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88화
“전하! 드래곤 레이디를 지우진 마십시오. 그녀의 역사 전부를 원래부터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짐작도 할 수 없습 “니다!”
“그것은 해로운 짐승일 뿐이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런 태도는 그 쪽이 먼저 보였지. 드래곤이든 인간이든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 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마침 수유기이신데, 전하의 가슴을 송아지에게 제공하시겠습니까?”
예언자의 말버릇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못할 것 같군요. 왕비는 분노 어린 미소를 지었습니다. 예언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야 알 수 있었지요. 인간은 소를 인간처럼 대하진 않습니다. 종족이 다르면 황금률은 의미를 많이 잃지요.
“드래곤이 인간을 해충으로 여겼다 해서 인간에게 드래곤을 해수로 여길 권리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다른 방식으로 논의되어야 할 문제일 겁니다. 저는 드래곤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역사에 그렇게 큰 공백이 생기면 인간 자신에게 큰 타격이 올 수 있습 니다. 저는 어떤 드래곤도 솔베스로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뻐했습니다. 드래곤들에겐 기나긴 역사가 있으니까요. 그것이 하나라도 지워지면 세계 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최초로 솔베스로 찾아온 것이 하필이면 드래곤 중의 드래곤, 드래곤 레이디 아일페사스입니다. 그녀가 어떤 드래곤인지 모르십니까?”
“내가 설마 아일페사스를 모르리라고……………”
“드래곤 라자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고 드래곤과 인간이 다시 멀어지기 시작한 시점에 카르 엔 드래고니안의 주인이 된 것이 아일페사스란 말입니 다! 드래곤 레이디의 역사적 위치는 그토록 중요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녀를 지워선 안 됩니다. 만약 그녀가 사라진다면 역사는 더 공격적 인 드래곤이 드래곤 로드를 계승한 것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직계 자손이 없다면 복수심에 불타는 드래곤 로드가 그런 드래곤을 후계자로 선택한 다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느 틈엔가 드래곤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우리는 원래부터 그랬다고 믿게 될 테지요!”
그 가설은 폭언을 준비하던 왕비를 침묵하게 했지요. 예언자는 희망을 품은 채 왕비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후 예언자는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지요. 왕비가 말했어요.
“감수할 수 있소.”
“그걸 어떻게…..”
“당신이 제시한 것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오. 나는 이런 가능성을 제시하겠소. 루트에리노 대왕에게 패배한 드래곤 로드가 후손 없이 비참하게 죽 게 된다면 드래곤들은 희망을 잃고 쇠락할지도 모르지. 어쩌면 우리는 드래곤이 멸종된 시대에 있게 될지도 모르오. 그렇다면 지금 드래곤들이 가지 고 있는 것은 그대로 우리의 것이 되어 있을 거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오르고 바다 아래로 가는 배를 만들어 심해까지 정복할 수 있을 거요. 어쩌면 대지라는 항구를 떠나 별의 바다로 날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지!”
“근거 없는 가능성일 뿐입니다.”
“당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은 가능성만으로도 피해야 합니다.”
“성공은 희망만으로도 추구해야 하오. 사실상 성공보다 희망이 더 중요하지.”
순간 예언자의 입가에 서글픈 미소가 떠올랐어요. 아니, 그것은 미소의 가면을 쓴 다른 무엇이었지요. 그것은 떠오르자마자 사라졌지만 왕비는 놓치 지 않았습니다.
왕비는 갑자기 1년 전쯤 있었던 입덧의 추억을 떠올렸어요. 그녀의 입덧은 정말 대단했죠. 예언자의 자식이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거든요.
왕비는 힘없이 말했습니다.
“나가시오.”
“전하.”
왕비는 자신 속에서 또 무엇인가가 자라나고 있다고 상상했어요. 이 메스꺼움을 설명하기 적절한 가설이었지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