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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65화


왕비는 팔을 들어 왕지네를 가리켰습니다. 권총이 있었다면 쏴버리고 싶었어요. 왕비는 왕실과 귀족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명사수였어요. 하 지만 아무리 명사수라도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손가락질을 할 수밖에 없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명령했을 텐데? 그런데 손에 쥔 그건 뭐지?”

왕지네는 왕비가 총이라도 꺼내는 줄 알고 깜짝 놀라 그림자 지우개를 움켜쥔 자신을 욕하며 그것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누구에게도 해될 것이 없 는 평범한 물건인 것처럼.

“제 행운의 부적이죠. 도둑의 장난감입니다.”

왕지네는 담담하게 덮개를 열어 안쪽의 작은 초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왕비는 경멸하듯 말했어요.

“손전등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나?”

“압니다. 비싸고 무거운 물건이지요. 게다가 비싸고 무거운 전지를 소모하고요.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 가난한 벽타기꾼에겐 어울리지 않는 물건입 “니다.”

“이리 줘봐.”

왕지네는 거의 손을 끌어당길 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의심을 사는 것을 피할 수 없겠지요. 어쩔 수 없이 왕지네는 그것 을 내밀었습니다. 왕비는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말했어요.

“오래된 물건이군. 이것도 어디서 훔친 것일 테지. 그나저나 넌 그림자 지우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나?”

왕지네는 입을 꽉 다무는 것 외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들어봤군. 그래. 패배할 전쟁이라고? 천만에. 드래곤들이 솔베스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고, 괴이한 눈들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찾고 있고, 프로 타이스가 시에프리너를 내버려두라는 말보다 먼저 언급한 물건이 있지.” 왕비는 그림자 지우개를 든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습니다. “그림자 지우개 야.”

ᆞ제가 알기론 우리들은 그것이 뭔지도 모르는데요.”

“걱정 마. 전문가들이 열심히 찾고 있어. 필요하다면 구층탑에 침입해서 아프나이델의 기록들을 뒤져보는 한이 있어도 찾아낼 거야.”

·성공하시길 빌죠. 그럼 돌려주실까요?”

왕지네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왕비는 벽에 걸려 있는 칼 헬턴트의 흠잡을 데 없는 상상화를 보며 씩 웃고 있었습 니다. 왕지네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감옥에서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 내가 맡아두지.”

왕지네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왕비가 짧게 고함을 질렀어요. 병사들과 시녀들이 지체없이 달려왔습니다. 왕비는 턱으로 왕지네를 가리켰어요. “체포하시오. 가짜 귀머거리요. 지하 감옥에 가두도록.”

와락 달려든 병사들이 왕지네를 의자에서 끌어내려 바닥에 엎드리게 했습니다. 왕지네는 절망감을 삼키며 두 손을 머리에 얹었습니다. 간단한 신변 조사를 끝낸 병사들은 신속하게 그녀를 연행했지요. 병사들이 떠난 후 왕비는 ‘놀란’ 그녀를 위로하려 애쓰는 시녀들도 물러가게 했어요.

“사소한 일 때문에 왕자의 식사가 방해받았군. 마저 젖을 먹일 테니 물러가도록.”

시녀들은 그런 일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왕비에게 감탄하며 명령을 따랐습니다. 홀로 남은 왕비는 씩 웃으며 각등을 쳐다보았어요.

‘행운의 부적이라고?”

행운의 부적을 지닌다는 것은 괜찮은 생각 같았습니다. 아, 왕비는 좀 더 실용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었죠. 권총 말입니다. 아무리 왕비가 명사수라 해도 정작 필요할 때 권총이 없다면 빼어난 사격 실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왕비는 자신을 탓하며 허벅지를 만져보았습니다.

‘무겁다고 빼놓고 다니는 건 바보짓이야. 그렇다면 총집은 뭐하러 차고 다닌 거지? 내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앞으론 총집에 총 넣고 다녀야겠어.’ 버릇 때문에 빈 총집을 차고 다닌 자신을 꾸짖으며 왕비는 왕자가 잠들길 기다렸습니다. 배불리 먹은 왕자가 잠들자 왕비는 조심스럽게 왕자를 들어 유모차에 눕혔지요. 몇 번 몸을 뒤채던 왕자가 고요해지자 왕비는 허리를 굽혔습니다.

왕비는 유모차 아래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습니다. 예언자나 왕지네는 그런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한 물건이었지요. 원래부터가 유모차에 포함 되지는 않는 물건입니다.

왕비는 그 상자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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