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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67화


“형태가 그렇다면 그건 아마 축음기일 거예요.”

“축음기? 그게 뭔데?”

“소리를 저장했다가 다시 들려주는 인간들의 발명품이에요. 왕비는 왕지네와 예언자의 대화를 몰래 저장했군요. 기계를 이용한 엿듣기인 거죠.”

“그렇다면 왕비와 왕지네는 같은 편이 아닐 수 있다는 건데. 하지만 왕지네는 스스로 왕비에게 그림자 지우개를 넘겼어. 그 벽타기꾼이 왕비에게 협 박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없었는데.”

“마지막엔 병사들에게 끌려갔다면서요?”

“마지막에 왕비에게 배신을 당한 것인지도 모르지. 어쩌면 프로타이스가 원하는 그림자 지우개를 줄 테니 예언자를 풀어달라는 식의 담판을 하러 갔던 것 아닐까? 그러다가 그림자 지우개를 넘긴 다음 왕비에게 배신을…………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어리석을 수는 없겠지. 난처하군. 이럴 줄 알 았으면 귀도 만드는 건데. 눈 만들기도 바빠서 듣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그 눈 덕분에 그림자 지우개가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잖아요.”

“그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졌지.”

“펫시?”

이루릴은 불안한 표정으로 드래곤 레이디를 보았습니다. 아일페사스는 만년설 덮인 산이 말하듯 말했습니다.

“그림자 지우개는 절대로 넘어가선 안 되는 자에게 넘어갔어. 그 무서운 위력을 고려하면 어쭙잖은 탈환책 같은 것은 고려의 대상도 될 수 없지. 그 러니 내가 바이서스 임펠로 가겠어. 그들의 머리에 하늘을 떨어뜨리고 그들의 발밑에서 땅이 솟아오르게 하겠어.”

“그만둬요. 펫시.”

“당신이라 해도 나를 방해할 순 없어.”

“바이서스 임펠 사람들의 희생 때문만이 아니에요. 만약 왕비가 그림자 지우개의 사용법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당신도 위험해지니까 반대하는 거예 요. 당신이 사라진다면 나는…………”

이루릴은 물에 빠졌던 사람처럼 급히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슬프거나 괴롭지는 않겠지요. 당신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될 테니까.”

드래곤 레이디는 철판도 뚫을 이빨들을 콱 다물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용감한 아일페사스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별개로 하고요. 하지만 소나무 숲이 전나무 숲으로 바뀔 정도의 세월을 함께한 친구가 자신 을 잊을 거라는 가능성이 제시되자 드래곤 레이디도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설령 그 구멍을 영영 알지 못한다 해도, 펫시. 그래도 나는 내게 구멍이 뚫리는 것은 싫어요. 고를 수 있다면 지금처럼 일 년 내내 추도를 계속 하는 쪽을 고르겠어요. 게다가 당신이 사라진 구멍은 굉장히 클 거예요.”

“……대안이 있어?”

“모르겠군요. 하지만 대안을 가지고 있을 듯한 이는 알아요.”

“누구를 말하는 거지?”

“프로타이스.”

아일페사스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습니다.

“그 녀석이 무슨 복안이 있어서 그림자 지우개를 가져오라고 떠들고 있을 거란 말이야? 글쎄. 내 생각에 그 반골이 그림자 지우개를 언급한 건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걸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다른 드래곤들과 다르게 행동하기 위해서일걸. 왕비의 손에 그림자 지우개가 넘어간 지금은 그 녀 석을 정말이지 히드라라고 부르고 싶어. 어떻게 그런 걸 함부로 언급할 수 있는 거야.”

인간이나 다른 존재에겐 정말 무서운 존재이고 무서운 특징이겠지만, 히드라의 재생 가능한 머리는 아일페사스에겐 조롱거리입니다. 인간 식으로 풀어서 말하면 ‘잘려도 다시 나는 머리라면 손톱이나 머리카락과 다를 것이 뭐냐. 그런데 손톱이나 머리카락에 지능이 얼마나 있겠냐?”는 거죠.

“프로타이스도 드래곤이에요. 히드라가 아니라. 드래곤은 못되게 굴 수도 있고 치사하게 굴 수도 있지만 어리석지는 않아요.”

“그 녀석은 정말 당신에게 못되게 굴지. 그 녀석이 그렇게 싫어하는 당신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

“하지만 해야 해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모든 권위와 고정관념에 저항할 수 있는 그의 독특한 천품인지도 몰라요.”

“못 믿겠는데.”

“그를 믿을 수 없다면, 펫시. 가장 작은 이들과 가장 무력한 이들에게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도움을 받아왔던 내 경험을 믿어봐요.”

아일페사스는 이루릴을 직시하다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좋아. 가장 비뚤은 자가 가장 올곧은 길을 보여주길 기대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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