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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35화


몇 번 더 발음 연습을 시켜볼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 소교의 영어 발음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암튼… 이 코리아교가 무척 신비롭고 훌륭한 종교라는 것만 알아둬.”

‘코리아교’라…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려니 오히려 얼굴이 더 굳어지는 것 같다.
나는 뻣뻣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코리아교의 시조이신 ‘단군 대성(檀君戴星)’께서는 말이지, 너희처럼 18세가 안 된 소녀들을 ‘미성년자(未性年者)’라고 하셨어.”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설정을 사용하면 중국에서도 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군’이라고만 하면 나중에 눈치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대성’이라는 단어를 슬쩍 붙였다.
이건 ‘손오공’이 자칭했던 ‘제천대성’이라는 명호에서 따온 거다.

“미성년자…라고요?”

역시 예상대로, 막내 미령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20세 이전의 소녀들은 아직 남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 저마다 하늘이 내린 품성을 키워야 하는 시기라는 뜻이야. 알겠니?”

흐…
‘미성년자(未成年者)’라는 단어가 졸지에 ‘未性年者’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저… 저흰 고리아교 신자가 아니… 앗!”

‘고지식한 돌발 소녀’ 소령이가 무심코 그렇게 말하다가, 소교에게 옆구리를 찔리고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음… 너희나 누구에게도 억지로 코리아교의 교리를 따르라고 강요하진 않겠다. 코리아교 교리에는 ‘종교의 자유’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알 듯 말 듯한 애매한 표정의 소녀들에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코리아교의 심오한 교리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내가 가르칠 기회가 많을 거야. 나도 모든 교리를 완벽히 따르진 못하지만, 최대한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 중이거든. 적어도 지금부터는 말이지. 그러니, 20세가 되기 전까지는 내 침상에 오를 생각… 꿈도 꾸지 마!”

딱 부러지게 말을 끝내고 다시 술 한 잔을 원샷했다.

당장 오늘 밤 내게 안겨 처녀성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던 소령이는 시원 섭섭한 표정이고,
소교는 그동안 품었던 의문이 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옛날에는 한국이나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하늘의 뜻’이나 ‘신의 뜻’이라는 말이 통했을 것이다.
흐… 진작에 이 방법을 생각해 냈으면 좋았을걸.

초사악, 궁극잔인, 왕변태살인마였던 ‘극악서생’이 갑자기 개과천선했다는 것보다는, 어떤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게 나도 설명하기 좋고, 듣는 사람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텐데 말이다.

정말이지… 진작 생각했어야 했다.
제기… 그랬다면 좀 더 그럴듯하고 멋진 종교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급하게 만들어냈다고 해도… 뭐? 코리아교…?

모르고 듣는 애들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계속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 자신이 참 어색하고 쑥스럽다.

음…
근데, 역시 ‘당돌 소녀’ 미령이가 문제인가?
얘는 지금 왜 이렇게 풀이 죽어있지?
어쨌든 간에 얘들이 예쁘지 않아서 내가 안지 않는다는 설명(?)은 다 된 것 같은데, 또 뭐가 불만이야?

“곡주님…”

“왜.”

“그럼, 전 앞으로도 5년이나 더 기다려야 곡주님을 모실 수 있는 거예요?”

“…….”

“너무해요. 언니들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것은 몰라도 무조건 5년씩이나… 미령인 지금도 충분히 곡주님을 모실 수 있는데…”

“…….”

…내가 살던 시대와… 문화적인… 차이가… 있는 거고…
난… 여기에… 이 시대에… 적응을 해야 하지만…
제기!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것이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들으니 어이가 없군.
쬐깐한 것이 뭘 어째…?

“야, 임마!”

나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상체를 미령이 앞으로 쑤욱 내밀었다.
그리고 오른손의 검지로 미령이의 뺨을 장난스럽게 툭, 툭 건드렸다.

“내 눈에는 넌 아직 어린애야, 애…”

울상을 짓는 미령이에게 나는 ‘떽기!’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나서 다시 몸을 당겨 자세를 바로 잡았다.

“자, 이제 오늘 내가 한 말… 다 알아들었지?
오늘 내 처소 당번만 남고 둘은 돌아가서 쉬어.”

이미 몇 잔 마셔 얼큰해진 목소리로 내린 내 명령에 자매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말에 대해 각자 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어도 대충 내가 바라는 대로 알아들은 눈치여서 다행이었다.
음… 오늘은 피곤하니까… 한 잔만 더 마시고… 이만 자자…


다음 날 아침…
간밤에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인지, 습관대로 아침 6시쯤에 가뿐하게 눈을 떴다.
부스스 상체를 일으킨 나에게 미령이가 총관과 월영당주, 야후 장로까지 대청각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 왔다.

나는 귀찮기도 하고, 또 뜸을 들일수록 그들이 더 힘들어할 거라는 걸 알기에… 가뿐하게(?) 다시 누워버렸다.
뒹굴뒹굴… 선잠과 태평함을 즐기며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모를 시간을 더 질질 끌다가 비로소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세수 대충하고… 소교와 자매들이 입혀주는 대로 입고, 머리 빗질도 당하고(?)… 행색을 갖춘 다음엔 평소처럼 느긋하게 커피 한 잔에 군용 88 한 대 피우고…

그러면서 슬쩍 눈치를 보면 자매들 중 한 명이 수시로 보이지 않는다.
흐… 내 행동이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뭐 그런 사항을 자기들 사부 가족(?)에게 계속 알려주는 거겠지?

자아~! 뜸도 들일 대로 들였겠다.
슬슬… ‘극악서생’의 가혹한(?)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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