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5화


왕지네에게 예언자는 깊은 밤 자기 침실에서 본때 있게 우는 남자였겠지요.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다면 많은 이들이 왕지네를 부러워했을 겁니다. 예언자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사람들은 자신이 상식 있는 인물로 보이기를 바라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란 옆 사람이 하는 짓이거든요. 상식이란 어 떠해야 하는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상식 있게 행동한 결과 예언자는 상식 없는 폭력에 노출되었지요. 사람 들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물건을 집어던질 수 있는지 알게 된 예언자는 인류가 마침내 사심과 탐욕을 버렸다는 결론을 내릴 뻔했죠. 먹던 음식도 집 어던지다니, 이것이야말로 식욕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에 대한 이성의 승리 아니겠어요?

어느 날 오후, 왕지네는 건물 벽에 기대선 채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어디서 화끈하게 한 판 뛰고 왔는지 옷은 너덜너덜했고 몸 곳곳이 피투성이였어요. 예언자였죠. 몽유병자처럼 흐느적거리며 걷던 예언자는 술가게 앞에 멈춰 섰어요. 그러곤 싸구려 술 한 병을 주문했죠. 가게 주인은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문받은 술을 꺼냈어요. 술병을 개봉한 주인 은 그것을 점잖게 예언자의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주인의 외아들은 전쟁 때 죽었지요.

예언자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 것은 술뿐이었지요. 예언자는 낄낄 웃으며 지갑을 꺼냈지요. 돈을 받은 주인은 그것을 예언자의 얼굴에 집어던졌습니다. 현금마저 던지다니, 아, 인류는 정녕 고귀해지고 있었습니다.

왕지네는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벽에서 등을 떼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죠.

왕지네는 예언자를 무시한 채 똑같은 술을 샀어요. 술병을 받아든 왕지네는 그것을 연 다음 자기 머리 위에 부었어요. 예언자와 가게 주인, 행인들은 모두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왕지네를 보았죠. 왕지네는 다른 이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예언자의 손을 붙잡아서는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어 요. 그러곤 기겁한 예언자에게 자신의 젖은 손등을 내밀었죠.

“당신도 한 잔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