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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3화


사람이 하는 일을 수렵형과 채집형으로 나눈다면 채광은 어떤 것에 속할까요?

오래된 분류에 따르면 수렵은 상상력과 결단력을 필요로 하는 남성의 일이고 채집은 관찰력과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여성의 일이죠. 각자를 대표하 는 예를 꼽아보면 낚시와 장보기가 있겠네요. 여자는 보이지도 않는 물고기를 상상하며 기다리는 일이 왜 재미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남자는 사지 도 않을 물건들을 모조리 판단하고 다니는 일이 왜 재미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지요? 그건 낚시가 수렵이고 장보기가 채집이기 때문이죠. 학문적인 구분이랄 수는 없지만 이런 구분도 재밋거리는 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수렵형 · 채집형의 구분을 적용해 보면 채광은 수렵에 가깝습니다. 광물이야 물론 보통의 수렵물과 달리 가만히 있긴 하지만 땅을 전부 파헤치 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숨어 있는 수렵물로 볼 수 있죠. 그 보이지 않는 광맥을 상상할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 채광인 겁니다. 예언자는 그 런 채광의 특징이 자신의 적성에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모든 예언자에 의하면 또 나왔군요.예언은 상상력의 특이한 발현이랍니다.

솔베스엔 이미 부지런한 코볼드들이 만든 훌륭한 구리 광산이 두 개 있었고 그것은 전쟁의 한 원인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예언자는 그것이 전부일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구리는 다이아몬드나 루비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물자지만 여성과 드래곤은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죠. 예언자 는 시에프리너가 구리를 위해 코볼드들을 열심히 다그치지는 않았을 거라 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땅에 아직도 생동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죠.

떠나온 것들을 잊기 위해, 그리고 새로 만난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예언자는 솔베스를 돌아다니며 구리 광맥을 추측해 보았습니다. 정신과 육체 모두에 자극을 주는 괜찮은 소일거리였지요. 예전의 솔베스가 어떤 땅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기겁했겠지만 시에프리너가 잠든 이후 코볼드들을 위시 한 괴물들은 모두 어딘가로 사라졌기 때문에 그리 위험하지도 않았어요.

예언자는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땅 특유의 화려한 황량함을 관조하며 솔베스의 언덕과 계곡을 거닐었죠. 고문의 흉터들은 영원히 남겠 지만 예언자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예언자는 가끔 바이서스 방향을 바라보긴 했지만 그 눈빛은 쌀쌀맞다고 말할 그런 것이었죠. 예언자의 눈길은 보이지도 않는 구리 광맥을 내려다볼 때 훨씬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예언자의 눈길은 새로운 방향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바이서스 방향도, 아래쪽도 아닌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화가였습니다. 다시 수렵형·채집형의 구분을 적용해 보면 수렵가라고 할 수 있죠. 자연을 관찰하는 미술이 어떻게 채집이 아니라 수렵이냐 고요? 음. 가장 완벽한 눈, 가장 완벽한 코, 가장 완벽한 입술 등을 모아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있을까요? 화가들은 그런 식으로 작업하지 않죠. 숲 속 어딘가에는 자신이 원하는 사슴이 있다고 믿는 수렵가와 마찬가지로, 화가는 세상 어딘가에 자신이 원하는 소재가 있다고 믿지요. 화가보다는 음악가가 더 채집가에 가깝습니다. 채집가는 숲 속 어디에도 자신이 원하는 식탁이 차려져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요. 대신 식탁의 구성물을 모음으 로써 자신이 그것을 만들어내려 하지요. 음악가도 완성된 소리를 찾아 헤매지는 않습니다. 음을 모으고 장단을 모아서 직접 만들어내지요.

어디까지나 재미삼아 해보는 구분이란 건 아직 잊지 않으셨죠? 예. 채집형 미술도 있을 수 있고 수렵형 음악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가들의 발 상은 언제나 다른 이들을 놀라게 하니까요. 하지만 예언자의 눈에 들어온 그 화가는 분명히 수렵가였습니다. 그것도 지나치게 용감한 사냥꾼이었죠. 멋진 소재를 찾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솔베스까지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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