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39화 : 상남자. (3)


3. 상남자. (3)

내가 당사자도 아닌데 두 남녀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마는, 정황상 이렇지 않을까 싶은 걸 찔러 본 건데, 적어도 신디 쪽의 마음은 확실한 거 같았다.

“지, 진짜? 진짜 그 사람도, 그도 나를, 그, 진짜예요?”

“어, 그게, 인호에게 확실하게 들은 건 아니야. 여동생 소희에게 들은 얘기대로라면, 그런 거 같다고, 뭐, 그렇게 생각되더라구.”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최대한 애매하게 추가 설명을 해줬으나, 신디는 ‘인호의 첫사랑은 바로 너! 공인 인증 완료!정도의 확답을 들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매우 부담스러운 비주얼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줄 분실한 눈빛으로 몸을 떨면서 눈물도 주르르~! 난리도 아니로군. 이 아가씨가 인호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렸을 적의 애틋하고 아련한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장난이 아닌 분위기야. 애절한 첫사랑 스토리도 많다고 하지만, 정말 어렸을 때 단 한 번의 만남을 가진 것만으로도 이럴 수가 있는 걸까?

좀 더 세세한 사연을 듣고 싶어졌지만, 그건 일단 나중으로 미뤄야할 상황이었다. 나로서는, 저 줄리엣 양의 마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난감한 입장이 되었고, 당장 매퍼 가문과의 싸움에 있어서의 내 역할을 재고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거, 어쩐다? 인호의 복수를 돕고 싶고, 나 자신 역시 우리나라 땅에까지 쳐들어와서 존경할만한 고승을 살해한 놈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공범중의 한 명인 신디가 줄리엣이고, 인호가 로미오라니, 이제 암 생각 없이 싸움을 주선할 수가 없게 되었잖아. 사실, 신디가 저러거나 말거나, 인호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고 난 빠져도 되는 거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 저런 순정파 아가씨를 생까기도 쫌. 제기, 진짜 어쩐다?


“신디! 그만 진정하고, 대답해줘! 당신의 오빠들은 언제쯤 도착하는 거지?”

내가 자기 오빠들에 대해 묻자, 신디도 퍼뜩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아, 이제 두어 시간정도 남았어요. 아니, ‘자인’ 오빠는 성격이 급하니까, 그보다 빨리 올지도 몰라요.”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몰라도, 보스턴에서 들었던 시간과 비슷하군. 내가 시간조절을 잘해놓긴 한 건데 말야.

“신디! 당신, 인호와 싸우고 싶어?”

“아, 아니요!”

쳇! 대답에 조금이라도 망설임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여기서 신경 끄고, 본래 일정대로 진행했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즉각적으로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젓다니, 정말 어쩔 수가 없네.

“그럼, 빨리 오빠들에게 이쪽의 상황을 알려! 도널드 웨인은 이미 처단되었고, 그건 놈의 형인 호크 웨인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야.”

“아! 호크님이 부활하셨나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 매퍼 가문이 나서야할 일도 없어졌다고 하는 거야.”

“알겠어요! 아, 하지만, 오빠들은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할 거예요.”

“그럼 난 서둘러 인호 일행을 데리고 철수할 테니, 당신은 오빠들을 마중 나가서 시간을 끌어! 어서!”

신디는, 나의 말과 태도에 감사해하며 돌아서다가, 문득 물었다.

“진유준씨. 당신은 왜, 저를 도와주시려는 거죠?”

“꼭 신디양만 도우려는 건 아니야. 인호가 이대로 당신 마음도 모르고 당신들과 싸우게 되면,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게 될 거 같아서 그래.”

“그렇군요. 나와 오스카는 착각한 것이 아니었어요. 역시 당신은 그 사람을 너무나 닮았어요. 다른 사람들을 한없이…..”

“신디! 서둘러줘!”

“훗, 알겠어요. 아, 그리고.”

신디는 자기 전화번호를 알려주고서야 요물 오스카에 탑승(?)하여 사라졌다. 내 앞에서 눈물 뽑던 아가씨가 다시 웃음기까지 되찾게 된 것은 좋은데, 내가 뭔 짓을 한 건가 싶기도 했다. 도널드 놈을 처리한 직후에 곧바로 매퍼 가문과도 한판 뜰 예정이었는데, 얼결에(?) 계획을 바꾸게 된 거였고, 이젠 인호에게 면목이 없어진 셈이었다.

-잘하셨어요, 오라버니. 가여운 아가씨의 애틋한 마음을 잘 헤아려주셔서, 저도 기뻐요.

대교는 씁쓸해하고 있는 나의 손을 잡으며 내 결정과 행동에 지지를 보내 주었고, 요몽도 기분 좋은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요, 주인님! 적이지만 순정파인 아가씨의 눈물 때문에, 강적들과의 칼부림 욕구를 참으시다니! 넘넘 멋져욧!」

-요몽. 네 녀석의 칭찬은 좀 거슬린다만, 그거야 어쨌든. 언능후딱 후방 지원조에게 철수하자고 해라.

「아, 넵!」

돌발적으로 발생한 로미오와 줄리엣 변수 때문에 앞으로의 일정을 고민하면서 천천히 밖으로 나가보니, 벌써 블랙 스마이커 비행 부대의 헬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는 중이었다.

-몽몽. 신디쪽 상황은?

「코드명 신디의 스마트폰 해킹 및 도청 결과, 매퍼 가문 전사들의 행보가 일시 중단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일단은 잘되었군. 그럼 뭐, 시간도 벌었겠다, 고민은 좀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자. 직접 전투를 했던 팀이나 후방 지원조 가릴 거 없이, 다들 저렇게 승전을 기뻐하는 분위기인데, 나만 칙칙한 기분일 수는 없지.

“천주, 승전 파티 장소는 어디가 좋겠습니까?”

훗. 자룡대주, 이 아가씨. 헬기에서 내려 달려오자마자, 이런 거부터 확인하려 드는군. 역시 지하무림 공인 파티녀 답다고 할까?

“현재까지 베이스 캠프였던 러브 하우스, 시산커플, 시그마와 산드라의 ‘바람의 저택’, 어디든 괜찮을 거 같은데? 자룡대주가 양쪽 안주인들과 잘 상의해서 결정해.”

“복명!”

자룡대주는 기운찬 복명 소리와 함께 돌아섰고, 나는 도널드 놈의 잔당들 앞으로 향했다. 인간 모드가 되어있는 지나와 웨어 울프들은 패잔병답게 우울한 분위기이긴 했으나, 그래도 비교적 담담해 보이기도 했다. 반면, 살리나 쪽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본래 감정이 없는 생체 로봇들까지 살리나의 침통한 감정에 동화되어있는 것 같았다.

도널드 놈의 친위대로서의 소속감과 충성심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구먼. 그럼 어디, 호크 웨인의 부활에 대한 반응도 좀 볼거나? “친위대 제군들, 당신들은 이제 도널드 웨인을 만날 수가 없을 거야.”

예상대로 지나는 거의 무덤덤했고, 살리나만이 눈을 감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도널드 놈을 처리한 것은, 나나 피비도 아니었어.”

먼산만 보는 기색이던 지나와 웨어울프들, 고개를 떨구었던 살리나의 시선까지, 다시 나에게 모여들고 있었다.

“웨인가의 진짜 주인, 호크 웨인, 그가 부활했어.”

내말이 말뚝이 되어 가슴에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잠시 몸을 떨던 살리나가 결국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살리나! 당신만은 알고 있었지? 과거 호크 웨인이 어떻게 살해당했었는지 말야!”

살리나는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몸을 떨고만 있다가, 급기야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살리나를 노려보고 있던 지나가 약간 거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호크님을 도널드님이 고의적으로 해쳤다는 소문, 그게 사실이었군! 살리나, 당신도 공범이었던 건가? 내 아버지가 알았다면,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응? 자기가 아니라, 자기 파더?

“지나! 당신은 호크 웨인을 직접 섬겼던 건 아니었나?”

“그래요, 진유준씨. 호크 웨인님을 모셨던 건 나의 아버지였죠. 난 항상 호크님 얘기를 들으며 자랐는데, 실제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지나는 최강 상남자를 만날 수 없게 했던 살리나에게 분노하고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그 상남자의 친위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떠올렸는지, 어느 정도 험악했던 얼굴이 풀어지며 기쁨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살리나의 비주얼은 ‘난 이제 짤없이 폭망! 내가 그때 왜 그랬을꼬!’라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비주얼이었으나, 어쩐지 속마음은

지나보다도 복잡한 상태라는 느낌도 드는군. 이 여자도 재수 없게 도널드 놈한테 먼저 물리는 바람에 뱀프생 꼬인거고, 사실은 호크 웨인의 서브이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살리나 동정론’이 조금 더 커지기는 했으나, 내가 뭔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정도는 아니었다. 살리나는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어 버린데다, 스스로 돌아가려는 의지도 없었던 케이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난 지금 갱생(?) 가능성이 보이는 아가씨, 레이디 신디 신경 쓰기도 바쁜 상황이지. 물론 지금은 퇴근(?) 시간인 관계로, 레이디 신디의 일도 내일로 미룰 생각이지만 말야.

“그럼, 난 이만. 혹시 또 보게 되더라도, 오늘처럼은 아니길 바라.”

나는 대충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서 하품을 하며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친위대를 뒤로하고 헬기로 향하고 있자니까, 예상대로 인호가 슬며시 따라붙었다.

“고생 하셨습니다, 유준 형님.”

“나야 뭐, 계속 설렁설렁했고, 인호와 다른 이들이 고생했지 뭐. 그보다, 내가 소희에게 보낸 메시지는 인호도 봤겠지?”

“예. 소희가 바로 보여주더군요.”

나는, 신디가 자기 오빠들이 오는 것을 잘 막아냈다는 걸 확인한 직후, 그 소식을 소희에게 먼저 알렸다. 하지만 물론, 자세한 정황을 빼고 ‘그들이

오지 않게 되었음’만을 알린 거였다.

“오늘 매퍼 가문을 만나지 못하게 되어 많이 아쉽겠군. 그러나 이걸로 끝난 건 아니야. 오늘 매퍼 가문이 오기 전에, 그들이 지켜주려 했던 자가

제거됨으로서, 오늘은 그들이 나타날 이유가 없게 되었지. 하지만 이번에 우리와 싸운 웨인 가문과, 매퍼 가문의 친분으로 봐선, 어떻게든 매퍼 가문을 다시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으으음. 중간에 약간의(?) 왜곡 편집이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상황 설명이 된 거 같군. 인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해주고 있으니 말야. “계속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대교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볼수록 호수처럼 깊고 고요한, 그래서 더 무서운 성품이네요.

-그래. 철천지원수들과의 살풀이가 코앞에서 무산되었는데도 저렇게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 거지.

-전 어쩐지, 저의 사부가 떠오르기도 해요.

-어, 그러고 보니.

대교의 사부이자, 비화곡의 총관이었던 ‘천공’ 이 사람의 다른 모습은 몰라도, 젊은 시절 가문의 복수를 행하며 ‘혈마검호(血魔劍豪)’로 불리던 때의 그라면, 지금의 유인호와 일맥상통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았다.

‘성실한 복수를 행하는, 성실한 마인.’

쯧. 명색이 불심 청년인 인호를 ‘마인 지망생’이라고 보는 건 미안하지만,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걸 부인하기도 어려워.

-이제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네요. 인호씨의 성품은 신디양의 애틋한 연모의 정마저 냉혹하게 끊을 수 있을 테니 말이어요.

「아, 안돼요! 전 비극적 러브 스토리는 싫단 말예요! 주인님, 어떻게든 인호님을 말려주세요!」

끄음. 이거 어째 갈수록 얘기가 쫌.

-저기, 나도 신디를 생각해서 당장의 싸움을 막기는 했어. 그렇지만, 이건 내가 인호를 무조건 말리거나 그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사이 탑승한 헬기의 바닥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전음을 이었다.

-지금은, 퇴근 시간이야, 퇴근! 난 이제부터 하루 동안은 놀다가 내일 아침에 ‘정상 출근(?)’ 할거야. 당근,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 지원정책 고민도 그때부터 다시 할 거고!

대교와 요몽, 둘 다 재미난 영화 예약 시간 고르다가 그만두게 된 표정이긴 했지만, 나의 결연한(?) 의지 표명에 항거하지는 못했다. 나는 이륙하기 시작하는 출퇴근용(?) 헬기 속에서 먼동이 터오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프리랜서는 자유로운 만큼 생활이 너무 불규칙적이야. 쌈박질 라이프에도 정시 출근, 정시 퇴근제를 도입할 수는 없는 걸까?


같은 날, 저녁 무렵.

나는 보스턴의 S씨 러브 하우스에서 원했던 대로 빈둥빈둥 게으름 모드로 평화롭고 한가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가 있게 되었다. 물론 몸만 그렇고, ‘머릿속 일손’까지 놓을 수는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상태로 전투 지휘를 해야할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편안한 시간이었다.

「주인니임! ‘카디아나 정’, 카디의 연락이예요오.」

나는 거실의 내 지정 테이블에 앉아 카디의 전화를 받았다.

“하이~ 유준 오빠! 오늘 밤, 승전 파티 한다면서요?”

“어, 그래. 나만 빼고 다들 열심히 준비 중이다.”

지금 실제로 러브 하우스의 안팎은 파티준비를 위해서 수십 명의 어사조 병력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분위기이다.

“카디, 너도 올 거지?”

“음~ 아직 잘 모르겠어요. 오빠 때문에 웨인가의 주인이 바뀌어 버렸잖아요. 체크하고 준비해야 할 일이 장난 아니게 많다구요.”

“훗. 딴 건 모르겠지만, 너희들의 특기랄지, 습성이랄지, ‘사업파트너까지 도청으로 감시하기는 그만두는 편이 좋을 거야. 호크 웨인은 그런 걸 용납하지 않을 걸?”

“아, 오빠도 그 호크 웨인과는 처음일 텐데, 벌써 그 사람에 대해서 감 잡으셨나 봐요?”

“글쎄? 적어도 도널드 놈 수준이 아니란 건 팍팍 느껴지더라. 우리쪽 어떤 녀석은 ‘상남자’라고 열광하는데, 그건 뭐, 그렇다 치고.”

“흐응~ 그래요? 그런 정보들을 얻기 위해서라도 파티에 참석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훗. 겸사겸사 놀러 와라. 기다리마.”

“후후. 알겠어요. 회사 승인나면 꼭 갈게요.”

흐음. 이것으로 손님 하나, 아니, 카디가 오게 되면, 혼자 오지는 않겠지?

-요몽. 추가 인원 대충 가늠해서 자룡대주에게 알려줘라.

「넵! 일단, 생체 강화 전사, ‘빅터’ 일행이 따라오는 것을 상정하여 알립지요.」

요몽은 즉각 자룡대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근데요, 주인님. 진짜로 내일 아침까지는 모든 업무(?)를 중단하실 건가요?」

-훗. 어떻게 모든 일에 신경끌수가 있겠냐. 하지만 적어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골치 아픈 주제는 사절이다. 알간?

「움~ 주인님 심정은 저도 이해하지만, 그래두 조금은 생각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골치 아픈 부분은 빼고요.」

-짜식. 네가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구나.

「그러믄요! 특히, 인호님에게도 신디가 첫사랑이란 것은 어떻게 알아내신 건지가 궁금해요! 그건 과거 사연에 없었잖아요!」

다 같이 사막으로 향하던 시간동안, 나는 소희와 인호에게 과거의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건 당연히 요몽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녀석은 아직 전혀 감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딱히 없었지. 사실, 이번에도 그냥 내 추측일 뿐인 거지, 뭐. 소희나 인호 본인 얘기에서도 신디는 인호에게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듣기에, 뭔가 조금 이상했어. 어쩌면 내가 인호를 잘못 파악해서 오해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말야.

나는 그 이상한 점을 새삼 다시 생각해 본 다음에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유인호라는 남자는, 분노를 함에 있어서도 분별력이 있어. 얘기를 가만 들어보면, 매퍼 가문 전체보다는 그날의 주범, 매퍼 가문의 장남과 그가 부리는 요마에게 분노와 증오를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그래. 매퍼 가문의 장남 이름은 ‘드웨인’, 요마는 ‘안젤리카’라고 했었는데, 그 인마 커플을 얘기할 때의 인호는 더 이상 불심 청년이 아니었지. 그 밖의 구성원들, ‘론 매퍼’와 신디를 얘기할 때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고, 심지어 몽인 선사가 론 중령과 싸우다 중상을 입는 장면을 얘기할 때도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할 정도였지.

으음. 론 중령의 과거가 겹치면서 호칭이 좀 헷갈리네. 어쨌든, 그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런데 인호는, 신디를 얘기할 때만 감정에 일관성이 없었어. 처음에는 분명 아니었는데, 내가 그녀에 대해서 뭔가 물어서 다시 대답해줄 때는 급격히 분노지수가 올라갔지. 난 그걸 소위 ‘오버’라고 진단했고 말야.

「아~ 이제 저도 알겠어요! 인호님은 신디양에 대한 감정을 숨기려다가 오히려, 눈치마왕 주인님께 꼬투리를 잡힌 거였군요!」

-그래, 임마. 어쨌든, 이 얘긴 여기까지!

「에? 그러시면 어떡해요! 제가 말실수한 거 있으면, 죄송해요!」

-요몽. 니 녀석의 표현이 거슬리기도 했다만, 그보다는 얘기하다보니까 머리 아파지려고해서 그런다. 역시 이 스토리는 내일 아침에 다시!

「우움~ 알겠어요. 지금은 더 재촉하지 않을게요.」

응? 이 녀석이 웬일로 순순히 물러나네? 아니, ‘지금은’이라고 했나?

「그렇지만, 시기를 못 박지는 말아주세요. 기분 내키시는 대로 다음 편, 부탁해용~!」

뭐야, 이 녀석. 무슨 연속극 보는 기분을 내겠다는 건가?

「그런 의미에서, 당장 주인님의 두통을 잠재울 이벤트를 대령합지요오!」

요몽은,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고, 러브 하우스 앞마당으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차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은 자룡대주와 ‘죽음의 공주, 리치몬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