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32화
왕비의 시체는 왕의 시체 위에 쓰러졌습니다. 그 덕분에 고귀한 시체 더미가 만들어졌지요.
예언자는 라이플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곤 무릎을 꿇었죠. 그는 고귀한 시체 더미 앞에 엎드린 채 흐느꼈습니다. 예언자의 맞은편에서 왕자를 안고 있던 이루릴이 나직하게 말했어요.
“왜 왕비한테 살해당하려 한 거죠?”
예언자는 바닥에 이마를 댄 채 거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들 모두에게 엿을 먹이고 싶어서요.”
“예?”
예언자가 두 손으로 바닥을 밀며 상체를 들어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머리는 여전히 숙여 바닥을 보고 있었지요. 색깔에 비유한다면 시체의 보랏빛에 해당할 말투로 그가 말했습니다.
“왕비는 섣불리 다른 남자에게 정을 주었다가 그 남자가 왕을 죽이게 된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자살했습니다. 이제 난 그녀의 죽음에 오열하다가 그 녀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도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고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죠.”
“당신 지금…… 당신 지금……”
이루릴의 최선이었지요. 예언자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오열했습니다. 깨달았습니다. 결심했습니다.”
예언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상체를 폈습니다. 그때 이루릴은 예언자가 라이플을 떨어뜨렸지만 그림자 지우개는 여전히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 았죠. 그 발견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이루릴은 끔찍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예언자가 허핍하게 말했어요.
“가장 끔찍한 건, 이 모든 소동에 의미가 있다는 거죠. 시간의 장인들이 원하는 근사한 의미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왕지네가 고함을 빽 질렀습니다. 성대가 아닌 몸을 진동시켜 내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프로타이스와 아일페사스도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 지요. 예언자는 어깨를 한 번 크게 들먹였습니다. 그는 뒤를 반쯤 돌아보았지요. 하지만 그는 다시 이루릴을 돌아보았습니다.
“당신 뭘 하려는 거죠?”
이루릴은 예언자에게 다가섰습니다. 하지만 예언자가 각등을 들어올렸지요. 이루릴이 안고 있는 왕자는 그 순간 닻이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있는 무력한 존재가 있었기에 이루릴은 위험을 무릅쓰거나 할 수 없었어요.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죠. 예언자는 그 반응 에 만족한 기색을 조금 보였습니다. 예언자는 피를 토하듯 외쳤습니다.
“왜!”
그 외침에 이루릴은 마비 상태 비슷한 것에 빠졌습니다. 그녀를 대신하여 왕지네가 다시 고함을 지르며 예언자를 향해 달려왔어요. 그때 예언자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예언자와 왕지네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예언자는 그림자 지우개를 작동시켰어요.
그림자 지우개의 덮개가 예언자를 향해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