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58화
덮개가 더 움직였습니다. 남아 있는 시각은 0.2초 정도였어요. 어이없는 일이지만 왕지네는 그 ‘빠른’시간의 흐름에 경악했습니다.
다 알고 있었거든. 다 알고 있었어. 내 아들의 어머니인 왕비를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절망과 분노 때문에 나는 약 간 맛이 가게 돼. 그래서 왕비가 아닌 화가를 찾게 되는 거지. 왕을 죽이면 화가가 돌아올 거라는 되지도 않을 결론을 내린 나는 왕을 죽이려 하게 돼. 바이서스 따위야 내가 알 바 아니지. 그래서, 무기를 지닐 수 없는 나를 대신하여 당신이 무기를 운반하게끔 하는 거지. 하지만 총질에 서툰 나는 엉 뚱하게도 시에프리너의 알을 쏘게 돼. 시에프리너는 격노하여 왕을 죽이고, 왕이 죽는 것을 본 왕비는 절망하여 따라 죽지. 나는 나 자신만 없으면 왕 비가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나 자신에게 그림자 지우개를 쓰지. 그리고 나는 사라져. 내 바람과 달리 왕비가 되살아 나진 않아. 기이하게도 왕자와 예언만이 남게 되지. 나는 그걸 다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난 강박관념도 느끼지 않았고, 맛이 가지도 않았어. 왕을 죽이고 싶은 생각도 느끼지 않아. 하지만 이렇게 되게 되어 있는걸.’
‘그건………… 그건 너무 끔찍해…………. 피할 수 없었어? 바꿀 수 없었어? 모든 건 다 결정되어 있는 거야?’
‘내 손엔 피가 묻었어. 깨진 알을 봐. 저기 쓰러져 있는 왕을 봐. 그리고 왕비를 봐.’
‘다 결정된 거냐고!’
‘왕비는 왕의 죽음 때문에 슬퍼서 죽은 것이 아니야. 시간의 장인들은 통속적이야.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지. 그건 가지치기인지도 몰라. 적당 히 솎아주지 않으면 과일이 너무 많이 열려서 나무에 해가 가지. 하지만 왕비는 그런 간단한 이유로 죽은 것이 아니야. 그녀의 왕이 누군지도 모르는 걸. 그런데 어떻게 슬픔 때문에 죽을 수 있겠어. 그녀를 죽인 것은 나야. 내가 그녀의 미래를 강간했어. 가장 웃기는 사실은 그녀가 그것을 원했다는 거지.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화간은 아냐.’
‘그건, 그건 아냐. 아닐 거야.’
‘그 벌을 받게 되겠지.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 거야.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되니까. 그들은 내게서 필요한 것만 취한 다음 나를 깨끗이 폐기 하려 하고 있어. 왕자와 예언. 그것만 있으면 돼. 하늘이 열렸어. 그 동안 팽배한 고립주의 때문에 드래곤은 인간과 맞닥뜨리지 않았지만 하늘이 열린 상태에선 더 이상 그럴 수 없어. 드래곤과 인간은 무시무시하게 충돌하게 될 테지. 드래곤 라자가 필요했어. 그래서 그들은 내게 그것만 가져갔어. 그 러곤 나를 없애려 해.’
‘그들이 누구야? 응?’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되고 싶지 않았어.’
‘그들이 누구냐고!’
‘태어나기 전엔 원래 없었다고 생각하면 쉽지만………… 아냐, 쉽지 않아. 조금도 쉽지 않아.’
‘당신은 없어지지 않아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살고 싶었어. 죽어서 살고 싶었어.’
왕지네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갑자기 또 하나의 덮개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녀 자신의 덮개였지요. 예.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으면 볼 수도 없지만 그 한없이 늘어진 시간 속에서 왕지네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부정형의 어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