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20화
바이크의 엔진음은 털의 들판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일페사스는 험악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헛소리. 제 아무리 루트에리노의 후예라 하더라도 혼자서 드래곤을 죽일 순 없어. 마법사도 없는 이런 시대에 한낱 인간이 어떻게?”
호언장담하던 아일페사스는 이루릴의 굳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루릴이 밖에 들릴까 두렵다는 듯이 속삭였어요.
“펫시. 프림은 어디 있죠?”
아일페사스는 넋이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루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어요. 시에프리너나 그림자 지우개의 위협이 있다 해도 어쩔 수 없었지 요. 그녀는 주위를 회전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루릴은 곧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왕지네와 아일페사스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신음했습니다.
“나갈 수가 없어요.”
“뭐?”
“왕비나 왕이 왕 곁에선 마법을 쓸 수 있었으니 왕비겠군요. 그녀가 뭔가 마법을 억제하는 물건을 가지고 온 모양이에요. 뭔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 문에 여기서 나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아일페사스는 당황하여 주위를 회전시켰습니다. 하지만 주변은 돌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제멋대로 변화하는 나비들이 노니는 털의 들판에 앉아 있었습니다. 왕지네 또한 급히 이루릴에게 밖으로 나가는 법을 물어 시도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지요. 그녀들은 그 공간에 갇혀 있었 습니다.
스로틀을 당기던 왕은 속으로 쾌재를 올렸습니다. 시에프리너가 엔진음에 반응했거든요. 그녀는 목을 조금 빼서 왕을 쳐다보았어요. 왕은 그대로 바 이크를 출발시켰습니다. 그는 시에프리너의 목 아랫부분을 향해 퍼시발을 몰았습니다. 바이크인 퍼시발은 아무 두려움 없이 달렸습니다.
왕비는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시에프리너는 정확히 왕의 의도대로 행동했어요. 그 때문에 왕비는 격심한 불안도 느꼈지요. 시에프리너는 다가오 는 바이크를 입으로 건드려보겠다는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며 머리를 낮췄습니다. 왕비는 당장이라도 시에프리너의 이빨에 왕과 퍼시발이 박살나는 모습을 볼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왕이 허리띠에서 장검을 뽑아들었습니다. 그러곤 바이크의 속도를 갑자기 높였지요. 이제 왕 은 시에프리너의 머리 아래를 통과하며…
프로타이스가 거세게 춤을 추었습니다.
퍼시발이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앞발을 구르며,
왕은 호되게 낙마했습니다. 왕비는 비명을 질렀지요. 시에프리너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퍼시발은 왕을 매단 채 반대로 도망쳤습니다. 질질 끌려가 던 왕은 프림 블레이드를 휘둘러 등자끈을 자른 후에야 그 고문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왕비는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어요.
“저 멍청한 말이!”
왕비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말? 그렇습니다. 퍼시발은 왕의 말이었지요. 왕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습니다. “말이?”
말입니다. 바이크가 아니라.
“프로타이스가…. 지워졌을 때!”
프로타이스가 원래부터 없었던 현실에서 퍼시발은 말이 아니라 바이크였습니다. 프로타이스가 현실의 해변으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것은 다시 말 이 되었지요. 그런 변화는 프로타이스가 당장이라도 나타날 거라는 의미였지만 왕비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왕비는 땅에 쓰러진 왕 에게 달려갔습니다. 그곳은 시에프리너의 머리 바로 아래쪽의 위험한 장소였죠.
왕은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왕비는 시에프리너의 동정을 살폈어요. 다행히도 시에프리너는 겁에 질린 퍼시발에게 정신이 팔린 상태 였습니다. 말은 바위 무더기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왕비는 두 번 생각할 겨를 없이 왕의 상체를 붙잡았습니다. 왕은 왕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바닥을 짚고 일어났습니다.
왕비는 얼어붙었습니다.
그녀는 뒤로 흠칫 물러났습니다. 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지요. 그것은 왕비가 본 가장 무서운 광경이었습니다. 왕비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습니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왕비는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 같지 않은 목소리가 질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당신・・・・・・ 누구야?”
“왕비?”
“누구야……… 누구…………”
“무슨 소리요, 왕비. 나는…….”
왕은 혼란스러운 듯 말꼬리를 삼켰습니다. 왕비에게 그 표정은 익숙했습니다. 그 사내는 항상 그런 멍청한 표정을 짓곤 했지요. 하지만 그건 속에 있 는 야심가를 감추는 가면이었습니다. 왕비뿐만 아니라 왕 또한 그 가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솔베스를 그에게 주기로 결정했지요. 국 토도 넓히는 것이 되고 야심가를 국내에 두는 위험도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 사내도,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그 계획에 동의했지요.
왕비는 얼굴을 무의식적으로 씰룩거리며 왕의 조카를 바라보았습니다.
발탄과의 전쟁 당시 왕의 조카가 발탄의 저격병에게 저격당한 것은 바이서스의 패배를 결정짓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일로 그 발탄 저격병은 본국의 영웅이 되었지요. 그 때문에 바이서스에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저격병 때문에 전쟁에 졌다고 믿는 바이서스 인들은 저주를 담아 그 이름을 불렀지요. 그 이름은 에이다르 바데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