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47화 : 늑대와 함께 춤을. (2)
6. 늑대와 함께 춤을. (2)
“유준!”
이런, 천우신이 훼방꾼으로 나서는군.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말려야 하지 않겠는가!”
천우신은 대교가 암중에, 그리고 요몽이 노골적으로 흘겨보는 것은 전혀 모른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촉즉발의 현장과 나, 그리고 호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천음마군!”
“지나!”
끄음. 자룡대주와 살리나, 양측 실무자들이 재빨리 나서는군. 에고. 둘 다 발도 빠르네. 벌써 양측의 말썽꾼 앞을 가로막고 섰어.
“천음마군! 천주 앞에서 손님께 무례한 행동을 하면 어쩌자는 거죠?”
“지나! 호크님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어쩌자는 거죠?”
천음마군과 지나는 각자 상급자에게 한 소리 듣고 쌈박질 진행을 멈추었으나, 거의 동시에 자신들의 보스인 나와 호크를 돌아보았다.
“천주! 여자고 뭐고, 더는 못 참겠습니다! 싸움을 허락해 주십시오!”
“호크님! 이 자와 결판을 낼 수 있게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싸움질 허락을 간절하게 요구(!)하는 말썽꾼 수하들 앞에서, 나와 호크는 쓴웃음부터 나누어야했다.
“호크. 저 둘은 지난밤에 싸우다가 제대로 승부를 보지 못했는데, 그게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오.”
“그랬었군. 하긴 감정을 남겨두고 친구가 되긴 어렵겠지.”
우리가 허락의 뜻을 보이자, 문제의 쌈질 남녀는 다시 서로를 마주 노려보기 시작했다.
“기다려요!”
자룡대주였다. 그녀는 어사조 병력에게 손짓 신호를 보냈고, 어사조들은 빠르고 익숙한 움직임으로 쌈질 남녀의 주변 테이블과 잡다한 물건들을 치워서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자룡대주는 싸움을 말리러 갈 때의 엄한 표정은 깨끗하게 지우고 비죽이 웃으며 쌈박질장 밖으로 물러났다. “잠깐!”
이번에는 호크였다. 호크는 자기 앞의 술 항아리를 한손으로 잡아들고 있었다. 싸움을 앞둔 전사에게 격려의 술 한 잔을 주려는 건가 싶어서 나도 내 앞의 술단지를 보는 순간, 호크는 술 항아리를 천음마군에게 날려 보냈다.
쐐액~!
예상보다 강력하고 빠른, 거의 공격 수준으로 던져진 술 항아리가 천음마군의 머리에 적중되기 직전, 콰칭하는 굉음과 함께 항아리가 분쇄되며 파편과 술 방울들이 천음마군 주위의 허공에 흩날려졌다. 그의 칼, 견신이 순간적으로 휘둘러진 결과였다.
슬로우 비디오로 보면 더 멋질듯한 장면인건 인거고, 호크 이 친구, 너무 세심한 것이 문제로군.
나는 호크의 돌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자들도 많은 듯 했고, 자룡대주는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호크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흐으음. 진유준씨! 당신의 부하는 지금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저대로 싸워도 괜찮겠소?”
그래. 방금 천음마군은 술항아리 투척을 뽀대나게 막아내기는 했지만, 그 직후 휘청이며 중심을 잃는 모습을 보였어. 천음마군 저 인간, 지금 너무 많이 퍼마신 상태야. 나는 사실, 천음마군의 저런 상태를, 적당한 시점에서 싸움을 멈추게 할 명분으로 삼을 생각이었는데, 세심쟁이 호크가 나름 신사적으로 지적을 해 버렸으니, 이제 이걸 어쩐다?
“훗. 술이 우리 천음마군을 약하게 하진 못하지.”
그래. 일단 큰 소리는 쳐놓고.
“하지만 그쪽에서 정 신경이 쓰인다면, 뭐.”
나는 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내 앞의 작은 술 단지를 잡았다.
웃차~!
내가 던진 술 단지 역시 나름 맹렬한 속도로 지나에게 날았다. 지나는 흠칫 긴장하면서 한 손을 들었으나, 그녀는 천음마군처럼 술단지를 쳐서 박살낼 필요는 없었다. 내가 현천기공의 내력을 이용하여 던진 술 단지는 지나의 바로 앞 허공에서 급격하게 속도를 줄였고, 비교적 받기 좋은 속도와 각도로 그녀 앞에 떨구어졌던 것이다.
“지나. 당신도 한잔 더하고, 기분을 내보는 건 어때?”
「에고야, 주인님! 저거, 소령님이 장난으로 만든 ‘폭탄주’예요!」
윽. 요몽 녀석, 그 얘길, 왜 이제야!
“그, 뭐, 내키지 않으면 굳이 마실 필요는 없………….”
“흥~! 내가 망설인 것은, 이게 너무 작아서였을 뿐이에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에쿠. 저 여자, 오기로 냅다 마셔 버리기 시작하네. 저거, 저거, 기어이 단지 하나를 싹 비워 버렸어. 천 년 전 ‘백일취까지 즐기던 주당계의 아이돌, 소령이가 제작한 폭탄주를!
“크으으~”
거친 목울림 소리를 내기 시작한 지나가 들고 있던 폭탄주 단지를 뒤로 던져 버리더니,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요몽. 저 폭탄주, 혹시 백일취하고 비슷하냐?
「백일취보단 조금 약해요. 알콜 도수, 72.9도요.」
일났군. 지나가 급성 알콜 중독으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내 입장이 대략 난감.
“끄으..끄으으으~”
지나의 입에서는 계속 괴로워하는 신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비틀거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진유준님! 지나에게 대체 뭘 주신 것입니까!”
이번에는 지나의 매니저(?) 살리나가 나서며 항의했다.
“어, 그냥 술인데, 그게, 쬐끔 독한.”
“말도 안 됩니다! 지나가 술 때문에 이런, 아! 지나?”
“끄와아앙~!”
엄청난 괴성과 함께, 마치 지나가 폭탄이 되어 폭발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지나의 전신에서 폭사된 마력이 그녀 자신의 의복 같은 걸 날려 버린 건 물론이고, 그 파장이 폭풍처럼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작은 물건들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지나에게 가까이 다가갔었던 살리나가 겨우 몸을 가누며 황급히 지나로 부터 떨어져 대피했다.
이, 이거, 급성 알콜 중독으로 쓰러지지 않은 건 좋은데, 뭔가 더 큰 문제가 발생한거 같은 기분이 드네 그려.
「주, 주인님. 달빛이 없는데도, 그런데도 파워 업 변신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어요.」
-그, 글쎄 말이다.
앞으로 풀 파워 웨어 울프가 필요할 경우, 힘들게 월광절화결을 쓸 것도 없이 소령표 폭탄주를 퍼 먹이면 되겠, 아니, 지금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고! 「주인니임! 이제 어떻게요오!」
싸움 관전을 원했던 요몽조차 울상을 짓고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지나의 파워 업 모드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싸움을 중단시킬 수가 없는 것은, 천음마군의 반응 때문이었다. 주변의 관전자들이 더욱 멀찍이 대피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천음마군 본인은 조금도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였다. 저 인간의 지금 눈빛과 기운은, 지나가 여자인걸 모르는 상태로 싸움에 임했을 때와 같아. 진심으로 싸울 마음이 생긴 천음마군을 막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천음마군도 취권, 아니, 취칼 실력이 꽤나 웃. 시작인가?
“크르르르~”
불길한 목울림 소리를 내며 천음마군을 노려보고 있던 지나의 이글거리는 두 눈에 광기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곤두선 털 하나하나 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기운이 멈칫한다 싶은 순간, 퐈앗~ 격한 파공음과 함께 지나가 사라졌다.
어디? 위? 머리 위다, 천음마군!
사라졌던 지나가 천음마군의 머리 위 허공에 출현하며 벼락처럼 내려꽂혔다.
까릉!
폭격된 지면이 비명같은 굉음을 토해내며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반박자 빨리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한 천음마군의 신형이 착지하여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에, 지나가 지면에 깊숙이 박혔던 양 손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또? 빠, 빠르다!
다시 사라진 지나의 잿빛 그림자가 천음마군의 코앞에 떠오르며 번득! 몇 줄기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허공과 함께 천음마군의 몸도 토막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건 그의 잔영에 불과했고, 그는 발톱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견신을 치켜든 상태였다.
콰앗!
천음마군의 견신도 무서운 기세로 내리쳐졌으나, 지나의 신형은 이미 천음마군의 뒤쪽에 있었다.
“이익!”
이를 악문 천음마군의 몸이 거세게 회전하며 견신을 쳐 올렸고, 지나의 거대 갈쿠리 같은 앞발도 마주 내리쳐졌다.
까캇~!
방어없는 공격만이 교차하며 둘 사이의 공간에 불길한 것들이 흩날렸다.
「꺄악! 어떻게요, 어떻게!」
요몽이 비명을 지른 것은 흩뿌려진 것의 대부분이 천음마군의 선혈이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신음성을 삼키며 휘청였던 몸을 바로 한 천음마군이 다시 이를 악물며 지나를 향해 돌아섰다. 반대로 약간 웅크린 자세였던 지나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마주 섰다. 처음부터 알고있던 거였지만, 만땅으로 파워 업한 지나의 거대 몸체에 비견된 천음마군이 새삼 왜소해 보여서, 여러모로 남녀가 역전된 비주얼이었다.
사실, 남녀 역전뿐이 아니지… 지금 단시간에 누더기가 된 옷과 피투성이 몸으로 간신히 서있는 것 같은 천음마군의 처연한 모습은, 보통
천음마군의 적이 보이게 되는 비주얼이니 말야.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뭔가 애매했던 우리의 천음마군은 이제야 발동 걸리기 시작한 것 같아.
“이봐, 지나.”
천음마군은 입을 열며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술이 약한 모양이군.”
천음마군의 뜬금없는 말에, 지나가 조금 움찔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압도적인 분위기로 천음마군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나, 눈빛이며 호흡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천음마군은 그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술이 좀 깰 동안, 기다려 줄까? 아, 아니, 내가 한잔 더 마시고 하는 것이 좋겠군.”
천음마군은 그렇게 지껄이며 주변의 어사조들 쪽을 돌아보았고, 그가 손짓하자, 누군가가 술 단지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걸 받아든 천음마군이 술을 입에 부으려는 순간, 지나가 카악,고함을 질렀다.
“필요 없어! 난 취하지 않았어!”
술 취한 자들의 전형적인 대사를 친 지나가 무서운 살기를 폭사하며 크와악, 포효했다. 다음 순간, 천음마군은 미처 마시지 못한 술 단지를 포기하고 옆으로 몸을 날려야 했다.
콰창! 쾅~! 퍼퍽!
지나의 난폭한 공격이 연속으로 작렬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천음마군이 한발 먼저 피하고 난 후의 땅바닥이나 테이블 같은 물건들이 아작 나고 있을 뿐이었다. 천음마군이 간파한데로, 지나의 움직임은 차츰 더 흐트러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놀라운 스피드와 무지막지한 파괴력은 여전해. 저런 공격을 잘도 회피하고 있는 천음마군, 저 인간의 움직임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어. 단순히 ‘발동 걸렸다기 보단, 늑대 인간의 움직임에 빠르게 적응하며 진화하고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크워어어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천음마군에게 분노한 지나의 하울링 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광폭하게 이어지는 공격의 여파로 발생한 흙먼지가 자욱해졌지만, 지나의 공격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으으음. 계속 나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저 쌈질 남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 나는 싸움을 보는 것 같지가 않네 그려. 뭐랄까, 안개처럼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사이좋은 남녀가 춤을 추고 있는 듯한, 그런 장면을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요몽! 음악 좀 틀어봐라.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 주인공이 늑대와 함께 춤출 때 흐르던 걸로.
「에고. 울 주인님, 또 이상한 데서 이상한 감수성을 발휘하시네.」
요몽은 내가 영화 제목의 ‘늑대’와 지나를 단순 연결해서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나로서는 정말로 저 쌈질 남녀가 함께 춤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로부터 얼마간, 요몽이 틀어주는 영화의 테마곡을 배경으로 ‘늑대와 함께 쌈질 동영상(?)을 감상하게 되었다. 흐으음. 나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이제 끝이 나는 것 같군. 지나, 저 여자, 참 뜬금없이 움직임을 멈춰 버리네.
자욱했던 흙먼지가 밤바람에 밀려 빠르게 걷혀가면서, 우뚝 멈춰 서있는 지나와 천음마군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긴장 속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여전히 숨죽인 채, 싸움의 결말에 주목하고 있었다.
“크우으으~”
낮은 울림소리를 흘려내고 있는 지나의 눈은 감겨 있었고, 천음마군의 반쯤 뜬 눈은 날카롭게 번득이고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모든 것을’하얗게 불태운듯한 지나에 비해, 천음마군은 아직 여력이 있어 보였다. 당연히 천음마군의 승리인 것 같았으나, 정작 당사자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쳇! 또 승부를 내지 못했군.”
그렇게 중얼거린 천음마군이 인상을 긁으며 돌아섰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지나의 낮은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크르르~ 크후우~”
으음. 매우 친숙하고 정겨운(?) 소리로군.
「주인님. 저거 혹시, 코고는 소리?」
-뭐, 그런 거 같다. 저 여자, 서서 잠들어 버렸어.
요몽은 어이없어 했고, 수많은 관중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자룡대주가 먼저 큭큭-대며 한 소리했다.
“완전, 여자 천음마군이네.”
자룡대주의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살벌했던 싸움터는 빠르게 본래의 파티장 분위기로 돌아오고 있었다.
“응? 아까 그거, 내 술이었나?”
뒤늦게 중얼거린 것은 소령이었다. 귀가 밝은 모두의 시선이 소령이에게 몰려들었지만, 녀석은 그것도 모른 채, 자신 앞의 술 단지가 놓여 져 있던 자리와 지나쪽을 번갈아 보면서 중얼거림을 이었다.
“저 늑대 언니, 대단하네? 그걸 한꺼번에 마셨으면, 나도 금방 잠들어 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지는 속도 조절만 조금하면 마실만한 폭탄주였다 이거군. 역시나 주당계의 아이돌이군. 으음. 그나저나, 결국 소령이의 폭탄주가 싸움을 평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셈인가?
내 결론은 약간의 억지가 있는 것도 같았지만, 적어도 이제 해골바가지 도우미들의 들것에 실려 가고 있는 지나의 표정은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그녀의 매니저 격인 살리나는 자기 선수의 황당한 퇴장에 X씹은 표정이 되어 있었으나, 호크는 우리보다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흐후훗~! 정말이지, 자기 아버지와 너무 똑같은 딸이었군.”
음. 지나의 아버지, 선대 친위 웨어 울프 부대의 대장이 저런 스탈이었던 모양이군. 그렇다는 건, 지나의 아버지와 천음마군의 스타일도 도낀 개낀이란 얘기가 되고, 그래서 지나가 천음마군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걸까? 보통은 자기 파더를 닮은 이성에게 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말야. 다소 식상하다고는 해도, 비교적 정확하다는(?) 소문의 학설을 생각해보고 있자니까, 요몽이 살짝 흥분한 기색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얘, 얘, 왜이래?
「헤헤~ 제가 너무 좋아서요! 드디어 오늘 파티의 다크호스! 숨은 주연일지도 모를 손님께서 등장하신다지 뭐예요!」
-뭐? 진짜? 진짜 그 녀석이 온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