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50화 : 날마다 할로윈. (2)
7. 날마다 할로윈. (2)
-뭡니까! 이제 제 목숨을 노리지 않으신다면서요! -얼굴에 상처 좀 생긴다고 죽지는 않아.
-방금 그게 상처만 생길 정도였다구요?
-잘 피했으면 됐지, 말이 많군.
-쳇, 알겠습니다. 과묵한 사내를 좋아하신다 이거죠? 그렇다면 이제부터 입을 다물 테니, 소교 얘기는 다음에 천천히…… 아, 아니, 그런 건 쫌. -뭐가? 난 이 닭뼈에 살점이 조금 남아서 들었을 뿐이네.
빌어먹을! 저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닭뼈의 한쪽이 너무 날카로워. 게다가 대나무 잎은 운치라도 있었지, 먹던 닭뼈로 공격당하면 왠지 더 기분이 더러울 것 같아.
-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대교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물어 보시는 것도 그렇고, 결국 제가 가장 만만하다 이거죠? 맘 놓고 괴롭히며 추궁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말이죠.
이 양반, 가타부타 대답하지는 않지만, ‘당근이쥐’라는 표정이 여실하네. 이제 딸내미들 앞에서 칼부림하는 건 자제하기로 한 모양이지만, 대신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암기화해서 날릴 심보인 건데, 횟감에 이어 ‘다트판’ 신세가 된 셈인가? 에고, 내 팔자야.
-요몽. 아니, 몽몽. 장인어른용 보고서 좀 띄워다오.
생각을 정리할 의욕도 안 생겨서 몽몽이 대신 작성해 주는 ‘소교 양 애잔 파워 오오라 현황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나의 성의 없음과 별개로, 몽몽 선생의 보고서가 상당히 훌륭해서 그런지, 사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상황을 잘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랬었군.
사영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는 소교를 돌아보며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결국, 특이한 능력이라기보다, 저 아이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그런 힘이라는 얘기로군.
이쯤에서 또 ‘딸바보’라며 놀리고 싶은 충동이 살짝 생기기는 하지만, 나도 사실 그럴 입장이 못 되지?
-후후, 동감입니다. 소교니까, 천 년 전부터 항상 자신보다, 자기 가족과 주변의 모든 이들을 먼저 챙기던 소교니까, 다른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거겠죠.
그래. 사영이 딸바보라면, 나는 ‘처제 바보’인 셈이니 말야.
-유준. 내가 우려했던 것은, 소교의 능력 자체보다는 그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점이었네. 혹시라도 미령이의 경우처럼 ‘수상한
무언가’에 의한 것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었지.
아, 이런 미령이의 ‘불꽃 헤나’를 알게 되었을 때는 크게 걱정하는 기색이 없어서 안심했었는데, 속으로는 꽤 신경 쓰고 계셨던 건가?
-유준. 말 나온 김에 묻겠네. 우리 미령이에게서 그, ‘불꽃 헤나’라는 것을 떼어낼 방법은 있는 거겠지?
-아, 예. 장담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 측에는 프리메이슨 놈들보다도 뛰어난 과학자가 있으니, 언제고 방법을 알아 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닥터 제이’를 말하는 건가?
-예. 성격은 좀 그래도, 과학자로서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잖습니까.
‘사실, 성격도 장인어른과 비슷하게 음흉하고 집요하다’는 말은 생략!
-알겠네. 이 얘긴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지.
사영은 닥터 제이를 떠올리며 복잡한 심경이 되는 것 같았다. 사영은 오랫동안 닥터 제이와 프리메이슨을 거의 동일시했기 때문에, 최근 오해를 푼 다음에도 닥터 제이에 대한 불신을 버리기 어려운 눈치였다.
-그런데 유준.
응? 대충 얘기 끝난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묘한 미소와 함께 날 부르지?
-조금 전, 소교에 관한 사항을 설명할 때, 의외로 잘 하더군. 마치 잘 작성된 보고서를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
웃! 이 양반, 진짜 세세하게 날카롭군.
-큼! 그야,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하나뿐인 장인어른께 뭐든 잘 보고 드리기 위해서, 크흠.
뭐냐. 수하(몽몽)의 공을 가로채는 것은 물론이고, 딸랑딸랑 아부 대사까지 술술 나와 주다니, 난 혹시 사회에서도 출세할 타입?
나는 택도 없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사영에게 술 조공을 바쳤고, 사영도 싱겁게 웃으며 내 잔을 채워주었다. 「우후후~ 천하의 주인님도 장인어른, 짱 이쁜 대교 님의 파더께는 어쩔 수가 없으시네용.」
-크흠. 됐고, 그보다
나는 사영과 술잔을 기울이며 요몽에게 물었다.
-데릭, 그 남자는 지금 뭐하냐? 얼마간은 더 소교를 훔쳐보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그만두었네?
데릭은 소교가 나온 후에도 짝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마냥, 러브 하우스 안에서 창문을 통해 소교의 자태를 하염없이 보고 있는 것 같았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시선은 불과 십 여분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었던 것이다.
「헤에~ 데릭 씨 말이죠? 그는 지금 혼자 난리도 아니에요. 소교 님께 바칠 최고의 요리를 준비하겠다고 산드라 씨와 자룡대주, 페트라 언니까지 쫒아 다니며 ‘재료 공수를 부탁하고 있답니당!」
훗. 우린 오늘 파티가 끝나기 전에, 뭔가 엄청난 요리를 먹게 될지도 모르겠군. 우리 소교 양 덕분에 말이지.
-알긋다. 그럼 대교는?
대교는 소교를 자리에 앉히자마자, 나에게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어딘가로 가더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우히히~ 그건 또, 비밀입니당!」
-뭐야? 이 시점에서 대교가 웬 비밀 행보? 아, 그리고!
나는 호크의 옆자리를 슬쩍 살피며 물었다.
-혹시, ‘피비’도 함께 간 거냐?
「오호~ 역시 눈치 대마왕 다우십니다요! 맞아염! 양측의 ‘퍼스트레이디’도 의기투합하게 된 거라고 할까용?」
뭐, 뭐야? 거의 동시에 일어서는 걸 봐서 혹시나 했는데, 정말 둘이서 몰래 뭘 할 정도로 친해졌단 말야?
어떤 상황인지가 무지막지 궁금했으나, 대교가 요몽에게 함구령을 내려놓았다면, 달리 알아낼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요몽. 힌트 좀.
비굴 모드로 물었으나, 요몽 녀석은 즉각 고개를 저었다.
-쳇. 치사해서 더 안 물어본다. 근데 바람의 저택에선……………
「후훗! 대교 님께서 유도 심문에 말려들지 말라고 하셨삼! 저도 이제 대교 님께 가겠삼!」
윽! 이럴 수가! 요몽 녀석이 정말 그냥 가버린다.
-몽몽! 어떻게 된 거냐! 요몽이 녀석 답지 않게 이런 단호함을 보이다니!
「이해해 주십시오, 주인님. 대교 님께서 비밀 준수에 대한, 세부 지침까지 하달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쳇. 누가 사영 딸내미 아니랄까봐, 세심한 면까지 부전여전이로군.
-그럼 너라도 힌트 좀.
「죄송합니다 주인님.」
젠장맞을! 몽몽까지 날 생까다니! 아무리 대교가 나를 능가하는 실세라고 해도, 설마 우리 몽몽 선생까지 이렇게 사회생활을 잘 할 줄이야! -치이~ 좋아, 그럼, 스무고개 어때? 첫 질문은 대교가 바람의 저택에 있으냐부터…………….
「주인님!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현재의 행동은 혹시, 심심하시기 때문입니까?」
-쳇. 눈치 깠냐?
사악한 나의 장인어른, 사영께서는, 내게서 듣고 싶은 얘기를 다 듣고 나서는 술 한 잔으로 계산(?) 끝났다는 듯이 날 생까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술을 따라줄 틈도 없이 혼자 자작하면서 딸내미들 간의 대화를 술안주삼고 있는, 진정한 술꾼이자 딸바보인 양반은 그렇다 치고, 천우신과 호크는 현재 미국의 시사 경제 얘기를 뭐 이리 길게 주고받고 있는지, 미국 상황을 쥐뿔도 모르는 나로서는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
-내가 이렇게 본의 아니게 아싸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대교까지 없다니! 오늘 파티의 주최자이며 주인공이어야 할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거야?
「대교 님 부재 시의 여흥 패턴 변경을 원하신다면, 코드명 금동 팀의 테이블을 우선 추천 드립니다.」
으음. 금동이는 아까 사영과 술잔 인사를 나눈 직후, 자기 친구들 자리로 돌아갔는데, 몽몽 표현대로 ‘금동의 테이블’이 되어있는 분위기로군. 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꼽사리 끼러갈 것처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어서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몽몽이 우선 추천했을 만큼, 금동 옹의 테이블 분위기가 상당히 흥미롭기는 했다.
훗. 금동이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손오공의 화과산 회식’ 장면 같군 그래. 그러고 보니, 오겡키는 ‘물 요괴, 하동’이고, 일본에서는 하동이 서유기의 ‘사오정’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지? 적어도 손오공과 사오정의 재회이긴 한 건가?
금동이와 오겡키를 손오공과 사오정으로 상정하자, ‘신의 전차, 길모르’는 어쩐지 ‘우마왕’쯤 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호박귀신 프로스트는 약간 애매했지만, 서양 요괴 캐릭터 중에서는 저 호박머리 비주얼이 가장 동양스럽지 싶었다. 서유기에 늑대 요괴도 나왔었는지, 잘 생각은 안 나지만, 대장 늑대 크루버도 비교적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혈의문 겸 귀문, 홍’, 저 아가씨는 언제부터 저 자리에 합석해 있는 걸까? 조용히 앉아서 긴 생머리를 드리우고 있으니까, 요괴들과 무지 잘 어울리는, 그야말로 어엿한 여자 요괴 분위기일세.
나는 홍을 저 자리에 소개시켜주는 듯했던, 은사마군을 찾아 두리번거려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찾을 수 없었고, 외곽쪽 테이블에 엎어져있는 천음마군만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인간, 지나와의 싸움이 끝난 후에도 폭주로 폭주했군. 물론, 저러다가 깨어나면 또 퍼마시겠지만 말야. 아, 혹시 지나도 비슷한 스타일이려나? -몽몽. 지나의 현재 상태는?
「직접 스캔할 수 없어 확실하진 않으나, 깊은 숙면 상태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흠. 지나가 천음마군 수준의 술꾼인지는 있다가 새벽에나 알게 될 것 같군. 아니, 만약 지나가 소령이의 폭탄주를 이겨내고 다시 술판에 끼어든다면, 오히려 천음마군이 한수 접어줘야 하려나?
‘로드!’
텔레파시를 보내 온 건, 뱀프 타운의 뱀프들과 어울리고 있는 ‘시그마’였다. 그는 뱀프 답지 않게 상기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동족들과 이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로드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모두 시그마 당신이 직접 싸워서 얻은 결과인데, 나한테 감사할 건 없을 거 같고, 어쨌든 그보다, 산드라는?”
‘아, 산드라는 조금 전에 대교 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흐음. 일단 꽤 멀리 가야 할 일이었단 말이지? 그리고 지금 보이지 않고 있는 은사마군의 행방도 수상하구먼.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자룡대주와 페트라도 보이지 않는데, 이 아가씨들은 데릭의 일과 겹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용의선상(?)에서 빼진 말아야겠지?
「주인님! 초자연적인 존재들과의 합석이 내키지 않으신다면.」
몽몽은 내가 금동이 쪽이나 뱀프들 자리로도 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나름 인간들만의 조촐한 자리를 추천하고 있었다.
-토르와 조담? 나보고 저렇게 칙칙한 솔로들의 자리에 끼라고? 사양하련다.
크흠. 저 두 녀석에게는 물론이고, 군대 가기 전까지 허구헌날 함께 퍼마시던 솔로부대 동지들에게 돌 맞을 발언이었나? 하지만 본래, 배신자(?)가 더 무서운 법이지. 커흠.
「아! 실내의, 코드명 원판을 선택하신 것입니까?」
몽몽은 내가 러브 하우스 건물 현관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놀란 것 같지만, 나는 고개부터 저었다.
-아니, 딱 그 놈 보려고 가는 건 아니야. 그냥 실내 분위기도 궁금해서 그런다.
몽몽 녀석,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나를 적극적으로 말리려고 하진 않는군. 그렇다면 역시 러브 하우스 안에서 대교가 뭘 하고 있는 건 아니로군. 처음 생각대로 바람의 저택이 유력해. 대교와 피비, 그리고 산드라와 은사마군. 거기다가 자룡대주와 페트라까지! 하나같이 짱짱한 아가씨들이 연합하여 진행하고 있는 일이 대체 뭘까나?
나는 러브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며 여러모로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딱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다. 물론, ‘혹시, 이거?’ 정도로 떠오르는 일은 있었지만, 당연히 확신을 가질 수준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대교든 누구든, 이 시점에서 대단히 큰일을 벌일 리가 없는데도, 왠지 추리 및 추적을 그만두기 어렵네. 이것도 일종의 아줌마군황 모드려나?
“유준 형님.”
원판 녀석, 계속 자리도 옮기지 않고, 비서 란과 미스 카이, 두 미녀와 노닥거리고 있었군.
“표정을 보니, 또 뭔가 비효율적인 활동을, 형님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양가 없는’일에 집착하여 에너지 소비를 하고 계신 듯 하군요.”
“냅둬. 내 취미야.”
나는 돗자리 귀신 물러가라고 손을 저으며, 나름 기습적으로 몽몽에게 명령했다.
-몽몽! 산드라 호출해!
「산드라, 말씀이십니까?」
-그래! 언능! 후딱! 대교에게 알릴 생각 말고!
「역시 주인님께선, 이러한 타이밍을 노리고 계셨군요. 대교 님측에서 비밀유지를 위한 대비를 하기 전에 현장을 확인하러 갈 타이밍을 말입니다.」
-그래, 짜샤! 언능 산드라나 호출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대교 님의 명령 완수를 위한, 비상 대책 시스템을 가동하겠습니다.」
-뭐?
몽몽의 반응이 뜻밖이어서 잠시 멍 때리고 있자니까, 게이트로부터 산드라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나타샤’를 대동하고 있었다.
나타샤 녀석은 파티 거부 팀의 한 명으로, 바람의 저택에 있었지? 그런데 쟬 왜 같이 부른 거지? 설마 저 녀석이 대교 측 대표로서 나를 막으러 온
미래의 전사, 아, 아니, 그건 아니고, 하여간 몽몽 녀석, 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
「주인님! 오페라 하우스의 유령, 코드명 ‘메아리 전사, 에릭’을 기억하십니까?」
-당근이쥐.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잊냐?
「그가 지금, 이 러브 하우스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뭐, 뭐야? 너 설마?
「주인님께선, 이제 산드라 씨와 함께 바람의 저택으로 가시는 길과, 이곳에 남아 나타샤와 에릭의 만남을 지켜보시는 길,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이 이 녀석 보게? 이런 사악한 방법으로 날 막겠다고?
야! 너어~!
「죄송합니다, 주인님. 이해해 주십시오.」
우이쒸! 이런 타이밍에 몽몽에게 뒷통수를 맞을 줄이야!
그, 그나저나, 정말 어쩐다? 대교 측 현장을 급습(?)하는 것과, 나타샤와 에릭의 러브 스토리 후속편을 확인하는 것, 둘 다 포기하기 어려운 유혹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