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프롤로그


고고학자나 지질학자에겐 절대로 옛날 옛적이 아닌 어떤 때, 죽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 생각에 완전히 매진하진 못했어요. 그 충동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일로 바빴거든요. 동생의 머리에 난 구멍을 틀어막고 있을 땐 누구라도 차분하고 느긋하긴 어려운 법이랍니다.

소년은 어찌할 줄 모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언덕 위에서 동생에게 흙을 차 보낼 때 응원을 보내주던 동무들이 보이지 않았어 요. 그 아이들은 이미 도망친 후였거든요. 아마 그 애들 중 사려가 조금이라도 있는 아이는 동네로 달려가 어른들을 데려올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내 일 아침이나 되어야 그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지만요. 소년은 자신이 어느 쪽을 바라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빨리 어른이 와서 동생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막아주기를 바라는 건지, 그렇잖으면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지.

‘왜 그냥 돌아가지 않은 거야. 올라올 수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면 될 거 아냐. 형이 너하고 놀면 재미있을 것 같아? 형이 계집애처럼 동생하고 소꿉 놀이나 해야 해? 왜 형을 못살게 구는 거야. 너 같은 것 바란 적 없어. 왜 태어난 거야. 아냐, 미안해. 이런 소리 하는 것이 아냐. 나는 형이야. 형이라 고. 거기 돌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았겠어. 난 흙만 좀 끼얹을 생각이었어. 너 집에 보내려고 그런 거야. 돌이 굴러 떨어질지 어떻게 알았겠어. 나는 몰 랐어!’

소년은 그의 발길질에 흙 아래 묻혀 있던 돌이 쑥 빠지던 때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돌은 기우뚱하다가 경사면을 타고 구르기 시작했죠. 그때도 소년 은 발이 아파서 동생을 욕하려고 했어요. 가속도가 붙은 돌이 동생의 머리를 때렸을 땐 꼴좋다고 생각했죠.

“네가 잡은 거야?”

절대로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목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들었습니다. 공황 상태였던 소년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 어요. 사실 인간들이 그런 걸 볼 일은 거의 없지요. 만약 그걸 목격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주위 사람들을 지긋지긋하게 만들거나 그 자리에 서 죽게 될 겁니다. 주위 사람들은 후자를 바라게 될지도 모르지요.

소년은 넋이 나간 얼굴로 앞쪽에 앉아 있는 거대한 드래곤을 보았습니다. 드래곤이 참을성 있게 말했어요.

“앞발 올려놓고 있는 건 네가 잡았다는 뜻이겠지. 알아. 빼앗을 생각은 없어. 원래는 그냥 지나갈 생각이었어. 하지만 너희들이 서로를 안 먹는다는 기억이 떠올라서 말이야.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기억이 있거든. 그래서 물어보려고 내려온 거야. 그거 먹을 거야?”

“머, 머?”

“네가 잡은 그것 먹을 거냐고.”

“먹?”

드래곤은 인내심을 잃는 기색을 약간 보였습니다.

“먹어? 안 먹어?”

“안 먹어!”

소년은 자신의 외침에 놀랐습니다. 아이들을 무시하지 마세요. 당신들도 한 때는 아이였잖아요. 소년은 자신이 외친 말이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쯤은 깨달을 수 있었어요. ‘동생을 먹지는 않아.’라는 뜻과‘나는 안 먹을 테니 네가 먹어.’라는 뜻이지요. 드래곤은 두 번째 의미에 반응했 어요. 그것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소년은 멍한 눈으로 산이 허리를 굽히는 듯한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어른들에게 뭐라고 말할지 생 각했어요. ‘드래곤이 동생을 잡아먹었어요.’ 그건 사실이죠. 정직한 소년에게 나라에서 훈장을 줄지도 모릅니다.

드래곤이 멈췄습니다.

그것은 묘한 눈으로 피에 젖은 동생을 보다가 다시 형을 보았어요. 드래곤이 말했습니다.

“너 닮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