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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93화


왕의 천막을 나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던 예언자는 갑자기 나타난 모습에 웃어야 할지 놀라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왕비가 있었어요. 그런데 토벌군이 입는 군복 차림이었지요. 양쪽 허리엔 권총과 그림자 지우개를 매달고 있었지요. 서스펜더엔 대검과 손전등도 매 달려 있었지요. 거기까지만 해도 위화감을 느낄 만했지만 등에 배낭 대신 아기를 업고 있는 모습에 이르러서는 표현할 말도 찾기 어려웠죠. 예언자가 자신을 본 것을 확인한 왕비는 말없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죠.

그녀가 예언자를 데려간 곳에는 트럭이 한 대 있었어요. 왕비는 트럭의 짐칸에 올랐고 어쩔 수 없이 예언자도 그렇게 했지요. 짐칸 안에는 유모차가 실려 있었지요. 왕비가 운전석 쪽을 탕탕 두드리자 트럭은 그대로 출발했습니다. 왕비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손가락을 입 앞에 세워보였어요. 트럭은 잠시 후 검문을 통과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검문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간단히 끝났어요. 짐칸을 조사하지도 않았죠. 예언자는 입을 꾹 다문 채 맞은편에 앉아 있는 왕비를 보았습니다.

군영을 떠난 지 몇 시간쯤 지났을 때 트럭이 멈춰 섰습니다. 왕비와 예언자가 유모차를 가지고 트럭에서 내리자 트럭 운전수는 창밖을 한 번 내다보 는 일도 없이 차를 돌려 떠났어요. 예언자는 눈을 크게 뜨고는 어두컴컴한 주위를 살폈어요.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오고 있어 예언자는 자신이 있는 곳이 광산 입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발탄은 개척민들을 다 귀국시켰기 때문에 광산은 괴기스러울 정도로 한적했습니다. 그다지 볼 것이 없었던 예언자는 왕비를 보았습니다. 왕비는 손 전등을 켜놓은 채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는 행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왕자의 기저귀를 갈고 있었지요. 물론 평범한 엄마의 행동이지만 그 상황에 선 거의 괴이스럽게 느껴지는 모습이었지요. 기저귀 갈기를 끝낸 왕비는 왕자를 유모차에 실었어요.

“여기가 당신이 빠져나왔다는 그 광산이오?”

“그렇습니다. 이제 전하를 시에프리너에게 안내해야 합니까?”

“물론이오.”

“전하. 이 안에는 도망쳤던 코볼드들이 가득할 겁니다. 사랑하는 주군을 버릴 리도 없거니와 지하에서라면 얼마든지 유리하게 싸울 수 있을 테 4…………..”.

“코볼드가 없는 길로 안내하시오.”

왕비의 단호한 명령에 예언자는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어요. 그는 힘겹게 질문했습니다.

“시에프리너를 지우실 겁니까?”

“그렇소. 시에프리너가 애초에 없었다면 드래곤 레이디의 분노 또한 일어날 일이 없겠지. 당신 바람대로 드래곤 레이디를 지우진 않게 되는 거니 기 뻐하시오.”

“시에프리너의 역사도 짧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시에프리너가 애초에 없었다면 이루릴이 저를 탈출시키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될지도 모르 고 저와 전하가 솔베스에서 만날 일도…………… 왕자도 태어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상, 관, 없소.”

예언자는 허파가 아닌 심장으로 말을 짜내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미래를 보는 아들을 원하지 않으셨습니까?”

“바보 같은 소리 그만두시오. 그런 아들이 필요했던 이유가 뭔데? 바이서스를 위해서였소.”

“……왕자님은 제가 업겠습니다. 유모차가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닙니다.”

“이 유모차 아래에는 마법 방어 도구가 실려 있소. 가져가야 하오. 그리고 내가 길도 모르는 지하에 들어가면서 당신에게 왕자를 맡길 것 같소? 이제 입을 닫고 안내하시오.”

예언자는 입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앞장서 걸어가는 대신 동쪽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지요. 박명이 꿈을 바래게 하고 사물의 빛을 선명하게 하는 시 각이었습니다. 광산은 계곡 쪽에 있었지만 그래도 한 시간 정도 앉아 기다리면 일출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죠.

물론 그때까지 앉아 있을 수야 없겠지요. 남녀 한 명에 유모차에 실린 아기라는, 어딘가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있으면 퍽 어울릴 듯한 구성이었지만. 예언자는 광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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