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41화 : 봄날의 할로윈 파티. (2)
4. 봄날의 할로윈 파티. (2)
호크 웨인, 그가 우리 파티에 오고 싶어 한다고? 아무리 자기가 직접 나와 싸워서 진 것은 아니라지만, 우리가 웨인가를 엿 먹인 싸움이었던 건 사실이잖아. 그걸 축하하고 즐기는 파티에 웨인가의 주인이 태연하게 참석하겠다는 건가?
배신녀 살리나를 재입사(?) 시킨 것에 이어, 꽤 파격적인 행보의 연속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예상 및 기대에서 크게 벗어난 상황은 아니었다.
-뭐, 원판 녀석보단 반갑네. 환영한다고 답신해줘.
「움~ 저로서는 최상급 남정네들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주인님께선 원판씨와 호크씨를 왜 이렇게 차별 대우하시는 거죠?」
-훗. 뭐야, 원판 대신에 니가 항의해 주는 거냐?
「항의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궁금해서요. 호크씨도 만만찮게 꽃돌인데, 왜 우리 원판씨만 미워하시는지 말예요.」
-우리 원판씨? 대신 항의하는 거 맞구먼. 넌 그래도 원판 녀석이 더 좋은가보지?
「헤에~ 그러믄요. 아무리 신형(?) 꽃돌 남정네가 등장한다 해도, 저는 이래 뵈도 의리파, 순정파 요정이랍니당. 아, 물론, 원판씨가 원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꽃돌중의 꽃돌, ‘범노꽃’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요.」
-어, 그려, 그려. 넌 계속 그렇게 녀석을 편애해라. 난 편파 짜증, 편짜로 균형을 맞출테니 말야.
「에엑? 이건 또 무슨 논리세요? 편애를 편짜로 균형을 맞춰요? 왜 이런 일에 균형을 맞춰야하는 건데요?
-어허. 모든 일에는 균형이 중요한 법이야. 그러니까, 억울하면 너는 호크 웨인을 짜증남 취급해 버리던가.
「그, 그건 말도 안돼요! 호크씨 같은 상남자에게 그런 망측한 처사를 할 수는 없다구요!」
그치만, 원판만 그런게 억울하다며.
「그야, 그건 그렇지만
흐흐. 이 녀석, 제대로 고민한다. 고민해.
「전 아무리 그래도 호크씨를 싫어할 수는 없을 거 같은… 응? 아, 아니지! 이런 일에 대체 왜 균형이 필요한 거냐구요!」 으음, 아깝군. 잘 걸려들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빠져나왔어.
-그걸 이해하려면 깊은 사회심리학적 고찰과 고도의 요정 놀리기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전설이..”,
「뭐예욧! 또 이런 식으로 놀리시다니! 미워욧!」
-내가 밉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넌 지금, 나한테 무조건 감사해야할 처지 아니냐?
「예? 지금 무슨 일로요?」
-잊었냐? 너의 완소 희귀 보호종들의 출몰 패턴을?
「아~! 그러고 보니, 저의 완소 희귀 보호종들은 희한하게 주인님 주변에만 출몰하는 경향이, 그게, 그랬었네요?」
-그치?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더 잘해라.
「아, 네. 그야 당근, 음. 당연한 일인데, 근데 왠지 억울하게 당한 기분이.」
-훗. 이 얘긴 이제 됐고, 호크 웨인측에 답신을 보내긴 했냐?
「어, 그러믄요.」
이 녀석, 나의 원판 편짜 취급에 항의하는 와중에도 그런 일처리는 멀티로 잘 처리했군.
-누구누구 온다냐?
「호크 웨인씨 외에 삼인이요. 나누크 마법 공주 피비, 여자 늑대 대장 지나, 배신 뱀프녀 살리나, 이렇게요. 다른 호위 병력은 대동하지
않겠다는데요?」
뭐, 딱 예상했던 멤버들이로군.
-도널드 놈의 지하 벙커(?), 거기에 있던 우리 병력들, 깔끔하게 잘 철수했겠지?
「당근입죠. 주인님께서 호크 웨인씨와 어영부영 나름 훈훈한 분위기로 헤어지신 다음, 돌아오시는 길에 ‘전면 철수’ 지시를 내리셨잖아요. 지금은 뱀프 타운만 빼고 모든 점령지에서 철수가 완료된 상태지요. 심지어 저희 해커팀이 메롱시켰던 가상공간까지 거의 복구해 주었습죠.」
-흠. 그래, 잘했다.
명령을 내려놓고 중간보고도 이미 받고 있던 사항들이었다. 그럼에도 확인해 본 것은, 호크 일행이 지하 벙커를 통해서 이곳으로 올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피비의 ‘수동형(?) 공간 이동 마법’은 그 지하 벙커 안에 설치되어 있는 마법진 게이트를 이용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사막에서 오는 손님의 교통편(?) 체크도 되었고, 또 더 특별히 신경 써야할 손님이 있던가?
「후후~ 한 분의 참석이 아직 확정되지 않긴 했네요. 은근 무서운(?) 다크호스가 말이에요.」
응? 아아~ 그래. 그 녀석의 일정이 아직 불확실하다고 했었지? 그래. 그 녀석이라면 정말 은근 무섭지. 그 녀석까지 와주면 좋을 텐데 그 녀석이 또 워낙 은근 바빠서 과연……………
「주인님. 대교님과 산드라, 바람의 저택 팀이 합류하기 시작했어요.」
-어, 그래?
요몽의 알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로부터 대교와 산드라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들 뒤로 몇 명의 젊은 처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오라버니! 바람의 저택에서의 준비는 이제 거의 마쳤어요. 수송이 문제인데, 산드라의 부담이 너무 커서 차량 이용도 병행하기로 했어요. 대교의 보고는, 바람의 저택에서 준비된 파티 음식과 진행 요원들 규모가 장난 아니어서 산드라에게 줄창 워프만 시키기 미안하다는 얘기였다. -둘 다 고생했네. 아니, 미안하지만, 이제 시작인 셈인가?
-후후, 그렇죠. 즐겁게 바쁜 밤이 말이에요.
훗. 오늘은 대교도 살짝 달뜬 기색이로군. 다른 이들은 둘째 치고, 우리 마군황 패밀리가 이렇게 거의 다 모이는 자리는 처음이라서 그런가? 소교의 생일 때도 거진 다 모이기는 했었지만, 오늘은 그때 빠졌던 흑주와 천우신까지 참석하게 되었지. 게다가 그때는 아직 적이었던 에레보스와 결전을 앞둔 상태였고, 미령이의 스토커(?) ‘자니’ 녀석을 특히 신경 쓰느라 맘 편히 파티를 즐기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지.
-음~ 그런데 제가 잘 해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대교가 슬며시 하는 말을 듣고서야 나는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그동안 몇 번의 대규모 파티가 있었다고 하지만, 대교가 지하무림의 안주인으로서 모든 준비를 지휘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기쁘면서도 부담도 꽤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에이~ 천하의 대교 마님께서 이정도 일로 뭘 그래. 승전 파티니 뭐니 해도 결국은 술자리, 술자리란 게 본래 자리만 깔아주면 다들 알아서 잘 놀게 되어 있잖아. 이정도면 너무 과하게 준비하는 거라구!
애써 준비하는데 김빠지는 소리를 한 거 아닐까도 했으나, 대교는 쿠욱 하고 웃었다.
-알겠어요. 오라버니의 대범함을 본 받아서, 마음을 편히 가지도록 할게요.
하여간, 내가 뭔 뻘소리를 해도, 울 이쁜 대교는 이렇게 좋게 받아주신단 말야? 내가 짝지를 잘 만나긴 했어. 암!
내가 잠시 불출 모드로 므흣하게 대교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자신의 비연대 대원들에게 뭔가 지시를 내렸고, 그녀들은 군기든 여군 분위기로 명령을 받들고 돌아섰다. 대교의 비연대는 지금까지 몇 번 인사만 받아 봤을 뿐, 뭔가 활동하는 걸 직접 본 일은 없었는데, 기본적으로 상당히 일사분란하고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지금은 싸움 상황이 아닌데도 말이지. 우째 천 년 전의 비연대보다도 고전적이고 엄격한 정예군 느낌이랄까? 울 이쁜 대교가 자기 수하들한테 만큼은 무서운 조교스타일 인걸까? 물론 대교가 자기 수하들을 어떻게 조련하든 내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고, 지금은 어쨌든, 내가 대교와 비연대에게 미안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군.
-대교. 난 이번 싸움에서 비연대를 첫 출진시킬 것처럼 말했었고, 다들 긴장하여 대기했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파티 준비 및 진행 보조’만 시키게 되었네.
내가 새삼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극적이자, 대교는 살짝 장난기를 담아 눈을 흘렸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건 저도 조금은 불만이었어요.
-넌 눈을 흘겨도 이쁘게, 아니, 큼. 어쨌든, 미안! 도널드 놈의 전력을 확실하게 모를 때, 준비를 좀 오버하긴 했어.
-후후. 농이었을 뿐이에요. 저도 실은, 비연대의 준비가 완전하지 못해서 걱정했었어요. 하여, 앞으로의 싸움에서도 비연대는 제가 조심하여 투입하도록, 그렇게 해주셨으면 해요.
으으음. 이거, 말이 그렇지, 농담만이 아닌 분위기지? 결국 ‘앞으로의 전투에서는 비연대 우선 투입’, 그것도 대교 마님 뜻에 따라, 이런 내용의 멘트였어. 이번 싸움에서 비연대를 왕따(?)시켰다고 삐쳐있긴 했었군. 그래서 파티 준비를 명분으로 먼 한국땅에서 대기 중이던 비연대를 굳이 불러들였던 거고 말야.
-넵. 알아 모시겠습니다, 대교 마님!
나의 비굴한(?) 전음에, 대교는 그제야 진심으로 만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난 요즘 들어서야 가끔은 울 이쁜 대교 마님이 살짝 무서워 질 때도 있긴 했다.
끄흐음! 그거야 어쨌든! 당장 이 자리에서 비연대의 역할은,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 오해를 살 여지가 있겠어. 비연대의 전신인 어사조 병력들은 자룡대주와 구양대주를 비롯한 지하무림의 실력자들이 뛰어난 후기지수들을 선별하여 구성한 거였어. 비연대는 거기서 대교가 다시 엄선하여 만든 부대이니만큼, 무공 재능이 뛰어날 수밖에 없지. 그건 분명한 사실인데, 그런데 말이지, 용모는 또 왜 저렇게 하나같이 빼어난 걸까? 다들 너무 예뻐서, 파티장에 초청된 인사들을 꼬드겨 포섭하는 미인계 전문 부대로 오해받기 딱 좋을 정도야.
실제로 여기저기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인간 모드의 웨어 울프 군바리들이 비연대 여군들로부터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비연대의 기본 복장은 우리나라 개량 한복처럼 중국식 고전 백의 경장 차림이었고, 기본 미모에 동양적 매력을 더해주는 복장 때문에 더욱 서양 늑대 군발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저기, 대교.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비연대는 물론, 뛰어난 재능 위주로 선발된 거 같아. 하지만 저렇게 평균적으로 뛰어난, 그러니까, 저 미모도 선별 기준이었던 거야?
‘너는 수하들까지 이뻐’라는 칭찬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대교는 왠지 흠칫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아니, 난 그냥……………
-아니, 잘 보셨어요, 오라버니. 전 신경 써서 저런 아이들을 선별한 거였어요.
대교는 쓴웃음과 함께 낮은 한숨도 흘리고는 전음을 이었다.
-비화곡에서의 나쁜 습성이었다고 할까요? 자꾸 저도 모르게 저렇게 고운 용모에 먼저 눈이 가더군요. ‘주님 주변에 곱지 못한 꽃을 심을 수는 없다’는 의식 때문이었어요.
-그랬,군. 이건 대교도 반성을 좀, 아니, 천 년 전의 원판 놈의 교육 때문이었으니, 전부 그 노무시키 잘못이야!
훗. 그렇지 않아요. 결국 저의 선택이었는걸요. 그리고 대원들에게는 항상 강조하고 있어요. ‘타고난 미모에 가려지지 않도록, 더욱 무공에
정진하라’고 말이에요.
뭔가 핀트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니 거 같기도 하고, 끄음. 모르겠다. 여튼 저 비연대가 천 년 전 이상으로 미소녀 부대가 된 것은 과거의 악습이 채 끊어지지 못한 결과였군. 앞으로는 우리부터 노블리스 오브, 뭐더라? 하여간 솔선수범해서 ‘용모를 따지지 않는 인사 정책’에 더 신경을 써야겠어. -뭐, 그렇다고 대교 네가, 재능이 없는 지원자를 용모 때문에 뽑았을 리는 없을 테고, 그럼 된 거지. 다만, 오늘 이 자리에는 소속이 불분명한 놈팽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로군.
-그, 그렇겠네요. 호크 웨인씨가 오해를 할지 모르겠어요.
-자룡대주와 페트라도 불쾌해할지 모르지. 웨어울프들과 뱀프들 중에서 귀순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들의 스카웃 능력이 의심받을까봐 말이지. -어쩌죠? 다들 최대한 곱지 않게 보이는 화장을 하라고 할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시키는 건 쫌.
-그럼 얼굴을 가리라고 할까요? 복면이나 면포로요.
-손님들 앞에서 그러기도 뭐하지만, 그렇게 가린다고 될까? 오히려 더 신비로운 매력을 느끼는 자들이 많을 거 같은데? 대교 너도 천 년 전에 면포 쓰고 다니면서 겪어 봤잖아.
-아~ 은신술 수련도 어느 정도 하긴 했어요.
-글쎄? 앞으로 그렇게 한다 해도, 그걸 위주로 운용하면, 은사도객들과 캐릭터, 아니, 역할이 겹치지 않을까?
-어머.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네요.
대교는 더 이상 대책이 생각나지 않아 난감해 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건 요몽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저기요, 주인님과 대교님. 뭔가 중요한 듯 하면서도 씰~데 없는 고민을 하고 계신 거 같아요. 그냥 비연대와 바람의 저택 어사조와 맞교대 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바람의 저택에도 경호 대상이 있잖아요.」
그렇,군. 리치몬드와 인호 일행들은 낯선이들이 부담스럽다고 바람의 저택에 머물겠다고 했지.
-알긋다, 요몽. 너의 의견을 채택하마.
나름 명쾌한 의견을 내고 그게 채택된 요몽은 신이 나서 기쁨의 비행을 했고, 우리 커플도 싱겁게 웃으며 약간(?) 씰~데 없을 수도 있었던 고민을 접기로 했다. 솔직히, 왕땅 커플이라고 수하들보다 한가한 편이어서, 쫌 아니다 싶은 주제를 놓치지 않고 수다를 즐겼던 셈이었다.
「와우~ 드디어 원판씨가 도착하네요!」
-쳇. 그러냐?
나는 아직도 원판 녀석이 오기 전에 문 닫고 개 풀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대교의 손에 이끌려 원판 녀석을 마중씩이나 나가줄 수밖에 없었다. 러브 하우스의 드넓은 앞마당에는 이미 수십 개의 테이블이 셋팅되어 있어서, 원판과 비서 란이 탄 초호화 고급 차량은 꽤 먼 거리에 주차해서 녀석을 떨구고 있었다.
“왔냐?”
“후후.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준 형님.”
“난 초대한 적 없다. 요몽이 멋대로 했겠지.”
“요몽양이야 말로 형님의 최측근, 형님의 뜻을 잘 전달해 주었겠지요.”
“됐거든? 왔으면 대충 아무데나 앉아서 주는대로 처묵… 웃?”
쳇. 원판 녀석, 잘도 저렇게 이쁜 꽃다발을 준비해 와서 대교에게 바치는군. 얼씨구, 작은 꽃 액세서리는 요몽거라고? 요몽이 아주 좋아 죽는구먼.
“아, 그리고.”
원판은 한 손을 들어 딱~! 하고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겼고, 생체강화전사인 듯한 운전사가 트렁크에서 꺼내 온, 매우 커다란 나무 박스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 검남춘을 즐기는 남자, 천음마군이라고 했던가요? 그도 와있다고 해서 몇 병 준비해 봤습니다. 물론 유준 형님께서 천 년 전에 즐겼던 술은 모두 빠짐없이 준비했지요.”
“원판, 너 이노무시키, 환영한다!”
나의 강력한 태클을 술 상자 방어로 간단하게 와해한 원판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파티장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엄청 넓은 장소에 잘 준비된
파티장이라고 하지만, 재벌 오너인 녀석 기분으로는 별거 아닌 수준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녀석도 파티 참가자들의 면면은 쉽게 보아 넘기기 어려운 눈치였다.
“흐으음. 저도 살아오며 꽤 많은 것을 보아왔지만, 이렇게 다양한 계통의 존재들이 한자리에서 파티를 하는 광경은 거의 처음인 듯 하군요.”
“훗. 나야말로 그래, 임마. 네 녀석 덕분에 내 팔자가 이렇게 되었는데, 직접 확인하니까, 좋냐?”
“후후. 저의 관여는 아무래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죠. 지금 스스로 언급하신, ‘형님의 팔자소관 아니겠습니까.”
“젠장. 그래. 나도 전부 네 탓만 하는 건 아니야. 빌어먹을 타임씨가 제일 문제기는 해. 너도 그 양반,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
응? 이 녀석, 뜬금없이 살짝 격한 감정을 흘리네?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 신으로 추정되는 존재는 당신, 유준 형님만을 너무 편애하니까요.”
에? 여기서 웬 질투 반응?
“편애? 타임씨가 날? 핫! 나의 이 끔찍하게 버라이어티한 팔자가 정말 그 빌어먹을 존재의 편애라면, 나는 그 신과, 신의 사랑, 차버리고 싶다.” 이런, 나도 모르게 ‘친절한 영애씨’ 대사를 도용하고 말았네.
“사실 이건 표절…….”
난 솔직히 표절을 인정하려 했으나, 원판 녀석은 뒷말까지 들리지 않은 표정으로 크크큭, 웃기 시작했고, 얼마간을 고개까지 숙이고 혼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야, 야! 너무 반응이 좋으니까(?) 오히려 민망하다. 이거 표절이었데두? 그 뭐냐, 세계정화재단의 한국 지부장이 한 말이었어.”
“음. 그랬군요.”
조금 진정한 원판은 비죽이 새로운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하긴, 그녀도 신, 타임씨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때로는 너무나 잔인한 신의 사랑을.”
정말이지 오랜만에 원판 얼굴의 미소는 핏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