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그림자 자국 – 66화


그날 오전, 신분을 위장한 왕지네가 궁성으로 들어오던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왕비는 창가에 서서 병사들과 함께 들어오는 처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깐 동안이지만 왕자를 맡게 될 인물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거든요. 왕 지네의 얼굴을 알아본 왕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즉각 그 처녀를 억류하라고 명령하려 했지요. 하지만 시녀를 부르기 전 왕비는 어떤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 여자는 예언자를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았어요. 그런데 만약 예언자를 만나기도 전에 그녀를 체포한다면 그녀는 그 계획을 부정할 지도 모릅니다.

왕비는 조금 생각한 다음 곧 순발력 있게 행동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이 될 것을 찾던 왕비의 눈이 장식장 안에 들어있는 상자에 멈췄지요. 부피가 커서 평소라면 왕비가 쓰려는 목적엔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다행히 이 경우엔 그렇지 않았어요. 유모차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왕자의 유모차 아래에는 기저귀 같은 유아용품을 넣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왕비는 그 공간에 상자를 밀어넣어 보았습니다. 약간 남는 공간이 있었지 만 양말과 기저귀 등으로 틈을 메우니 상자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왕비는 상자를 다시 꺼내어 탁자 위에 놓고는 시녀가 문을 두드릴 때까지 기다렸습 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왕비는 상자에 어떤 조작을 한 다음 다시 유모차에 밀어 넣고는 들어온 시녀에게 유모차를 건넸지요.

그 상자는 왕비의 바람대로 예언자와 왕지네의 곁에 잘 머물다가 다시 왕비에게 돌아왔습니다. 왕비는 탁자 위에 놓인 상자의 뚜껑을 열었어요. 상 자 안에는 일부 사람들에겐 신비로움까지 선사할 만한 복잡한 기계 장치들이 들어 있었지요. 하지만 왕비는 능숙하게 손가락을 놀려 기계 이곳저곳 을 만졌어요. 곧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왕비는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러고는 왕지네에게 압수한 각등을 만지작거리며 작동하는 기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무엇인가가 창문 을 건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지요. 새나 바람에 날려온 나뭇잎 같은 것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였어요. 왕비는 무엇이 그런 소리를 냈나 살펴보려 했습 니다.

하지만 그 직후 왕비는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탁자 위의 상자에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창문에서 난 대수롭지 않은 소리는 그녀의 뇌리에서 싹 사라 졌지요. 왕비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상자를 노려보았습니다.

왕비가 상자에 신경이 팔린 탓에 창문 밖에 있던 ‘눈’은 존재를 들키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창문에 부딪혀 소리를 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 눈은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을 퍼덕여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