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24화
지극히 초자연적인 여행을 끝내고ᅳ여행 기간도 초자연적으로 짧았습니다.—목적지에 도착한 예언자는 자신이 죽거나 혹은 졸도했다고 생각했습 니다. 아무리 봐도 현실의 풍경이 아니었거든요.
꽃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안개꽃과 해바라기, 장미, 목련 등이 한 나무에 피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꽃이 피어 있으니 꽃나무인 게지요. 그 주위엔 나 비들이 날아다녔습니다. 나비라면 당연히 나풀거려야 하지요. 그 나비들은 크기와 색깔, 형태가 계속 나풀거리듯 변했어요. 풀이 나 있어야 할 위치 에는, 그러니까 아래쪽에는 풀 비슷한 것이 있긴 있었습니다. 예언자는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도 알고 있었죠.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 습니다. 땅에 털이 돋아 있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 속에서 뭔가가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예언자는 단호하게 시선을 올렸습니다. 하늘 가운데 반가운 태양이 보이네요. 예언자는 안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예언자는 비명 을 지르며 주저앉았어요.
“괜찮아요?”
“저거, 저거 뭡니까?”
이루릴은 실눈을 뜬 채 예언자가 가리킨 태양을 보았습니다. 곧 예언자를 기겁하게 만든 것을 그녀도 보게 되었죠. 태양이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렇 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어요. 양쪽에서 무슨 막 같은 것이 재빨리 나타나 태양을 순간적으로 감추었다가 다시 재빨리 오므라들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태양은 하늘에 달린 빛나는 외눈이었습니다.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였죠.
“밤을 만들려고 저렇게 했어요. 밤에는 저 눈꺼풀이 완전히 감기죠.”
“밤을 마, 만들어요?”
“저 태양은 가짜예요. 똑바로 볼 수 있잖아요.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아요. 그러면 하루 종일 낮일 테니까 저런 식으로 밤을 만들 수 있게 한 거 죠. 이 땅바닥도 당신을 위해 이렇게 한 거예요. 저 가짜 태양의 열기만으론 부족할 테니까 바닥을 따뜻하게 만든 것이죠.”
바닥을 만져본 예언자는 신음했습니다. 그 바닥은 살아있는 생물의 털가죽처럼 따스했죠. 예언자는 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킨 자가 도대체 누 군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루릴은 그녀라고 했지요. 초현실적인 능력과 여성. 두 단어를 생각하던 예언자는 갑자기 오싹한 기분을 느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떠올랐거든요. 하지만 그가 서 있는 무대 또한 비상식의 극치인 건 마찬가지였지요.
“혹시 저를 부른 것이 드래곤 레이디 아일페사스입니까?”
질문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예언자는 후회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루릴의 대답은 그를 거의 정신착란에 빠 트릴 뻔했습니다.
“펫시는 당신과 이 사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을 부른 건 펫시가 아니에요.”
“펫…… 시요?”
“아일페사스. 펫시는 친구끼리 부르는 이름이죠. 아니, 나만 부르는 이름이라고 해도 되겠군요. 그녀를 그렇게 불렀던 이들 중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나뿐이고 드래곤 레이디가 이제 와서 다른 이들에게 그 이름을 허락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예언자는 이제 울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진 않았지만 사실상 절규에 가까운 어투로 말했죠.
“그럼 이 곳의 주인은 누굽니까? 혹시 어떤 여신이신가요? 당신 친구 중에 그런 분이 있다고 해도 놀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묻는 겁니다만.”
“뒤를 보면 되겠군요. 고개를 돌리지 말고 뒤를 보세요.”
“예에?”
“그렇게 해봐요. 움직이지 않은 채 뒤를 봐요. 뒤를 앞으로 가져온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무리한 요구였지요. 예언자는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가 여섯 번째 시도했을 때 갑자기 그의 주위 정경이 홱 회전했습니다. 분명히 예 언자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주변 풍경은 원통이 회전하듯 그를 중심으로 돌았지요. 그 놀라운 현상에 미처 충격을 느끼기도 전에 예언자는 그의 의식 을 짓뭉개버리는 존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를 나약하다고 비난하긴 어려울 거예요. 온세상을 통틀어 그 광경을 보고 태연할 수 있는 생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테니까. 예언은 상상력 의 문제라던가요? 예언자의 상상력이 폭주했지요. 충격적인 경험의 연속 때문에 예언자의 회의적인 부분이 거의 마비되었기에 상상력은 제멋대로 질 주했습니다. 그 순간 예언자는 비로소 모든, 아니, 대부분의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죠. 그리움과 공포를 뒤섞어 놓은 듯한 괴이한 감정 때문에, 예언자는 눈물을 훔치지도 않은 채 말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시에프리너.”
추락하지 않는 드래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