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12권 검기충천(劍氣沖天)편 :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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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12권 검기충천(劍氣沖天)편 : 6화


제118장. 신목사자(神木使者)

겨울답지 않은 화창한 날이었다. 금교교는 머리를 들어 유난히 파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고 있다가 이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더 가야 되죠?”

이존휘는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반 시진 정도 더 가면 되오. 저 앞에 있는 봉우리를 지나면 서십왕촌이 보일 거요.”

그들 옆에 있던 남호가 투덜거렸다.

“제길, 여긴 종남산에서도 가장 외곽지역 아니오? 보나마나 동네도 코딱지만할 텐데 이런 외진 곳까지 뭐 잡아먹을 게 있다고 가는지 모르겠군.”

“조화심은 한 사람의 뒤를 쫓고 있는 중이오.”

“조화심이 찾는 자가 서십왕촌에 살고 있단 말이오?”

“그렇지는 않을 것이오. 어디 사는지를 알고 있다면 쫓는다는 말도 우습지. 아마 조화심이 쫓는 자는 서십왕촌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일 거요.”

남호는 히죽 웃었다.

“그럼 서십왕촌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어떤 자를 조화심이 뒤쫓고, 그 뒤를 우리가 따라간단 말이로군. 쫓기는 신세라면 고달프겠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상당히 재미있겠는 걸. 그렇지 않소, 이 공자?”

이존휘는 웃고 있는 남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오. 우리 뒤를 아무도 쫓고 있지 않다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오.”

별로 크지 않은 음성이었는데 남호가 용케도 그 말을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존휘를 바라보았다.

“이 공자의 말씀은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오?”

“강호의 일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무튼 조화심은 우리보다 한 시진이나 먼저 길을 떠났으니 지금쯤은 서십왕촌에 도착해 있을 거요. 그러니 조금 서두르는 것이 좋겠소.”

세 사람의 움직이는 속도가 좀 더 빨라졌다. 얼마쯤 가니 움푹 들어간 분지 안에 자리 잡은 작고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다. 남호가 이존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곳이 서십왕촌이오?”

“그렇소.”

“마을이 비록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백 채가 넘는데, 조화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면 시간깨나 걸리겠구려.”

“조화심의 행방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소. 한 사람만 만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오.”

남호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누구를 만난단 말이오?”

이존휘는 손을 들어 서십왕촌의 중앙 부근에 있는 제법 커다란 절을 가리켰다.

“저곳은 백학사라고 하는데, 지금은 초가보의 분타가 자리하고 있소. 그곳의 분타주가 얼마 전에 바뀌었는데, 그는 마침 본가와 약간의 안면이 있소.”

남호는 즉시 이존휘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눈을 번쩍 빛냈다.

‘초가보에 이씨세가의 사람이 들어가 있단 말인가? 과연 이씨세가의 저력은 만만치 않군. 그런데 이런 기밀을 우리에게 순순히 털어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호는 마음속으로 몇 가지 의문점이 들었으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지 않고 실없는 사람처럼 히죽 웃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 공자에게 조화심의 행방에 대해 알려 주었다는 말이오? 정말 강호에서는 일단 안면이 넓고 봐야겠구려.”

이존휘는 그의 말 속에 은근한 비아냥이 숨어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제 조화심이 서십왕촌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사람을 보내 그자로 하여금 조화심을 추적하게 했소. 그러니 조만간 조화심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를 알게 될 거요.”

“그런데 조화심의 뒤를 무작정 쫓는다고 그가 취미사 혈겁에 관련이 있다는 단서를 잡을 수 있겠소?”

“조화심이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만 있다면 취미사 혈겁에 그가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게 될 거요.”

남호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상하리만치 자신감을 표하는 이존휘의 행동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당초에 자신들이 지목한 취미사 혈겁의 가장 큰 용의자는 이존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와 함께 다른 사람의 뒤를 쫓는 형국이 되었다. 게다가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이존휘의 몇 마디 말뿐이었다.

서십왕촌을 코앞에 둔 지금, 남호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조화심이 취미사 혈겁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니, 조화심이 저곳에 있기나 한 걸까?’

서십왕촌의 중앙대로를 막 접어들면서 남호는 문득 자신들이 너무 경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존휘를 취미사 혈겁의 가장 큰 용의자로 생각하면서도 그의 말만을 믿고 별다른 대비책도 없이 무작정 그를 따라나선 것이 조금씩 후회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발길을 돌릴 수도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갈 데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존휘가 그들을 데려간 곳은 백학사에서 얼마쯤 떨어진 작은 주루였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려면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주루 안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존휘와 금교교, 남호는 주루의 입구에서 가까운 탁자에 앉았다. 곧 주인이 다가와서 수건으로 탁자를 닦으며 물었다.

“무얼 드시겠소?”

그들은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으므로 간단한 음식 몇 가지만을 주문했다. 주인이 주방으로 사라지자 남호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다가 문득 눈에 이채를 발했다. 주루의 한쪽 구석에 한 사람이 만두를 먹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행색이 실로 볼 만했다. 입고 있는 의복은 여기저기를 더덕더덕 꿰맨 누더기 같은 장삼이었고, 머리에 쓴 것은 때가 꼬질꼬질한 누런색 두건(頭巾)이었다.

게다가 체구는 곰같이 컸고, 얼굴은 온통 수염으로 뒤덮여 있어서 영락없이 야인(野人)을 연상케 했다. 그런 모습의 사내가 정성스런 모습으로 만두를 먹고 있는 광경은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남호는 흥미로운 얼굴로 그 사내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 사내가 마지막 남은 만두 하나를 커다란 손으로 몇 조각 내어 아껴서 먹는 모습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뭘 보고 웃는 거죠?”

금교교가 의아한 눈으로 그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그 사내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말없이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자 이번에는 남호가 물었다.

“무얼 그리 보고 있는 거요?”

금교교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예전에 저자와 비슷한 사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는데,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그렇소? 무림인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무림인이라면 행색으로 보아 개방의 고수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소?”

금교교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남호는 더 이상 사내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이존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공자가 안면이 있다는 그 백학사의 사람은 언제쯤 만날 수 있는 거요?”

“오시(午時) 경에 이곳으로 오기로 했소.”

“그렇소? 그러면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군.”

서십왕촌은 별로 크지 않은 마을이었다. 그래서인지 점심때가 가까워 오는데도 거의 찾아오는 손님이 없었다. 남호는 조금 따분한지 나른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켰다.

“아함! 정말 조용한 마을이군. 이 마을에서는 평생을 가도 싸움 한 번 일어날 것 같지 않군.”

그때 마침 밖에서 두 사람이 불쑥 주루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들은 각기 하늘색 유삼(儒衫)과 황색 장삼을 입은 젊은 청년들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이런 외진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늘색 유삼의 청년은 얼굴이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새하얗고 입술이 피처럼 붉어서 언뜻 보기에는 남장여인(男裝女人)이 아닐까 싶었으나, 골격이 크고 목적 부근이 튀어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임이 분명했다. 그는 손에 화려한 색상의 섭선을 들고 있었는데, 화사한 용모와 썩 잘 어울려 보였다.

황삼청년은 하늘색 유삼 청년과는 달리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남자다운 매력이 풍기는 인물이었다. 짙은 눈썹에 정광(精光)이 번뜩이는 눈, 우뚝 솟은 콧날에 각진 턱은 보기만 해도 패기(覇氣)를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을 보자 금교교의 얼굴에 이상한 빛이 떠올랐다. 무언가 놀라고 갑작스런 일을 당한 사람처럼 약간은 당혹스런 모습이었다. 남호는 눈치가 비상한 인물답게 즉시 그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시오? 혹시 아는 자들이오?”

금교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어라고 말하려 할 때, 두 청년은 어느새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황의청년은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인 데 비해 하늘색 유삼 청년은 입가에 괴이한 미소를 머금은 채 금교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오, 금 소저. 그동안 잘 있었소?”

하늘색 유삼 청년의 음성은 외모만큼이나 가늘고 높아서 여인의 음성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금교교는 조금 낯빛이 굳어진 채 냉랭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별로 그렇지 못해요.”

“왜 그렇소?”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게 아니에요?”

그녀의 음성과 태도는 찬바람이 일 정도로 싸늘해서 평소의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하나 하늘색 유삼 청년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내가 금 소저의 속마음을 어찌 알겠소?”

금교교는 고운 아미를 상큼하게 치켜 뜨며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쏘아 보더니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손도(公孫都)! 당신의 웃음 속에 얼마니 사갈(蛇蝎) 같은 마음이 숨어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내 앞에서 일부러 그런 거짓 웃음을 지을 필요는 없어요.”

그녀의 말을 듣자 남호는 물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바로 소면낭심(小面狼心) 공손도란 말인가?’

금교교의 독살을 들었으면서도 여전히 공손도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어찌 보면 습관적인 것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무언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흥겨움이 일어나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 그의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남호는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손도의 입은 비록 웃고 있었으나, 두 눈은 기이한 살기와 냉혹한 기운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면낭심 공손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화북(華北) 일대에서 가장 큰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살성(煞星)이었다. 절세가인(絶世佳人)을 무색케 할 만큼 뛰어난 용모에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미남자였지만, 손속이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할 뿐 아니라 일단 손을 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독한 성격이어서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인물이었다.

하나 남호가 놀란 것은 다른 것에 있었다. 소면낭심 공손도는 신목령의 열두 사자 중 하나였던 것이다. 신목구호 조화심의 뒤를 쫓는 자신들의 앞에 신목십호(神木十號)인 공손도가 나타난 것은 절대로 우연한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남호의 시선은 이내 공손도의 옆에 철탑처럼 우뚝 서 있는 황삼 청년에게로 향했다. 공손도의 일행이라면 황삼청년 또한 신목십이호 중의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황삼청년은 한발 앞으로 성큼 다가오며 진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말로만 듣던 금 소저를 처음 보게 되어 반갑소. 나는 위중설(衛重雪)이라 하오.”

금교교의 눈이 어느 때보다도 찬연하게 반짝거렸다.

“당신이 두 주먹만으로 철혈문(鐵血門)을 무너뜨렸다는 패권진천(覇拳震天)이군요.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을 몰랐네요.”

산서(山西) 일대에서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던 철혈문이 신목령의 사소한 지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적이 있었다. 얼마 후에 철혈문으로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로부터 정확히 두 시진 후에 철혈문은 강호에서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 이후 패권진천 위중설의 이름은 적어도 강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위중설의 신목령 내의 지위는 악자화의 바로 아래인 신목육호(神木六號)였다.

종남산에서도 외진 구석에 위치한 서십왕촌의 허름한 주루에 신목령의 고수 두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남호는 일이 당초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것에 대한 희미한 불안감을 느꼈다. 천봉궁과 신목령이 비록 천목지약으로 상호불가침의 관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면 얼마든지 깨어질 수 있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천봉궁과 신목령 사이에는 몇 번의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대부분은 신목령의 고수들이 천봉궁의 인물을 습격한 것이었고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아 정면충돌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천목지약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를 여실히 나타내는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지금 상황이 아주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위중설과 공손도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금교교와 이존휘 또한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자신이 가세한다면 반드시 불리하다고 할 수만도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과연 무슨 의도로 이곳에 나타났느냐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조화심의 뒤를 추적하고 있는 것을 알고 나타난 것이라면 한바탕의 호된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吉)보다는 흉(凶)이 많겠구나. 이존휘의 말만 듣고 무작정 조화심의 뒤를 밟은 것이 너무 성급한 일이었을까?’

남호의 이런 복잡한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교교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이 평소의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호에 이름이 높은 두 분이 이곳에는 무슨 일인가요? 설마 나를 만나러 온 것은 아닐 텐데…”

위중설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금 소저가 틀렸소.”

“그럼 나 때문에 온 것이란 말인가요?”

“그렇소.”

“그것 참 흥미롭군요. 본궁과 신목령은 서로의 일에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않기로 한 것 같은데, 두 분이 내게 볼 일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네요.”

위중설은 별반 표정 없는 얼굴로 무심하게 대꾸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분명 천봉궁과 신목령은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약조했소. 그런데도 금 소저가 천목지약을 어기고 우리의 일에 개입을 하다니 정말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소.”

금교교는 슬쩍 아미를 치켜 뜨며 그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위중설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공손도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의외로군. 고고하고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천봉궁의 영봉선자(靈鳳仙子)께서 뻔히 드러난 사실을 눈 가리고 아웅하려 하다니… 선자가 속세(俗世)에 물든 거요? 아니면 내가 선자를 잘못 본 거요?”

그의 조소 어린 말에 금교교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공손도,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요. 내가 말 몇 마디로 능멸할 수 있는 사람 같아요?”

공손도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나같이 마음속에 흉심이 가득하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사람 죽이는 일밖에 없는 놈이 어떻게 감히 지혜가 하늘에 닿아 있고 고결하기 그지없는 금 소저를 능멸할 수 있단 말이오?”

금교교는 빙글거리며 웃는 공손도의 얼굴을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당신이 지난 몇 년간 기회만 되면 우리들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무슨 생각에서 그런 짓을 계속하는지 모르지만, 신목지약을 깰 생각이라면 우리도 굳이 사양하지는 않겠어요.”

“사부님과 천봉궁주께서 맺은 약속을 내가 어찌 깰 수 있겠소? 다만 금 소저가 이곳에 온 것이 우리의 행사(行事)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달라지다뇨?”

“흐흐…”

공손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나직하게 웃기만 했다. 금교교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지며 입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흘러 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또 다른 누군가가 주루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을 보자 금교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이존휘의 얼굴도 살짝 변했다. 그는 눈부신 백의를 입은 준수한 용모의 청년이었다. 청년의 오른손에는 중년인 한 사람이 들려 있었다.

백의청년은 팔에 한 사람을 들고 있으면서도 전혀 무게를 못 느끼는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이존휘를 보고는 빙긋 웃었다.

“이 형, 어젯밤에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여기서 다시 만났구려. 나와 헤어지는 게 그렇게도 아쉬웠소? 아니면 이자를 만나러 온 거요?”

이존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백의청년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중년인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백의청년은 중년인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이자는 이 형이 아끼는 수하라고 들었는데 왜 쳐다보지도 않는 거요? 이자에 대해서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냥 발목의 힘줄을 잘라 달아나지 못하게 했을 뿐이니까.”

그 말에 중인들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중년인의 발로 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중년인의 하체는 연체동물처럼 힘없이 구부러져 있어 일어서기는커녕 제대로 앉기도 불가능해 보였다. 중년인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혼이 어디론가로 빠져나가 버린 사람 같았다.

백의청년은 천천히 기지개를 켜더니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이제 무대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된 것 같군.”

중인들의 표정이 모두 굳어진 채 백의청년에게 고정되었다. 백의청년은 다름 아닌 옥면절정 조화심이었다. 조화심이 끌고 온 중년인은 맹봉(孟鋒)이란 인물로, 이존휘가 이곳 주루에서 만나기로 한 초가보의 분타주였다.

조화심이 맹봉을 사로잡아 온 것을 본 이존휘는 조화심이 이미 자신들이 뒤를 쫓고 있음을 훤히 알고 있다는 걸 깨닫고 얼굴 한구석에 초조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비록 조화심과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다 해도 강호에서의 친분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존휘를 응시하는 조화심의 얼굴에는 살기 가득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내가 이 형에게 무얼 섭섭하게 했기에 이 형이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구려. 어쨌든 이런 일을 저지른 이상 그 대가를 치를 각오도 했으리라 믿소.”

이존휘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로서는 특별히 대꾸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 그 때문에 장내의 분위기가 한층 더 경색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남호는 재빠르게 눈을 굴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신목십이호 중의 세 사람이라면 정면으로 상대해서는 아무래도 우리가 불리하다. 이존휘의 실력을 정확히 모르지만 아무리 잘해도 겨우 한 명이나 상대할 수 있을 것이고, 금 소저도 일 대 일로 싸운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급습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나 급습을 한다고 해도 강호 경험이 풍부하고 심기(心機)가 뛰어난 조화심과 공손도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조화심 등 세 사람은 이미 금교교와 이존휘 등을 삼각형으로 에워싼 채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금교교와 이존휘 등도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긴장된 표정으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금교교가 조화심 등을 쳐다보다가 침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를 적대시하려 하다니 안타깝군요. 겨우 이런 일로 천목지약을 깨뜨릴 생각인가요?”

조화심은 싸늘하게 웃었다.

“흐흐… 원래 약속이란 깨어지라고 있는 거요. 언젠가는 깨어질 약속이라면 지금이라도 상관없지 않겠소?”

“당신의 말은 핑곗거리에 불과해요. 본궁은 이번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거예요.”

“글쎄, 그거야 두고 볼 일이겠지.”

조화심이 계속 유들유들하게 대꾸하자 금교교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미한 불안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이자들은 정말로 본궁을 적(敵)으로 돌릴 생각이로구나. 그렇다면 넷째를 유혹하고 취미사에서 혈겁을 저지른 자들이 정녕 이들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별다른 준비도 없이 무작정 이들의 뒤를 쫓아온 것은 너무도 경솔하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조화심의 말을 들어 보니 자신들이 쫓아오리라는 것을 이미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호랑이 아가리에 스스로 몸을 내민 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교교는 재빨리 그들과 자신들과의 실력을 저울질했다. 금교교의 실력은 천봉팔선자 중에서 조금 처지는 수준이었다. 원래 그녀는 무공보다는 머리를 사용하는 일에 더 탁월한 재능이 있어서 본신(本身)의 실력은 절정고수라고 하기에는 손색이 있었다. 천봉팔선자 중에서도 개개인의 실력으로 신목십이호의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녀와 동행인 남호 또한 무공으로 이름을 날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결국 믿을 사람은 이존휘 한 사람뿐인데, 그가 아무리 장안제일공자라 해도 신목령의 십이사자 중 하나라도 제대로 상대하면 다행일 것이다. 금교교는 조화심의 뒤를 쫓는 것에 정신이 팔려 누산산과 유화화에게 알리지 않고 바로 길을 떠난 것을 뒤늦게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일이었다.

먼저 손을 쓴 사람은 뜻밖에도 이존휘였다. 조화심이 이 장 앞까지 도달했을 때 이존휘의 신형이 한차례 흔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손이 조화심의 목덜미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그 속도는 가히 경인(驚人)스러운 것이었다. 하나 조화심은 이미 이존휘가 공격해 올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듯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것이었다.

“이 형의 무영수(無影手)는 이미 모두 파악해 두었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은 어느새 이존휘의 손이 닿는 범위에서 훌쩍 벗어나 있었다. 이존휘는 조화심이 너무도 수월하게 자신의 무영수를 벗어나자 얼굴을 더욱 딱딱하게 굳히며 재차 손을 휘둘렀다. 꽈릉 하는 나직한 굉음과 함께 한 줄기 강력한 장력(掌力)이 조화심을 향해 날아갔다. 조화심은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오른쪽 소맷자락을 세차게 휘둘렀다.

쾅!

주루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음향이 터져 나오며 부서진 탁자와 의자들이 사방으로 비산(飛散)되었다. 이존휘의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에 비해 조화심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잠시 주춤거렸으나 이내 몸을 가누고는 오히려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이존휘의 공력이 조화심에 비하면 약간의 손색이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조화심이 재차 이존휘를 향해 몸을 날릴 때 이번에는 공손도가 빙글거리며 금교교에게로 다가왔다.

“금 소저, 우리도 한번 진탕 놀아 봅시다.”

그의 추잡한 말에 금교교의 아름다운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허리춤의 요대(腰帶)를 풀었다. 그녀가 요대를 한차례 흔들자 날카로운 검광(劍光)을 발하는 연검(軟劍)으로 변했다. 연검을 든 그녀는 주저 없이 공손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의 은어(銀魚)같이 고운 손에 들린 연검은 병기(兵器)라기 보다는 하나의 장식품 같아 보였으나, 일단 그것이 휘둘러지자 예리한 검기와 살벌한 검광이 마구 피어오르며 공손도의 상반신을 뒤덮어 갔다.

그녀가 펼치고 있는 것은 백화난분검법(百花亂分劍法)이라는 것으로, 전대(前代)에 손꼽히는 여기인이었던 백화선자(百花仙子)의 성명절기였다.

공손도는 겉으로는 그녀를 경시하는 듯한 표정을 취하고 있었으나 마음 한구석으로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연검을 휘두르자마자 즉시 수중의 섭선을 재빠르게 흔들었다.

파파파팍!

희뿌연 선영(扇影)이 구름처럼 일어나더니 이내 금교교가 펼친 검광에 부딪쳐 갔다. 삽시간에 장내는 거센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이존휘와 조화심은 맨손으로 격돌했고, 금교교와 공손도는 서로의 병기를 꺼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금교교와 공손도의 격전은 살벌할 정도로 무시무시해서 금시라도 둘 중 한 사람이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뜻밖의 싸움에 놀랐는지 한쪽 구석에서 만두를 먹고 있던 누더기 장삼의 사나이가 입을 딱 벌린 채 어안이벙벙한 표정으로 장내의 격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지금까지 묵묵히 서 있던 위중설이 느릿느릿 남호에게로 다가왔다.

“이제 우리들 차례인 것 같군. 나는 손을 쓰겠으니 당신도 준비하시오.”

남호는 움찔 놀라 위중설을 돌아보다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금시라도 덮쳐 올 듯 하자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나… 나는 항복이오. 그러니 당신은 공연히 힘을 쓰지 않아도 되오.”

뜻밖의 말에 위중설의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는 남호가 자신을 향해 양손을 쳐들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떠올렸다.

‘한심한 놈이로군. 금교교의 일행이라면 무림인이 분명한데 어찌 싸우지도 않고 꼬리를 빼려 한단 말인가?’

위중설은 스스로의 무공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패도적인 권법을 익혀서인지 신목령의 사자들 중에서도 가장 승부욕이 강하고 광오한 성격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제대로 대항도 해보지 않고 항복을 외쳐대는 남호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는가? 위중설은 이런 놈에게는 시선조차 주는 것도 아깝다는 듯 이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호는 그가 자신에게서 관심을 끊자 소리 없이 웃었다.

‘역시 듣던 대로 무인(武人) 기질이 다분하군. 나 같은 겁쟁이는 사람 축에도 안 든다, 이거지?’

그는 멍하니 장내의 격전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조금씩 옆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주루에서 단 하나뿐인 작은 창문이 나 있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가급적 다치지 않고 신속하게 주루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금교교와 이존휘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기는 힘들었다. 그럴 바에야 기회를 봐서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 금교교와 이존휘를 소리 소문 없이 제거하려는 신목사자들의 의도를 깨뜨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일단 주루만 벗어난다면 무슨 수를 쓰든 위중설 등의 눈을 피해 서안으로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그런 쪽으로는 누구보다도 풍부한 경험과 솜씨를 가지고 있는 남호였다.

위중설은 그의 이런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교교와 공손도의 싸움에 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점점 막바지를 향해 치달려 가고 있었다. 금교교는 백화난분검법의 절초들을 쉬지 않고 펼쳤으나 공손도의 엄밀하고도 두터운 선법(扇法)을 제대로 뚫지 못하고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의 고운 얼굴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자 점차로 땀에 젖은 옷자락이 몸에 찰싹 달라붙으면서 전신의 굴곡이 완연히 드러났다. 공손도는 부채를 질풍처럼 휘두르면서도 연신 그녀의 드러난 몸매를 힐끔거렸다.

“흐흐… 금 소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오? 이러다 소저의 여린 몸에 상처라도 날까 봐 걱정이오.”

금교교는 공손도가 이죽거리면서 계속 자신의 가슴 부위와 목선을 훑듯이 쳐다보는 것을 보면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상대의 말에 자극받아 평정심을 잃게 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아무리 그녀가 매섭게 검을 휘둘러도 공손도는 얄미우리만치 완벽하게 그녀의 검로(劍路)를 막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씩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불리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공손도의 입가에 떠올라 있는 미소는 조금씩 짙어 갔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금 소저가 겨우 이 정도 솜씨밖에 되지 않다니 정말 실망이군. 천봉궁이란 이름은 역시 허풍떨기 좋아하는 강호인들이 지은 허명(虛名)이란 말이오?”

쉴사이 없이 입을 놀리면서도 그는 그녀가 펼친 검세 속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는 그의 부채가 허공을 찔러 올 때마다 조금씩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공손도가 떨친 선영 한 가닥이 그녀의 오른쪽 옷소매를 길게 자르고 지나갔다.

찌익!

그녀의 하얀 팔뚝이 송두리째 드러나자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공손도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지금까지의 다소 느긋하던 자세를 버리고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 그녀의 주위가 온통 선영에 휩쓸리며 매서운 경풍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공손도가 마침내 자신의 장기인 광풍이십팔선(狂風二十八扇)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광풍이십팔선은 한때 화북(華北) 일대를 석권했던 광풍서생(狂風書生) 양척기(楊拓杞)의 절학이었다. 과거 양척기가 한 자루 섭선으로 광풍이십팔선을 펼칠 때면 주위 사방이 온통 선영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 안은 광풍노도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경풍에 휩싸여 금강동인(金剛銅人)이라도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지옥의 사신(死神)만큼이나 두려워했고, 양척기는 정파의 무공을 익혔으면서도 마도인(魔道人) 취급을 받아야 했다.

공손도의 광풍이십팔선을 직접 맞닥뜨리게 되자 금교교는 공손도가 지금까지 자신을 데리고 장난을 쳤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공손도는 진작에 그녀를 제압할 수 있었으면서도 적당히 그녀와 어울려 주었던 것이다.

팍팍팍!

삽시간에 그녀는 뒤로 다섯 걸음이나 정신없이 밀려나야만 했다. 그의 부채가 어찌나 질풍같이 휘몰아치는지 도저히 반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승기(勝機)를 잡자 공손도는 단숨에 승부를 내려는지 쉴사이 없이 광풍이십팔선의 절초들을 펼치며 그녀를 몰아쳤다. 금교교는 사력을 다해 백화난분검법으로 맞섰으나 검세의 여기저기에 뻥뻥 구멍이 뚫려 당장이라도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나 어찌된 일인지 십여 초가 지나도록 위급한 순간은 여러 번 맞았으나 조금의 부상도 당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져 백옥(白玉) 같은 피부가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금교교는 공손도의 공세에 계속 뒤로 밀려 있다가 문득 그의 시선이 자신이 찢어진 옷 부위들을 연신 훑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자신을 철저하게 조롱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하나 지금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별로 없었다.

그때 남호는 창문이 있는 곳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이제 한 번의 도약으로 창문 밖으로 뛰어나갈 수 있는 충분한 자신이 있었는데, 그때 하필이면 금교교가 위급에 처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이대로라면 금교교가 앞으로 사오 초를 못 넘기고 공손도의 손에 쓰러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뛰어들어도 그녀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마음을 굳히고 창문을 향해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하나 그때 지금까지 남호를 본 척도 하지 않았던 위중설이 갑자기 그를 향해 몸을 날리며 벼락 같은 일권(一拳)을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쥐새끼 같은 놈!”

남호는 막 창문을 빠져 나오려다 자신의 등뒤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안색이 대변해 황급히 몸을 피하려 했다. 하나 그가 채 신형을 바꾸기도 전에 강력한 권풍이 그의 옆구리를 강타해 버렸다.

쾅!

“크윽!”

그는 갈비뼈가 모두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위중설이 비록 광오하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그것은 신목령의 다른 사자들과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여타의 고수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심기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남호는 겉모습만으로 그를 오판하여 방심하고 있다가 제대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으니 실로 그답지 않은 실수라고 할 수 있었다.

남호마저 쓰러지고 나자 장내의 상황은 한층 더 급박해졌다. 금교교는 아직 버티고 있는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공손도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고, 그나마 이존휘만이 조화심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아악!”

갑자기 금교교가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휘청 물러났다. 공손도의 섭선에 격중당했는지 그녀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휘청거리던 금교교는 마침 위중설이 서 있는 쪽으로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위중설은 무심코 자신을 향해 쓰러질 듯 다가오는 금교교를 바라보고 있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금시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던 금교교가 갑자기 신형을 곧추세우며 그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손에 들린 연검에서 눈부신 검광이 폭죽처럼 피어올랐다. 금교교는 공손도에게 밀리는 와중에도 위기에 처한 남호를 구하기 위해 일부러 공손도의 섭선에 살짝 어깨를 내준 다음 방심한 위중설에게 덤벼든 것이다. 위중설은 두 눈에 신광을 번뜩이더니 두 주먹을 십자(十字)로 교차시킨 다음 앞으로 힘차게 내뻗었다. 그의 손에서 두 줄기 권풍이 노도처럼 일어나더니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검광에 부딪쳐갔다.

팡팡!

두 개의 폭음이 연이어 들려오며 위중설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던 금교교의 몸이 허공을 날아 반대쪽 벽면에 부딪혔다. 그녀의 몸은 벽을 거의 절반이나 부수고 나서야 바닥에 쓰러졌다.

“울컥!”

충격이 컸는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날아간 그녀는 시뻘건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위중설도 아주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무시무시한 주먹으로 그녀를 격상(擊傷)시켰으나, 그의 앞가슴 옷자락도 모두 잘려 나가 우람한 가슴 근육이 송두리째 드러나 있었고, 몇 개의 가느다란 핏줄기가 내비치고 있었다. 위중설이 훤히 드러난 채 조금씩 피가 흘러 나오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무언가 싸늘한 기운이 그의 뒤통수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그 기운이 다가오는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천하의 위중설도 이때만큼은 안색이 대변한 채 전력을 다해 몸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하나 기운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완벽하게 피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파악!

목덜미 살이 한 움큼이나 잘려 나가며 시뻘건 선혈이 튀어 올랐다. 위중설은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재차 앞으로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어느 사이엔가 또 다른 싸늘한 기운이 그가 움직이는 방향에서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허공에 피가 뿌려지며 위중설의 옆구리가 베어졌다. 하나 공세는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세 가닥의 기운이 위중설의 전신을 향해 퍼부어지듯 쏘아져 왔다. 다급해진 위중설은 앞으로 몸을 굴려 그 기운들을 피하려 했다. 바닥을 무려 다섯 바퀴나 구른 다음에야 겨우 위중설은 그 기운들의 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위중설의 얼굴은 평소와는 달리 당혹스런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위중설은 강호에 출도한 이후 단 한 번도 지금과 같은 낭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누가 무슨 수법을 펼쳐서 자신을 공격하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쫓기고 있는 것이다. 막 금교교를 쓰러뜨리고 안심하고 있는 사이에 느닷없이 다가온 몇 차례의 공격은 그로서도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그가 채 몸을 일으켜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누군가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여섯째 형님, 조심…!”

위중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온 반대쪽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 예의 차갑고 싸늘한 기운이 그가 이동한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그것은 마치 그가 그쪽으로 움직일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들었기 때문에 위중설이 어떻게 피할 겨를도 없이 그의 왼쪽 겨드랑이 부분을 그대로 가격해 버렸다.

파아아…

“으음…”

옷자락이 너덜너덜해지며 위중설의 얼굴이 고통으로 찡그려졌다. 하나 그때 처음으로 위중설은 자신을 공격한 것이 어떤 병기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의 옆구리 갈비뼈를 송두리째 부숴 버린 것은 하나의 길고 가느다란 채찍이었던 것이다. 그 채찍은 그의 겨드랑이를 강타하고는 너무도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그 채찍은 굵기가 어른의 엄지손가락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전신이 은은한 옥색(玉色)을 띠고 있어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위중설은 고통의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그 채찍을 일별(一瞥)하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꼈다. 강호무림에서 채찍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저토록 특이한 옥색의 채찍은 오직 한 사람만이 사용했던 것이다.

“이제 보니 백(白)…”

그는 무어라고 소리치려 했다. 하나 그의 음성은 채 맺어지지 못했다. 어느 사이엔가 하나의 단검이 그의 목덜미에 깊숙이 꽂혀 있었던 것이다. 그 단검은 두 치 길이에 비취색의 수실이 매달려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어린아이의 장난감을 연상케 했으나, 그것이 위중설의 목에 꽂힌 이상 가공할 살인병기(殺人兵器)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갑자기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주루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의 시선은 크게 뜨여진 채 목에 단검이 꽂힌 채로 우두커니 서 있는 위중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한동안 석상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던 위중설은 자신의 목에 꽂힌 단검을 움켜잡고 빼내더니 한쪽을 돌아보았다.

“두청청… 네년이…”

하나 그는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운 주루 바닥에 나뒹구는 그의 두 눈에는 경악과 고통, 분노의 빛이 숨김없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각기 백의와 청의를 입은 두 명의 여인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두 여인 모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풍기는 인상은 전혀 달랐다. 백의여인은 무척 이지적인 용모에 별빛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손에 좀처럼 보기 힘든 옥색의 채찍을 살짝 말아 쥐고 있었다. 반면에 청의여인은 차가우면서도 냉정한 인상이었다. 장내에는 조화심과 공손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위중설이 바닥에 쓰러지고 두 명의 여인이 주루 안에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어느사이에 밖으로 모습을 감춰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쪽에서 만두를 먹고 있던 누더기 장삼의 사나이도 어느 사이엔가 없어져 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화심의 손에 패색이 짙었던 이존휘는 커다란 한숨을 내쉰 후 두 명의 여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두 분은 혹시 천봉팔선자 중의 백봉 정소소, 정 소저와 취봉 두청청, 두 소저가 아니시오? 불초는 이존휘라 하오.”

청의여인은 예의 냉랭한 모습으로 아무 말이 없는 데 반해, 백의여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로 정소소예요. 강호에 명성이 높은 이 공자를 만나서 반가워요.”

이존휘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모두 쓸데없는 허명일 뿐이오. 두 분 소저가 조금만 더 늦게 오셨어도 나는 낭패를 면하기 어려웠을 거요. 설마 조화심의 무공이 그토록 고강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소.”

그는 자신의 공력이 조화심에 미치지 못한 것에 무척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실력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그로서는 비슷한 나이에 은근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던 조화심과의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린 것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정소소는 그를 위로해 주기보다는 우선 금교교의 상세가 궁금했는지 그녀가 쓰러진 곳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금교교의 상태가 위태로운 것은 아니었는지 정소소가 알약 하나를 먹이고 명문혈에 진기를 불어넣어 주자 이내 정신을 차렸다.

“큰 언니,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녀는 백봉 정소소를 보고 반색을 했다. 정소소는 그녀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음을 알고 안심했는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오늘 아침에 자은사로 갔다가 네가 어제 이씨세가에서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이씨세가를 들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미리 우리에게 연락이라도 했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게 아니냐?”

금교교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설마 그들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공격해 올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공손도, 그자는 어디로 갔죠?”

“우리가 나타난 것을 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조화심도 그렇고, 둘 다 아주 약삭빠른 놈들이다.”

금교교는 고개를 돌리다가 위중설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째 언니도 왔군요.”

아무리 위중설이 보기 드문 고수라 해도 천봉팔선자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두 여인의 연수공격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목에 구멍이 뚫린 채 죽어 있는 위중설의 두 눈은 여전히 부릅뜨여져 있었다. 곧 그녀의 눈에 청의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청의여인은 창문가에 쓰러져 있는 남호에게로 가서 그의 상세를 치료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호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는지 청의여인이 자신을 향해 다가올 때부터 그녀를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청의여인의 가뜩이나 차가운 얼굴에 한 꺼풀 얼음이 씌워진 듯 더욱 냉막한 표정이 떠올랐다. 남호가 무어라고 입을 열 틈도 주지 않고 그녀는 번개같이 손을 내밀어 남호의 부러진 갈비뼈를 이어 주었다.

뿌득!

뼈마디가 맞춰지는 소리와 함께 남호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으윽! 살살 좀 부탁하오, 두 소저.”

청의여인은 천봉팔선자 중에서도 가장 싸늘한 성격을 지녔다는 취봉 두청청이었다. 두청청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더니 이내 특유의 냉랭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엄살 피우지 말아요. 이런 건 상처라고 할 수도 없어요.”

부러진 갈비뼈가 이어지자 그제서야 숨쉬기가 편해졌는지 남호의 얼굴에 제대로 된 혈색이 돌아왔다. 남호는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두청청을 향해 포권을 했다.

“도와 주어서 고맙소.”

“고마워할 것 없어요. 당신은 항상 남들보다 잔머리를 굴린다고 자랑하더니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말았군요.”

“허허… 이게 다 강호에서 사는 맛이 아니겠소?”

“이런 맛을 한 번 더 보려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거예요.”

그녀가 계속 쌀쌀맞게 대꾸했으나 남호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다.

“운이 나쁘면 자다가도 벼락 맞아 죽을 수 있는 게 사람이오. 다행히 내 운은 그리 나쁘지 않으니 소저가 걱정하는 만큼보다는 오래 살 수 있을 거요.”

두청청은 그와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은지 이내 정소소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금교교에게로 다가갔다.

“너는 항상 혼자 약은 척하더니 이번에는 꼴좋게 됐구나. 우리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어쩔 뻔 했느냐?”

금교교는 두청청의 평소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용히 웃었다.

“다행히 언니들이 제때 와 주셔서 한시름 놨어요. 그런데 그들이 대체 누구를 만나려 하길래 천목지약을 깨면서까지 우리에게 살수를 쓰려 한 걸까요?”

두청청은 별다른 대답이 없고, 정소소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우리도 그 점이 미심쩍긴 하다만, 지금에 와서는 그들이 만나려는 자가 누구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보다는 명목상으로나마 남아 있던 천목지약이 깨어진 이상 그들과 한바탕 충돌을 피할 수 없으니 그게 더 중요한 문제다.”

그동안 천봉궁과 신목령은 크고 작은 충돌이 적지 않았으나, 아직 서로간에 노골적인 적대행위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이 금교교를 공격한 데 이어, 정소소와 두청청의 손에 신목십이호 중 한 사람이 죽었으니 그들 사이는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강)을 건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금교교의 얼굴에 한 줄기 걱정스러운 빛이 떠올랐으나, 의외로 정소소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어차피 그들과는 시기가 문제였을 뿐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이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전선(戰線)이 확실해졌으니 우리로서도 앞으로의 행동방침을 정하는 데 불리할 것이 없다.”

금교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침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들이 취미사 혈겁의 흉수라는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한 것이 아쉽군요.”

두청청이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그들이 너에게 살수를 쓴 것으로 보아 이미 그들이 흉수임은 분명해진 게 아니냐?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있느냐?”

“그렇긴 하지만…”

금교교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조화심을 비롯한 신목십이호의 행동은 분명 의심을 살 만한 구석이 있었다. 하나 그것이 그들의 취미사 혈겁의 범인이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 일로 인해 천봉궁과 신목령은 적(敵)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당금 강호의 정세에 더 한층 위기감을 가중시킬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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