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53화 : 귀신의 날. (2)


8. 귀신의 날. (2)

-요몽. 바람의 저택 상항은 어떠냐? 이젠 내가 방문하면 안 될 이유는 없는 거겠지?

「그러믄요. 그쪽도 여기만큼은 아니어도, 꽤 즐거운 밤을 보내고들 있습죠.」

나는 대교에게 바람의 저택에 다녀온다는 전음을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고 보니,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아, 이런 산드라 낭자는 지금, 시그마 도령과 한창 ‘어화둥둥 내 사랑아~’ 분위기라는 것을 깜박했군. 지금 당장 나를 바람의 저택으로 수송해 달라고 하는 건 너무 미안한 노릇이야.

나는 둘을 방해하여 못된 ‘유준 대감’ 혹은 ‘유준 사또’가 되는 건 싫어서 시산 커플에게 향하던 걸음을 멈추었다.

-요몽. 바람의 저택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었지?

「대략 86킬로 정도요.」

쯧. 매번 산드라의 워프로만 오가는 바람에 실제 거리를 신경 써 본적이 없었는데, 쪼까 멀구먼. 파티 도중에 잠시 자리를 비우는건데, 차량을 이용해서 다녀오는 것도 좀 그렇지?

페트라의 ‘한복 체험 지원자 접수’는 언제쯤 끝날 거 같냐?

「그을쎄요? 지원자들이 많은데다, 각자 취향대로 디자인을 고르고 어쩌고 해야 하니까, 저희들로서도 계산이 어렵네염.」

에고. 페트라가 주문받은 한복을 수송할 때 꼽사리끼면 덜 미안할거 같은데, 그것도 기약이 없는 셈이구나.

젠장. 하는 수 없지. 산드라와 시그마 커플이 자연스럽게 둘 만의 세계에서 나오거나, 페트라의 일이 끝나면 알려다오.

「넵!」

쳇. 성급하게 자리를 뜨는 바람에 입장이 애매해졌네. 다시 돌아가기도 그렇고, 어디 대충 끼어들 자리도 마땅치가 않네. 어디고 끼자면 못 낄 것도 없겠지만, 왠지 그럴 의욕이 안 나는군. 오늘 이곳을 뷔페식당에 비유하자면, 이미 대부분의 메뉴를 한 번씩은 맛봐서, 아직 배가 차지 않았음에도 접시 들고 돌아다니는 걸 망설이게 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나는 일단 은신술 모드를 발동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아직 제대로 맛보지 못한 별미(?)를 꼽자면, 아무래도 나타샤와 에릭이지 싶었다. 하지만 나타샤는 그사이에 사라져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요몽. 나타샤는?

「나타샤는 자기 임무가 흐지부지 끝난 거 같다며 바람의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는데, 그녀도 산드라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그냥 러브 하우스의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네요. 이젠 적이 아니게 된 에릭이 저기 있는데도, 시시하게스리!」

제기, 아까 그냥 19금 일탈이라도 하게 놔 둘 걸 그랬나?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고! 하여간 그 녀석은 당장 ‘겨울의 여왕’ 모드를 풀 마음이 없는 모양이군. 에릭, 저 친구는 오늘 무슨 맘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살리나와 앞일을 상의하고 있는 분위기야. 역시 오늘 ‘나타샤와 에릭 핑크 기류 탐구 생활을 하는 것은 어렵겠어.

나는 그런 잠정 결론을 내리며 러브 하우스 실내로 향하기 시작했다. 문득 다른 흥밋거리, 비록 소소한 수준이지만, 하여간 그런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요몽. 데릭이 소교에게 바칠 최고의 요리를 준비한다고 했지?

「아, 예. 이제. 근데 그게요!」

요몽은 갑자기 살짝 흥분한 기색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 재료는 다 구했걸랑요? 근데 데릭씨가 또 오버를 하더라구요.」

-음식 만드는데 뭔 오버?

「아 글쎄, 동양식으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시작한다면서 목욕재계부터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더니, 칼과 조리도구를 전부 다시 꼼꼼하게 손보는 등, 하여간 그러다가 결국에는 아직 시작도 못했네요.」

으으음. 정성들이는 건 좋은데, 다소의(?) 오버가 있긴 하군.

-그래서 만든 다는 요리는 대체 뭐래?

「그게 또, 우리한테는 좀 웃긴, 아, 스포할뻔 했다! 조심해야징!」

요몽은 큰일 날 뻔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는 혀끝을 빼물었다.

「헤에~ 이번에도 눈치마왕 주인님께선 금방 얼렁뚱땅 맞춰 버리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염.」

-이 녀석, 너 오늘, 나한테 수수께끼 내는 것에 재미 들였구나?

「우훗~ 말 그대로 재밌잖아염.」

-알긋다. 받아주마. 음~ 우선, 메뉴 장르는 ‘한식’ 맞지?

「윽! 역시나 눈치마왕님!」

한복을 입고 강림한 소교를 위해서 준비되고 있는 거니까 찍어 본거지, 이정도로 눈치마왕은 무슨.

-다음 단계로 구체적인 메뉴를 추측해 보기에는, 아직 정보가 너무 없는 거 같다. 한식 종류가 좀 많냐? 반찬까지 파고들면 거의 무한 조합이, 아, 그래. 우리한테도 메인 요리인지, 반찬이나 간식 수준인지, 그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어~ 그게.」

요몽은 최대한 어려운 힌트를 주고 싶어서 나름 머리를 굴리느라 뜸을 들였다. 이럴 때는 의도적으로 급하게 재촉해서 말실수를 유도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그럴 수가 없었다. 러브하우스 실내로 들어가는 순간, 예상치 못한 비주얼을 목격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어? 아하! 이거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구낭!」

요몽은 나와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중이라는 것도 잊고, 신이 나서 거실 안을 날며 빛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요몽의 빛무리에 싸인 원판을 보며 픽, 웃고 말았다.

「에? 이렇게 싱거운 반응이라니! 다시 한 번 잘 보세염! 우리 원판씨의 극한 샤방 ‘선비 버전’을!」

요몽 말대로, 원판은 조선시대 선비의 도포를 걸치고 갓까지 쓴 행색(!)으로 앉아있었다. 녀석은 나를 보더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중의 하나인 ‘혈불(血佛)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며 재수 없는(!) 눈웃음을 쳤다.

“저도 가끔은 트렌드에 따르기도 합니다.”

“그,냐?”

나는 그냥 계속 싱겁게 웃었지만, 요몽 녀석은 과도하게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옴마나! 옴마나! 숨이 탁탁 막혀!」

쯧. 소교 앞의 데릭 못지않게 오버하는군. 극한 샤방은 개뿔.

-요몽! 원판 녀석은 지금 부채로 가리고 코를 파고 있을지도!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아아악! 또 상상하고 말았어! 주인님, 악마!

-야, 야! 수수께끼 힌트는 주고 가야지.

끙. 그냥 사라져 버렸군. 쩝~ 나의 요몽용 정신공격이 약간, 그러니까, 코딱지만큼 심했나?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일단 원판 커플의 테이블로 향했다. 원판 녀석의 재수떼기 선비 모드는 그렇다 쳐도, 그 옆의 란이 입고 있는 한복에는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사이즈를 착각해서 작은 걸 입은 것은 아니고, 전통 한복의 틀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교묘하게 몸에 달라붙는 형태로 디자인 된 거 같지? 한복 고유의 맛은 떨어지지만, 모델의 개성에 따라 이렇게 나름 매력적인 패션이 되기도.. 윽! 취소, 취소! 이건 한복을 가장한, 이런 된장맞을 여자 같으니! 나는 어이없어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살짝 몸을 틀어 옆모습을 보였던 란, 그녀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더 보란 듯이 춤추듯 몸을 회전시켜 보이기까지 했다.

으흑! 뭔 노무 한복의 옆트임이, 허벅지와 궁디까지 거의 보일 정도로, 우이쒸, 눈호강, 아니, 눈 버렸, 으~ 하여간 이 여자는!

“후후. 대교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뭐, 뭘 말이오.”

“이렇게 멋진 패션 아이템을 알게 해 주신 것을 말이에요. 앞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전의 회사에 근무할 때 알았다면, 저의 실적이 더 높아졌을 것 같아요.”

이 여자, CIA에 있으면서 유능한 과학자 꼬드기기’ 임무를 맡고 있을 때를 말하는 거군. 하긴, 이 여자처럼 출중한 몸매를 가진 여자에게 이런 야시시한복(맞아?)은 정말 무서운(?) 아이템이 될 수도 있겠어.

“저기, 우리 대교는 그런 감사를 받고 싶어 하진 않을 거 같소. 그보다, 이런 옆트임 같은 건 중국과 다른 나라 원피스에도 적용되는 거 아니었소? 굳이 우리 한복으로 이럴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말요.”

“그렇지 않아요. 오늘 보니, 한복에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가 있더군요. 여기, 이 옷고름이란 것을 조금씩 천천히 당기는 것만으로도………”

“아이 쒸, 거, 쫌!”

내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란은 옷고름을 풀던 손을 멈추더니, 오히려 살짝 도사리는 몸짓을 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런 란의 눈에 술기운과 함께 놀라울 정도의 색기가 머금어져있었다.

이거, 하던 짓을 멈추었다기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빼면서 더욱 상대를 달아오르게 하는, 여자들만의 사악 기법을 선보인 거 맞지? “란! 그쯤 해둬. 더 이상하면 유준 형님이 그 무서운 정글도를 빼어 들지도 몰라.”

“아! 그런 분이셨죠, 참.”

란은 비로소 ‘색기 모드’를 거두며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후후. 용서해 주세요, 진유준님. 저도 오랜만에 조금 취했나 봐요.”

란은 여전히 재미있어하며 웃는 표정이었지만, 스스로도 안 되겠다 싶기도 했는지, 찬물 좀 마시고 오겠다면서 몸을 돌렸다. 원판은 그녀가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다행히 눈치채지는 못한 거 같으나, 알았다면 꽤 낙심했을 겁니다. 남자의 영혼을 다루는 것에 나름 자부심이 있는 여자니까요.”

이 녀석, 역시 눈치깠군. 내가 겉으로 보인 반응과 달리, 실제로는 란의 행동에 크게 동요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지. 물론, 순수한 내 의지라기보다는 대교생각 배리어를 쳐야 했었지만, 그거야 어쨌든.

“훗. 난 그렇다 치고, 넌 진짜 꽤 변했다? 란의 자존심을 세워주려고 나서기도하고, 뭐, 오늘은 너도 좀 취한 거냐?”

“전에도 말씀드렸듯, 전 수줍음이 많은 남자입니다. 술기운을 빌어서야 겨우 쑥스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답니다.”

“너의 지롤도 자꾸 들으니까, 꼭 진담 같다.”

“훗. 그런가요?”

아무래도 이 녀석 역시 취하긴 한 거 같군. 사실, 이 녀석은 적당한 시점에서 진짜로 쫓아내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풀어진 모습을 보니까 그러기가 쫌, 그러니까, 발가락때 만큼 미안해서 그러기가 쫌.

“원판. 천천히 마셔라. 새벽에라도 함께 검남춘을 마실 남자가 그때쯤 깨어날 거 같으니 말야.”

나는 결국 천음마군, 천 년 전 비화곡에서 원판과 나름 친했었다는 야후 장로를 언급하며 돌아섰다. 데릭의 주방으로 가기 위해 걷고 있자니까, ‘원판의 수줍은 아낌을 받는 여자’, 란이 마주 나왔다.

“뭐, 축하해요.”

란은 내가 스쳐지나가며 낮게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이 되고 있었다.

‘원판, 저 싸가지의 마음을, 당신이 꽤 많이 차지하게 된 것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생략. 뭐, 내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지들끼리 진도를 더 나가든가 어쩌든가 하겠지?

나는 그렇게 원판 커플로부터 신경을 끊으며 발걸음을 조금 빨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치깐 요몽이 재빨리 등장해 버렸다.

「주인님! 뭐예욧! 주방으로 가시면 정답을 컨닝하시는 거잖아요!」

-으, 응? 아니, 난 그냥, 나도 목이 좀 말라서, 크흠.

「물은 주방 입구의 정수기에서 드삼! 그 이상 들어가시면 반칙이예염!」

-짜식이, 까탈스럽긴. 어?

「아, 안 돼! 하필 이때!」

요몽의 안타까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주방 안으로부터 미스 카이가 나오고 있었다. 미스 카이는 왜 한복을 입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으나, 그런 건 나중에 궁금해 하기로 했다.

“아, 진유준씨? 주방에는 웬일로요?”

“어, 그냥, 데릭이…………

「안 돼요! 안 돼! 그렇게 노골적으로 물으시면 반칙이에요, 반칙!」

젠장. 귀에 대고 고함을 질러대서 말을 잇지 못했네.

“아, 데릭은 지금 소교 아가씨를 위한 특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혹시 그게 궁금해서 오신 건가요?”

오우 예! 미스 카이는 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아!

나는 내심 쾌재를 불렀고, 요몽은 절망했다. 그러나 미스 카이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실은 저도 그게 궁금해서 온 건데, 데릭이 이번에는 저에게도 말해주지 않네요.”

“그럼 재료………….”

「반칙! 반칙! 치사뽕짝!」

-으~ 알긋다, 알겠어. 그만 두마

나는 요몽의 고막 테러 때문에 하는 수없이 주방입구에서 퇴각해야했다.

-요몽, 너야말로 치사빤쮸인 거 아니냐? 힌트가 너무 없잖아, 힌트가!

「아참. 아까 준비했던 힌트를 아직 못 드렸었네?」

요몽은 비로소 풀어진 얼굴로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본 것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데릭씨는 사실, 아침에 소교님께 ‘한상 가득 진수성찬을 드릴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중에서 한 가지, 매우 특별한 요리만은 완성이 되는 대로, 먼저 소교님께 진상할 생각이기도해요. 그게 바로 문제인데, 으음~ 까짓 거, 인심 팍팍 힌트 나갑니당!」

-반찬.

「어흑! 뭐, 뭐에욧!」

-우리한테는 반찬이지만, 데릭처럼 우리 식문화를 애매하게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독립적인 요리로 생각되기도 할법한, 뭐, 그런 거겠지?

「우띠! 벌써 정답까지 알고 계신 거 아녜요?」

-아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그러니까, 다음 힌트나 줘봐라.

「몰라욧! 더 이상의 힌트는 없어욧!」

쯧. 괜히 앞서 말해서 녀석을 심통나게 했네. 하지만 여기까진 너무 빤해서 참고 들어주기가 어려웠어.

-요몽. 그러지 말고, 재료 한 꼭지라도………………

「아! 페트라 언니가 접수를 마감했어요! 한 시간 안에는 메시지로 추가 접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산드라씨에게 가고 있어요!」

끄음. 힌트 구걸은 이쯤에서 멈추어야겠군.

잠시 후.

나와 페트라, 그리고 시그마와 산드라 커플, 이렇게 네 명이 함께 바람의 저택으로 워프했다. 그런데, 바람의 저택 게이트 앞에는 반가운 한복 소녀 한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복 소녀들 중에서 이 녀석이 유일하게 오리지널 한국 소녀였다.

“어머? 유준 오빠도 함께 오셨네요?”

“어, 그래, 유소희! 훗~ 네가 가장 정상적으로 예쁘구나.”

나의 진심어린 칭찬에 유소희는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상한 칭찬이긴 하지만, 왠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소희는 오리지널 한국 소녀답게 한복과 맞춤으로 곱디고운 미소와 함께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우리 구역에서 역으로 손님의 안내를 받는, 다소 이상한 상황이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소희야. 네가 혹시 오늘 한복 이벤트의 숨은 기획자였던 거 아니냐?”

“음~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냥 옆에서 조금 거들었을 뿐이에요. 아무래도 제가 한복 경험이 더 많으니까요.”

겸손하게 말하지만, 한복을 입은 상태의 움직임이 상당히 자연스럽고 익숙한 느낌이야. 사실 요즘에는, 우리 한국인들 중에도 한복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인데, 이 녀석 유소희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군.

우리가 안내된 곳은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부터 두 개의 커다란 방을 더 지난 후에야 모습을 드러낸, 거의 강당 수준으로 넓은 ‘작업장’이었다.

“산드라씨, 우리 멋대로 이곳을 작업장으로 결정해서 죄송해요. 리치몬드양이 이곳이 가장 좋겠다고 해서요.”

소희가 이 바람의 저택 안주인인 산드라에게 웃으며 말했고, 산드라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소희양. 저는 오늘, 이 저택의 더 많은 곳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를 바래요.”

산드라의 말은 듣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감동을 주는 대사였으나, 현실(?)은 다소 썰렁한 감도 있었다. 당장 눈앞의 강당형 작업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사람들보다 해골바가지들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