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11화


음…

으음…

…………………..

…제기, 뭐 하는 거야, 지금?
서로 노려만 볼 뿐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 하잖아?
이거… 몽몽 녀석의 버그인가? 그래서 화면이 다 운 된 거 아냐?

“야, 몽몽… 엣?!”

갑갑해서 몽몽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화면 속의 두 가상 인물들의 모습이 스슥! 흐려진다 싶더니
어느 사이 양쪽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쩌엉-!
뭐야, 뒤늦게 들리는 이 괴이한 소리는?
어, 어….

[ 대결 종료까지 5분 12초가 소요되었습니다.
화천루주의 승리입니다. ]

나는 피 흘리며 엎어져 있는 대교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장난치냐… 지금 뭐 한 거야?”

[ 화천루주와 비화곡 무공을 쓰는 상대의 대결 시뮬레이션을
보신 것입니다. 리얼타임으로 진행되었으므로
놓치신 장면은 재생 속도를 선택하여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

우쒸- 소위, 절정 무공을 쓰는 자들의 움직임을 실제로 보면
이렇단 말이지?

“젠장… 2배, 아니 10배로 느리게 해봐.”

맙소사, 그래도 뭐 하는지 모르겠다.

“쓰-벌! 100배!”

그제야 화천루주와 대교의 움직임이 보였다.
아니, 100배나 느리게 한 건 좀 과했는지 이번에는
슬로우 비디오를 틀어놓은 듯이 보인다.
조금 빠르게,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찬찬히 보기로 했다.

음… 거의 동시에 양쪽에서 달려… 아니, 미끄러지듯 날아온다.
오, 대교가 쇄도하는 속도와 검을 휘두르는 동작이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그 검날은 일체의 변화도 없이 가장 짧은 거리를 관통하고 있다.
멋지다.
이 시대의 무공은 암 것도 모르는 나지만,
저렇게 완벽하게 단순화시킨 동작의 무서움은 안다.
단순한 만큼 더 빠르고 정확하며 무서운 파괴력이 있는 것이다.

근데 화천루주는 상대의 코앞까지 올 때까지 어째서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에..?
대교의 필살 쾌검이 지나치게 빠르다?
이런… 대교의 검이 화천루주의 가슴께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고,
화천루주는 그 직후, 계속 전진하며 양손에 든 검으로
대교의 목과 명치께를 동시에 그어버렸다.

….우쒸! 뭐야!

“야, 방금 속도로, 아니 조금만 더 느리게 다시 돌려봐!”

….다시 봤지만,
역시 화천루주의 이동 속도에는 ‘중간변화’가 없었다.
이럴 수가.. 똑같은 속도로 쇄도하는 상대와의 거리 측정을 실패해?
말도 안 돼!
나는 몇 번을 다시 돌려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화천루의 ‘월형신공’ 수준의 무공은 많지 않습니다.
그 중 이 곳의 전대 장로 중의 한 명인 뇌검자(雷劍子)의
무공을 구사하는 상대를 설정한 것입니다.
데이터 상 양측의 승률은 50대 50이었습니다. ]

“야, 니가 뭔가 잘못 입력한 거 아냐?
말이 안 되잖아. 저 정도 쾌검을 쓸 수 있는 고수가
기본적인 거리 측정에 실패하다니…”

[ 데이터 입력의 오류 가능성은 0.14%입니다. ]

“그려, 니 잘났다. 제기.. 지금 양측에서 사용한 수법이 뭔 지나 좀 말해봐.”

[ 뇌검자의 수법은 경공과 발검(拔劍)을 통합하여
뇌전일식(雷電一式) 한 가지입니다.
화천루주가 사용한 경공은 월형신공 중 월하무주흔(月下無走痕),
방어에 쓰인 것은 월형환무(月炯幻舞),
공격에는 연하쌍비술(燕河雙飛術)이 사용되었습니다.
각각의 초식을 자세히 보고 싶으시면 해당 메뉴를 클릭하십시오. ]

몽몽이 말한 초식들의 명단이 비디오(?) 화면 좌측에 나열되어 있었다.
이 몽몽이란 놈은 내가 말로 한다고 해서 안 해 줄 것도 아니면서
굳이 손을 움직이게 유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뭐, 그 것도 ‘통일 한국 로봇 제작 규칙’에 제정되어 있는 거라나..?

그건 그렇고… 가만, 화천루주의 방어 수법..?
난 재빨리 왼손 검지 손가락으로 ‘월형환무’ 메뉴를 클릭 해보았다.
…………………
제기, 무슨 이상한 에너지를 어찌 어찌 운영해서..
뭘 어쨌다고?

난 몽몽에게 이것저것 한참 설명을 요구하고서야
그 ‘방어 초식’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음… 결론적으로, 그건 일종의 환영술(幻影術)인 모양이었다.
강력한 내공으로 자신의 주변에 일종의 장막을 치는 것인데,
이게 방어벽 역할은 물론이고 상대의 시각을 혼란시키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몽몽, 격돌 순간의 화면을 4배 정도 확대해봐.”

음….
과연,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화천루주의 몸 주위에
희미한 잔상 같은 것이 떠올라 있을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상의 대교는 바로 저 잔상을 베었단 말이군.

[ 대전시 양측의 기동 속도로 보아 격돌 순간에는
어떤 고수라도 육안으로 상대를 식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상대의 기로써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실체와 환영을 구별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 ]

“흠, 그럼 저 수법을 깰 방법은 없나?”

[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대전의 상대가 10 CM 정도만 더 나가 공격했으면
깰 수 있었을 것입니다.
뇌전일식의 파괴력은 월형환무의 방어력을 능가합니다. ]

결국, 속지만 않으면 된다 이건가?
알고 보니 웃기지도 않는다.
소위 정파의 무공이 눈속임 수법이라니…

후… 그건 그렇다치고, 나름대로 재미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화천루 무공을 분석하다가는
여기서 늙어 죽겠다.

“몽몽… 그 월형신공인가 하는 걸 능가하거나
최소한 동급 수준의 무공 명단을 보여줘.”

비화곡 곡주 비전, 역천의혈경(逆天意血經).
13대 대장로, 뇌검자 – 뇌전검식(雷電劍式)
9대 대장로, 잔마도수(殘魔屠獸) – 잔마일천도(殘魔一千刀)
4대 대장로, 마봉후(魔鳳后) – 수라진경(修羅眞經),
요하검(曜 劍).

[ 이상입니다만, 월형신공의 상위 2단계의 데이터가 없으므로
그 부분의 내용은 가상으로 설정하여 기준한 결과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흠… 그보다, 마지막에 저 마봉후.. ‘후’자가 왕비할 때 ‘후’자 아냐?”

[ 마봉후는 이 비화곡 역대 유일의 여성 대장로입니다. ]

“호오- 그래? 그럼 이번엔 그 마봉후의 무공을
가상의 대교에게 입력해서 싸우게 해봐.”

[ ..주인님. 대교라는 여성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

“뭐?”

…아, 진짜 대교..?
톡!톡!톡!
눈을 떠보니 대교가 어느 사이 내 앞에 다가와 있었고,
내가 눈을 뜨자 다소곳이 무릎을 꿇었다.

흠….
내가 갈아입으라고 준 건 남자 옷인데..
그것도 나름대로 어울리는군.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