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6화
바이서스의 왕비는 단호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릅니다. 왕비가 만난 사람 중에 그녀보다 더 단호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거든요. 만약 왕비 가 태양에게 내일은 서쪽에서 뜨라고 명령한다면 태양은 최소 한 번은 고민해 볼 겁니다.
무지막지하게 단호하긴 했지만 왕비에겐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왕을 대단히 사랑했지요. 그런데 미덕과 악덕의 조합은 때론 최악 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요.
왕비는 자신의 왕이 전쟁에 지고 상심한 것을 보며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하긴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죠. 시에프리너의 영토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기회와 이득을 생각하면 패전은 두 배, 세 배의 아픔이었죠. 그녀는 왕에게 꼭 승리를 주고 싶었어요. 그런 그녀가 예언 자에게 눈길을 돌린 것은 당연했습니다. 예언의 힘으로 전쟁에 이겨보겠다고 생각한 것이 왕비가 처음은 아닐 테지요. 예언자가 사람의 미래를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전해들은 왕비는 그렇다면 향후 몇 년 동안의 날씨를 묻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예. 왕비는 그럭저럭 영리한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자기만큼 똑똑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기 때문에 ‘그럭저럭’인 거요. 왕비는 예언자를 불 러서 질문했습니다. 내일 날씨에 대한 한담을 나누듯이 가볍게.
예언자는 콧방귀를 뀌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표정을 지었지요.
“전하. 저를 그리 희롱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부활한 레베카 휴레인 장군 열 명에 맞먹는다는 사실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날씨와 별 관련이 없는 삶을 사느라 저게 무슨 소린지 모른다면 그냥 이렇게 이해해 두세요. 향후 몇 년 동안의 날씨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세계 정 복도 꿈이 아닙니다. 속셈이 들켰을 때 흔히 그렇듯이 여왕은 창피와 분노를 느꼈지요. 단호한 왕비는 예언자의 신조를 배려해 주는 척하는 것을 그 만두기로 했습니다.
“좋소. 예언자여. 나는 나의 왕을 위해 부활한 레베카 휴레인 장군 열 명을 원하오. 왕에게 그녀들을 데려오시오. 거절은 듣지 않겠소.”
“듣지 않으실 말이라면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여러분, 자신이 외톨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은 천성적으로 타인의 내면에 관심이 많은 동물입니다. 고문을 할 줄 아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살을 찢고 뼈를 부러뜨려서라도 상대방의 마음에 접근하고 싶어하는 축복 받은 동물의 일원인 당신은 결코 고독하지 않습니 다. 예언자 또한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미래를 보는 예언자의 섬세한 정신에 무슨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고문 담당자는 점잖은 수준의 고문만 사용했습니다. 예언자는 제법 오래 버틸 수 있었지요. 하지만 예언자의 의지력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지요. 그리고 전망이 암울하다는 것을 아는 데는 예언의 능력도 필요 없었습니다. 단호한 왕비는 성급해지려는 자신을 단호하게 단속하며 낮은 수준의 고문을 언제까지라도 계속할 테니까요. 그것은 말로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일이 죠.
예언자는 자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의지를 꺾고 예언을 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뭐, 생각이야 해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