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56화 : 레크로노미콘(Necronomicon). (2)
9. 레크로노미콘(Necronomicon). (2)
「에고, 주인님!」
음? 이 타이밍에 요몽이 당황하여 보고할만한 일이라면?
「유소희님이 뭔가 감을 잡으신 거 같아요!」
에? 소희가? 이렇게 먼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저택 안에서 눈치깐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소희라고?
「혼자 작업장을 벗어나서 요괴 활을 챙기시더니, 아~ 이쪽이 보이는 방향의 발코니로 나왔어요!」
요괴 활, 묵정(墨釘). 그 녀석이 감 잡은 거 였군 그거야 어쨌든!
-요몽. 소희에게만 상황을 알려, 하지만 내 지시 없이는 나오지 말라고 해. ‘파티를 지켜라’ 작전도 얘기해주고!
「에효. 알겠어요.」
요몽 녀석, 한숨을 쉬며 명령을 받는군. 하긴, 나 자신도 한숨이 나오긴하네. 이 판국에도 여전히 ‘파티를 지켜라’,라니, 나란 놈도 참!
“이봐, 자인!”
기왕 이렇게 된 거, 계속 오버질 좀 하자는 심정으로 목소리에 살기를 담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책 얘기는 더 묻지 않겠어.”
그래. 묻는다고 제대로 대답해 줄 것도 아닌 거 같지만, 내 쪽에서도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지.
“네가 이렇게 요란하게 나타난 것은 나, 혹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서겠지? 아무래도 손님인 인호 일행보다는 우리가 먼저 움직일 테니 말이야.” 자인은 슬며시 웃음기를 거두고 있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너희들의 진짜 목적은 유인호, 라고 했지? 그럼 보통은 이쯤에서 네가 나의 발목을 잡고, 다른 매퍼 형제들이 인호를 노리는 작전을 쓸 법한데, 어쩐지 너희들은 별로 그런 작전을 쓰고 있는 거 같기가 않네. 안 그래?”
너무 앞서 단정적으로 묻는다 싶었지만, 자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국 너희들, 혹은 너희들의 큰형, 드웨인 매퍼, 그의 오늘 목적은 바로 나, 진유준이었다는 얘기군.”
쯧. 또 고개를 끄덕이네. 하여간 이 노무 이상한 인기는 정말이지 싫은데 말야. 어쨌거나, 매퍼 가문 놈들은 이제보니, 나와 인호의 예상을 넘어서도 한참을 넘을 만큼 위험한 놈들인 거 같아. 나, 진유준이라는 새로운 변수에만 관심이 생겼을 뿐, 인호의 복수심은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말야. 인호가 알면 어떤 기분이 될지, 우선 나부터도 이 적반하장 싸가지들에게 살짝 빡돌기 시작하는군. 상대가 이렇게 나올 때는 더욱 내 쪽의 전력을 숨기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아졌어!
“리치몬드!”
나는 마음의 소리를 쓰지 않고 직접 리치몬드를 불렀다.
“너도 너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한 놈들에게 화가 나 있을 텐데 미안하지만, 먼저 돌아가 주겠어?”
「주, 주인님?」
요몽이 당혹해하는 음성을 흘렸고, 리치몬드의 후드 안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금빛 광채도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저택에 돌아가서 인호에게 전해줘. ‘드웨인 매퍼와 안젤리카’, 그 둘은 오지 않았으니, 인호도 나올 필요 없다고 말야.”
「아이고야 울 주인님! 오버에 오버를 더 하시네! 대체 어쩌시려고!」
-요몽, 넌 이제 찌그러져 있어.
“리치몬드.”
내가 대답을 재촉하자, 리치몬드는 후드를 벗어 골든 스켈레톤이 아닌, 귀엽게 무서운 소녀의 얼굴을 드러냈다.
“유준. 난 화가 나서 온 것이 아니야.”
리치몬드는 자인 놈을 새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네크로노미콘, 그 불길한 봉인을 손댄 자들이 궁금했던 거야. 난 매퍼 가문을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찾아 헤매는 자’의 후손이었던 모양이네.”
자인 놈, 리치몬드의 말에 꽤 동요하는 기색이군.
“음. 과연 위대한 마법사, 리치몬드. 우리 가문의 기원을 잘도 알아보시는군요.”
자인 놈이 순순히 인정하자, 리치몬드는 오히려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며 낮게 한숨지었다.
“자인 매퍼, 라고 했지? 나는 ‘찾아 헤매는 자’의 현명함을 좋아했는데, 불행히도 그의 후손들은 어리석은 길을 선택했군.”
리치몬드는 상당히 안타까워하는 기색과 함께 자인 놈으로부터 돌아섰다.
“유준. 난 이만 돌아가서 당신의 부탁대로 하겠어. 그리고 나 역시 부탁할게. 나와 모두가 좋아했던, ‘찾아 헤매는 자’를 대신해서 저 어리석은 후손을
“징계해 줘.”
“그, 뭐, 내친 김에 그러지 뭐.”
리치몬드는 피식~ 한번 웃고는, 몸을 띄워 바람의 저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이 멀어지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 자인 놈의 살기와 마력이 솟구치고 있었다.
“학핫! 설마 당신이 리치몬드를 돌려보낼 줄이야!”
이것 봐라? 신디는 분명히 이놈을 ‘성질 급한 오빠’라고 했었지. 그런 놈이 이제껏 얌전을 빼고 있었던 것은 리치몬드 때문이었나? 리치몬드가 자신들 계열의 실력자라서 경계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날 리치몬드보다 뻘로 봤다 이거지?
“진유준! 드웨인 형은 나에게 ‘진유준이 걸려들면,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했어! 이제부터 정말 그렇게 하겠어! 당신을 죽도록 괴롭히면, 유인호란 놈도 당신을 구한답시고, 기어 나오겠지? 안 그래?”
자인 놈은 갑자기 인격이 변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광기에 찬 목소리를 내며 얼굴까지도 귀신처럼 섬뜩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런 놈의 광기에 반응하여 주위에 포진한 요괴들까지 급격하게 광폭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옴마나! 내가 미쵸! 내 이럴 줄 알았어!」
요몽이 기겁을 하고 숨을 정도로, 요괴들의 형상이 흉측하게 변모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기괴한 형태였던 놈들의 몸이 위협적으로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몸 안쪽으로부터 삐죽삐죽 가시 같은 것들이 삐져나오고, 끈적끈적한 촉수를 내보내 징그럽게 흐느적거리게 했다.
요괴니 괴물이니 하기 이전의 원초적인 무언가, 내가 평소 끔찍하게 싫어하는 벌레들보다도 징그러운 무언가들에게 에워싸이게 된 셈이지만, 이봐들, 오늘 출몰할 번지수를 잘못 골랐어. 이 몸도 지금 원초적으로 빡 돌았거든.
끼야악~! 끼엑!
소름끼치는 뭔가가 몇 마리 동시에 날아들었다. 나는 짧게 훅, 한 호흡을 삼키고, 정글도로 크게 원을 그렸다.
시이이익~!
별다른 초식도 없이 허공에 그어진 실선에 걸린 요물들이 반토막 나며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나로서도 드물게 섬세한 칼질이었지만, 베인 놈들은 불에 달군 대형 병기에 당한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화악 타올랐다가 사라졌다.
콰콰쾃!
좀 더 큰 요물들이 동시에 엄습해 왔고, 나의 정글도는 삼시전결로 화답했다.
퍽! 퍽!퍽! 퍽! 퍽!
깔끔하게 구멍 난 놈들이 날아온 힘에 의해 계속 밀려왔으나, 산책하듯 밟는 보법에 따라 전부 내 옆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정글아. 벌써 삼시전결은 아깝다. 놈들의 머릿수를 생각해서 가볍게, 아, 아니, 취소! 그래, 오늘은 우리, 정신 챙기지 말자.
나는, 간만에 씨익 비틀린 미소를 지었고, 오늘은 왠지 정글이도 나를 따라 비슷하게 웃는 느낌이 들었다.
“뭐하냐.”
나는 조용해진 자인 놈을 향해 말을 이었다.
“기껏 본성을 드러냈으면, 좀 더 이빨이든 가시든, 촉수든 내밀어봐. 나란 놈을 죽도록 괴롭히고 싶다며.”
“크읏!”
자인 놈은 이를 악물며 조금 주춤했던 살기를 다시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부하 요물들의 기운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후둑~ 후둑~ 후드윽~
숲 속의 모든 요물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군.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것이 용할 정도로 허공을 가득 메운 상태로, 흐으음. 그래. 지금까지의 무질서에 새로운 흐름의 질서가 생기고 있어. 간단히 말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의미!
직접 고개와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요물들은 종류별로 수십 개의 무리가 되어 각각 하나의 거대한 뱀처럼 길게 꿈틀대며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몇 마리의 요물 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들기 시작했다.
몇 줄기 강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기분? 아무려면 어떠냐, 어디, 너희들이 먼저냐? 박쥐형의 요물 무리! 직격인 같은 걸로 한꺼번에, 아니, 그냥 간다!
콰두두두두~!
수백 개의 타악기를 동시에 두드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박쥐형 요물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짧은 호흡으로 정글도를 끊어치기 시작했다.
팍! ! ! ! ! 팟!
한 호흡, 한 박자에 최소한 대 여섯 번의 도광이 번득이며 같은 숫자의 박쥐형 요물들의 몸도 토막이 났다. 토막난 박쥐형 요물들의 잔해가 사방으로 흩날리는 가운데, 나와 정글이의 경쾌한 칼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요물들이 발생시키는 악기(?) 소리가 급격하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쥔쥔님! 뱀! 뱀!」
요몽이 다급하게 알려오지 않았어도, 주변 상황은 감 잡고 있었다. 박쥐형 요물 악단(?)을 해치우는 사이, 뱀 요물떼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무수하게 많은 뱀 요물떼가 거대한 뱀이 되어 회오리처럼 나를 감아 돌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진짜 한 마리 거대 뱀이 낫지. 이 많은 뱀떼를 박쥐형 요물들처럼 리듬 살려 일일이 칠 수는 없, 웃! 이익!
박쥐형 요물떼가 전멸하는 순간과 뱀떼의 습격이 시작되기 직전의 틈에 나의 정글도가 땅바닥에 찍혔다.
지소파천결, 지파랑!
쿠오오오우우우웅~
지파랑 특유의 공진음속에 또 다른 거대 울림이 합쳐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사방의 공간이 원형으로 파도치며 거칠게 일렁이며 그 파장에 휩쓸린 뱀 요물떼가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스러져가고 있었다.
「이, 이 에너지 파장은? 와앗! 드디어 성공하신 거예요? 지파랑처럼 큰 초식에까지 영력을 담는 경지!」
-훗. 그래. 난 본래 실전에 강하잖냐. 지파랑 오컬트 버전, 지파랑 영력 플러스 스페셜 임펙트! 어떠냐?
「으음. 약간 애매하지만, 평소 주인님의 썰렁 네이밍 센스에 비하면, 그냥저냥 들어 줄만은 한거 같아염.」
-눈물나게 고맙다.
「어, 근데, 새로운 초식명치곤 너무 길지 않을까요? 상대에게 풀 명칭을 다 알려주려면, ‘받아라! 지소파천결 지파랑 영력 플러스 스페셜 임펙트!’ 이래야 하잖아요.」
-요몽 됐거든?
나와 요몽이 잠시라도 한가하게 노닥거릴 수 있는 것은, 요물들이 나의 영력이 담뿍 실린 지파랑 반격에 놀랐는지, 공격을 이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파랑 영력 플러스 스페셜… 하여간, 이거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자인 놈인건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게 되었군. 뭐, 일단 저 방향으로 튄 거 같지?
나는 놈의 마력이지 싶은 기운이 감지되는 방향으로 입을 열었다.
“자인! 나는 나의 가족들이 즐기고 있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 너희들과 놀아줄 생각이야! 계속 지금까지처럼 해도 상관은 없다만, 넌 뭐 개인기 없냐?”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 노무 네크로노미콘인지 하는 기분 나쁜 책에서 얻은 힘인 모양이고, 놈 고유의 뭔가가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었다. “매퍼 가문 형제들은 모두 자신만의 요마를 키운다며? 드웨인은 안젤리카, 신디는 오스카! 그런데 설마, 너는 이런 허접 징글이들 밖에 없는 거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줘 봤으나, 놈으로부터는 곧바로 반응이 오지 않았다.
“요즘은 떼거지보다 똘똘한 거 하나가 대세라던데. 뭐, 없음 말고.”
말을 마친 내가 놈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 했을 때, 비로소 뭔가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인니임. 우째 또 벌집을 건드리신 거 같은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쬐끔은.
쯧. 확실히 허접 요물 떼거지에 비하면 장난 아니게 강하고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네. 이번에는 정신을 좀 챙기고 싸워야 하려나? 쿠쿠쿠쿡! 쿠쾅! 쾅!
전방의 숲 자체가 거대한 기운에 밀려 좌우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쓰러지는 나무들 너머로 검붉은 기운에 휩싸인 자인 놈이 걸어오고 있었다. 너무나 강렬한 기운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저거 지금, 전신 갑옷을 입고 있는 거 맞지? 저 녀석 전용 요마는 갑옷 형태로 사용자를 파워업 시키는 놈인 건가?
“진,유준!”
자인 놈은 한층 더 거슬리게 인간 같지 않은 목울림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형은, 드웨인 형은, 당신을 죽이라고 하진 않았어. 하지만 이제, 난 형의 명령을 어기게 될지도 모르겠군.”
쳇. 자신감이 넘칠 만도 해. 이거 정말 예상을 상당히 초월하는… 웃!
사아~
아주 미세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정도의 느낌뿐이었지만, 다음 순간에는 이미 내 등골이 서늘해지고 있었다.
뒤? 이렇게 간단히 내 후위를? 이잇! 쉬익!
내 심도(心刀)가 등 뒤로 날았고, 연이어 몇 군데의 방위를 더 베었다.
썅! 제대로 발동된 심도가 빗나간 건 처음, 이, 이형환위!
콰직!
놈이 가볍게 휘두른 일격에 내 등 뒤의 나무 몇 개가 박살나는 것을 느끼며 이형환위의 초고속 움직임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도 심도와 그냥 칼부림까지 섞어 날렸으나, 모두 허공을 갈랐을 뿐이었다.
빠, 빨라! 거의 ‘라후의 혈족 삼형제’ 수준? 뭐, 뭐야, 이 놈. 왜 공격을 멈추고 물러나는 거지?
나의 심도 공격까지 무력화 할 정도의 스피드를 보여주며 엄청난 파괴력까지 맛배기로 보여 준 자인! 그런데 놈은 어쩐 일인지 제풀에 물러나서 약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 너 설마?”
“아아~ 그래. 나도 처음이야. 이 멋진 힘을 제대로 써보는 것은 말이지.”
놈은 잠시 더 멍하니 조금 전 자신의 움직임을 떠올려 보는 것 같더니, 결국 만족스럽게, 그리고 더욱 사악하게 웃었다.
빌,어,먹,을, 리치몬드가 조심하라고 했던 네크로노미콘의 위험한 힘은 허접 요물들 떼거지가 아니라, 바로 저거였구나.