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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40화


시에프리너의 눈에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눈물과 뒤섞인 피는 거센 풍압 때문에 뒤쪽으로 흩뿌려졌어요. 그 때문에 시에프리너의 시야가 흐려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뭘 제대로 보지도 않았지 만 말입니다. 사실 시에프리너의 눈은 아까부터 한 가지 장면만을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왕이 쏜 총에 알이 깨지는 장면이었지요.

‘내 알, 내 알! 아버지, 미안해요!’

알의 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 지골레이드를 먼저 떠올렸다는 점에서 시에프리너가 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후손에 대한 집착이 어떤 것인지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조금 후 시에프리너는 잠들어 있는 알의 아버지도 떠올렸습니다.

‘미안해. 내가 알을 지키지 못했어. 그 인간이 우리 알을 쐈어. 그 바이서스가!’

시에프리너가 입을 벌렸습니다. 바이서스가 알을 쐈습니다. 루트에리노 바이서스의 후손인 바이서스가. 그녀는 아버지와 짝을 대신하여, 그리고 알 을 대신하여 바이서스를 파멸시켜야 했습니다. 지금껏 무의식적으로 행해 온 짓이 분명한 목적의식과 결합했지요.

‘바이서스를 죽여야 해.’

시에프리너는 피가 흘러내리는 눈으로 자신이 날고 있는 하늘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거기엔 바이서스가 있었지요.

‘왜 거기 있어? 계속 거기 있을 거야? 그래선 안 돼. 죽어. 없어져!’

시에프리너는 구름을 끌어 모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그 행태가 달랐습니다. 시에프리너는 구름의 우두머리인 양 구름들을 이끌었지요. 그것은 하늘에 대해일이 일어난 듯한 광경이었어요. 하늘의 북쪽 끝에서부터 남쪽 끝까지 닿는 거대한 잿빛 꿈틀거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질주했 지요. 그 선단부에서는 쉴 새 없이 벼락이 쳤고 그래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계속되었어요. 그것을 본 이들은 누구나 세계가 어떻게 될 거라는 확신을 느꼈습니다. 바이서스 인들은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어요.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의 도래를 의심하게 되었지요.

대륙 규모의 구름 파도를 이끌고 날아간 시에프리너는 얼마 후 바이서스 임펠에 도달했습니다. 그녀는 바이서스 임펠의 상공에서 멈췄어요. 그녀 바 로 뒤편의 구름들은 그녀와 함께 멈췄지만 저 북쪽 하늘의 구름들과 남쪽 하늘의 구름들은 관성에 따라 계속 전진했지요. 시에프리너의 의지는 그 구 름들을 완강히 끌어당겼어요. 그 전체 규모를 조망하기 위해선 바이서스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에 도달해야 할 장대한 움직임이 펼 쳐졌습니다. 북쪽과 남쪽 하늘에서 구부러진 구름의 파도가 서로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리하여 동쪽 하늘에서 구름의 파도가 맞부딪혔지요.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충돌의 순간 구름 속에서 번개들이 일시에 발광하였습니다. 바이서스의 하늘엔 지름이 수백 펜큐빗에 달하는 거대한 번 개의 테가 나타났습니다. 바이서스 임펠은 물론이거니와 말을 달려서 열흘 거리 이내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귀가 멍멍해지는 천둥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이가 비록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천둥소리를 들었습니다.

시에프리너는 무의식적으로 구름들을 끌어당기며 피에 젖은 눈으로 바이서스 임펠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녀가 솔베스를 떠난 것은 아침 무렵이었지요. 시에프리너는 드래곤의 기준에서도 경이적인 속력으로 날아왔지만 거리도 거리거니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았기 때문에 바이서스 임펠은 이 미 해가 진 후였습니다.

시에프리너는 바이서스 임펠에 아침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선회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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