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39화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차를 마시며 한담할 시간은 없을 듯 합니다.”
“뭐, 편한 대로 하시오. 우리 측 입장은 다 밝힌 셈이니까…”
“..그보다, 이번 비무에 나설 귀 곡의 고수가 마봉후(魔鳳后)의 후인이라 들었습니다.”
내가 대뜸 장소 조건 등을 일임해 버린 일을 속으로 따져보느라 머리 속이 복잡할 텐데도 짐짓, 질문을 해 오다니..
이 여자 머리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 오늘 나 진짜 무리한다.)’이 되는 모양이다.
“그렇소만.. 설마 상대로써 부족하다 여기시오?”
“…마봉후가 비록 사마외도의 인물이라 하나 전설적인 고인..
그 후인이라면 본파의 아가씨와 능히 견줄 만 한 상대라 할 수 있지요.”
“………”
‘마봉후가 사마외도의 인물이라 하나..’라고?
솔직히.. 이게 봐주니까 계속 기어오르네? 하는 느낌이 든다.
좀 전에 장명 문제로 흥분했을 때는 그렇다 치고,
사마외도 소굴에 와서는 그 짱 앞에서 계속 사마외도를 우습게 보는 말투를 쓰다니…
고화옥이 단순히 실언을 한 것인지, 날 도발하는 의도인지…를,
나는 슬쩍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린 채 뒷머리를 극적이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오래지 않아 났다.
신경 쓰지 말자!
“…그녀는 분명 마봉후의 후인이며 명호는 ‘마봉낭자’라고 하오.
그녀가 비록 장소저보다도 한 살이 어리기는 하나..
장소저께 실망을 드리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오.”
나는 계속 한 수 접어주는 자세로.. 그러나 여유 있게 대답해 주었다.
마봉후의 후인이 장청란 보다도 어리다는 말에는 고화옥도 좀 놀라는 눈치였다.
문득, 이쯤에서 나도 한마디쯤 ‘도발’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걱정이구려.
장소저가 비록 기연을 얻었다고 들었으나..
그 기연이 화천루의 무공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혹시 아직 화천루의 무공을 모두 완성하지 못했다면..
곤란을 겪게 되는 것은 오히려 장소저가 될 것이니 말이오.”
오… 한 번 찍어 본 건데, 아주 순간적이지만 처음으로 고화옥의 안색이 변했다…?
역대 우리측 고수들과 화천루주와의 대결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월형신공의 최후 두 절기에 관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 좀 이상했었는데..
역시.. 역대 화천루주들 중에서 그 신공의 최후 두 절기까지 익힌 고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내 추리(?)가 맞는 것인가..?
음..? 근데 이 여자, 약간 당황하는 것 같더니 금방.. 에..? 웃어..?
그것도 어째 비웃음 같은…
“…저희 아가씨의 진실한 신분.. 이제 와서 굳이 숨기고 어쩌고 할 것도 없겠군요.
게다가.. 곡주께서 이토록 자신하는 것으로 보아,
마봉낭자라는 고수는 이미 선대의 수위를 능가하였다는 뜻..
놀라운 말씀이기는 하나.. 훗-!
저희 아가씨 역시 선대를 능가하는 재능을 지닌 분이라는 것도 짐작하셨는지..?”
뭐시..라고라…?
에고고… 일났다.
일나긴 났는데… 여기서 너무 티내면 안되겠지..?
“호오.. 그렇다면 본인은 드물게도 화천루 무공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겠구려.
거참 잘 되었소이다. 하하하-!”
내가 본래 이런 건 잘하기 때문에 태연하게 웃으며 고화옥을 마주보았다.
그녀 역시 여유 있는 태도로 마주 웃으며 포권으로 인사했다.
“그럼.. 일단 돌아가서 곡주의 오늘 말씀을 아가씨와 본파의 어른들께 전하겠습니다.
곡주께서 많이 양보해 주셨으니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속마음은 좀 복잡했다.
…제엔장! 익히기 어려운 무공이라고 다 무서운 건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충 계산해 봐도 1000년 정도는 익힐 수 있는 자가 없었던 걸
장청란이 해냈다는.. 그런 얘긴데.. 제기, 괜히 불안해 진다.
현재의 계획대로만 해서 과연 대교가 그런 장청란을 이길 수 있을까..?
당장에 소림사의 대환단 훔쳐오고 어디서든 공청석유 같은 영약도 구해오라고 곡 내 식구들을 닥달해야 하나..
아니면 현재 대장로인 대천마(大天魔) 같은 고수들 내공을 모조리 대교에게 몰아 준다거나…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영약을.. 구할 수 있었으면 벌써 구해 다가 창고에 쌓아놨겠지?
그리고 지금 장로급들에게 대교의 존재를 들키면 당장에 먼저 죽이려고 난리들일 거고…
“아참..!”
거의 문 앞까지 나갔던 고화옥이 문득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좀 전에 곡주께서는 비무 장소에 직접 방문하실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정말 비무 장소가 어디가 되어도 상관이 없으시겠습니까?”
나도 아참..이다!
지금 고화옥은 다른 생각으로 말 꺼낸 거겠지만,
사실 내가 먼저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려 했었다.
중요한 걸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Sure, here’s the modified text with proper line breaks for dialogue, thoughts, and descriptions:
“…장소가 귀 곡과 조금 멀 경우..
이 비화곡을 조금 오래 떠나셔야 할 테고..
아시다시피 강호인들이란 원한에 있어서 집요한 구석이 있고..
개인적인 은원 관계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강호의 묵계인지라…”
“좋은 점을 지적해 주셨소.
줄곧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잊을 뻔했구려.”
장난스럽게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 나를 보며
고화옥의 입가에 떠올랐던 심술궂은 미소가 사라지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공개적으로 강호에 나가면 좀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이오.
강호에 본인을 극악서생이라 부르며 미워하는 자들이 꽤 된다고 들었는데…
특히 ‘화산파’ 사람들은 날 필생의 원수로 여기고 칼을 간다던가요?”
“그거야 곡주께서 6년 전 현 화산파 장문인의 장녀와 손녀를 납치해..
음, 당시 손녀 나이가 고작 12살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고화옥은 숨길 생각도 없이 혐오감을 떠올리고 있었다.
실은.. 나도 마친 가지 심정이다.
원판 녀석에게 더럽혀진 장문인의 딸은 자살했다고 하고
손녀는 정신이상..
총망 받는 화산파의 기재였던 사위도 그 이후 술에 쪄들어 폐인처럼 살다가
파문 당하고…
내가 화산파 사람이라도 원판을 갈아 마시고 싶을 것이다.
“후우….!”
나는 한숨을 푸욱 몰아 쉰 다음 말을 이었다.
“나도 사실 줄곧 그 점을 걱정했소.
과거의 내 악행을 부정할 마음은 없지만..
또 사람을 해치는 것은 싫어서 말이오.
그래서 실은 귀 파에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소.”
고화옥의 눈이 조금씩 커진다.
하긴 난 지금 진심이고..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여자라면 더 확실히 그걸 알겠지..?
“고여협처럼 강호에 영향력이 있는 귀 파의 인물들이
날 좀 도와달라는 것이오.
에… 말하자면 내가 곡을 나가서 원한을 가진 자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과 나를 중재하여 달라는 것이오.
가능한 한 피를 보지 않도록…”
이런 제기..! 별로 안 알아주는 표정이다.
또 무슨 속셈이냐.. 대충 그런 의미의 시선을 보내 오는 군.
“저기, 소교가 좀 말해줄래?
내가 과거와 좀 달라졌다는 거…”
내 말에 소교가 신중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고여협께 말씀드립니다.
곡주께서는 현재 ‘고리아 교’에 귀의하시어,
살생을 삼가고 여색을 멀리하고 계십니다.
아시다시피, 본 곡의 고수들이 곡주님을 호위하여
비무에 참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만,
곡주께서는 진심으로 피를 보기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고리아 교…?”
“소녀도 그 심오한 교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 만..
그리고 제가 곡주님을 곁을 지키게 된 것도 얼마 안되지만…”
음..? 갑자기 왜 망설이면서 날 보는 거지?
“…분명 곡주님이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음… 저 눈빛과 음성…
내가 봐도 ‘진심’이 팍팍 느껴진다.
역시 대교 다음으로 소교가 제일 안정적인 (?) 화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상의는 해보겠지만..
과연 강호에 곡주의 일신에 얽힌 수많은 은원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있을지…”
고화옥은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표정이 남아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말하고는 대청각을 나선다.
생각보다 피곤한 대담(?)이긴 했지만..
방에 가서 녹화 뜬 거 다시 돌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런데 찾아 올 정도의 여자라 그런지 심리 파악에 도 어려운 점이 많았고…
하여간 여러 가지로 다시 살펴보고 작전도 다시 짜야겠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상대편에게 ‘호위’를 부탁한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고화옥의 마지막 말처럼 그 것도 100% 해결 방법은 못될 것 같긴 했다.
원판 ‘극악..’이 밖에서 웬수 진 것이 어디 한 두 건인가?
내가 그 동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 중에서 큰 사건 만해도
‘화산파 모녀 강간’보다 더한 사건이 열건 가까이 된다.
소림사의 차기 장문인까지 거론되던 고승을
최음제와 기녀를 써서 파계시킨 일과
아미파 여승들 다수를 납치하여 무공을 폐한 다음 사창가에 넘긴 일 같은 것은
‘변태’쪽에 속하는 범죄였고..
해남파 수준의 크고 작은 문파를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전멸시킨 일 같은 경우는
‘살인마’쪽의 사건…
내가 아직 듣지 못한 사건은 더 많을 것이다.
당근, 내가 그 피해자라 해도 누가 말린다고 참을만 한 원한이 아니다.
제기, 그렇다고 이번 기회에 바깥 구경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아깝고,
대교 싸우는 걸 안 볼 수도 없고..
제기, 아무래도 당분간은 술도 입에 대지 말고 머리 좀 싸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