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25화
예언자는 호흡을 멈췄습니다. 그러곤 옆으로 손을 뻗었죠.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예언자가 손을 뻗자 거기엔 라이플이 나타났습 니다.
물론 라이플에 허공에 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 라이플은 왕지네의 어깨에 걸려 있었지요. 예언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것을 그대로 왕지네 의 어깨에서 벗겨내었습니다. 왕지네는 갑자기 휙 바뀐 주변 풍경에도 익숙해지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것을 제지할 수도 없었어요.
예언자는 빠르게 레버를 꺾었다 당기며 속삭였습니다.
“가져다줘서 고마워. 왕지네. 그리고 미안해.”
왕지네는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지요.
“뭐?”
예언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지네가 붙잡고 있는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왕자가 아기의 동글동글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예언자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지요.
다음 순간 예언자는 거침없는 동작으로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고 사격 자세를 취했습니다. 왕지네와 왕비 모두 급격한 상황 변화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왕비가 조금 더 행동이 빨랐습니다. 왕비는 예언자가 자신을 쏠 때를 대비하여 몸을 긴장시켰습니다. 그런데 총구를 자세히 본 왕비는 그것이 그녀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왕비는 더럭 겁에 질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거기엔 왕이 있었습니다.
왕의 모습은 바뀌어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총구 앞에 선 지금의 왕은 반쯤은 백부 같고 반쯤은 조카 같은 모습이었지요. 왕비는 그 모습에서 이질감 을 느끼기보다 두 배의 친근감을 느꼈어요. 두 배의 사랑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였지요.
‘쏘지 마.’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공포도 두 배인 것 같아요. 왕비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예언자가 중얼거렸어요.
“저 남자가 당신의 왕입니까?”
‘쏘지 마.’
“자기도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저 남자가? 솔베스에서 한 번, 궁성에서 한 번. 두 번 죽은 저 남자가 당신의 왕입니까?” “쏘지 마!”
예언자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프로타이스가 한 발 내디뎠습니다.
용수철의 힘에 맞서던 공이치기는 협력해 주던 방아쇠가 사라지자 용수철에 굴복했어요.
프로타이스가 한 발 내디뎠습니다.
공이치기는 약실 안에 있던 탄약의 뇌관을 때렸습니다.
프로타이스가 한 발 내디뎠습니다.
뇌홍이 타격에 폭발했습니다. 얌전한 장약도 그렇게 옆에서 치근대니 불이 붙지 않을 수 없었죠.
프로타이스가 한 발 내디뎠습니다.
순간적으로 가스로 변한 장약이 탄환을 밀어냈어요. 탄피의 자궁에서 뛰쳐나온 탄환이 그 엄청나게 짧은 인생을 시작했죠.
프로타이스가 한 발 내디뎠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탄환을 닮았어요. 우리 어머니는 무덤까지 날려 보낼 폭발력으로 우리를 세상에 내보내죠. 강선이 우리를 깎아내지만 그래도 어찌나 강력한 폭발력인지 무덤까지 날아갈 힘은 충분히 남죠. 도대체가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요.
프로타이스가 현실에 섰습니다.
탄환은 강선의 추억을 간직한 채 목표에 명중했습니다.
퍼석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알이 박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