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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19화


왕비는 자신이 무턱대고 내지른 고함에 놀란 채 다가오던 왕을 보았습니다. 차츰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지요. 그녀는 자신의 말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래. 나의 왕께서 시에프리너를 죽이면 되는 거야…………… 마법이 아닌 검으로.”

왕비는 다시 시에프리너의 백치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왕이 파멸의 어머니 시에프리너를 죽이고 바이서스를 구하게 될 겁니다. 그렇습니 다. 드래곤을 죽이는 것은 왕의 일이죠. 그것이 전통입니다. 드래곤을 죽인 자가 참다운 왕이 되는 것이지요. 그 순간 왕비는 루트에리노 대왕이 드래 곤 로드를 추방하기만 했을 뿐이며 유명한 드래곤 슬레이어 길시언 왕자는 왕자로 죽었다는 사실 같은 건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하긴 떠올렸다 하더 라도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겠지요. 그녀가 말하는 왕은 신분이 아닌 상징이었으니까요. 스스로 고난이 되어 사람들을 고난에서 구하고 스스로 정 의가 되어 정의를 수호하는 자. 모든 사악한 것을 참하고 모든 부정한 것을 멸하는 자. 왕.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그런 왕이 될 것입니다.

왕비는 북받치는 울음으로 자신의 행운을 찬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외침이었습니다.

“왕이시여! 시프리너를 멸하소서. 바이서스를 파멸에서 구원하소서!”

바위에서 어렵게 내려서던 왕은 왕비의 외침에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외침이 절절하긴 했지만 위급한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안도감 속에서 왕비의 외침에 대해 생각해 본 왕은 온몸을 꿰뚫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는 클러치를 뗀 채 시에프리너를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드래곤을 죽여?”

왕은 허리띠에 꽂아둔 프림 블레이드의 칼자루에 손을 얹었습니다. 프림 블레이드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어요.

‘시에프리너라면 지골레이드의 딸? 지골레이드한테서 또 자식을 뺏으려고?”

“할 수 있을까? 너는 드래곤의 피부를 뚫고 그 심장을 찌를 수 있나?”

‘그건 너한테 달린 문제야. 게으른 글쟁이가 필기구 탓하지. 종이나 펜이 좋으면 명문 나오니?’

“하지만 잉크도 없이 글을 쓸 수야 없잖아. 종이를 검은색으로 적실 순 있어야지.”

‘헤. 제법 받아치네. 그래. 난 드래곤의 피부도 적실 수 있어. 빨간색으로, 한 번 집필해 보겠어?”

왕은 바닥을 살폈습니다. 그가 내려선 곳에서부터 시에프리너가 있는 곳까지의 바닥은 평탄했어요. 그 말은 바꿔 말해서 시에프리너가 벼락을 뿜을 경우 왕은 몸을 피할 수도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왕도 시에프리너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에프리너는 그를 보긴 했지만 무슨 돌이나 나무를 보듯 무심하게 시선을 옮겼어요. 그 모습을 본 왕은 자신감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머뭇거릴 여유도 없었지요. 그곳에 왕비가 있 었으니까요.

왕은 시에프리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스로틀을 몇 번 거칠게 당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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