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90화
다섯 문의 대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하늘을 오선지인 양 가로지른 포탄들은 절벽에 부딪혀 거대한 먼지 구름을 피워올리고 파석의 분수를 만들어내 었어요. 잠시 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섯 문의 대포가 다시 불을 뿜었습니다.
시에프리너 토벌군은 시에프리너의 레어를 막고 있는 바위를 쏘고 있었습니다. 이틀 전 그곳에 도착한 이래 계속 그러고 있었지요.
고폭탄은, 그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사람과 말을 죽이고 건물을 파손시킬 만큼의 ‘적당한’ 폭발력을 최대한 넓게 퍼뜨리는 폭탄입니다. 작은 지점에 폭발력을 집중시키는 포탄은 육군의 입장에서 보면 폭발력의 낭비였거든요. 따라서 바이서스군이 가지고 있는 것도 평범한 고폭탄이었 습니다. 바위를 부수기 위해 그런 걸 계속 쏘는 것은 낭비도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닙니다.
물론 고폭탄이라 해도 바위의 적절한 위치에 구멍을 내고 폭파시킨다면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지요. 분명 공병대의 폭파 전문가들이라면 훨씬 적은 양의 폭발물만으로도 오래 전에 그 바위들을 청소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왕과 참모들은 공병대를 함부로 시에프리너 가까이에 접근시킬 수 없 었어요. 뭐든 날려버리는 공병대가 시에프리너에게 홀릴 경우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렇다 해서 그들에게 마법 방어 도구들을 지참하게 하는 것은 본진의 방어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었지요. 반면 포병대는 시에프리너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법 방어 도구들의 보호를 받으며 바위를 쏠 수 있지요. 그 때문에 토벌군은 그런 우악스럽고 비효율적인 바위 파괴법을 쓸 수밖에 없었지요.
쾅, 쾅, 콰광, 유사 이전부터 돌을 다루는 석공들이 있었기에 착각하기 쉽지만, 암석은 정말 단단한 물질입니다. 최고의 파괴자인 시간과 싸우고 있 는 물질이니까요. 집중 사격에 의한 해체 작업은 애가 탈 만큼 진전이 느렸습니다. 드래곤 레이디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 토벌군은 자주 목 뒤 가 섬뜩해지는 기분을 느꼈어요. 왕 또한 그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 포격만 가하느라 왕에겐 시간이 좀 생겼지요. 왕은 왕비를 자신 의 천막으로 부른 다음 그녀와 함께 있게 되자마자 질문했습니다.
“예언자는 드래곤 레이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이서스의 파멸에 대해선?”
왕비는 번복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왕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언제라도 예언자를 불러 직접 물어볼 수 있겠지요.
인질로 쓰려 했던 왕지네를 잃고 왕자는 소중히 길러야 할 예언자로 판명된 이상 그녀에겐 예언자를 통제할 적절한 수단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기묘하군.”
왕은 격노하거나 절망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어요. ‘기묘하군.’ 그것뿐이었지요. 왕비는 목이 메었어요.
“우리를 시에프리너에게 데려왔으면서 여전히 바이서스가 시에프리너의 아들에게 파멸한다는 예언을 고집하다니. 내가 직접 그를 만나 이야기를 해봐야겠군요.”
“전하. 점복은 여자의 일입니다. 게다가 그는 제가 부리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처럼 저에게 맡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왕비. 이것은 바이서스의 일입니다. 예언자의 예언 때문에 우리는 여기까지 왔잖습니까.”
“하지만……”
“왕비의 걱정은 알아요. 예언자가 없으면 왕비께선 나나 병사들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왕은 두 손을 뻗어 왕비의 두 손을 감싸쥐었습니다.
“왕비는 그냥 있는 것만으로 내 인생을 값있게 만듭니다.”
왕비는 입을 조금 벌린 채 왕을 보다가 갑자기 몸을 숙여 왕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그녀는 그 자세로 커다란 숨소리만 낼 뿐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왕은 구태여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진 않았습니다. 조금 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왕비가 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시에프리너가 없어지고 드래곤 레이디가 없어져도, 전하의 나라는, 바이서스는 여전히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이 라면, 바이서스만이 사라져야 하는 세상이라면, 저는 그 세상을 없애겠습니다.”
왕비는 팔을 뻗어 왕의 목에 매달렸습니다. 눈물에 젖은 뜨거운 볼을 왕의 얼굴에 비비며 왕비는 속삭였어요.
“저 세상에서, 저는 기필코 전하를 찾을 것이고, 바이서스를 그곳에 세우겠습니다. 왕께서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니까요.”
왕은 왕비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