 잘못 만이라고 할 수도 없다.”

“네?”

낙일방은 진산월의 말에 놀라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진산월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감돌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낙일방이 아닌 한쪽에 서 있는 하후성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강호에서의 일은 겉으로 보아서 만은 알 수 없는 법이지.”

하후성이 움찔 놀라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쏘아볼 때 다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장문사형의 말씀대로 이번 일에는 확실히 조금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후성이 황급히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 새 주루에서 다시 서너 명의 인물이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 입을 연 사람은 체구가 왜소하고 몸이 호리호리한 청년이었다.
이마가 유난히 튀어나와서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긴 인상이었으나 눈빛이 별처럼 반짝거려 재지(才智)가 넘쳐 흘러 보였다.

“정사형!”

의기소침해 있던 낙일방이 그를 보자 반갑게 소리쳤다.
정해는 안심하라는 듯 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하후성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며 미소지었다.
하후성은 그를 노려보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었다.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냐?”

정해는 침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 사제가 비록 성격이 급하고 단순한 면이 있지만 멍청한 인물은 아니오. 그의 말마따나 저 말이 운문세가의 것이라면 저토록 심하게 반항하는 게 이상한 일 아니겠소?”

하후성은 버럭 노성을 내질렀다.

“네놈이 감히 우리를 의심하는 거냐?”

“내가 알기로 강호에서 이렇게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설리총은 몇 마리 없다고 들었소. 그 중에서도 이처럼 발굽 위에만 붉은 털이 나 있는 설리총은 더욱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소.”

“이놈! 무슨 허튼 수작을 부리려는 게냐?”

정해는 하후성의 호통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발굽에만 붉은 털이 나 있는 것은 설리총 중에서도 진품(眞品)으로 알려진 설구양종(雪驅良種)인데, 그 종류는 강호에서 오직 한 곳에서만 키우고 있다고 하오.”

하후성이 자신도 모르게 급히 물었다.

“한 곳이라니? 바로 본가 말이냐?”

정해는 잠시 입을 다물고 그를 빤히 응시하다가 단호하면서도 짤막한 음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천봉궁(天鳳宮).”

천봉궁!
단순한 단어였으나 그 말을 듣자 하후성의 얼굴이 홱 변했다.

“천봉궁이라니… 네놈이 어디서 그 이름을 듣긴 들은 모양이다만… 이건 천봉궁의 설구양종이 아니라 본 세가의 이공자님이 아끼시는 애마(愛馬)다.”

하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후성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천봉궁의 이름이 거론되자 한쪽에서 흥미 있는 눈으로 이들을 지켜보던 상원건조차도 뜻밖이라는 표정이 되었다.
천봉궁은 강호무림에서 거의 전설적으로 전해지는 신비한 문파(門派)로, 문하제자 하나 하나가 모두 절정고수들이어서 누구 나가 두려워마지 않는 집단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하나같이 종적이 신비롭고 행동이 정사(正邪)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괴팍해서 강호인들은 천봉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오금을 저리고 꽁무니를 빼기 일쑤였다.
사실 정해도 천봉궁의 이름만 들었지 그들의 설구양종을 직접 본 적은 아직 없었다.
하나 그는 하후성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아차리고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당당한 운문세가의 총관이 기껏 남의 말을 도둑질이나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무어라고 할지 정말 궁금하군. 더구나 그걸 나무라는 사람을 살인멸구(殺人滅口)하려 하다니…”

그 말에 하후성 뿐만 아니라 이제껏 말없이 서 있던 백삼공자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뼉다귀 같은 놈들이 감히 본 세가를 능멸하는 게냐?”

하후성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며 두 눈에서 줄기줄기 살광(殺光)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금시라도 정해에게 달려들어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듯한 기세였으나 웬일인지 쉽게 덤벼들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해의 뒤쪽에는 험상궃게 생긴 응계성이 버티고 서 있는데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진산월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감숙 일대에서 명성이 자자한 고수인 비룡객 상원건도 그들 편을 들 기세인지라 아무리 성질이 불같이 급한 하후성이라 할지라도 제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백삼공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백삼공자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때 백삼공자의 굳게 다물어진 입술이 열리며 표정만큼이나 냉랭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삼총관.”

하후성은 움찔 놀라며 황급히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예, 이공자님.”

백삼공자의 눈에서 섬뜩한 한광이 줄기줄기 뿜어 나왔다.

“본 세가를 능멸하는 놈들은 누구라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본가의 법칙을 알고 있겠지?”

하후성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이어 그는 정해와 진산월, 낙일방 등을 차가운 눈으로 한 차례 훑어보더니 자신의 옆에 늘어서 있는 장한들을 돌아보며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저놈들에게 본가의 무서움을 보여주어라!”

장한들은 일제히 커다란 외침을 토하며 우르르 진산월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와!”

“이놈들!”

고함치며 달려드는 장한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그 기세만큼은 굉장히 흉험한 것이었다.
하나 그들이 채 진산월 일행에 다가오기도 전,

“이런 떨거지 같은 놈들이…!”

갑자기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호통과 함께 하나의 인영이 쏜살같이 장한들을 향해 덮쳐갔다.
아까부터 못마땅한 눈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응계성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선 것이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응계성의 몸은 눈부시도록 빨랐다.

퍼퍼퍽!

그의 손이 빛살처럼 움직이자 장한들이 연거푸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로 나가떨어졌다.

“어이쿠!”

“허억!”

마치 순한 양떼 속으로 한 마리의 성난 늑대가 뛰어든 듯한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장한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조리 옆구리와 아랫배를 움켜잡으며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게중에는 턱뼈가 박살났는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턱을 부여잡고 뒹구는 작자도 있었다.
상원건은 그 표독한 솜씨에 자신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렸다.

‘저자의 실력은 좋은데 손이 너무 맵군.’

하후성은 내심 꺼려했던 대로 험악하게 생긴 응계성이 단숨에 장한들을 모조리 때려뉘어 버리자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있다가 벼락같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그는 상대의 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철주판을 휘둘렀다. 그가 펼친 것은 자신의 최고 절기인 이십사철반법(二十四鐵盤法)중 하나인 철비박룡(鐵臂搏龍)이었다. 응계성은 막 마지막 장한을 때려 누이고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뜨리려다 자신의 등뒤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쇠로 된 주판이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응계성은 쌍심지를 돋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좋다. 한 번 겨뤄보자!”

그는 피하기는커녕 번개같이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들고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오는 철주판을 후려쳐 갔다.

깡!

그의 장검이 철주판과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치며 요란한 파공음을 일으켰다. 하후성은 손아귀가 어릿어릿함을 느끼고 내심 깜짝 놀랐다.

‘이 녀석이 내공(內功)도 상당하군.’

철주판은 장검보다 훨씬 무거운데다 그가 먼저 선공(先攻)을 했으니 당연히 응계성이 더 큰 타격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응계성의 몸은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철주판에 부딪쳐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갈 듯 하던 장검이 묘하게 호선(弧線)을 그리며 그의 손목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앗?”

하후성은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철주판을 회수하며 옆으로 두 자쯤 이동했다. 하나 응계성의 검은 집요하게 그의 손을 노리고 계속 다가왔다. 응계성의 이 초식은 유운검법(流雲劍法)중의 배운축월(排雲逐月)이라는 것으로, 빠르고 신묘한 위력이 있었다. 더구나 이번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의 특정부위만을 노리고 들어갈 때는 그 위력이 배가되어 천하의 어떠한 절초에 못지 않았다. 하후성은 자신이 먼저 공격했음에도 오히려 상대에게 선수(先手)를 빼앗겨 곤궁에 처하게 되자 한편으로는 당황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내가 이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에게 수모를 당한다면 앞으로 어찌 운문세가의 총관으로 행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조금 전에 낙일방과 겨루어 보았었기 때문에 그의 일행인 응계성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응계성은 낙일방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낙일방은 아직 공력이 미약하고 남과 싸운 경력이 일천(日淺)하여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혼쭐이 났지만, 응계성은 다른 사람과 싸워본 경험도 풍부하고 내공도 만만치 않아 종남파의 무공을 마음 먹은 대로 펼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하후성은 여기서 뒤로 물러난다면 의외의 낭패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를 질끈 깨물며 뒤로 물러서지 않고 철주판을 힘껏 휘둘렀다.

깡!

철주판과 장검이 다시 맞부딪혔다. 하나 이번에는 먼저 번과 사정이 조금 달랐다. 먼저 번에는 서로간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응계성의 장검에서 일어난 변화가 워낙 빠르고 날카로워서 하후성은 철주판을 든 오른쪽 팔을 검에 스치고 말았다. 그의 옷자락이 길게 잘라지며 핏자국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하나 하후성은 신음을 내지르기는커녕 오히려 두 눈을 부릅 뜬 채 응계성을 향해 바짝 다가오며 철주판을 전력을 다해 내찔렀다. 그가 회심의 절기로 생각하는 이십사철반법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절초인 철반격정(鐵盤擊鼎)의 초식이었다. 이 수법은 과연 위력이 대단해서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오히려 응계성의 머리가 철주판에 강타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응계성은 두 눈을 횃불처럼 빛낸 채 자신의 머리통을 찔러오는 철주판을 응시하고 있다가 그것이 지척에 이르는 순간에 짤막한 기합소리와 함께 번개같이 장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이얍!”

차창!

눈부신 검광(劍光)이 폭죽처럼 피어오르며 답답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윽!”

중인들이 놀라 보니 하후성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가슴팍 부근 옷자락이 길게 찢겨져 맨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손에 들고 있던 철주판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에 비해 응계성은 낯빛이 조금 창백하게 변했을 뿐 별다른 이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누가 보기에도 응계성의 완벽한 승리가 분명했다. 상원건은 응계성이검을 높이 쳐든 자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은 바로 종남파의 천하삼십육검이로군. 저 정도면 상당한 실력인데…’

상원건의 짐작대로 조금 전 응계성이 펼친 것은 천하삼십육검 중의 절초인 천하도사(天河倒瀉)였다. 이것은 검을 밑에서 위로 쳐올리며 상대의 가슴을 가르는 수법으로, 천하삼십육검에는 이와 정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려치는 천하수조(天河垂釣)라는 초식도 있었다.

‘종남파가 십여 년만에 처음으로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어 기이하게 여겼는데 문하제자의 솜씨가 저 정도라면 기대해 볼 만 하겠는걸.’

상원건이 응계성의 솜씨에 내심 감탄하고 있을 때,

땅!

난데없는 파공음 소리가 들렸다. 응계성의 장검에 튕겨져 나간 하후성의 철주판이 허공으로 높게 솟구쳐 올라갔다가 이제서야 바닥에 떨어지며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지금까지 멍하니 응계성을 응시하고 있던 하후성이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 이놈! 네놈은 대체 어디의 문하(門下)냐?”

응계성은 여전히 장검을 쳐든 채로 호탕하게 소리쳤다.

“우리는 종남에서 왔다.”

그 말에 하후성은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종남? 섬서성(陝西省)의 종남파 말이냐?”

“그럼 종남파가 그 곳 말고 달리 또 있단 말이냐?”

응계성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반문하자 하후성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종남파는 섬서성에만 있다. 하후성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그렇게 물은 것은 그만큼 종남파의 출현이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십여 년간 강호무림에는 종남의 문하라고 자처하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종남의 무공을 쓰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들 중 누구도 떳떳하게 나서서 자신이 종남의 문하라고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종남파의 제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머지않아 그들의 숙적(宿敵)인 형산파(衡山派)의 고수들이 쫓아와 시비를 거는 바람에 영락없이 낭패를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형산파는 현재 구파일방 중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대단한 성세(盛勢)를 누리고 있는지라 시시한 종남의 무공으로 그들을 당해낸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거만하게 생긴 녀석은 스스로의 입으로 종남의 제자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알려진 종남의 무공으로 당당한 운문세가의 총관을 격퇴시켰으니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후성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였다.

“종남파라고? 그래 어디 종남파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

갑자기 까마귀가 우는 듯한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며 난데없이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장검을 들고 우뚝 서 있는 응계성의 코앞으로 쏘아져왔다. 그 그림자의 출현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는지라 응계성은 물론이고 상원건 조차도 그 인영(人影)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응계성은 무언가 차가운 기운이 자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는 것을 느끼고 안색이 굳어진 채 들고 있던 장검을 아래로 세차게 내려 그었다. 바로 천하수조(天河垂釣)의 일식이었다. 눈부신 검광이 수직으로 그어졌다. 그 검세는 날카롭기 그지 없어 무쇠라도 잘라버릴 듯 했다. 하나 괴영(怪影)은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빨리 다가오며 오른손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마치 매의 발톱처럼 괴이하게 구부러진 거무틱틱한 손가락이 강철같은 빛을 뿌리며 검광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상원건이 그 거무스름한 손가락을 보고 놀란 경호성을 터뜨렸다.

“앗? 흑살조력(黑殺爪力)…!”

그의 외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귀청이 떨어지는 듯한 쇳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까깡!

그 파공음이 어찌나 날카로웠던지 공력이 약한 운문세가의 장한들이 귀를 틀어막고 비틀거리며 괴로워할 정도였다. 상원건은 안력을 돋구어 황급히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응계성이 인상을 찡그리고 휘청거리며 두 걸음 물러나는 광경이 들어왔다. 응계성의 앞에는 어느 사이에 나타났는지 검은 장포를 걸치고 키가 큰 괴인이 우뚝 서 있었다. 흑포(黑袍) 괴인은 다른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으며, 머리를 풀어 어깨부위까지 늘어뜨려 더욱 음산하고 거대해 보였다. 흑포 괴인의 검은 장삼자락 아래 강철처럼 단단한 두 개의 손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흑포 괴인은 응계성이 용케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자 의외인 듯 산발한 머리를 갸웃거렸다.

“제법인데…. 내 칠성(七成)의 공력이 담긴 흑살조를 막아내다니… 네 놈은 임장홍의 제자냐?”

응계성은 비록 흑포 괴인의 살인적인 공세를 막아내긴 했으나 아직도 기혈(氣血)이 울렁거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나 그는 억지로 두 눈을 부릅뜨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 선사의 존함을 아는 걸 보니 무명지배(無名之輩)는 아니로구나. 너는 누구냐?”

흑포 괴인은 응계성의 광오한 외침에 어처구니가 없는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음산한 흉소를 터뜨렸다.

“크흐흐… 감히 임장홍의 제자 따위가 내게 반말을 지껄이다니…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로군. 네놈의 사부라 해도 내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텐데 네놈은 죽고 싶어 환장이라도 했단 말이냐?”

응계성은 흑포 괴인이 임장홍을 알고 있는 듯한 말을 하자 움찔하여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변했다.

“귀하는… 선사를 잘 아시오?”

“흐흐… 잘 알다 뿐이냐? 임장홍이 살아있을 때 나를 보면 깍듯이 형님대접을 해 주었지.”

응계성은 흑포 괴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의 정체도 모른 체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서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그게 정말이오?”

그가 미심쩍은 듯 되묻자 흑포 괴인은 괴이한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 그렇다. 사실 무림에서 임장홍 같은 별 볼 일 없는 작자에게 형님대접을 받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느냐? 모르긴 해도 강호에 갓 출도한 신출내기 외에는 모두 형님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크하하…”

그제서야 응계성은 그가 자신을 놀렸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죽일 놈! 함부로 선사를 모욕하다니….”

그가 발연대노하여 흑포 괴인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상원건이 재빨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었다.

“잠깐.”

그는 응계성을 향해 침착하라는 듯 한 손을 내젓고는 흑포 괴인을 바라보며 빙긋 미소지었다.

“귀하는 혹시 냉살조(冷殺爪) 독고황(獨孤荒)이 아니오?”

흑포 괴인은 난데없는 청의인이 불쑥 나타나 자신의 명호를 말하자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러다가 이내 입가에 냉랭한 미소를 머금었다.

“흐흐… 누가 감히 내 앞을 가로막나 했더니 감숙에서 행세 깨나 한다는 비룡객 나으리셨군.”

상원건은 그의 비웃음에도 아랑곳없이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칠 년 전에 잠깐 만났을 뿐인데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료. 정말 대단한 기억력이오.”

이제 보니 그는 흑포 괴인과 일면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흑포 괴인은 강호에서 유명한 살성(殺星) 중 하나인 냉살조 독고황이라는 인물이었다. 독고황은 별호 그대로 강한 조공(爪功)을 익힌 고수로, 그의 흑살조력에 걸리면 철판이라도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간다는 소문이 강호에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칠 년 전에 상원건은 화북(華北)지방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우연히 독고황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두 사람은 서로 손속을 겨루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놀라운 무공에 서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상원건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독고황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독고형은 천지간(天地間)에 홀로 떠돌기를 좋아하고 강호의 시시비비(是是非非)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이시오?”

독고황은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 그건 옛날 얘기요. 나는 오 년 전부터 한 곳에 몸을 기탁했소.”

상원건은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하다가 무언가를 느낀 듯 눈을 반짝 빛냈다.

“그렇소? 그렇다면 그곳이 혹시 …?”

독고황은 힐끗 백의공자를 바라보더니 짤막하게 말했다.

“나는 운문세가에서 팔대빈객(八大賓客)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소.” 상원건은 자신의 짐작이 맞자 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일이 공교롭게 됐군. 이자의 성격은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자칫하면 종남파에 쓸데없는 강적이 생길지도 모르겠는걸.’

상원건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독고황은 백의공자 앞으로 슬쩍 다가서며 나직하게 물었다.

“이공자. 사람은 찾았소?”

백의공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찾지 못했소. 하지만 말이 이곳에 있는 이상 이 근처에서 멀리 있지 않을 거요.”

독고황은 무의식적인 듯 힐끗 주루를 훑어보았다. 언뜻 주루의 뒤쪽에 후원(後院)인 듯한 낡은 건물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곳은 살펴보았소?”

“아직.”

독고황의 눈쌀이 가늘게 찡그려졌다.

“그럼 이곳에서 말만 붙잡고 실갱이 하고 있었단 말이오?”

백의공자는 그의 질책하는 듯한 말투에 내심 기분이 언짢았으나 그의 지위가 세가에서도 특수한 위치에 있는지라 억지로 눌러 참았다.

“이 말은 보통 말이 아니니 이놈을 잡고 있으면 사람도 따라서 나오리라고 생각했소.”

독고황은 강호경험이 풍부한 인물답게 그가 쓸데없이 말에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일이 지체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더 이상 그를 추궁하지는 않았다. 대신 한쪽에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하후성을 슬쩍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하후성은 눈치 빠르게 그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조금씩 몸을 움직여 주루 쪽으로 다가갔다. 상원건은 비록 겉으로는 생각에 잠겨 있는 척 했지만 사실은 그들의 동태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독고황의 눈짓을 받은 하후성이 중인들의 눈을 피해 주루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의중을 짐작했다.

‘저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원래 저 설리총이 아니라 저 말의 주인이었구나.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그는 과연 주루에 있을까?’

말의 주인이 주루에 있다면 이번 소란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선뜻 나서서 자신이 말의 주인임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운문세가에서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를 잡으려고 이런 소동을 일으켰단 말인가? 상원건은 머리 속으로 몇 가지 의문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으나 일단 접어두고 주루로 다가가는 하후성을 제지하려고 했다. 한데 그때 그보다 빠르게 하후성의 앞을 막아서는 인영이 있었다. 하후성은 중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가 아무도 자신을 주시하는 사람이 없자 이때다 싶어 재빨리 몸을 날리려다가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화들짝 놀라 급히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그의 앞을 막아선 인물은 다름 아닌 낙일방이었던 것이다. 낙일방은 두 눈을 또렷하게 빛내며 하후성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네가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후성은 가뜩이나 조금 전에 응계성에게 모욕을 당한 일로 노화가 가슴 가득 끓어올라 있는 데다 자신에게 호되게 당했던 낙일방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자 마침내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 하룻강아지 같은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는 벼락같은 호통을 내지르며 낙일방을 향해 오른주먹을 세차게 내뻗었다. 그의 주먹은 그 동안의 쌓인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가히 살인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낙일방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주먹을 휘두르며 덤벼들자 재빨리 옆으로 두 걸음 피하며 하후성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왼발을 휘둘렀다. 하후성은 뜻밖에도 그가 날카로운 반격을 해오자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엉겁결에 왼쪽으로 주춤 물러섰다. 바로 그때 그의 옆구리로 날아들던 낙일방의 왼발이 재빨리 접혀지며 오른쪽 발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이번의 연환각(連環脚)은 너무도 갑작스러운데다, 그때 하후성은 오른발이 날아오는 쪽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그대로 옆구리를 가격 당할 뻔했다. 하후성은 간신히 뒤로 두 걸음 물러나서 낙일방의 연환각을 피했다. 하나 그가 채 중심을 잡기도 전에 낙일방은 번개같이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며 왼주먹으로 가슴을 후려갈겼다. 그것은 장괘장권구식 중의 천성탈두(天星奪斗)란 초식인데, 너무도 빠르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하후성은 두 눈을 뜨고 뻔히 보고서도 그대로 낙일방의 주먹에 가슴을 가격 당하고 말았다.

팡!

“흡!”

하후성은 가슴이 뽀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얼굴을 찡그리고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 순간 낙일방은 앞으로 달려오던 기세를 이용하여 몸을 허공으로 솟구치며 오른쪽 무릎으로 그의 아래턱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쾅!

이번의 일격은 조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한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정통으로 턱을 가격 당한 하후성은 바닥에 벌렁 누운 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중인들은 모두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낙일방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만 해도 하후성의 손에 사경(死境)을 헤매던 그가 이번에는 오히려 너무도 간단하게 하후성을 때려 뉘인 것이 아닌가? 아무리 하후성이 철주판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라고 하나 이제 갓 강호에 첫 발을 들여놓은 애송이 중의 애송이가 세력이 당당한 운문세가의 총관을 불과 몇 초만에 쓰렸다는 것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할 일이었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그새 무슨 절묘한 무공이라도 익혔단 말인가?”

상원건이 신통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낙일방을 향해 다가왔다. 낙일방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상원건의 말에 화들짝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아…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다니?”

낙일방은 멋적게 웃으며 준수한 얼굴을 붉혔다.

“장문사형께서 이 자에게는 되도록 바짝 접근해서 싸우라고 살짝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제가 이 자를 이길 줄은 몰랐습니다.”

낙일방도 자신의 손으로 하후성같은 고수를 쓰러뜨렸다는 것이 제대로 실감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 낙일방은 조금 전에 진산월의 지시를 받고 하후성을 제지했던 것이다. 진산월은 낙일방에게 하후성을 상대할 방법까지 일러주었는데, 막상 그 방법이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을 줄은 낙일방 조차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상원건은 자신도 모르게 진산월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진산월은 이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정해를 돌아보며 무어라고 소근거리고 있었다. 상원건은 한동안 진산월의 커다란 몸집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확실히 하후성의 장기는 철주판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이다. 더구나 그는 팔다리가 길어 접근전에는 맹점(盲點)이 있지.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그의 단점을 파악해내다니… 저자는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예리한 눈을 지닌게 분명하군.’

진산월은 덩치가 크고 약간 뚱뚱한 편이어서 처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딘지 모르게 둔하다는 인상을 느끼게 하곤 했다. 게다가 좀처럼 화를 내거나 인상을 찡그리는 법이 없어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불러 일으켰다. 상원건은 새삼스런 눈으로 진산월을 응시하고 있다가 다시 낙일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더라도 자네의 연속공격은 아주 훌륭했네. 그런 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까는 왜 그렇게 쩔쩔 맸나?”

낙일방은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사실 그는 남과 싸워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처음에는 자신의 가진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었다. 하나 이번에는 진산월의 언질을 받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단숨에 자신의 장기인 장괘장권구식 중의 세 가지 초식을 연거푸 전개해서 하후성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남과 싸워 이겨본 것도 처음이고, 게다가 그 상대가 강호상에서 명성이 자자한 운문세가의 삼총관이었으니 지금 그의 심정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고 들떠 있었다. 낙일방이 아무 말도 못한 채 얼굴만 붉히고 있자 노련한 상원건은 그의 심중을 짐작하고는 빙그레 웃으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 독고황의 음산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이놈들이 끝장을 보려고 하는군. 종남파의 시시한 무공 몇 가지를 믿고 본 가의 행사를 방해하려 하다니 죽으려고 환장했느냐?”

상원건이 고개를 돌려보니 독고황이 두 눈에서 진득한 살기를 뿜어내며 진산월 일행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산월의 옆에는 응계성만이 동그마니 서 있을 뿐이었다. 키가 작고 영리하게 생긴 청년과, 죽립을 깊게 눌러쓴 여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진산월은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독고황을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가 돌연 응계성을 향해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계성. 조금 전에 저자와 손속을 겨뤄본 느낌이 어떻더냐?”

응계성은 딱딱하게 굳은 눈으로 독고황을 쏘아보며 말했다.

“나보다 공력이 두 배는 높은 것 같습니다.”

“빠르기는?”

“나보다 빨라요.”

진산월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로군.”

“그게 뭡니까?”

“지구전(持久戰).”

응계성의 눈꼬리가 머리끝까지 치켜올라갔다.

“지구전이라구요?”

“그래. 되도록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시간을 오래 끌라구.”

응계성은 불만에 가득 찬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그 사이에 제 공력이 높아지기라도 합니까?”

진산월의 음성은 여전히 차분했다.

“저자의 체력이 떨어지지.”

“뭐라고요?”

“공력도 달리고 신법도 쳐진다면 네게 남은 건 젊은 패기 뿐이다. 다행히 나는 네 체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고 있다. 너는 저자보다 훨씬 젊으니 체력으로 승부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단지 문제는….”

응계성은 급히 물었다.

“문제는 뭡니까?”

“저자가 지칠 때까지 네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진산월이 담담한 음성으로 말하는 순간, 응계성은 자신을 향해 쏘아져오는 독고황의 매발톱과 같이 날카로운 손가락을 보고 황급히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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