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43화 : 봄날의 할로윈 파티. II. (1)

극악서생 4부 – 143화 : 봄날의 할로윈 파티. II. (1)


5. 봄날의 할로윈 파티. II. (1)

봄날의 할로윈.

으음. 그래. 듣고 보니 딱 그런 분위기로군. 그런데 저 해골바가지들이 몰려나오는 건, 나도 뜻밖이야.

-요몽. 리치몬드는 파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그리고 해골들한테는 대체 뭘 대접한다냐?

「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들은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거든요. 그게요. 조금 전에 대교님과 산드라씨가 리치몬드양에게 ‘일손 지원’을 부탁했거든요. 리치몬드양은 ‘그러지, 뭐.’ 라고 쿨하게 승낙하더니, 저렇게 자기 ‘시종과 시녀’들을 보내줬네요.」

시종과 시녀? 어랏? 그러고 보니 해골들이 전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네? 어라랏?

이번에는 나도 살짝 벙찔 수밖에 없었다. 나비넥타이를 맨 ‘해골 시종’들에 이어, 건물 안에서 소위 ‘메이드 복장까지 갖춘 ‘해골 시녀들까지 몰려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해골은 턱시도까지 완벽하게 갖춘, ‘해골 집사(아마도)’였다.

으으음. 해골 집사의 지휘에 따라, 모든 해골바가지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파티 진행을 주도하기 시작하는군. 같은 역할을 맡고 있던 어사조들이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일손을 넘겨주고 있네. 어쨌건 이로서, 오늘 가장 맘에 걸렸던 일도 잘 해결된 셈이야.

오늘 파티의 애초 목적은 ‘승전 기념’이었고, 어사조 병력들도 승전의 주역들이다. 그런데 막상 파티를 준비하다보니, 아직은 외부 손님에 가까운 이들의 비율이 너무 많아서, 어사조 병력들이 파티 준비는 물론이고, 손님 접대 허드렛일까지 도맡아하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스켈레톤들이 리치몬드의 평소 생활 시중까지 드는 것 같아서 부탁을 해볼까도 했으나, 리치몬드 역시 손님이라서 말을 못 꺼냈었는데, 대교가 잘 부탁해 주었어. 게다가 설마, 스켈레톤 중에 저런 파티 전문 부대(?)’까지 있을 줄이야!

-요몽, 리치몬드는?

「금방 바람의 저택으로 돌아갔네염. 파티를 싫어하기도 하고, 유소희님이 추천하는 K팝 감상하는 게 더 재밌다고 하네염.」

-알긋다. 녀석한테 감사 메시지 보내주고, 이따 내가 들르겠다고도 전해줘.

「넹~! 그리고 이제 저도 슬슬 파티 분위기를 내기 시작해도 될까염?」

-훗. 당근이지.

요몽은 좋아라하며 사라졌고, 나는 다시 천우신을 돌아보았다.

-이봐, 우신. 저 해골, 스켈레톤들은, 리치몬드라 불리는 800년 전의 마법사가 불러서 파티 일손을 덜어주게 된 걸세. 불사의 마법사 리치몬드 본인은 파티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른 저택으로 갔으니, 그 녀석은 이따가 따로 소개시켜주겠네.

-800년 전의 그런 고대의 마법사까지 만나게 해주겠다고?

-음. 사실, 리치몬드는 이번에 인연을 맺은 이들 중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거물이라고 할 수 있지. 그에 비하면, 저런 요괴도 평범한 축에 속한다고 할까?

나는 마침 미령이와 함께 나오고 있는 ‘거북 요괴, 오겡키’를 턱짓해 보였다. 몸을 잔뜩 숙이며 웅크리고서야 간신히 현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거구의 요괴 오겡키가 작디작은 미령이의 뒤를 얌전히 따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천우신이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이보게, 유준. 저 요괴도 그리 평범해 보이지는 않네.

-그게, 리치몬드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고, 당연히 저 거북 요괴도 일본에서는 꽤 먹어주는 요괴라고 하더군. 아, 그런데 저 친구는 일본의 개화기 때 미국으로 건너와서 지금까지 살아온 거라니까, 이제는 그 뭐냐, ‘아메리카 터틀 몬스터’라고 해야 하려나?

거북이가 영어로 ‘터틀’ 맞던가? 뭐, 그건 아님 말고.

-어쨌건, 이것으로 이번 싸움에서 만난 이들 소개는 대충 끝난 거 같군. 이제 나의 수하들 차례인데, 사실은 자네에게 아직 소개해주지 못한, 매우 특이한 수하들도 많았다네. 예를 들어, 지금 미령이가 거북 요괴와 함께 거느리고(?)있는 백인 총각, 저 친구는 강력한 전기를 쓸 수 있는

초능력자일세. 별명이 ‘전격의 악마’라고 하면 알만하겠지? 또, 지금 소령이와 노닥거리고 있는 금발의 소녀, 쟤는 ‘금빛의 요정, 프리제타’라고 하는데,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강철보다 강하고 어느 정도 길이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 응? 자네 표정이 또 왜 그러나, 친구. 이젠 좀 질리는가?

-아, 아니, 충분히 흥미롭네. 다만, 예상을 넘는 정보가 너무 한꺼번에 쏟아지니, 정리가 잘 안 되고 있네.

-훗. 하긴, 나도 만약, 이곳의 모두를 한꺼번에 겪게 되었다면 적응하기 어려웠을 거야. 음~ 이쯤에서 속도 조절을 좀 하는 것이 좋겠군.

-지금 그 말이 더 무섭네. 아직도 소위 ‘만만찮게 특별한 존재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잖은가.

-후후. 너무 그러지 말게. 난 자네보다 훠얼씬 평범한 인생을 살던 자인데, 그럼에도 결국 이렇게 익숙해 졌으니 말야.

-유준, 자네가 나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오늘 들은 얘기 중에 가장 믿을 수 없는 얘기로군.

이런 제기. 이 친구가 이렇게 나올 정도면, 다른 자들은 모두 내가 ‘모태 별종’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겠네. 지금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나의 평화롭고 굴곡없는 모범 청년으로서의 삶이 전부 부정되는 것은 꽤 억울해. 그뿐인가? 난 태어나자마자 ‘모범아기’로서 인생을 시작했으며, 모범 어린이, 그 어렵다는 ‘모범 사춘기’ 코스까지 모범적으로 클리어 한, 그야말로 모범적인… 응? 근데 왜 생각 포커스가 ‘평범’에서 ‘모범’으로 바뀐거지? 보통은 모범적으로 살면 평화롭고 굴곡없는 삶도 따라오기 마련이라지만……

「주인님! 주인니임!」

-응? 어, 왔냐, 요몽.

「하여간, 주인님도 차암! 이런 타이밍에서까지 혼자 무한 루프에 빠지시면 어떻게요오!」

요몽의 타박을 받으며 정신을 챙기고 주위를 돌아보니, 옆에 서있는 천우신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이들의 시선도 나에게 모여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교와 자룡대주, 천음마군이 함께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며, 커다란 술 항아리를 들고 온 천음마군이 내 앞에 쿠웅~ 하고 내려놓았다. “천주! 다들 나왔으니, 이제 천주께서 ‘시작 종’을 울려 주시기만하면 됩니다!”

천음마군의 우렁찬 외침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작 종?”

나는 반문하며 손을 들어 종을 울리는 시늉을 해보였고, 사방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넘어가 줄 분위기가 아니어서, 하는 수없이 천음마군이 퍼주는 술잔을 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들! 각자 이 자리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거야. 승자와 패자, 그리고 그 어느 쪽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들, 모두가 함께 모이게 되었으니 말야. 하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한 가지 생각뿐이야. 이런저런 명분도 의미도 필요 없고, 술자리는 그냥 술자리일 뿐, 인생 뭐 있나? 친구랑 한잔하며 사는 게 최고지!”

나는 연설(?)을 마침과 동시에 천우신에게 잔을 내밀었다.

“오직, 대교!”

“오직, 소령!”

나와 천우신은 천 년 전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현재의 그 어떤 상황도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리고, 천 년 전 친구와 함께 보낸 날들의 기억이, 술과 함께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호홍~ 정말 보기 좋아염! 그럼 저도 이제 패티랑 딸기 우유 한잔하러 갈게염! 아참, 그전에, 뮤직, 큐!」

요몽의 외침 직후, 사방의 스피커에서 K팝(아마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전체 분위기가 더욱 빨리 업되는 것 같았다. 파티 전문 해골바가지들의 지원덕분에 일찌감치 자유로워진 어사조 병력들이 부어라 마셔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고, 웨어울프들이나 뱀프들도 호기심에 동양 술 항아리의 술을 먼저 맛보는 분위기였다.

-어떤가, 우신, 뭔가 기억나는 것이 있는가?

문득 천우신에게 묻자, 그는 소령이쪽을 보던 시선을 거두며 약간의 쓴웃음을 지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네. 그리고 솔직히, 굳이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아, 이런, 내가 너무 섣불리 이 친구를 재촉했던 건가?

-뭐, 그렇다고 전생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야. 더구나 과거로부터의 인연이 유준, 자네와 소령, 저 아이를 다시 만나게 해준 것이라면, 더더욱 나의 운명에 감사해야겠지.

천우신은 나와 소미령이를 번갈아보며 아련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로 다시 약간의 씁쓸함을 덧붙이고도 있었다.

-유준, 난, 전설의 단주와 달리,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고 소령이의 마음도 외면하고 도망을 쳤었네. 이런 내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천 년 전의 단주라니, 나의 부친, 아니, 나 자신부터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뭐야? 우신, 이 친구는 현재의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보다 완벽했던 전생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가? 이 친구가 설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이봐, 우신,

내가 새삼 부르자, 천우신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못들은 걸로 해주게. 좋은 날에 쓸데없는 얘기를 꺼내고 말았군.

천우신은, 애써 씁쓸한 표정을 지우며 웃었지만, 내게는 그것이 더욱 처연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이 오랜 친구를 격려하기 위해, 그의 잔에 술을 채워주고 입을 열었다.

-자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군.

잔을 입에 가져가던 천우신이 멈칫했고, 나는 확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천 년 전의 자네, 천이단 전설의 단주, 천우신! 이 친구에 대해서 천이단은 너무 심하게 미화만 했던 모양이야. 내 기억으로는, 당시의 자네 부친, 천가장주도 항상 당시의 자네가 못미더워 걱정을 달고 사셨지. 누가 ‘비화곡’에 대해서 의뢰한 것도 아닌데, 지가 괜히 비화곡주의 진법에 꽂혀서, 그거 뚫고 침투하겠다며 몇 년을 허송세월로 허비했는데, 나중에 다른 중하급 단원들이 다른 쉬운 루트로 더 많은 비화곡 정보를 들고 왔다지? 그뿐인가? 기껏 어렵게 침투한 비화곡 안에서 만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바람에, 그로부터 오랜 세월 상사병에 몸부림치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별의별 짓, 남들이 추하다고 할 만한 짓도 서슴치 않았었지. 당시의 자네를 지켜 본 우리 대교는 이런 말을 남기더군. ‘눈물, 겨웠어요.’

나는 살짝 얼어붙은 천우신의 잔에, 내 잔을 부딪치며 물었다.

-왜? 역시 천이단에서는 자네의 연애담을 좀 더 멋지게 미화해서 후대에 남겼던 모양이지?

천우신은 말없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고, 나 역시 맛나게(?) 잔을 비웠다. 천우신은 커어~ 소리를 내며 술잔을 내리고도 얼마간을 침묵한 끝에야 입을 열었다.

-유준. 방금 그 폭로, 혹시 지금의 날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말이었나?

-그게, 목적은 그랬던 거 같기도 한데, 말을 하다보니까 약간 방향이 좀, 크흠! 거, 뭐, 어쨌든 결론적으로, 내가 보기에는 ‘천 년 전의 자네나 지금의 자네나, 그 놈이 그 놈이야’! 어때? 많은 위로가 되지 않나?

으으음. 이 친구 설마, 이렇게 다정한 친구에게 칼부림, 총부림 같은 걸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살포시 들기도 했으나, 다행히 천우신은 큭, 쿡, 웃음소리를 내며 다시 술잔을 들어 올렸다. 천우신은 나와 두 잔의 술을 더 건배하고서 이를 악물며(?) 전음을 보내왔다.

-참으로 멋진 격려였네, 이 못된 친구! 알겠어. 나도 빨리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서, 진유준이란 친구의 치부를 파헤치고야 말겠네!

으음. 생각보다 비장한 기세의 각오를 보이는군. 핀트가 어딘가 어긋난 것도 같지만, 그래도 조금 전까지의 칙칙한 분위기에 비해서는 훨씬 보기 좋구먼.

-알겠네, 친구. 그런데 미리 말해두지만, 우린 사실, 서로 흉을 보자고 들면, 소위 선을 넘을 얘기가 너무 많은 사이야. 그러니까, 뭔가 생각나도 남 앞에서는 말조심을 하는 편이 좋겠네. 예를 들어, 우리가 서로 상대가 하루에 몇 번 코를 파는 지까지 아는 사이라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언젠가 누구 코딱지가 더 큰지 내기했다는 말까지는………………

-유준! 그런 예는 굳이 안 들어도 될 거 같네.

-그, 그렇군. 내가 오버했네.

우린 지금 전음만으로 대화하는 중이었으나, 괜히 켕겨서 슬쩍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서야 안심할 수가 있었다. 우린 멋쩍은 웃음을

교환하며 다시 술잔을 들었지만, 어느 사이 우리 앞의 항아리는 텅 비어 있었다.

-우신! 술은 사방에 있지만, 이쯤에서 잠시 쉬었다 마셔야 할 거 같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들도 있으니 말야.

-동감일세. 그러고 보니, 사영 어르신도 아직 오시지 않았군.

사영을 떠올린 우리는 거의 비슷한 타이밍으로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양반이야말로 천 년 전부터 끈질기게 우리들의 ‘장인어른’인 것이다. -요몽! 사영, 장인어른은 아직이냐?

「어, 조금 전에야 출발하셨어요. S씨와 이번 싸움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시다가 근무 교대가 늦어진 거죠.」

-우신. 장인어른도 곧 오신다는군.

내가 몽드폰을 들어 보이며 걸음을 떼자, 천우신도 군말 없이 함께 걷기 시작했다. 사영을 마중 나가기 위해서 테이블 사이를 지나고 있자니까 이제는 친숙하기까지 한 뱀프 아가씨 두 명이 슬며시 따라 붙었다.

“엘사, 안나.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나는 걸음을 멈추며 물었고, 레잇 고 자매는 배시시 수줍은 미소를 피어 올렸다.

“아닙니다, 로드. 저희들은 이 분께………….”

응? 천우신? 이 ‘레잇 고 자매’가 천우신을 알고 있다고?

천우신에게 시선을 돌려 보았으나, 그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레잇 고 자매는 갑자기 동시에 손을 들어 올리더니, 양 손바닥 사이에 뭔가 소중한 것을 감싸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입을 모아 작지만 낭랑하게 외쳤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소중한 촛불!”

어, 이거 혹시?

“저희들은 캔들씨의 지지자입니다. 물론, 매사추세츠주의 주민이고요.”

역시 우리 흑주 아빠, 매사추세츠주의 주지사 후보, 캔들 리를 상징하는 동작과 구호였군. 이 뱀프 아가씨들, 줄을 잘 서는,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캔들 리의 지지자였던 모양이네?

레잇 고 자매는 쑥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후다닥 도망치듯 물러갔고, 천우신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유준! 저 뱀파이어 아가씨들이 지금 분명, 매사추세츠주의 주민이라고 했지?

-나도 그렇게 들었네. 그리고 웨인가의 뱀프들과 웨어 울프들 모두가 평소에는 인간 모드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더군. 그러니까, 소위 유권자이긴 할 거야.

-그렇군. 오늘 자네 덕분에 아주 특별한 유권자층을 확인하게 된 셈인데, 공략 포인트가 다소 애매하군.

끄으음. 이 친구는 현재 캔들 리 선거 캠프의 두목이지? 레잇 고 자매 때문에 직업 본능이 깨어난 모양이구먼.

-이봐, 유준! 자네가 보기에는 저들이 이 미국땅에서 살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점이 무엇인지, 저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알려 주겠나?

-그, 글쎄? 나도 아직 저들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야. 사실은, 도널드 놈이 뱀프들의 초능력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방법으로 캔들 리를 돕겠다는, 그런 유혹을 하기도 했었어. S는 캔들 리가 그런 것을 원치 않을 거라고 하며 거부했지만 말야.

-당연하지. 캔들 리뿐 아니라, 나도 그런 짓은 원치 않아. 하지만, 뱀파이어들도 이 나라의 구성원이 확실하다면, 그들 자신을 지지자로 만드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될 수밖에 없지. 유준! 협조 부탁하네.

이거야 원. 하도 진지하게 이러니까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이거 난감하네? 뱀프나 웨어 울프들을 위해서는 대체 뭔 공약을 해야만 하는 걸까? 그날그날 수급이 불안정한 혈액 때문에 걱정이시라고요? 여유 있을 때 모아두세요! 혈액 저축은행 설립!’

‘언제 어디서나 편리한 입출혈이 가능한, 편리한 혈액 ATM기, 전국 설치 약속!’

‘뱀프 오복중의 하나는 바로 송곳니! 송곳니를 사고로 잃으면 밥줄도 사라지는 법! 뱀프 건강 보험에 송곳니 임플란트 보장 범위 확대!”

‘뱀프 마을의 강에는 무조건 다리 놔드림!’

우띠! 이딴 생각들만 나네. 그래도 어쨌거나, 형평성 차원에서는 웨어울프 지원 정책도 생각을 해보긴 해야겠지?

‘예민한 웨어울프 병사들을 위한, 달밤의 야간 훈련 금지!’

오~ 이거 말 된다. 지금까지 정체를 들키지 않고 살아 온, 웨어 울프들 입장에서는 달밤에 흥분해서 사고치지 않으려고 고생깨나 했을 테니 말야.

‘못된 인간 남자에게 늑대라고 표현하는 행위 금지! 이른바 늑대 모욕 방지법!’

이것두 일단 말은 되지? 대체 왜 늑대가 음흉한 이미지의 상징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듣는 늑대 기분 나빴겠어.

‘남자만 늑대인가? 지나처럼 여자 늑대분들도 있다! 여성 늑대분들의 고운 털 관리를 위한 애견, 아니, 애랑 샵, 전국 의무 설치!’

이, 이건 좀 아닌가? 하지만 늑대들에겐 털 관리도 상당히 중요한……

「주인니임! 두 분의 장인어른, 사영님 등장이십니다요오!」

요몽의 알림 덕분에 정신을 챙기고 보니, 올 레드 색상의 오픈 카 한 대가 멋진 자태를 뽐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운전자는 긴 머리채를 휘날리는, 약간 낯선 여인네였고, 사영이 ‘홍’이라 불렀던 혈의문(門)의 여자 살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