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30화
언제 갈아입었지?
지금 대교가 입고 있는 옷은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회색의 밋밋한 남자 옷도 아니고,
바깥에서 평소 입고 다니던 날렵한 황의(黃衣) 경장 차림도 아니었다.
흠.. 그러고 보니 처음 내 방에 배정되었을 때의 하늘하늘하고 야시꾸리한(?) 옷차림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차림인 것 같고…
게다가 아무래도 쟤 지금 거울 보며 ‘화장’하고 있는 것 같다.
..제기, 뭐야 그럼, 내가 뺑이 쳐가며 들고 온 짐이 옷가지하고 화장품이었단 말야?
우쒸-! 소교 애들은 사정을 모르니까 그렇다 치고, 대교 재, 정신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무공 수련만 하 기에도 빡빡한 일정이고, 모든 신경과 노력을 수련에 만 집중해야 한다는 걸 뻔히 아는 애가 화장 따위(?)
를 공들여 하고… 어랏, 이젠 머리를 빗기 시작하네?
으- 하여간 여자들이란..!
“대교야!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내가 약간의 짜증을 담아 부르며 다가가자 대교는 흠칫 몸을 굳히더니 달칵거리며 서둘러 화장품을 상자에 챙겨 넣는다.
“거참..! 내가 너 화장하는 거 같고 뭐라 그러고 싶진 않은데 말야. 때가 때이니 만큼…”
대교가 약간 당황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 편으로 몸을 돌렸다.
웨딩드레스가 연상되는 화사한 분홍빛 옷자락과 길고 윤기 있는 대교의 머리결이 동시 에 사라락 허공에 날린다.
“에… 내, 말은.. 그러니까…”
제기, 말도 제대로 안 이어진다.
본판이 작품인 애가 이렇게 화장발, 옷발(?)도 잘 받으면 어쩌자는 거야..?
본래의 곱고 깨끗한 피부도 보기 좋았지만 분가루를 먹고 백설처럼 희어진 얼굴도 환상적이었다.
그저 크 고 맑게만 느껴지던 두 눈이 조금 더 뚜렷해진 눈매 때문에 마치 요정 같은 느낌…
더욱 선명하게 붉어진 입술은 끔찍할(?) 정도로 매혹적…
그 모든 것이 흑단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수줍은 듯 자리한 자태… 이건 뭐.. 후우….
“…곡주께서 애써 가져다주신 것들이라..
하지만 곧 갈아입고 수련을 계속하겠습니다. 화장도 지우라시면.. 곧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대교는 내려뜨고 있던 눈을 살며시 들어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추스를 수가 있었지만, 얼굴 표정은 잘 안 따라 주었나 보다.
나의 넋 나간 표정을 확인한 듯 대교의 얼굴에 살짝 기쁜 빛이 떠올랐다.
“어.. 거, 화장,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내가 버벅대고 있자, 대교가 자신을 얻은 듯 아랫입술을 살짝 문 앙큼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대교보다 먼저 후욱- 하고 어떤 향내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향기라고 하기엔 너무 자극적인.. 그럼에도 웬지 거부감은 들지 않는 이건 또 뭐지…?
[ 사슴과 짐승인 노루 수컷의 생식선에서 분비되는 흑갈색 동물성 향료, 사향(麝香)입니다.
경풍(驚風), 간질 등의 병에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하는 물질이지만 현재 주인님 심장 박동수의 급격한 증가와 발기 현상을 촉진하는 작용을 합니다.
여성과의 성 관계를 원치 않으실 경우 흡입을 삼갈 것을 권고합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여자가 남자를 유혹할 때 사용했다는 그 사향이란 말이군.
근데 몽몽.. 설명은 고맙다만 이 상황에서 사향을 맡지 말라면.. 숨을 쉬지 말라는 얘기냐?
“귀주(貴州) 선화장(膳花莊)의 연지(脂)입니다.
마음에 드시는지…”
대교는 그렇게 물으며 붉은 연지가 발라진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혀를 살짝 내밀어 그 입술을 핥는다.
으윽-! 얘가 원판 육체의 약점(?)을 간파했나..?
갑자기 입술 어택(?)을..? 으, 양 한 마리.. 아니 양 정도로 안되겠다.
용가리 한 마리, 용가리 두 마리, 용가리 세 마리…
“후후-?! 선화장의 연지에는 봉밀(蜂蜜, 벌꿀)이 섞여 있어 매우 달콤하답니다.”
그래서 어쩌라구우~~
으으으… 몽몽의 경고대로 사향의 영향도 만만치 않은 듯 원판의 육체가 격렬하게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진압..해야겠다.
나는 먼저 공연히 목을 좌우로 돌리며 두두둑 소리를 냈고, 이어 손가락을 꺽어 같은 소리를 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는 이 몸에도 많이 익숙해져서 본래 내가 사용하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동작을 하는 것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의아해 하는 대교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뺨에 손을 가져갔다.
“음- 그래, 화장하니까 더 예쁘구나. 옷도 잘 어울리고…”
그러면서 뺨을 가볍게 톡톡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귀여운 어린 동생.. 정도로 대하니까 흔들렸던 마음도 비교적 수월하게 진정이 된다.
“좋아..! 이번엔 인정!
하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좀 참아 줘. 니가 상대해야 할 장청란이 보통 고수가 아니란 거 알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얌전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교.. 나로서는 부드럽게 말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야단 맞았다고 생각하는지 조금 새초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음, 그러고 보니 챤스..! 자연스럽고 슬그머니..
대교의 등을 사정거리로.. 흐…
철썩-!
“꺄아-!”
음뿌핫핫핫-! 또 성공했다.
“하하-! 나 이만 갈게.
하하- 그리고 넌 굳이 화장하고 화사한 옷으로 치장 안 해도 충분히 예쁘다구.”
방심하고 있다가 또 내 장난에 당하여 황망해 하다가
결국 풀썩 웃고 마는 대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문으로 향했다.
후후… 대교 잘 있나 보러 왔던 건데, 결국은 내 컨디션 회복하고 기분 전환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기분 좋게 바깥으로 나오자 첫 번째 문앞에 소령이와 미령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분명히 어디 가서 쉬던가 놀던가 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두 아이는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흠… 소교가 안 보이는 데 설마 그 아이만 놀러갔나..?
내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1층 로비(?)까지 나왔을 때였다.
어쩐지 평소보다 바깥이 좀 소란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보다 훨씬 귀가 밝은 소령이와 미령이는 이미 그 소란스러움의 원인을 알았는지 저희들끼리 난처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내가 막 물어 보려는 데, 소교가 바깥으로부터 급한 걸음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날 발견하고는 인사하는데, 음… 어째 얘도 좀 난처해하는 표정이네?
“소교, 지금 바깥에 무슨 일 있니?”
“저.. 실은 조금 전에 월영당을 맡고 있는 ‘소운연’ 당주께서 곡에 복귀하였습니다.”
“호오, 그래..?”
월영당 당주는 그 임무 때문에 거의 곡에 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내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유일한 간부급 인물이었다.
“근데, 그 사람 온 거하고 바깥의 소란하고 무슨 관계지?
..어, 그러고 보니 무슨 싸우는 소리 같은데?”
“그게.. 저희 사부, 아니 총관과 월영당주가 조금.. 다투게 되어서…”
“뭐야-?”
간부급끼리 싸운다고..?
그거 별일일세?
누차 밝혔지만, 이 곳의 ‘군기’는 상당히 엄해서 곡 내 식구들끼리는 언성을 높여 다투는 일조차 드물었다.
근데 지금 이렇게 실내에까지 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치고 받는 싸움이 벌어졌다는 건가?
세 자매들은 저희들 사부인 총관이 관련된 일이라 내게 보고하기를 꺼렸던 모양이지만, 흐흐…
‘불 구경’과 함께 항상 인기 1, 2위를 다투는 ‘싸움 구경’을 놓칠 수는 없지?
나는 서둘러 로비를 가로질러 건물 중앙 입구로 나갔다.
“하앗-!!”
내가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들려온 날카로운 기합성… 에..?
“흥-! 못 본 사이 요리조리 피하는 실력만 늘었군요?”
그렇게 외치며 계속해서 총관 혈마검호를 살벌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여자…
허.. 월영당주가 여자, 그것도 저렇게 젊은 여자일 줄은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