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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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날씨가 참 좋다.
슬슬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었는데도 너무나 맑고 푸른 하늘이 보기 좋아 창문을 닫기가 싫다.
가경촌에 내려갔다 온 지는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계속 미령이 빼고 나 혼자 놀러 나가고 싶었기는 한데, 너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하고 있는 참이다.
소호루의 여주인 이화…
워낙에 예쁜 대교 자매들을 곁에 두고 지내서 그런지 그렇게 대단한 미인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래도 웬지 정이 가는 여자다.
일단은, 뭐.. 약간의(?) 편법을 쓰긴 했어도 이 비화곡의 주인이라는 권력으로 꼬신 것이 아니어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다.
사실, 그 정도 여자라면 서울 명동거리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킹카’이기도 하다.
음.. 역시 어떤 핑계이든 대서 미령이를 비롯한 대교 자매들을 떼어놓고 다시 한 번 소호루에 놀러가야겠다는 각오(?)를 해본다.
호위 무사로는.. 글쎄, 바꾸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황성과 백상보다 나은(얌전한) 혈랑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 정말 날씨 좋다.
이런 날 방구석에서 로봇 몽몽에게 무공 자료나, 손자 병법 같은 병법 자료를 불러내 훑어보고 있는 신세라니…
그래도 스스로 대견한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앞으로의 일들을 대비해 최근 난 열심히 공부 중이다.
각종 자료를 몽몽에게 요청해서 허구 헌 날 들여다봤더니, 지식도 지식이지만 우선 가상 현실에 대한 적응력 하나는 완벽해진 상태이다.
현재 강호상의 중요한 문파들과 그들의 무공, 세력 구도 등도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예전에 무협지에서 읽었던 것과 매치되는 부분이 많아서 이해하기가 쉽기도 했다.
음.. 이렇게 날씨도 좋고, 그동안 공부하느라 지친 머리를 식힐 겸 오늘은 조금 노는 것도…
후- 하지만 지하의 대교를 생각하면 이런 생각하는 것도 미안한 노릇이다.
그 아인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갈 때마다 잠깐 나와 한담을 나누기는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잠도 잘 안 자고 무공 연마에만 매달리는 것 같았다.
그런 노력과 내가(?) 제공하는 각종 영약들 덕분에 현재 대교의 내공은 거의 3갑자에 이르고, 마봉후의 무공도 최소한 7,80% 정도 자기의 것으로 한 듯했다.
물론 무공이란 것이 몸에 익혔다고 해서 무조건 위력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역시 문제는 ‘실전 경험’일 것 같다.
지금까지 대교와 장청란을 가상 현실에서 싸우게 한 결과, 자그마치 100번이 넘게 싸웠을 때에야 간신히 대교의 승률이 50%를 넘기 시작했다.
대교가 마봉후의 무공을 완전히 습득했을 때는 먼저 그녀를 지하 창고에서 빼내야겠다.
장청란과의 대결 전까지 강호 상에서 실전 경험을 쌓도록 하려면 말이다.
문제는 그 방법인데…
처음 그곳에 가서 몽몽을 시켜 스캔했을 때는 대충 중요한 장소만 파악하고, 딴 사람 있나 없나 정도만 확인하고 끝냈었다.
몽몽의 스캔 기능으로도 파악하기 어렵다거나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 부분은 다음으로 미루었었고…
하지만 그 이후 나도 거기 내려갈 때마다 대교와 농담 따먹기만 하다가 온 건 아니어서, 지금은 그곳, ‘비화곡의 성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무협지는 물론이고 그 어떤 장르에서건 그런 깊숙한 지하의 은신처에는 반드시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자폭용 기관장치이다.
주인공이나 그 동료가 실수로 작동시키거나, 악당 두목쯤 되는 인물이 죽기 전에 같이 죽자는 심보로 작동시켜서 등장인물들이 뭐 빠지게 도망가는 장면이 연출되는 바로 그 자폭 장치가 어쩐 일로 성지 안에는 없었다.
대신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한 후 지나와야 하는 각종 부비트랩이 설치된 ‘함정 복도’에는 그 자폭 장치가 있어서 최악의 경우 그 최종 장소를 밀실화 하도록 되어 있었다.
지하 은신처 ‘필수 장치’ 중 두 번째는 당근, 비밀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에 몰려 복도의 자폭 장치를 작동시켜 출구를 봉쇄해 버린다거나 적에게 출구를 점령당하게 된다는 가정하에 그곳의 설계자가 ‘그런 상황에선 그냥 굶어 죽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끈질기게 비밀 통로를 찾아다녔었다.
비밀 통로 찾다가 열흘 전에는 엉뚱하게도 역대 ‘비화곡주’가 떼거지(?)로 안치된 지하 무덤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영약 보관실(?) 안쪽에 입구가 교묘히 숨겨져 있어서 찾기만 우라지게 어렵게 만들어 놨지, 흔히 무협지에 나오듯 선대의 고수가 남기는 무공서나 영약.. 하여간 어떤 기연 같은 것은 없고 먼지만 폴폴 날리는 썰렁한 납골당이었다.
어쨌든 현재 내 계급(?)의 선배들이라니 그냥 나오기도 뭣하고 해서 부동자세로 경례, 특공!! 그리고 나왔었다.
이틀 전에는 몽몽의 스캔 기능으로도 그 뒤를 알 수 없었을 만큼 무지하게 두텁고 겉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거대한 돌문을 발견했다.
어찌어찌 스위치를 찾아내 열었는데.. 거기도 비록 비밀 통로는 아니었지만 좀 더 반가웠던 것이, 꽤 많은 무기며 장비들이 진열되어 있는 방이었다.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어쩐지 분위기가 있고.. 소위 말하는 신병이기(神兵異器)인 것 같았다.
맘 같아서는 좋은 무기란 무기는 모조리 대교에게 주고 싶었지만 그 무기 다 싸 짊어지고 다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단 대교를 불러다가 하나 골라보라고 했었다.
대교가 그때 고른 것은 평소 쓰던 검과 비슷한 디자인의 비교적 수수한 검이었는데, 손잡이에 작게 월하미인(月下美人)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검 이름 치곤 특이하다 생각했지만 대교는 어쨌든 그 검이 마음에 든다고 하였고 애칭으로 월명(月明)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그곳의 무기가 다 그런 건지, 아니면 대교가 안목이 있어 명검을 잘 고른 건지는 몰라도 월명검의 날카로움은 장난이 아니었다.
영화..에서는 못 본 것 같고, 만화에서 가끔 봤던 검날에 머리카락 올려놓기를 해봤더니 에누리 없이 자연스럽게 토막이 나버리는 것이었다.
몽몽 말로는 월명의 추정 제작 시기의 기술력으로는 확률상 143만 분의 1의 확률로 제작이 가능한 검이라고 했다.
거참…!
나야 현재 처지로는 무기 쓸 힘도 없지만.. 그래도 잔뜩 널린 무기를 보고 있자니 웬지 아쉬워서 그냥 계속 둘러보다가 한쪽 귀퉁이에서 먼지에 쌓인 초라한 도(刀)를 한 자루 발견하고 손에 들어보았었다.
“일견 볼품없는 박도(朴刀)같이 보이지만.. 웬지 묘하고도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군요.”
나야 뭐, 대교가 말한 것 같은 힘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단순한 디자인의 박도가 마음에 들었었다. 왜냐하면 그 박도가 부대에서 애용하던 ‘정글도’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훈련 나가서 산 속을 헤치고 다닐 때, 정글도가 얼마나 유용하고 믿음직한 도구 겸 무기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무게부터 묵직한 것이 휘두를 때의 손맛(?)도 죽이고, 도는 도라도 도끼와 맞먹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도 한 그 추억의 정글도…
내 표정에서 대교는 무엇을 느꼈는지 어쨌는지, 내가 그냥 놓고 나오는 그 박도를 자신이 들고 나왔었다. 그리고는
“곡주께서 언젠가 무공을 얻으셨을 때, 그 때를 위해 제가 보관해 놓겠습니다.”
라며 천으로 소중히 감아 지 소지품들과 함께 놓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런 아이다. 생각하다 보니 또 보고 싶어진다. 그려, 이화는 무슨 개뿔이 이화냐, 대교나 보러 가자.
이제는 익숙해진 지하 통로를 따라 두 번째 관문 앞에 도착했다.
“..오늘.. 도련님께.. 한 말씀.. 올려야겠습니다.”
“..오늘.. 도련님께.. 한 말씀.. 올려야겠습니다.”
아수라 백작 남녀의 껄끄러운 이중 목소리에도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특별히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 일은 없었는데 어쩐 일이지..?
“뭐야, 할 말이란..?”
“..성지(聖地)안의… 인물… 어쩌실 생각.. 이신지..?”
“..성지(聖地)안의… 인물… 어쩌실 생각.. 이신지..?”
이런 제기..!! 결국 눈치 챘나?
“…언제부터 알았지..?”
“..최근.. 안에서 강력한 내력이.. 운용되는 것이.. 감지되어..”
“..최근.. 안에서 강력한 내력이.. 운용되는 것이.. 감지되어..”
쳇-! 역시 고수들이라 다르군. 상당히 먼 거리인데, 그 거리가 다 두꺼운 암벽으로 막혀 있는 셈인데도 대교의 기운을 느꼈다니.
“..그래, 사실 난 안에서 매우 중요한 일에 쓰기 위해 고수를 한 명 키우고 있어.”
“..어째서.. 하필 성지에서…?”
“..어째서.. 하필 성지에서…?”
실은 내가 잘 몰라서 실수로 데려왔어, 좀 봐줘..라고 할 수는 없겠지..?
“보안이 유지되어야 할 중요한 일이라 그래. 알다시피 성지 안만큼 완벽히 보호된 장소가 없으니까.”
“..하지만.. 노복들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복들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인정할 수 없다면..?”
“..도련님께.. 누가 되어도.. 곡의 철칙은.. 지켜져야…”
“..도련님께.. 누가 되어도.. 곡의 철칙은.. 지켜져야…”
“나만 제외하고 성지에서 나오는 인물은 누구라도 죽인다.. 이건가? 내가 막는다 해도..?”
“..노복들은 벌써.. 40년 째.. 이 문을 지켜 왔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노복들은 벌써.. 40년 째.. 이 문을 지켜 왔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
제기.. 문득 추워진다. 기분 탓만이 아니다. 벽 안에서 ‘살기’라고 불리는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정상 남녀의 비정상 살기는 정말이지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나도 오기라는 것이 있다.
“좋아, 아수라 백작! 임무에 충실하도록 해. 나는 나대로 뜻을 관철시킬 테니까!”
“..어쩌면.. 곡의 철칙을 깨는 것.. 가능할지도..”
“..어쩌면.. 곡의 철칙을 깨는 것.. 가능할지도..”
응..? 갑자기 한 발 물러서네?
“..분명.. 선대 신군조차.. 알지 못했던.. 노복들의.. 비밀을 눈치챈 도련님이라면..”
“..분명.. 선대 신군조차.. 알지 못했던.. 노복들의.. 비밀을 눈치챈 도련님이라면..”
뭔 소리야? 내가 지들 비밀을 눈치챘다고..?
“..노복들이.. ‘음양천지공의법’의 극성을 이루어… 진정한..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었음을..”
“..노복들이.. ‘음양천지공의법’의 극성을 이루어… 진정한..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었음을..”
에-? 음양.. 뭐? 이건 간단한 설명 가지고는 안 되겠는걸? 간만에 톡!톡!톡!
[陰陽天地共意法. 남녀가 각각 ‘극양’, ‘극음’의 기를 수련하는 것이나 서로의 조화를 목표로 하는 무공입니다. 수련 형태가 중반부까지는 ‘남녀의 교합’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이 시대 상위 무공 3% 이내에 드는 위력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천시되는 무공입니다. 중반 이후로는 남녀의 모든 행동이 통일되어 남녀 일심동체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최종적인 완성 형태를 이룬 자들이 없어 최종 단계의 구체적인 기록이 없습니다만, 이론상으로는 이 무공의 수련이 장시간 계속될 경우 남녀의 세포 융합 현상이 예상됩니다.]
세포 융합..? 그럼 정말로 두 남녀가 하나로 합쳐져 버린다고? 맙소사, 그런 무협지를 넘어선 미스테리 SF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가능하단 말야..? 그,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그걸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았다는 거지? 에.. 가만있자.. 혹시 내가 지어준 ‘아수라 백작’이란 명호 때문에..?
그래,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내가 얼결에 아수라 백작이라는 명호를 지어 주었을 때 이들은 처음으로 대답이 각각 달리 흘러나와서, 그래서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상태를 알았다고.. 그렇게 오해하고 당황했었던 건가..?
그-그-긍~! 내가 특별한 대꾸 없이 서 있자. 거대 자동 돌문이 열려진다.
“..부디.. 뜻을 이루시길.. 마도의 중흥을 위해.. 도련님 같은 분이.. 역사를 바꾸셔야 할 지도..”
오해는.. 그냥 하게 내버려두자.
어쨌든, 이제까지 이들에게 받았던 느낌에 비해 아주 이상한 남녀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무에 충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군가 오래된 철칙을 깨주길 바라는 혁신적인(?) 의식도 가지다니… 괜히 중요한 곳을 지키는 지킴이로 뽑힌 건 아닌 모양이다.
왠지 조금 숙연해진 마음으로 나는 대교가 있는 ‘성지’에 도착했다. ‘성지’… 처음엔 원판 ‘극악..’과 마인들의 소굴인 비화곡에 대한 거부감이랄까..? 그런 심리 때문에 ‘서고’니 ‘창고’라는 말을 썼지만, 이 안에 대해 알면 알수록 왠지 그런 호칭이 미안해지고 있는 참이다.
후… 대교는 오늘도 여전하군.
식탁으로 쓰이는 돌 탁자는 항상 말끔하고, 내가 가져다주는 음식이며 옷가지며 그 옆 평평한 바위 위에 깔끔하게 정돈되어 놓여져 있다.
‘결벽증’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교는 이런 곳에서도 항상 깔끔을 떤다. 무공 익히다가도 틈을 내서 닦는지 내가 주로 앉거나 눕는 바위 위는 항상 반질반질하다. 그런 거 할 시간에 무공이나 더 익히라고 했었지만, 그럴 때는 대답도 없이 곱게 웃기만 한다.
“곡주님, 오늘은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운기조식을 그치고 일어나 반갑게 다가오는 대교… 오늘처럼 이틀 만에 보건, 며칠이 지났건 이 아이의 반응은 항상 똑같다. 마치 1년 정도는 못 본 애인 면회 온 듯 기쁘게 날 맞아서 나까지 괜히 기분이 들뜨게 된다.
“내가 기분이 좋아 보여..? 그야 우리 이쁜 대교 보러 와서 그렇지.”
“아이- 놀리심 싫어요.”
훗-! 누가 보면 닭살 커플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내가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이젠 꽤 스스럼이 없어져, 대교가 먼저 농담을 걸어오는 일도 있을 정도라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 더욱 즐겁다.
뭐… 대교에게 바깥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도 좋지만 오늘은 특별한 목적이 있으므로 일단 그 일을 먼저 시작해 봐야겠다.
현재로써는 마지막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밖으로 나가는 ‘비밀 통로 후보’, 나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이곳 성지 공터의 중앙 연못..!! 실은 애초에 가장 먼저 주목했던 것이 바로 이 눈앞의 연못 속이었다.
무협지에 보면 수중 통로를 통해 비밀 장소로 이동하는 장면이 가끔 나오고 그랬다. 그래서 일단 의심을 했던 것인데, 20일쯤 전이었던가? 막상 몽몽을 통해 연못 바닥의 구조를 파악해 보니, 도무지 확인해 볼 방법이 없었다.
이 연못의 바닥은 평평한 돌로 짜 맞추어 이루어져 있고, 바닥 주변의 두 군데는 입수구와 배수구로서 내 머리 하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구멍이 뚫려있다.
물이 들어오는 구멍이 좀 더 크고 물살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약하지만.. 그래봤자 사람은 어린애도 통과 못 할 만한 크기였다.
구멍의 크기는 구멍 양쪽의 바위를 들어내면 넓힐 수 있기는 하겠는데, 배수구의 안쪽 공간을 스캔해 보니 약 20여 미터쯤부터, 입수구는 30여 미터 정도부터 구멍이 다시 좁아져 사람이 통과하기는 무리일 듯 싶었다. 그때는 그래서 포기했었는데….
제기, 하지만 지금은 다른 장소를 더 뒤져볼 곳도 없다. 갈수록 정말 비밀 통로가 없는 건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연못의 구멍 속을 제대로 확인해 보기 전에는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톡! 톡! 톡!
“몽몽.. 너 지난번 대교 신체를 스캔 할 때처럼, 그렇게 네 몸.. 아니, 본체에서 ‘촉수’를 길게 뻗는다고 할 때, 어느 정도 거리까지 가능하지?”
<기본 탐색 기능을 유지한 상태라면 84.4미터까지 가능합니다.>
“84.4미터..? 우쒸~! 그럼 너의 그 ‘오메가 선’인가 하는 걸 이용한 직선거리 스캔하는 거랑 거기서 거기잖아?”
<해당 장소를 구성한 암석은 오메가 선 투시에 용이하여 직접 탐사보다 12.9% 정확하며 또한 안전하여 권장됩니다.>
“..그럼 말이야, 혹시 네 본체를 분리하여 하나의 탐사선.. 이랄까? 카메라 기능을 가진 분신을 만드는 것은 가능할까? 에- 그걸 아주 긴 밧줄 끝에 매달아 떠내려보낸 후 회수하여 정보를 얻는 것은 어떨까?”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러나 적정한 정보 수집 능력과 기본적인 방어력을 가진 하위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본체의 9.8%가 요구됩니다. 만약의 경우 회수가 안 되면 자체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
우쒸-! 좋은 아이디어라는 첫 마디에 좋아했더니 이게 누구 놀리나? 아니 겁주나..?
으으~! 이 작은 로봇이 천하의 진유준 하사님을 갈등 때리게 만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